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한 방도 무리였나
가니온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주문을 외우며 베니스와 이실로데의 시체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죽은 두 사람의 코에 입을 가져다 대더니 죽음의 마나가 담긴 숨결을 그대로 불어 넣었다.
그러자 베니스와 이실로데의 시체가 미친 듯이 꿈틀대더니 이윽고 피부가 청색으로 물들며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변화가 끝이 나자 시체들은 다시 죽은 듯 잠잠해졌다.
‘애초에 죽은 게 맞기도 하지만.’
-이대로 하루 동안 죽음의 마나가 육신에 안착할 때까지 기다린다면 질 좋은 데스 나이트를 얻으실 것입니다.
“그래, 수고했다.”
파지직, 파직!
요한은 가니온을 치하한 뒤 가볍게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전신에 푸른 전류가 방전하며 번개가 요한의 몸을 휘감았다.
-직접 나서실 생각이십니까.
“밤이라면 모를까, 아무래도 대낮의 언데드 15만으로 80만 적군을 막아 내는 건 무리잖아. 그렇다고 이 비옥한 평야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란체스카 공국처럼 흑마법을 써서 이곳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면 대낮이라도 밤처럼 언데드들을 재생시킬 수 있었지만 그러면 땅이 오염된다.
즉, 땅에 무엇을 심든 씨앗이 썩어 버려서 어떤 농사도 지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준비운동은 마친 요한은 가니온을 돌아보며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요 근래 전투를 지켜보기만 했더니 몸이 찌뿌둥해서 말이야.”
콰릉!
말을 마친 요한은 한 줄기 번개가 되어 전장을 가로질렀다.
“뭐, 뭐야?”
“번개가 날아간다!”
“세상에, 저게 도대체……?”
병사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를 가로질러 비행하는 번개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흡사 길게 꼬리를 늘어트린 새처럼 보이기도 했고, 하늘을 유영하는 유성 같아 보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하늘을 가로지르는 번개를 막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콰앙!
그렇게 평야에서 치열하게 전투중인 전장을 가로질러 번개가 떨어져 내린 곳은 다름 아닌 존타나 연합군의 본진이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안녕?”
빈센트는 자신을 향해 태연하게 인사하는 요한을 보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자신과 함께 있던 지휘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30만 대군이 대기 중인 적의 본진 안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군. 방금 전의 푸른 번개…… 네놈이 그 아바타란 놈이로구나.”
“요한 크림포드다. 일단 날뛰기 전에 양심의 가책을 덜고 형식적으로 물어는 보겠는데 말이야. 혹시 돌아갈 생각은 없는 거지?”
“안타깝게도…… 그 생각은 출병 전에 버리고 왔느니라.”
대답을 하면서 빈센트가 눈치를 주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순식간에 요한을 가두는 촘촘한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그러면서 요한을 향해 창을 겨누는 병사들의 모습은 흡사 안쪽으로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와도 같았다.
“정말 이걸로 날 잡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해?”
“설령 네놈을 쓰러트리지 못해도 상관없다. 네놈의 체력과 마나를 소모시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놈을 죽여라!”
파울로의 외침에 병사들이 요한을 향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제로스의 망토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오리하르콘 무구들이었다.
‘나노. 시작해.’
[썬더 호넷. 오토 모드를 실행합니다.]
그 중 활 한 자루를 손에 쥔 요한은 나머지 무구들에 대한 썬더 호넷의 컨트롤을 나노 크리에이터에게 일임했다.
파지직! 콰릉!
슈웅! 쒜엑!
뇌전의 마나를 품은 오리하르콘 무구들이 푸른 전류를 방전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미친 듯이 사방을 비행하기 시작했다.
“헉! 이게 뭐야?”
“무기들이 혼자서 날아다닌다!”
“조심해!”
하나 조심한다고 해서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공격이었다면 지금 하늘로 흩뿌려 지고 있는 병사들의 머리나 사지, 피와 내장 조각들은 환상이었을 것이다.
아니, 병사들은 그것들이 진짜 환상이나 꿈이길 바랐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자리는 너무나도 끔찍한 지옥이 될 테니까.
오러가 없어도 강한 오리하르콘 무구들은 각각이 엑스퍼트 오러 수준의 뇌전의 마나로 무장된 채 비행했다.
