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33화 (33/150)

33. 요한의 죽음

“문 열어! 이 벌레 새끼들아! 당장 이 문 열어 달라고! 제발 부탁 드릴게요…… 엄마, 어두워요! 나 무서워…… 제발 문 좀 열어 주세요. 자꾸 이상한 사람들이 쫓아와! 벌레가…… 저리 가! 내 몸에서 떨어져! 으아아악!”

요한이 감금된 방에서는 끊임없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이든의 엄명으로 술과 마약을 일체 금지시켰기에 금단 현상이 온 것이었다.

“젠장! 하루 종일 저 미친놈의 비명을 듣고 있으려니 나까지 미쳐 버릴 것 같네!”

“누가 아니래. 니미, 조만간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원……!”

굳게 잠긴 방문 앞에서 굳은 얼굴로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들은 하루 종일 터져 나오는 요한의 발작에 정신이 이상해 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열릴 것 같지 않은 방문이 열리는 때도 있었다.

바로 요한이 조용해질 때였다.

그럴 때면 항상 제 풀이 지쳐 기절한 요한이 죽은 사람처럼 쓰러져 있었다.

그럼 병사들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 밥만 두고 얼른 나왔다.

하지만 요한이 제대로 밥을 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방에 들어가면 언제나 널브러진 음식의 잔해와 토사물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요한이 기절한 틈을 타서 하이든이 초청한 실력 있는 신관이 직접 요한을 진찰한 적도 있었다.

“어떻소? 방도가 있겠소?

하이든이 기대감을 가지고 물어보자 진찰을 마친 신관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장기와 혈관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상했습니다. 근육의 열화도 심하고…… 머리를 열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제 소견으로 이 정도면 골수와 뇌 안쪽까지 마약의 해로운 기운이 침투하였을 겁니다. 도저히 제 능력으로…… 송구합니다, 각하.”

“그런……!”

신관이라고 해서 신성력으로 사람을 고친다거나 치유술을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평범한 종교인들로 다른 사람들보다 약초와 의술에 재주가 많은 일종의 의사들일 뿐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도 자신들의 재주를 넘어서는 환자가 생기면 어쩔 방도가 없었다.

“아, 안 돼…….”

털썩…….

“여보……! 괜찮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남편과 함께 결과를 듣고 있다가 이내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 아네트.

그런 아내를 하이든이 조심스럽게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지만 이미 아내의 눈빛은 멍하니 빛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내 잘못이에요. 별장에 보내더라도 내가 제대로 돌봐 줬더라면…… 내가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든 거예요. 내가…….”

“그게 왜 당신 잘못이요! 이 아이를 별장에 감금하라 명령한 사람은 아비인 나였소. 부인 잘못이 아니란 말이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시오. 부탁이오…….”

하이든은 아내를 강하게 끌어안아 등을 토닥여 주었고, 아네트는 남편의 품속에서 탈진할 때까지 오열하였다.

“부인……!”

결국 그렇게 울다 지쳐 정신을 잃은 아네트를 업어 든 하이든은 힘없는 발걸음으로 요한의 방을 걸어 나갔다.

* * *

그날 밤.

“확실히 기절한 거 맞지?”

“오늘은 평소보다 발광이 길었잖아. 음식은커녕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새끼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버티겠냐. 안 그래?”

“하기야, 아니 그럼 애초에 음식을 가져다줄 이유도 없는 거 아니야? 어차피 먹지도 못 하는 거 괜히 음식 아깝게…….”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라. 우리는 그냥 시킨 일만 하면 되는 거야. 괜히 몰래 버렸다가 걸리면? 이 지경이 된 쓰레기도 자식이라고 어떻게든 고치려고 발악하는 가주님 내외가 가만히 있겠냐? 그날로 우리는 죽은 목숨이지.”

“하기야…….”

병사들은 저들끼리 떠들면서 잠깐 동안 요한을 살펴보았지만 쓰러진 요한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걸로 확실하게 기절했다고 판단한 그들은 빵과 우유, 그리고 약이 담긴 쟁반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제발 그대로 가만히 있어라. 제발…….’

