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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5화 (5/288)

5화

몽원경(4)

침착하게 자세를 잡았다.

이상하게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아까 아침 배식을 할 때 무섭지 않았던 것도 단순히 저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광 때문만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래, 비록 꿈이었지만 전대의 초고수와도 검을 섞은 몸 아니던가.

몇 년 일찍 무공을 배우기 시작했고, 자질도 훨씬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또래의 아이에 불과하다.

대련용 목검을 단단히 움켜쥐고 그를 강하게 바라봤다.

‘감히?’

운호의 그런 모습에 하재철이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건방지다. 지금 저 녀석이 보여야 할 것은 굳은 의지가 아니다.

두려움이다.

백운호는 삼대 제자 전체를 통틀어 가장 무능한 녀석이다. 당연한 일이다. 녀석은 무가에서 태어나 엄선된 다른 아이들과는 태생 자체가 다르다.

본래라면 거리를 떠돌다 어딘가에 죽어 나자빠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놈이다. 그저 운 좋게 화산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비렁뱅이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재철로서는 저런 비렁뱅이와 같이 수학하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비렁뱅이가 주제도 모르고 저런 표정을 짓는다?

“백운호. 지금 대체 뭘 믿고 개기는 거냐? 설마 장광? 착각하지 마. 광이한테 너는 그냥 쓰다 버리기 편한 발닦개야. 물론 당장 사라지면 조금 불편하겠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야. 그러니까 그만 깝치고 지금이라도 빨리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어라. 혹시 아냐? 그 꼬락서니가 너무 불쌍하면 내가 용서라도 해줄지?”

“잘못? 빌어? 대체 뭐를? 그리고 내가 왜?”

하재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하지만 애초에 저 녀석은 나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저 녀석만이 아니다. 여기에 모인 놈들 대부분의 생각이 그렇다.

어릴 적부터 좋은 집안에서 각종 지원을 받으며 자라난 놈들의 특권의식이다.

“이제 용서는 없다.”

“애초에 네가 용서할 일 자체가 없었다니까 그러네.”

나와 하재철의 언쟁에 몇몇 아이들이 흥미로운 눈빛을 보냈다.

“자······,”

그냥 내버려 둬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괜히 우리가 말리면 뒤에서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차라리 우리가 언제든 개입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감정을 풀게 두는 것이 더 좋을 게다.

“아, 아니야.”

조교로 참가한 이대 제자 한 분이 감정이 격해지는 우리를 제지할 것처럼 나서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평소 오지랖이 좀 넓던 사고님이라 제지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어쩌냐? 누군가 말려 줄 거라고 믿고 깝쳤나본데 그런 것도 없는 것 같네 이제?”

“재철아.”

“어?”

“우리 그냥 목검 이거 내려놓고 입씨름이나 할까?”

“프흡, 왜? 인제 와서 무섭냐?”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후, 넌 어떻게 비꼬는 말도 못 알아듣는 거냐? 목 위에 그건 장식으로 들고 다니는 거야? 아, 아니지. 장식이면 그래도 조금 예쁜 걸로 들고 다닐 테니 그건 장식이라기보다는 균형추 같은 거구나.”

“뭐, 뭐라고?”

“뭐라기는. 네 얼굴 망가졌다고 알려주는 거지. 아 잠깐만. 망가졌다는 말을 쓰려면 그래도 멀쩡한 적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 이건 망가진 게 아니라 잘못 만들어진 거겠구나.”

안 그래도 붉게 달아올라 있던 하재철의 얼굴이 이제는 폭발할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래, 이왕 모욕을 느끼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나를 싫어하는 놈은 나를 싫어한다. 그렇다면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게 두느니 나를 싫어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편이 속 편하다.

하재철이 검을 치켜드는 찰나.

-까딱

가볍게 왼손 검지를 들어 지금 들어오라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가, 감히 이런 개애새끼가아!!”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하재철.

