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영물 라즈
구르칸 산맥의 구역은 크게 세 곳으로 나뉘어 있다.
중부에 위치한 오크 부락. 남부에 위치한 와이번 군락지. 그리고 북부에 위치한 다이어 울프의 서식지.
이를 제외하고 따로 활동하는 몬스터들이 산맥 전체에 고루 분포해 살아가는 곳이 바로 구르칸 산맥이었다.
요한이 백작가에서 얌전히 지내고 있던 화이트를 불러 함께 향한 곳은 바로 다이어 울프의 서식지인 구르칸 산맥의 북부였다.
‘확실히 여기서부터 늑대 냄새가 강하게 나네.’
어느 정도 녀석들의 영역에 접근하자 주변에는 사냥당한 몬스터들의 유골이나 가죽들이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게다가 거대한 손톱자국이 난 나무들이나 늑대의 강렬한 소변 냄새 등으로 다이어 울프의 영역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크르르르르…….
‘왔군.’
요한은 숲 그림자 너머에 드리운 어둠 속에서 이편을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 두 쌍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팟!
두 쌍의 눈동자는 요한과 화이트를 확인하기 무섭게 기습을 감행했다.
바람보다 빠르게 내달려 어느 순간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녀석들의 덩치는 정말로 물소에 필적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화이트.”
크르르르!
그 순간, 요한이 나직하게 화이트의 이름을 호명하자 새하얀 늑대 한 마리가 요한의 앞을 막아서더니 달려들던 두 마리의 다이어 울프를 공격하였다.
컹!
휙, 휙!
그러자 가볍게 몸을 놀려 화이트의 공격을 피해 내는 녀석들.
아무리 화이트가 힘 조절을 했다지만 평범한 몬스터라면 반응조차 못 했을 공격을 놈들은 쉽게 피한 것이다.
‘이만한 덩치에 이 정도 스피드도 모자라 반사 신경이나 유연성도 상당히 뛰어나군.’
“확실히…… 가루칸 그 녀석이 반칙이라고 할 만하네.”
화이트의 공격을 피한 두 마리는 자신감이 붙었는지 한 마리는 화이트를 향해,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요한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게 녀석들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실수가 되었다.
촤악, 촤악!
털썩…….
화이트가 진심으로 움직이자 자신과 요한에게 달려들었던 다이어 울프 두 마리가 순식간에 혀를 빼물며 땅에 누웠다.
어떻게 당한 것인지도 모른 채 한 순간에 죽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보초를 서던 울프들을 해치운 요한과 화이트는 더 깊은 산맥의 안쪽으로 향했다.
비교적 완만한 산맥 중부와는 다르게 다이어 울프들의 서식지인 북부는 지대가 높고 침엽수림이 울창하게 분포해 있었다.
무엇보다 지대가 높은 탓인지 산소가 적고 아직 녹지 않은 만년설이 산맥을 하얗게 덮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관광이 목적이었다면 그야말로 절경이라 부를 수 있는 장관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느긋하게 구경할 시간을 줄 것 같지는 않지?”
어느새 주변에 몰려든 다이어 울프들의 숫자가 상당했다.
놈들은 초입에 죽은 보초를 확인한 것인지 스무 마리가 넘는 숫자가 멀찍이 떨어져 모여 있으면서도 쉽게 접근하지 않고 근처를 배회할 뿐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마스터?”
“놔 둬. 때가 되면 알아서 오겠지.”
화이트가 묻자 요한은 피식 웃으며 갈 길을 재촉했다.
길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녀석들이 일부러 틀어막는 길만 골라 걸어가면 그곳이 정답이었으니까.
결국 어느덧 주변에 몰린 숫자는 서른이 넘어갔고…….
크르르르……!
어느새 포위망을 완성한 녀석들이 이빨을 보이며 전투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한 순간, 놈들은 눈밭 위를 빠르게 박차며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들고 있었다.
“화이트, 뒤를 맡아라. 앞은 내가 막는다. 죽이지는 말고.”
“예, 마스터.”
그렇게 뒤를 화이트에게 맡긴 요한은 정면에서 달려드는 다이어 울프들을 상대로 당당히 걸어 나갔다.
당연히 녀석들의 눈에 요한은 맛좋은 먹잇감일 뿐.
