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기랑대의 위력
검은 칼바람 기랑대가 연합군의 기마대를 박살 내자 뒤는 더 간단했다. 쫓아온 벨로반의 기마대가 연합군의 보병부대를 거침없이 들이친 것이다.
“크아아악!”
“커어억!”
“내, 내 다리가……!”
보병대에게 장애물 없이 밀려드는 기마대는 그야말로 악몽에 가까웠다. 사실 본래라면 기마대와 기마대가 상충하면서 그 위력이 크게 줄어들어야 했다.
그런데 피해 없이 그대로 밀고 들어오다 보니 그야말로 파도에 쓸려 나가는 모래알처럼 병사들이 죽어 나갔던 것이다.
그나마 사지가 날아가도 살아남은 병사는 운이 좋은 편이다. 첫 충돌한 보병부대의 선열은 정말로 비명 한번 제대로 질러 보지 못하고 몸뚱이가 박살 났으니까.
문제는 노도와 같은 첫 충동 이후에도 기마대의 위력은 여전히 위협적이라는 사실이었다.
“기마를 포위하고 말의 다리를 노려라! 최대한 움직이지 못하도록 방해하란 말이다!”
지휘관들의 외침에 따라 수많은 병사들이 기마대원 한 명을 보위하여 공격을 시도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기마대는 기사뿐만 아니라 말 역시 철갑으로 무장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 때문에 병사들의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제대로 피해를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말 역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당해 주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히히히힝!
힘이 좋은 전마들은 병사들의 포위에도 아랑곳 않고 거칠게 투레질을 하며 앞으로 밀고 나갔다.
“이틈에 뒤를 노리면……!”
“멍청아! 안 돼!”
“네?”
히히힝!
퍽!
무방비한 기마대의 뒤를 노려 접근했던 신참 병사는 고참 병사의 제지를 듣기가 무섭게 농담처럼 하늘을 날았다.
말이 뒷발을 강하게 내질러 병사를 그대로 뻥 차 버렸기 때문이다.
“저 멍청한 새끼! 다들 섣불리 말의 뒤로 접근하지 마! 알았나!”
그렇게 십수 미터를 날아 떨어진 병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고참 병사는 그 모습을 보고 다른 동료들에게 경고했다.
숱한 전투 경험이 있는 그는 전마의 뒤로 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을 탄 벨로반의 기사도 등 쪽은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예민한 전마들은 뒤로 누군가 접근하기만 해도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뒷발로 차 버렸기 때문이다.
그 위력은 방패를 써서 제대로 가드해도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라 결코 얕잡아 볼 수 없었다.
이처럼 단순한 기마대가 이 정도인데 기랑대는 어떻겠는가?
“으아아악!”
“어이! 도망가지 말라고! 김이 새잖아. 김이!”
크르르르르!
전마는 뒤만 조심하면 되지만 다이어 울프는 사방이 위험구역이다. 그뿐인가? 다이어 울프와 오크 전사들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통에 약점 같은 건 발견할 수도 없었다.
거대한 덩치와 무게 때문에 돌진이나 발로 밟는 것 자체도 위험한 공격이었고 전마는 가지고 있지 않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도 차고 넘칠 정도로 위험했다.
그러다 보니 기랑대에게 달려드는 병사들과 기사들은 거의 갈려나가는 수준으로 병사들이 픽픽 쓰러져 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두렵고 절망스러웠는지 연합군 병사들은 기랑대의 그림자만 보여도 도망치기 일쑤였다.
“진형을 유지해라!”
“멋대로 도망치는 놈들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실제로 도망치는 병사들을 지휘관들이 직접 베어 목을 걸어도 크게 소용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진형은 더욱 엉망이 되어갔고 그 틈으로 벨로반 보병들이 빠르게 진입했다.
진형을 단단히 유지한 채 돌격하는 것과 진형이 망가진 채 들이 받히는 건 말 그대로 단단한 차돌이 무른 진흙에 처박히는 꼴이었다.
게다가 더욱 큰 문제는 사기의 차이였다.
“대족장! 왼쪽 진형에 힘이 조금 달린다는데요?”