장광처럼 팔 척까지는 아니었지만 칠 척 이 촌쯤 되는 체구는 역시 위협적이다. 두툼한 목검이 나의 빗장뼈를 노리고 날아든다. 거대한 체구에 걸맞은 강맹한 일격. 감히 막아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부웅

하지만 왜일까?

절대 상대하지 못할 검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지금 녀석이 휘두르는 목검은 꿈속의 태사조 님이 보여줬던 검격보다 훨씬 사납고 강맹했다.

하지만 태사조 님의 검이 보여줬던 그 오묘함과 비교한다면 이건 그저 힘만 센 짐승이 자기 힘에 못 이겨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엉터리에 불과하다.

물론 내가 화산에서 배운 바에 의하자면 무공의 근본은 결국 힘이다.

화산의 무공은 선심후수에 근본을 두고 있고 제아무리 정교한 기술이라고 해도 결국 태산과 같은 힘은 이겨내지 못하는 법이니까.

보이는 힘의 차이는 명백하다.

하재철은 체구만 하더라도 나보다 일 척은 더 크고 내공의 양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기맥이 얇게 태어나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내공 자체도 적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꿈속에서 태사조님이 보여줬던 납매검의 응용이 눈앞을 맴돌았다.

그것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면, 어쩌면 그 검술들을 현실에서도 진짜 사용할 수 있다면.

거친 짐승의 발톱에 나의 검을 가져다 댔다.

톡, 그리고 다시 톡톡톡.

하재철의 모든 공격이 항상 강력한 것만은 아니다. 공격이 시작되는 지점. 그리고 공격이 끝나는 지점. 초식과 초식 사이에 전환점들.

아직 힘이 붙지 않았거나, 혹은 힘을 다 쏟아낸 직후.

아무리 하재철과 나의 힘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 순간순간만큼은 나의 검에 실린 힘이 그보다 강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녀석이 펼칠 초식의 흐름 자체를 제어할 수 있다.

검이 움직일 방향을 조금 틀어내는 것으로 내가 움직일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그사이 나의 목검이 녀석의 몸을 툭툭 두들긴다.

두툼한 근육과 십 년에 달하는 내공이 나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 씨바알새끼가아!!!”

하재철의 검에 실린 힘이 더 강력해진다.

그러나 우습다.

지금 녀석에게 필요한 것은 힘이 아닌 정교함과 침착함이다. 오히려 더 쉬워진다. 녀석의 동작에 더 큰 파탄이 생기고, 녀석의 몸을 두들길 동작에 더 큰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그만큼 녀석의 몸을 두들기는 목검에 힘이 붙었다.

이제는 몸을 슬쩍슬쩍 건드리는 수준이 아니다.

-퍼억

뼈를 상하게 할만한 힘은 아니지만, 피륙에 피멍이 들기에는 충분한 타격이다. 분노로 일그러졌던 짐승의 얼굴에 어느새 고통과 공포가 새겨지기 시작한다.

익히 잘 알고 있는 감정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두들긴다면······.

“그만.”

어느새 접객당주 남구선 사조님이 재철과 나의 사이에서 손을 들어 목검을 막아서고 있었다.

하지만 보인다.

여기서 증무 태사조님이 보여주셨던 8초의 변식을 응용한다면 저 손을 뚫고······.

“감사합니다.”

후,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감히 접객당주님을 공격할 생각을 하다니.

‘미친, 지금 봤어? 재철이 새끼 백운호한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거?’

‘저 새끼 저거 검술 시간에 게으름 피우더니 저게 무슨 개 쪽이냐. 다른 놈도 아니고 백운호한테 처맞다니.’

‘근데 백운호 검술이 좀 늘지 않았냐? 아무리 재철이가 게으름 피웠다고 해도 지금 진짜 일방적으로 공격했잖아.’

‘그러면 뭐 하냐. 수십 대를 패야 간신히 유효타가 들어가는데. 마지막 몇 번 제외하면 진검을 들었어도 생채기도 제대로 못 낼 수준이었어.’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사이로

‘흐음, 저거 조금 재밌는데?’

옥녀봉 홍매당 출신의 미소녀.

강아현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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