그러다 보니 날붙이나 둔기의 머리 부분에 걸리는 건 그게 타워 실드가 됐든, 창칼이 됐든, 인간의 육신이 됐든 가리지 않고 베거나 부숴 버렸다.
애초에 빛살 같은 속도로 날아다니는 그것들을 피한다는 건 불가능 한 일이었다. 병사들이 이렇게 밀집된 지역에서는 특히나 더더욱.
“아니 대체 자기 혼자서 날아다니는 무기들을 어떻게 막냐고!”
“조종하는 놈을 죽여! 그러면 저것들도 멈출 거다!”
요한은 누군가의 간절한 외침을 듣고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리며 대꾸했다.
“그러게. 그게 정답이긴 한데…… 그게 말처럼 쉬울지는 잘 모르겠네.”
요한은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그러자 그의 주변으로 스무 발의 화살이 둥둥 떠올라 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사나운 뇌전을 방출했다.
퓽!
팽팽하게 당겨졌던 시위를 놓는 순간.
콰르릉!
뇌전을 머금은 채 잔뜩 긴장하고 있던 화살들은 화살촉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서 순식간에 쏘아져 날아갔다.
한껏 압축된 뇌전의 오러로 무장된 화살들은 전류의 흔적을 남기며 공간을 말 그대로 관통하였다.
당연히 그 공간에 포함되어 있던 것들은 무기, 방패, 갑옷, 육신을 막론하고 평등하게 꿰뚫려 버렸다. 아니, 그것을 꿰뚫린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화살이 심장을 관통하면 뒤이은 충격파에 상체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문제는 요한의 주변 수십 미터 이내에서 비행하는 오리하르콘 무구들과 달리 화살의 사정거리는 수백 미터에 달한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화살의 사정거리와 사로 안에 포함되어 있는 병사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요한에게 달려들자니 어느 순간에 무구들이 날아와 순식간에 육신을 산산이 조각내 버린다. 하지만 도망치면 그 역시 화살의 먹이가 될 뿐이었다.
“괴, 괴물이다!”
“저런 괴물을 어떻게 상대한 말이야!”
“물러서지 마! 여기서 포기하면 모든 게 끝장이다! 저 괴물을 살려두고 돌아가면 후환이 없을 것 같나! 여기서 무슨 수를 써서든 놈을 죽여야 한다고!”
그렇게 외치면서 완전 무장한 기사들이 요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전원이 오러 유저인 것은 아니었지만 오러 비기너와 엑스퍼트의 비율이 꽤나 높은 강한 전력들이었다.
“누가 들으면 내가 마왕인 줄 알겠네.”
요한은 검에 오러를 피워 올리며 달려드는 기사들을 향해서 시위를 당겼다.
퓽! 콰르릉!
시위를 떠난 화살은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기사들 역시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애초에 요한의 활 앞에서 오러 유저와 일반 병사들의 차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고 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무려 7만 명이라는 병사들이 학살당했지만 요한은 처음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도대체 저 괴물은 마나와 체력의 한계라는 것이 없는 건가?”
“평범한 오러도 저 정도로 썼으면 오러 마스터라도 수십 번은 마나가 바닥이 났을 텐데 다른 마나보다 마나가 소모가 심하다는 뇌전의 마나로 어떻게 저런 일이…….”
“뭣들 하느냐! 놈을 잡아 죽이라니까!”
“이런 답답한……!”
아무리 지휘관들이 닦달해도 더 이상 요한에게 접근하는 병사는 없었다.
요한의 주변에는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고, 그 시신에서 흐른 피가 강물처럼 흐르는데 정작 그 지옥도를 만든 당사자는 여전히 멀쩡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의 주변을 여유롭게 맴도는 금빛 무구들을 보기만 해도 경기가 일어나고 핏기가 가셔 얼굴이 백지처럼 창백해질 정도였다.
현재 남아 있는 병사들의 수는 20만이 훨씬 넘었지만 그들은 이미 요한에게 패배한 것이다.
터벅터벅.
“흐음…….”
요한은 자신에게 더 이상 병사들이 덤벼들지 않자 여유롭게 적진을 걷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그를 막아서고 포위해야 하는 병사들은 요한이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자 기겁을 하며 막고 있던 길을 터주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과도 같았다.
