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115화 (115/150)

115. 온천 밀담

“요한 크림포드 대공은 앞으로 나오시게.”

“예, 전하.”

“경에게는 과인을 비롯한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담아 특급 국가보훈훈장을 수여하는 바, 자네가 세운 공에 비해 작은 보상일지 모르겠지만 그 마음만큼은 받아 주길 바라네.”

“영광입니다, 전하.”

짝짝짝짝짝짝!

요한이 특급 국가보훈훈장을 받자 사람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를 비롯하여 가루칸, 릴리안, 블랑카 등도 1급 국가보훈훈장을 수여받았다.

특히 가루칸과 릴리안처럼 아인종이 벨로반에서 공로를 인정받은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그 의미가 더욱 뜻깊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훈장 수여식이 끝나자 수훈자 대표로 단상에 선 사람은 바로 요한이었다.

“먼저 이렇게 큰 영광을 제게 허락해 주신 국왕 전하와 이 땅의 백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전하께서는 제게 이 훈장이 제가 세운 공에 비해 작은 보상이라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한 귀족들과 주민 대표들을 스윽 훑어보고는 힘주어 말을 이어 갔다.

“제게 있어 이 땅은 제가 나고 자란 고향이자 가족들의 보금자리이며 앞으로 우리의 후손이 살아갈 삶의 터전입니다. 이 땅과 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우리 모두의 마음은 같을 것이며 저는 단지 남들과는 다른 역할을 부여받았기에 그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로 이 훈장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이 나라에서 각자 맡은 바 최선을 다해 주셨던 만백성들이 받은 훈장이라 생각하고 간직할 것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요한! 요한! 요한! 요한! 요한!”

귀족들과 백성들을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요한의 이름을 연호했고 뒤에서 지켜보던 왕족들 역시 박수를 치며 요한의 연설을 감명 깊게 들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달가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은 아니었다.

연설이 끝나고, 모두가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올해 여섯 살이 된 소년 루카스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런 루카스의 귀여운 모습에 그를 모시던 시종, 달반은 차분히 그의 심중을 물었다.

“왕자 마마, 어디 편찮으십니까? 표정이 많이 불편해 보이십니다.”

“너무 속상해!”

“뭐가 그렇게 속상하신지 제게만 살짝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왕자 마마.”

루카스의 귀여운 투정에 달반은 상체를 숙이며 루카스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러자 루카스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다.

“우리 카일 형님이 훨씬 더 대단한데…… 다들 요한 대공의 이름만 불러준다고! 우리 카일 형님이 요한 대공보다 백배, 천배는 더 멋있고 대단한 사람이다. 뭐!”

“그럼요. 우리 카일 왕자 저하께서 얼마나 멋지고 대단한 분이신데요. 루카스 왕자 마마께서 그 사실을 알아봐 주시는 것만 해도 저하께서는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루카스가 투정을 부리는 모습에 달반은 그런 루카스의 눈물을 닦아 주며 아직 어린 루카스를 달래 주었다.

루카스는 포라드 국왕의 막내아들로 카일과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그의 남동생이었다.

하지만 루카스에게 언제나 1순위는 아버지인 포라드가 아니라 큰형인 카일이었다.

포라드가 워낙 바쁜 탓에 아버지로서 역할을 크게 하지 못했는데 대신, 그의 빈자리를 카일이 맡아서 루카스를 자식처럼 업어 키웠기 때문이다.

‘이번 일에 요한 대공 각하만 주목받으니 골이 나신 게로군.’

달반은 따뜻한 미소를 머금으며 루카스를 위로해 주었다.

다만 왕가에서 태어나 왕자라는 신분으로 살아갈 뿐, 루카스 역시 또래 아이들과 똑같은 여섯 살 어린아이일 뿐이었던 것이다.

루카스가 울다 지쳐 잠이 들자 달반은 그길로 카일을 찾아갔다.

* * *

방어전이 끝났다고 해서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

지금까지는 요한의 활약으로 벨로반 군대를 온존할 수 있었지만 지금부터는 벨로반 왕국군도 당연히 분주해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포라드로부터 왕국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받은 카일 역시 하루가 짧다 할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지휘관급 전략 회의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하워드를 주축으로 대륙의 정세를 분석하면서, 저녁에는 자기 단련 시간을 가지다 보니 하루에 세 시간도 많이 잔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카일도 달반이 찾아왔다는 얘기에 만사를 제쳐두고 달반에게 시간을 내주었다.

달반이 찾아왔다는 건 곧 루카스에 대한 소식을 가져왔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생각보다 회의가 길어져서 말이야.”

“오히려 소신이 저하의 귀한 시간을 뺏은 건 아닌지 송구스럽습니다.”

“아닐세. 루카스에 대한 일이라면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찾아오라 얘기한 건 내가 아닌가.”

카일이 달반의 맞은편에 앉자 시녀들이 준비한 다과를 두 사람 앞에 세팅하였다.

“그래, 오늘은 또 내 동생이 무슨 말썽을 부렸는가? 요새 그거라도 듣는 낙이 없으면 버티질 못 할 정도라네. 하하하하!”

“루카스 왕마 마마께서야 항상 기운 넘치시고 영특하시죠. 다만 오늘은 좀 힘드셨나 봅니다.”

“응? 뭣 때문에?”

“수훈식 말입니다. 아무래도 요한 대공 각하와 그분의 일행들이 시선을 집중받다 보니 조금 토라지신 모양입니다. 카일 저하보다 요한 대공께서 사람들의 관심을 더 받는 것이 속상하셨다고 하더군요.”