“크라사스, 네가 칼바람 다섯 기를 데리고 가서 지원해 줘라.”
“알겠습니다, 대족장! 너희 다섯은 나를 따라와라.”
그렇게 명령받은 크라사스가 살짝 고전하고 있던 왼쪽 진형으로 달려가 깽판을 치기 시작하면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그렇게 되면 아군도 사기가 올라 본래 힘의 100%…… 아니 120%의 힘으로 싸울 수 있었다.
반대로 적군은 100%의 힘으로 저항했다가도 80%나 심하면 50% 이상 전력이 깎여 결국 밀리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각하! 이대로라면 군이 전멸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한 번 군을 퇴각하시고 진영을 재정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부디 결단을……!”
“크흠…….”
결국 연합군의 사령관은 군을 후퇴시켰다. 심지어 그것도 고집을 부리지 않고 제법 빠르게 판단한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피해가 막심하군.”
“벨로반군의 피해는?”
“정확한 건 확실히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짐작으로는 우리가 입은 피해의 1/10도 안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군사력의 차이는 크게 없었을 텐데.”
“문제는 기랑대인가…….”
사령관의 나직한 한탄에 지휘관들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제는 기랑대 중에서도 그놈입니다.”
“그놈이라면……. 가장 큰 늑대를 타고 다니는 그놈 말인가?”
“예, 놈에게 우리 측 최강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델리 경과 루마디스 경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했습니다.”
“델리 경과 루마디스 경이라면 오러 마스터들이 아닙니까? 두 사람이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당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 광경을 목격한 병사들의 증언이 많습니다. 게다가 정말로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그가 타고 있는 늑대조차 마스터 오러를 사용한다는 믿기 힘든 증언도…….”
“허허……!”
지휘관들은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지금 자신들이 집단으로 최면이 걸린 게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사실 진영을 갖추고 내일 다시 싸운다고 해서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마대는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데다 병사들의 사기도 땅에 떨어진 상황입니다. 그에 반해서 적들의 피해는 경미하고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지요.”
“일단은 전선을 뒤로 물리고 지원군과 보급품을 다시 요청 받는 것이…….”
콰르릉!
난데없는 천둥소리에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응?”
“방금 천둥이 치지 않았습니까?”
“저도 들었습니다.”
“이상하군요. 오늘은 날도 쾌청한데 마른하늘에 벼락이라니…… 무슨 안 좋은 징조라도…….”
“에이, 농담으로라도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씀은…….”
그러나 슬픈 예감은 왜 항상 틀리지 않는 것일까?
“크, 큰일 났습니다!”
그 순간, 막사 안으로 부리나케 뛰어 들어오는 병사가 있었으니 정말로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고서는 절대 해선 안 될 행위였다.
그 때문에 사령관과 지휘관들도 심각한 얼굴로 병사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냐?”
“보, 보급 창고에 번개 한 줄기가 떨어져 내리더니 그 속에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예상컨대 벨로반 왕국의 아바타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뭐, 뭣이? 벨로반 왕국의 아바타가 나타났다고?”
“당장 놈을 잡지 않고 뭘 하는 게야!”
“그, 그것이…….”
사령관과 지휘관들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병사의 답답한 태도에 직접 보급 창고로 달려가 상황을 확인하였다.
“이, 이게 무슨…….”
“허허…….”
그들은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얀마, 밀가루는 괜찮으니까 고기부터 넣으라고. 고기부터.”
“예, 마스터.”
“그리고 향신료는 조심해서 옮겨라. 그거 한 통에 100골드가 넘어가니까.”
군량 창고에서 식료품을 옮겨 담는 모습이 누가 보면 흡사 취사병으로 착각해도 할 말이 없을 모습이었다.
문제는 요한이 취사병도 아닐뿐더러 아군은 더 더욱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뭘 지켜보고 있는…….”
당장 나가서 적들의 목을 따도 모자랄 판에 그 광경을 물끄러미 서서 지켜보고 있는 병사들이 못내 답답한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헤집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창고 주변의 상황이 더욱 눈에 잘 들어왔다.