그렇게 속으로 기도하면서 쓰러진 요한의 앞에 쟁반을 놔두는 순간!

덥석!

“으아아아아!”

“뭐, 뭐야?”

쓰러져 있던 요한이 갑자기 손을 뻗어 쟁반을 내려놓던 병사의 손목을 꽉 잡아 버린 것이다.

당연히 쟁반은 엎어지고 옆에 있던 병사도 놀라 까무러쳤다.

완전히 기절 한 줄 알았던 사람이 움직였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으헤헤!”

요한은 침까지 흘리며 반쯤 돌아간 눈으로 병사를 밀쳤다.

‘무, 무슨 힘이……!’

깡마른 몸으로도 어찌나 힘이 좋았던지 밀쳐진 병사는 바닥에 쓰러졌다.

요한은 망설임 없이 그의 허리 어림으로 손을 뻗었다.

병사는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그의 손이 향하고 있는 곳이 바로 허리 어림에 꽂혀 있는 검이었기 때문이다.

“랄프!”

“섣불리 움직이지 마! 도련님의 몸에 상처라도 나면 우리는 물론이고 우리 가족들까지 죽은 목숨이다!”

“하, 하지만……!”

동료의 위기에 옆에 있던 병사가 검을 뽑아 들고 요한을 겨누었지만 랄프가 자신의 동료를 극구 말렸다.

그사이, 랄프는 요한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 했지만 그의 완력은 평범한 인간 수준을 벗어나 있었다.

‘크윽! 이 괴력도 마약 때문인가……!’

“얼른 문이나 닫아!”

“아, 알았어!”

랄프의 지시에 그의 동료, 아산이 서둘러 문을 닫으러 가던 순간이었다.

“흐헤헤, 흐헤!”

빠직!

“크아악!”

요한은 괴상한 웃음과 함께 괴력으로 자신을 막는 랄프의 손목을 꺾어 버리고는 그의 허리 어림에서 검을 뽑아 그대로 문을 향해 달렸다.

“아, 안 돼! 오지 마!”

아산은 요한에게 검을 겨누며 그를 위협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미 물불 가릴 수 있는 인지능력을 잃어버린 요한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칼끝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헉……!”

이대로라면 자신의 검에 요한의 목이 꿰뚫려 죽을 것은 자명한 사실.

아산은 기겁하며 검을 치웠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요한은 그 괴력으로 가볍게 아산을 옆으로 밀쳐 버렸다.

“헉!

콰당!

“도련님은?”

“저, 저기……!”

랄프가 부러진 팔목을 부여잡고 아산에게 외쳐 물었다.

그러자 아산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열려 있는 문을 가리켰다.

그러나 요한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 * *

“당장 요한 도련님을 찾아!”

“도련님! 요한 도련님!”

요한의 탈출 소식이 퍼져 나가고 기사와 병사, 시종들을 막론하고 저택의 고용원들이 전부 요한을 찾아다니는 데 혈안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요한은 발견되었다.

있어서는 안 될 장소에서 해서는 안 될 모습으로…….

“꺄아악!”

“요, 요한 도련님! 제발 그 검을 내려놓으십시오!”

“요한 도련님!”

“시끄러워! 다 닥쳐! 이 벌레 새끼들아!”

요한은 악다구니를 지르며 주변을 위협하였다.

그의 칼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하이든과 아네트가 경악에 찬 모습으로 요한을 마주하고 있었다.

요한이 찾아간 곳이 다름 아닌 두 사람의 침실이었기 때문이다.

“나 너무 아파요……. 어머니……. 벌레가 막 내 몸을 기어 다니면서 물어뜯어. 이상한 사람들이 자꾸 뭐라고 떠드는데 시끄러워서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아. 제발 나 좀 어떻게 해 줘요……. 응? 예쁜 누나네? 누나, 나랑 같이 놀자. 내가 사탕 사 줄게. 나 오늘 아침에 마당에서 엄청 예쁜 꽃 발견했다. 구경 갈래? 뭐라고 말 좀 해 봐, 이 개자식들아!”