“응? 사령관 각하는 여기 계신데 놈은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겁니까?”
“글쎄요. 저도 잘…….”
“잠깐! 저 방향은……?”
“헉! 설마!”
지휘관들은 요한이 노리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소리쳤다.
“저 악마가 우리의 군량을 노린다!”
“놈을 막아! 막지 못하면 우리는 여기서 전부 굶어 죽는다!”
“……!”
병사들은 요한이 군량을 노린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눈을 부릅뜨며 다시금 전의를 불태웠다. 전쟁에서 군량만큼 중요한 건 없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아!”
“놈을 막아!”
촤촤촤촤!
결국 다시 병사들의 무모한 돌격이 시작됐지만 다시 타오른 전의는 타올랐던 것보다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자신들이 왜 요한에게 겁을 먹고 이기지 못할 거라 확신했는데 그 사실만 재차 확인했을 뿐이었다.
“안 되겠다!”
“각하! 안 됩니다! 설마 직접 나서려는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파울로는 직접 나서려는 빈센트를 붙잡으며 말렸다. 총사령관인 그가 당하면 그때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면 이대로 두고만 보고 있을 작정인가? 놈이 군량에 불이라도 지르면 우리는 끝장이야! 이대로 모든 것을 잃게 될 거라고. 내 말이 틀렸나?”
“…….”
결국 파울로는 빈센트를 말릴 수 없었다. 그렇게 빈센트는 자신의 전력을 끌어 올리며 순식간에 전력으로 질주하더니 단번에 요한의 뒤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슥.
“오호, 오러 마스터라……. 여기에도 꽤 쓸 만한 전력이 있었네?”
“우쭐대지 마라, 괴물 놈. 내가 이 손으로 직접 네놈의 목을 따 줄 테니까.”
요한은 보지도 않고 가볍게 몸만 틀어 빈센트의 기습을 피해 냈다.
그 덕분에 빈센트도 자연스럽게 요한의 정면으로 몸이 날아갔지만 오러 마스터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중심을 되찾고 검을 겨누었다.
“잘됐네. 사실 나도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
“그래서 일부러 나에게는 그 유령처럼 날아다니는 칼을 사용하지 않은 게냐.”
“잘 아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버텨 달라고. 잘 알잖아. 내 목적 말이야.”
요한은 활을 아공간 창고에 넣어 두고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것은 마자현이 선물한 뇌제의 심득이었다. 바빠서 전부 볼 시간은 없었고 마자현에게 글자를 배워 초반부만 읽어 보았는데 그때 요한은 태어나 가장 큰 충격에 빠졌다.
거기에는 뇌전의 마나를 보다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뇌전은 본디 흉포한 말과 같다. 그 말을 길들이면 위력적인 말은 될 수 있어도 더 이상 똑같은 말이라 볼 수는 없으니…… 이는 죽은 빛이라. 통제하지 말고 인도하라. 뇌전의 정수는 거기서 시작되리라.
요한은 이 심득을 수백, 수천, 수만 번을 곱씹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만의 깨달음을 얻었으니…….
“간다.”
퓨슉.
“……!”
빈센트는 눈앞에서 사라진 요한의 모습에 눈을 부릅떴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 역시 오러 마스터다.
그런데 오러로 안력까지 강화하여 집중해서 지켜보고 있던 상대의 움직임을 놓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순간.
“여기야.”
빈센트의 눈앞에 나타난 요한이 일부러 자신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빈센트는 이를 악물었다. 요한을 이기려면 이번 공격을 방어하고 반격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하나 뇌전으로 무장된 그의 손을 보는 순간, 빈센트는 눈을 부릅뜨며 자신의 죽음을 확신했다.
그 순간, 요한의 주먹이 단단히 가드한 빈센트의 퍼펙트 오러 소드를 가볍게 때렸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앙!
퍼펙트 오러 소드와 함께 빈센트의 상반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보이는 건 요한의 주먹에 맺혀 있는 뇌전의 앱솔루트 오러뿐…….
“최대한 위력을 조절해서 가볍게 친 건데…… 그래도 힘들었나. 에휴……. 아직 시험해 볼 게 많이 남았는데. 아쉽네.”
아쉬움을 삼키는 요한을 지켜보던 기사와 병사들의 표정에는 한층 더 깊은 절망감만 드리워질 뿐이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