달반의 대답에 카일은 홍차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얼핏 듣기에는 형을 걱정해 주는 막냇동생의 귀여운 투정으로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맺힐 만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보다 바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달반이 일부러 시간을 부탁할 정도라면 그게 끝은 아니라는 뜻일 터였다.

그렇게 생각을 곰곰이 정리하던 카일은 달반이 정말로 무엇을 걱정하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군. 단순히 어린아이의 투정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염려하신대로 분명 루카스 왕자 마마의 투정을 구실로 대공 각하와 크림포드 백작가를 견제하려는 무리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가니온의 뒤를 이어 크림포드 백작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걸 마땅찮게 생각할 테니까요.”

“너무 커져 버린 권력은 원치 않아도 적을 만들어 버리는 법이긴 하지. 나도 그 부분을 염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루카스가 연관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야.”

카일은 정색하며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밝혔다.

지금의 정치 세력들이 거대해진 크림포드 백작가를 견제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었고 이를 막을 명분도,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 아직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루카스가 이용되는 건 절대로 해선 안 될 짓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한은 말이다.

“자네의 걱정은 나도 잘 알겠네. 빠른 시일 내에 대공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해 상의해 보도록 하지.”

“그럼 소신은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저하.”

그렇게 달반이 물러가자 카일은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그날 밤.

왕가 소유의 별장을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요한이었다.

왕가 소유라고 해도 오로지 휴양을 위해 세운 별장이라 주변에 민가를 찾아볼 수 없어 굉장히 조용하고 아늑한 편이었다.

오늘 이곳으로 요한을 초대한 사람은 다름 아닌 카일이었다.

“왔는가. 공사다망한 대공에게 먼 길을 오라고 해서 미안하군.”

“저는 괜찮습니다, 저하. 그런데 무슨 용무로 이곳에서 만나자 하신 건지…….”

“그 전에 어떤가? 대공. 가볍게 몸 좀 풀지 않겠는가?”

요한은 카일이 건넨 목검을 말없이 받아 들고는 카일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별장 근처에 마련된 연무장이었다.

요한과 마주 선 카일은 몸을 풀며 요한에게 말했다.

“참고로 봐줬다간 왕족모욕죄로 엄히 다스릴 것이니 유념하게.”

“그럼 선택지가 두 가지뿐인데…… 왕족살인죄와 왕족모욕죄 중에서 고르라면 후자로 하겠습니다.”

“하여간 말이나 못 하면…….”

팟!

피식 실소를 터트린 카일은 마나를 끌어 올리며 요한을 향해서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간 아무리 바빠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카일이라 그런지 그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딱딱딱!

순식간에 세 번의 연격이 터져 나오며 요한과 카일의 목검이 어지럽게 얽히기 시작했다.

주로 카일이 공세를 펼치고 요한이 막아 내는 입장이었는데 쫓기고 있는 건 오히려 카일처럼 보였다.

‘역시…… 틈을 찾아서 노리는 건 어렵군. 그렇다면!’

요한의 빈틈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카일은 정면으로 공세를 몰아붙여 없는 틈을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따악!

카일이 쓰러짐과 동시에 목검이 튕겨 나가면서 그의 손을 빠져나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승부는 결정 나고 말았다.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검술의 기본기도 철저하신 편이라 이대로 수련만 꾸준히 하신다면 분명 훌륭한 검사가 될 수 있겠죠.”

“왕자치고는 말인가?”

“제가 방금 드린 말씀 중에 왕자라는 단어가 한마디라도 나왔던가요?”

“그렇군. 미안하네. 보다시피 배배 꼬인 성격이라 말이야.”

“그래서 제가 왕자님을 좋아하나 봅니다. 보시다시피 저도 정상적인 놈은 아니거든요.”

요한은 엉덩방아를 찧은 카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가 요한의 손을 잡자 요한은 그를 당겨 자리에서 일으켜 주었다.

“분명 검술은 훌륭하고 세련되어 있는데, 타점이 많이 흔들리더군요. 그건 잡념이 많이 끼어 있다는 증거고요.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저하.”

“그렇군. 그 잡념을 떨쳐 보려고 대공에게 대련을 부탁한 것이네만. 크게 의미가 없었던 듯싶어.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두 사람은 흘린 땀을 닦아 내기 위해서 별장 한쪽에 마련된 온천으로 이동하여 몸을 담갔다.

“좋네요. 여기 온천…….”

“내가 이곳을 자주 찾아오는 이유이기도 하지. 대공도 마음에 들었다면 언제든지 찾아오게. 이곳을 관리하는 시종장에게는 미리 얘기해 둘 테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대공은 혹시 내 동생 루카스를 아는가?”

카일의 물음에 요한은 온천물로 세수를 하다가 대답했다.

“루카스 왕자님이라면 저하의 귀여운 막냇동생이 아닙니까? 올해로 여섯 살이 됐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맞아. 내가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동생이지. 하면 그 동생이 대공을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겠군.”

“루카스 왕자님이 저를요? 왜요?”

요한이 손가락을 자신을 가리키며 놀라자 카일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백성이건 귀족이건 형한테 갈 인기를 전부 뺏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 나이대의 꼬마가 할 수 있는 귀여운 투정이지.”

“저하께서 루카스 왕자님을 사랑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저라도 그런 동생이 있다면 매일 보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설마 동생 자랑을 하시려고 이런 곳에 저를 초대하신 건 아니시죠? 그런 거라면 저 진짜 웁니다.”

“하하하하! 그런 것도 없잖아 있네만…… 사실 내 눈에야 귀여운 동생이지, 다른 귀족들이 보기엔 루카스도 왕실의 식구이고 왕자이지 않은가?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라는 뜻이지.”

“저와 제 가문을 견제하려는 무리가 왕자님을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군요.”

요한의 대답에 카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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