허공을 느릿느릿하게 날아다니는 정체불명의 황금빛 무구들, 그 아래에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병사들의 시신과 붉은 핏물들까지…….
알고 보니 병사들은 접근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군량이 털리는 걸 지켜보기만 할 생각이더냐! 이런 답답한……!”
결국 지휘관 한 명이 검을 빼 들고 직접 나섰다. 그의 검에서는 익스퍼트 오러를 상징하는 은은한 빛의 오러가 피어올랐다.
‘아직까지 별다른 변화는 없군.’
그는 자신이 코앞까지 접근했음에도 여전히 느릿느릿하게 날아다니는 무구들을 보고 마나를 최대한 끌어 올렸다.
‘지금이다!’
팟!
그리고 전력을 다해서 땅을 박차 요한에게 쇄도하는 순간!
서걱!
“큭! 이게 무슨…….”
촤촤촤촤촤! 후두둑…….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던 무구가 돌연 빛살처럼 움직이더니 한때나마 인간이었던 육편과 핏물만이 후두둑 아래로 쏟아져 내릴 뿐이었다.
“이런 미친…….”
“화, 화살이라도 쏘란 말이다!”
다급한 지휘관들의 외침에 병사들은 나직하게 한숨을 쉬며 말 대신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슉슉슉슉슉!
요한과 블랙에게 날린 화살들은 모두 허공에 나타난 참방거리는 듯한 느낌의 파문과 함께 마치 호수에 화살을 빠트린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슉슉슉슉슉슉!
“피해!”
“방패를 들어라!”
흡수되었던 화살들은 고스란히 병사들에게 돌아온 것이다.
“보시다시피 화살이나 투석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병사들이 피해를 입을 뿐입니다. 물론 끓는 물이나 기름, 불을 붙인 기름도 마찬가지고요.”
“그, 그런……!”
“그럼 대체 어쩌자는 말이냐!”
“지금은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장 지휘관이 식은땀을 흘리며 의견을 내자 사령관은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제가 직접 해결해 보겠습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앞으로 나섰다. 연합군에 있어 귀중한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오러 마스터 뒤곤 백작이었다.
“자, 잠깐만 뒤곤 경! 그러다 자네까지 잘못되면……!”
“사령관님, 그럼 이대로 손 놓고 구경만 하실 겁니까? 우리 군량이 다 털릴 때까지요?”
“그건 아니지만…….”
뒤곤은 사령관의 어깨를 다독인 후에 무구들 앞에 섰다. 한차례 피를 뿌리는 무구는 다시 이전처럼 둥실둥실 여유롭게 떠다닐 뿐이었다.
“혼자만 재미 보게 할 순 없지.”
“에르토? 설마 자네까지 나서려고? 그러다 우리 둘 다 잘못 되기라도 하면…….”
“그럼 애초부터 저자를 막을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단 걸 확인하게 되겠지. 무엇보다…….”
에르토는 요한을 노려보며 씨익 웃었다.
“감히 연합군의 오러 마스터가 둘씩이나 나섰는데 이쪽은 안중에도 없다는 저 꼴이 마음에 안 들거든.”
“그건…… 나도 마찬가지군.”
“뒤쳐지지 마라.”
“자네야말로.”
팟!
그렇게 마스터 오러를 한껏 끌어 올린 두 사람이 전력을 다해서 요한을 향해 쇄도했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방금 전의 오러 익스퍼트와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에 이번에는 둘이 동시에 달려들었으니 사령관과 지휘관들의 기대감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슈슈슈슉!
후두두두둑…….
이번에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뇌전의 오러를 머금은 오리하르콘 무구들은 퍼펙트 오러로 무장된 검과 육신을 간단히 썰어 버리며 두 명의 오러 마스터를 순식간에 핏덩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절망만이 남아 있는 연합군 진영에서 홀로 할일을 마친 요한은 기지개를 켰다.
“끄응! 다 실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실례가 많았어. 너희들이 준 선물은 유용하게 잘 쓸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그럼 고생들 해.”
해맑게 웃으며 할 말을 마치고 하늘로 두둥실 날아오른 요한을 연합군은 그저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