곧 다이어 울프들의 날카로운 송곳이나 요한의 몸 이곳저곳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송곳니는 강철만큼 단단하고 단검만큼 예리하다. 두꺼운 몬스터들의 가죽을 우습게 찢어발기며 인간들의 철갑조차 간단히 찢어 버린다.
그뿐인가?
턱 힘은 또 얼마나 좋은지 질 좋은 판금 갑옷을 씹어서 부숴 버릴 정도였다.
인간의 몸뚱어리 따위, 놈들의 아가리에는 솜사탕을 씹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니, 없었을 터였다.
“이 녀석들, 그렇게 심심했냐? 하기야…… 이런 눈밭에서 할 수 있는 놀이들이 한정적이긴 하지.”
다이어 울프들은 이질감을 느꼈다. 분명 조금만 힘을 줘도 바스러질 인간의 몸뚱이를 전력을 다해 물어뜯었음에도 이빨조차 조금도 박히지 않았다.
그뿐인가?
“읏차.”
요한이 녀석들의 뒷덜미를 가볍게 잡아 올리자 요한의 몸뚱이를 전력으로 물어뜯고 있던 다이어 울프들이 맥없이 딸려 올라갔다.
녀석들이 전력으로 무는 힘보다 요한이 가볍게 놈들을 들어 올리는 힘이 더 강했던 것이다.
후웅!
요한은 한 손으로 들어 올린 거대한 다이어 울프 한 마리를 가볍게 옆으로 던져 버렸다.
말이 ‘가볍게’지 날아간 다이어 울프는 수십 미터를 날아가 땅에 나뒹군 후에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꿍!
그 외에도 요한은 자신의 몸을 열심히 물어뜯고 있는 녀석에게 간단히 꿀밤을 먹여 준다든가,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는 식으로 다이어 울프를 상대했다.
그건 마치…… 전투라기보다 체벌을 하는 것처럼 보여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문제는 그런 방식으로도 요한이 다이어 울프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계속 보니까 귀여운 거 같기도 하고…….”
요한은 어떻게든 자신의 왼팔을 물어뜯으려고 발악하던 다이어 울프를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화이트, 대충 정리 끝났으면 가자.”
그렇게 물소만한 다이어 울프 한 마리를 왼손에 매달고 아무렇지 않게 이동하기 시작하는 요한을 본 다이어 울프들이 질리기 시작했다.
왼손에 매달린 녀석이 아무리 물어뜯고 발톱은 딱딱한 눈밭에 박아 버티고, 고개를 흔들어 멈춰 보려고 해도 요한의 걸음에는 전혀 지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녀석은 제 풀에 지쳐 요한의 손을 놓더니 멀찍이 떨어져 경계만 서기 시작했다. 만약 오크 전사들이 이 모습을 봤다면 기절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죽어서도 입에 문 먹잇감을 놓지 않을 만큼 다이어 울프는 독하기로 유명했다. 녀석들이 스스로 먹이를 포기하고 물러난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멈춰라, 괴물.
‘응?’
요한은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의문의 음성에 고개를 들었다. 음성이라기보다는 텔레파시에 가까운 의지가 그곳에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오…….’
녀석은 요한의 시선 끝에 걸린 높은 봉우리 위에 서 있었다.
다른 다이어 울프보다 족히 2배 정도 더 커 보이는 다이어 울프 한 마리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원초의 텔레파시를 쓸 수 있는 몬스터라…….’
텔레파시는 언어를 전달하기 위한 마법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마법으로 정립된 이후의 텔레파시를 말했다.
정령, 악마, 신 등이 사용하던 원초의 텔레파시는 언어가 아니라 ‘의지’를 전달하는 능력이었다. 그 때문에 개념만 알고 있다면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프다는 원초의 텔레파시를 배가 고프다는 개념을 알고 있는 상대에게 전달하면 언어에 상관없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강한 것 같긴 하네. 네가 라즈 맞지?”
-긴말하지 않겠다. 이 땅을 떠나라, 지금 당장.
“말이 통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있는데 넌 어느 쪽을 선택할래?”
아우우우우!
쿠구구구구구…….
라즈는 하늘 높이 목을 빼며 길게 하울링했다.
그러자 마나가 담긴 하울링이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얼어붙은 눈밭을 뒤흔들었다.
