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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2화 (2/288)

2화

몽원경(1)

현실같이 생생한 꿈이었다.

그 탓일까?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몸도 제법 뻐근했다.

“뭐야, 기왕 개꿈을 꿀 거였으면 증무 태사조 말고 백운 태사조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몸이 노곤 했지만 미적거릴 시간은 없었다. 화산파 제자의 아침은 빠르다. 하물며 삼대 제자. 그 가운데서도 연줄 하나 없는 나같은 놈의 하루는 더 빨라야 한다.

어지간하면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다가 대충 얼굴이나 닦고 나가고 싶었지만, 몸이 너무 끈적하여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물로 몸을 씻었다. 아직 4월. 산중의 눈도 채 녹지 않은 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물을 끼얹은 몸에서는 그리 심한 추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내공을 익힌 이후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다.

서둘러 아침 수련을 위해 연무장으로 달려갔다.

아직 해가 뜰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고 연무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언제나처럼 나였다. 화산파의 기본 심법인 자소공을 수련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해가 막 떠오르는 시간이다. 굳이 지금 이 시각에 나와서 수련을 시작하는 이가 드문 이유다.

-후우

호흡을 통해 몸에 쌓인 탁기를 내뱉고 화산의 충만한 정기를 들이마신다.

동시에 부드럽게 몸을 움직였다. 자소공은 상승의 심법은 아니었지만, 대문파의 기본공들이 그렇듯 심기체를 모두 강건하게 단련해주는 좋은 공부다. 잠을 설치고, 차가운 물을 끼얹었던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한참을 그렇게 연마했을까?

“이 새끼 이거. 또 이 지랄 하고 있네.”

아무리 봐도 나랑 같은 나이라고는 믿기 힘든 팔 척의 거대한 체구.

고향마을에서 가장 체구가 크던 덕삼 아저씨가 칠 척하고 팔촌쯤 됐던 걸 고려하면 고작 열셋의 나이에 팔 척이라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장광아 왔어?”

“지랄 그만하고 얼른 비키기나 해.”

“광아, 너무 그러지 마. 운호도 나름으로 열심히 한다고 하는 거잖냐. 아침부터 와서 이렇게 우리 자리도 맡아주고. 어? 게다가 쟤도 여기서 열심히 해야 나중에 어디 표국이라도 취직해서 먹고살 거 아니야. 안 그래?”

“어휴, 하여간. 준형이 넌 너무 사람이 좋다니까.”

“운호야. 고생했어. 가서 일 보고. 내가 예전에 말했던 것처럼 나중에 힘들면 우리 집으로 와. 집에서 운영하는 표국에 자리 하나 마련해줄 테니까.”

“이런 녀석들은 그렇게 마냥 좋게만 대해주면 안 된다니까.”

투덜거리는 장광을 이준형이 달랬다.

“다 같은 삼대 제자잖아. 너무 그러지 말자. 응?”

하지만 속지 않는다.

저 무리에서 진짜 무서운 건 팔 척의 거한인 장광 녀석이 아니다.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해주는 저 이준형이다.

녀석은 화산파의 속가문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비화문 문주의 둘째 아들로 작은할아버지는 화산의 장로인 굉진자 홍주검객 이진섭이었다.

게다가 본인의 재능 역시 굉장했다. 광양지체라는 특수체질로 화산의 무공을 익히기에 더없이 적절하고 어릴 적 가문에 내려오던 자소단을 복용하여 벌써 20년 가까운 내공까지 지녔다.

하지만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저 나이에 벌써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쓴다는 점이었다.

그냥 피상적인 것만 본다면 항상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장광이고 그런 장광을 꾸짖는 것은 이준형이다. 하지만 장광이 우리를 괴롭혀서 얻는 이득 대부분을 가져가는 것은 그런 장광을 꾸짖는 이준형 쪽이다.

불합리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세상을 경험하며 세상은 본래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게 됐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이준형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준형아.”

“고맙기는, 아 맞다. 오늘 아침밥, 내가 좋아하는 반찬 나온다더라. 그러니까 오늘도 잘 부탁해.”

“어, 어!!”

* * *

현 화산의 삼대 제자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 화산의 삼대 제자가 아닌 삼대 제자의 후보 정도로 봐야 했다.

우리는 아직 사부가 정해지지 않았고, 기초적인 수련이 끝났을 때 이대 제자들의 선택을 받아 정식 제자가 되던지, 아니면 속가 제자로 하산을 해야 했다.

그렇기에 이대 제자들이 교관, 혹은 조교로 나오는 무공 강의는 매우 중요하다. 이준형을 비롯한 몇몇 내정자들이야 아무 상관 없겠지만, 나 같은 녀석들이 윗선에 얼굴을 비출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구이기 때문이다.

오늘 강의를 맡은 이대 제자 공야찬은 조금 묘한 사람이었다.

“오, 준형이 왔구나. 요즘 수련 힘든 건 없니?”

“괜찮습니다.”

“그래, 언제라도 힘든 일 있으면 찾아오고. 내 방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단다.”

“감사합니다.”

그래. 천하의 기재를 탐하는 것은 군자의 낙이라고 했으니 뭐 이 정도라면 그럴 수도 있다.

“아니, 아현아!! 어쩌다 늦은 거니. 안색이 조금 안 좋아 보이는데. 조금 더 쉬다 오지 그랬어.”

“아닙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뭐 그럴 수도 있지.”

공야찬이라는 인물이 본래 이렇게 너그러운 인물인 걸까?

그럴 리가.

“어이 거기 세 번째 줄에 뚱뚱이, 그래, 너 너 말이야. 누가 수업 중에 떠들어도 된다고 했지?”

“그러니까 그것이······.”

“핑계는 필요 없다. 아무래도 너는 검술 수업보다는 동료들의 위생을 위해 청소라도 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구나. 지금 당장 나가서 을호 화장실 청소를 끝내놓도록 해라.”

그가 너그러운 것은 너그러워야 하는 아이들에게 한정된다.

실제로 그는 삼대 제자들의 이름조차 다 외우지 못했다.

재밌는 점은 그렇다고 해서 공야찬 사숙이 너그럽게 대해주는 아이들이 그를 좋아하냐면 그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때려죽여도 그 사람 밑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어. 그 사람의 제자가 되느니 차라리 본가로 돌아가고 말겠어.”“넌 당연한 이야기를 뭣 하려 입 아프게 하고 그러냐?”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이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각적으로 파악한다.

단순히 공야찬 사숙의 행동 때문만이 아니다. 그에게서는 진한 패배자의 향기가 풍겼다. 실제로 사숙들 가운데서도 그는 경원시 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공야찬은 나에게 있어 유일한 기회였다. 그리고 난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백운호.”

그 결과 공야찬 사숙은 나의 이름을 외웠다. 그의 성정을 생각했을 때 그가 이름을 외웠다는 것 자체가 제법 괜찮은 신호였다.

“너, 누가 검을 그렇게 휘두르라고 했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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