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몽원경(3)
몸을 반보 틀어 증무 태사조의 검을 피하며 허리에 걸려있던 검을 빠르게 뽑아 들었다. 그 모습에 태사조님이 제법 기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제법이구나. 그러면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여유로운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는 검.
하지만 그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는 태사조님의 검들 가운데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꿈이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볼 만하다.
순식간에 몇 합의 검격이 오갔다.
그것은 삼대 제자들끼리 주기적으로 이뤄지던 비무회와는 달랐다.
그 아이들의 내밀던 검이 나의 검을 부숴버리겠다는 의지였다면, 증무 태사조의 검은 마치 ‘내가 이렇게 할 때 너는 어떻게 할거냐?’라고 물어보는 질문과도 같았다.
태사조의 질문에 내가 답했다.
다시 태사조가 물었고 내가 답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이지······.
재밌었다.
‘재미라고? 무공에서?’
사실 나는 지금까지 무공에서 ‘재미’라는 것을 느낀 적이 없었다.
너무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일’에서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무공은 내가 앞으로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다. 그것은 필요하므로 익히는 것이지 놀이의 대상이 아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 역시 무공은 오직 자신과의 싸움이며 오직 꾸준한 정진만이 그 성취를 보장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습게도 나는 태사조와 검으로 나누는 이 질문과 답변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이것은 흡사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너무나도 재밌는 놀이와도 같았다.
너무나도 재밌어서 영원히 계속하고 싶은 그런 놀이.
그렇게 수십 번의 질문과 수십 번의 답변이 오갔다.
태사조의 질문이 차곡차곡 쌓였고, 나의 답변 역시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가지 길이 보였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길이 아닌 단순한 욕심일지도 몰랐다.
망설임.
감히 그래도 괜찮을까?
그런 나의 망설임에 태사조의 검이 웃으며 나를 격려했다.
-네 마음대로 해봐라.
그리하여 마침내 그 격려에 용기를 내어 내가 처음으로 태사조님께 나의 검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정말이지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한다면 태사조님은 어찌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나의 질문에 태사조가 답했다.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답안으로.
지금까지 태사조의 질문과 나의 답변은 모두 내 ‘이해’의 영역 안에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 이해의 영역을 완벽하게 벗어났다.
그것은 대체 어째서 이렇게 시작하여 이러한 결과가 도출되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그런 검이었다.
-챙!!
세상이 부서졌다.
“뭐, 나쁘진 않네.”
“바······, 방금 그건 대체 뭐였습니까?”
“뭐기는, 납매검이었지. 눈치챘을 텐데? 내가 딱 네 수준에 맞춰서 네가 이미 익힌 납매검으로만 상대를 해줬다는 것을. 그게 아니라면 네가 대체 무슨 수로 나와 검을 섞을 수 있었겠어. 네가 아무리 둔하다고 해도 그걸 알아볼 정도의 눈은 있지 않아?”
묘한 잘난 척.
하지만 어울렸다.
“분명 다른 것들은 모두 납매검의 수법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증무 태사조가 보여준 검술은 납매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대단했다.
마치 창공을 유영하는 독수리와 이제 막 갓 태어난 병아리가 같은 조류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그 모든 수법은 납매검의 그것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그것만큼은 아니다.
찬찬히 방금의 공방을 다시금 되짚어봤다. 앞선 공방에서 보여줬던 수법들은 경이롭지만 어쨌거나 납매검의 응용이라고 우길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그것은 마치 지렁이와 용이 몸이 길다는 공통점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같은 검을 사용한다는 것만이 공통될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것은 결단코 화산의 기본 검술인 납매검일 수 없었다.
“도저히 납득하지 못 하는 얼굴이로군. 하지만 이것 역시 네가 알고 있는 납매검이다.”
“허나 대체 어떻게 그것이······.”
증무 태사조가 웃었다.
“하하하, 이것 참 재밌는 표정이로군. 뭐, 설명을 해주는 것이야 쉬운 일이지만 그래서는 재미도 발전도 없겠지. 그래 좋아. 숙제다.”
“네?”
“이것이 대체 어째서 납매검이었는지를 알아와라. 만약 숙제를 훌륭하게 해낸다면······. 그래, 내가 아주 큰 상을 내리도록 하지.”
상이라고?
내가 다시 질문을 하려는 찰나.
“아,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일어날 시간이겠군. 오늘 조식당번이라고 하지 않았나? 큭, 조식 당번이라니. 고작 백여 년 만에 화산파도 참 재밌어진 것 같단 말이지.”
“네?”
“이제 슬슬 돌아가란 이야기다.”
-쾅!!
* * *
아침 일찍 일어나 백칠십 명분의 조식을 준비하는 중에도 태사조와 함께 나눴던 검의 대화가 아직도 눈앞에 생생했다.
실로 기이한 꿈이었다.
아니, 어쩌면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맴돌았다.
“야, 백운호.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반찬 똑바로 못 퍼?”
“으······,응?”
하지만 아쉽게도 깊게 생각할 시간 따윈 없었다.
당장 내 눈앞에 반찬 배식에 불만을 품은 녀석이 으르렁거리며 서 있었다.
“재철아 미안. 하지만 원래 배식은 정량이라서······.”
“아, 지랄하지 말고. 얼른 더 퍼라. 부족하면 네가 덜 처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
아마 지금 눈앞에서 이런 소리를 하는 녀석이 이준형, 아니 하다못해 장광만 됐어도 군소리 없이 고기를 더 퍼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하재철은 삼대 제자 가운데서도 딱히 상위권이라고 하기 힘든 녀석이었다. 기껏해야 중상위 정도? 물론 그 정도만 하더라도 나에게는 까마득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녀석에게까지 이렇게 공공연하게 호구를 잡히는 것은 곤란하다.
“네가 아니라도 급식 당번하면 알아서 덜 처먹게 되거든. 그러니까 너까지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말고 그냥 좀 가주라. 응?”
“뭐 이 새끼야?”
하재철도 지금 이곳 화산에서야 중상위권 수준이지만 자기 동네에서는 왕처럼 굴던 녀석일 것이다. 녀석이 눈을 크게 부릅뜨고 나를 향해 몸을 내밀었다.
물론 무섭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이, 하재철이. 지금 뭐 하냐? 안 그래도 저 새끼가 조식 당번인 바람에 줄 서서 밥 타는 거 기다리느라 짜증 나는구만.”
저 줄의 중간에는 이 동네 최고의 양아치인 장광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 어. 광아. 그게 그러니까.”
“아, 그러니까고 저러니까고. 얼른얼른 타가라. 지금 뒤에 다들 기다리는 거 안보이냐?”
“미······, 미안!!”
하재철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백운호, 너 이 새끼 두고 보자.”
물론 위협의 말을 내뱉는 것도 잊지 않았지만,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삼대 제자들의 숫자는 무려 백칠십 명에 육박한다. 오늘이 지나면 딱히 저 녀석과 부대낄 일도 많이 없고 그렇게 며칠만 지나면 녀석도 이런 일 정도는 다 까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던 두 시진 전의 나 자신을 반성한다.
“자, 그러면 오늘은 그간의 강론 내용대로 실습을 한 번 해보자.”
화산파에서 그 누구보다 실전을 많이 경험했다는 접객당 당주 남구선 사조님의 강의.
화산의 본산 제자가 되지 못할 경우 가장 유용할 내용이기에 평소 내가 가장 좋아하던 그 강의가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너 이 새끼 내가 두고 보자고 그랬지.”
내 바로 앞.
하재철이 사나운 표정으로 이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