[고등 몬스터의 ‘피어’를 감지했습니다. 해당 음파 영역을 차단합니다.]
나노 크리에이터가 라즈의 피어를 차단하였다.
피어는 고등 몬스터의 고유 권능으로 적에게 두려움과 공포심을 심어 주거나 탈력, 혼란을 유발할 수도 있는 위험한 기술이었다.
“아무래도 어려운 길을 선택한 모양이네.”
팟!
피어가 통하지 않자 라즈는 봉우리에서 뛰어내려 질풍처럼 산비탈을 질주했다.
슈욱!
녀석은 산비탈을 내려오고 나서도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눈밭을 박차면서 더욱 가속도를 붙였다. 녀석이 박찬 눈밭이 폭발하면서 라즈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난 것이다.
그렇게 라즈가 요한의 목덜미를 코앞까지 놔둔 시점에서 새하얀 무언가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머리를 부딪친 라즈와 화이트.
라즈는 질주가 막히자 살짝 뒤로 물러서며 화이트를 노려보았다.
크르르르……!
화이트도 다른 다이어 울프들만큼이나 큰 덩치를 자랑했지만 라즈에 비하면 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은 산비탈을 질주하며 가속도를 있는 대로 붙인 상황이었고 상대는 그 잠깐의 순간에 끼어든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서로 밀려난 거리는 비슷하다. 보아하니 피해도 없어 보였다. 라즈의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이 녀석도 만만한 놈은 아니거든.”
크르르르!
요한은 씨익 웃으며 라즈에게 경고를 하였다. 그 순간, 라즈의 드러난 이빨과 발톱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퍼펙트 오러였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억만금의 지원을 받으며 혹독한 수련을 거쳐도 이르기 힘든 오러 마스터의 상징이 몬스터의 이빨과 발톱에서 드러난 것이다.
‘진짜 영물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보네. 그때는 그냥 쓸데없이 강한 녀석이라 짜증만 났었는데 지금은…….’
역시 사람은 입장이 달라지면 보는 시각도 달라지는 법인가 보다.
제국에 몸담았을 때는 라즈의 강함이 그저 짜증을 유발했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뿌듯했기 때문이다.
챙채채챙! 콰콰콰쾅!
라드가 마스터 오러를 꺼내 들자 화이트 역시 똑같이 마스터 오러로 이빨과 발톱을 무장하여 녀석을 상대하였다.
외형은 둘 다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두 녀석의 전투는 전혀 늑대의 일반적인 싸움이 아니었다.
드넓은 설원을 비좁다는 듯이 누비고 싸우며 라즈와 화이트는 한 줄기 빛과 어둠이 되어 붙었다 떨어졌다는 반복했다.
도저히 원래의 형태로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두 녀석의 움직임이 빨랐던 탓이다.
게다가 서로가 이빨과 손톱을 마스터 오러로 무장하고 있다 보니 충돌할 때마다 강력한 힘의 역장이 폭발하면서 눈사태까지 발생하였다.
그러나 요한과 화이트, 라즈. 그 누구도 눈사태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인지 가볍게 대응하며 전투와 관전을 이어나갔다.
지켜보는 다이어 울프들의 입장에선 황당하기 그지없을 따름이겠지.
그러나 전투는 시간이 지날수록 화이트에게 유리했다.
아무리 라즈가 다이어 울프의 존재를 초월한 영물이라 해도 상대 역시 평범한 늑대가 아니었으니…….
외형만 늑대일 뿐, 오러 마스터급 능력을 보유한 호문쿨루스를 단번에 제압할 능력은 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싸움은 지구전으로 이어졌고 마나만 공급되면 무한 체력에 부상도 순식간에 고칠 수 있는 화이트가 우세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충 결판은 난 것 같은데, 아직도 부릴 고집이 남아 있나?”
크르르르……!
요한의 물음에 라즈는 으르렁거리면서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자신의 몸은 이미 상처로 가득하고 체력도 바닥을 보이는데 그에 반해서 화이트는 처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신이 죽으면 동족들이 전멸한다. 그 사실을 모를 만큼 라즈는 멍청하지 않았다.
결국…….
-목적이 무엇이냐, 인간!
“이제야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네.”
요한이 씨익 웃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