“꺄악!”

요한은 검을 치켜들고 미친놈처럼 부모님에게 달려들었다.

아네트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고, 하이든은 그런 아내를 감싸면서 요한을 노려보았다.

바로 그 순간.

챙!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으며 요한을 막아선 사람은 크림포드 기사단의 단장, 볼포크였다.

볼포크가 검을 휘두르자 요한의 검이 맥없이 부러지면서 요한도 볼포크에게 깔려 완벽하게 제압당했다.

“이거 놔! 이거 놔주세요…… 아빠! 살려 줘요! 죽여 버린다! 히익! 버, 벌레가…… 벌레가……!”

볼포크의 발밑에서 요한이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볼포크는 오러까지 끌어 올려 요한을 꼼짝 못 하게 제압하면서 하이든에게 시선을 돌렸다.

“요한 도련님을 어떻게 할까요?”

“…….”

하이든은 천장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더니 눈을 감았다.

마치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이…….

그러다 각오를 마쳤는지 이내 힘이 들어간 눈빛으로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사약을 준비하라!”

“여, 여보! 농담이죠? 사약이라니…… 설마 요한에게 그걸 먹일 건 아니죠?”

“이제 그만 놓아줍시다. 애초에 저 아이를 저런 괴물로 키운 건 우리의 잘못이었소. 처음부터 멀리하고 방관할 게 아니라, 더 가까운 곳에서 더 저 아이를 봐주었어야 했소. 이 죄는 죽어서 요한에게 사죄하리다. 그러니 지금은 저 아이를 편하게 해 줍시다. 제발 부탁이오…….”

아네트는 고개를 강하게 내저으면서 현실을 부정했다.

“아, 안 돼요! 제발 그러지 마요! 요한이…… 우리 요한이…….”

털썩…….

“마담!”

“어서 신관을 모셔 와라!”

오열하며 하이든을 뜯어말리던 아네트가 결국 또다시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시종들이 그녀를 부축하여 침대로 옮겼다.

그사이, 요한은 백작가의 처형장으로 옮겨졌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준비된 사약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두대로 네 목을 베어 참하지 않는 것은 이 아비의 사죄이자 마지막 배려임을 알거라.”

“아, 아버지 안 돼요! 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

“먹여라.”

벌컥 벌컥…….

집행관들은 구속되어 있던 요한의 입을 벌려 억지로 사약을 쏟아부었다.

그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다.

“아악! 속이 뜨거워…… 살려 주세요! 죽을 것 같아…… 제발 나 좀 살려 줘…….”

하이든은 남모르게 주먹을 틀어쥐었다.

누구도 사약을 먹고 고통 속에 죽어 가는 요한을 불쌍하게 여기거나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되레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통쾌해하거나 빨리 죽기만을 기다리는 시선만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 시선 속에서 조용히 무리를 관찰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위화감 없이 섞여 요한의 처형식을 관찰하였다.

그렇게 사람들을 관찰하던 그림자들의 시선 끝에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요한의 처형식을 지켜보고 있던 알파와 예가르가 있었다.

‘요한은 알파가 아니었던 건가? 이상하군. 그분의 추측이 틀릴 리가 없는데…….’

“우웩……!”

결국 피까지 토해 내며 쓰러진 요한의 발작이 멈췄다.

하이든이 고개를 끄덕이자 요한에게 다가간 신관은 그를 진맥하더니 심장이 멈췄음을 확인하고는 하이든을 쳐다보며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

하이든은 상석에서 일어나 묵묵히…… 그리고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각하…….”

“비키거라. 내가 직접 데려갈 것이다.”

죽은 아들의 주검에 하얀 천을 덮어 주고, 본인의 손으로 아들의 시체를 안아 든 그의 두 눈은 공허함으로 가득했다.

그는 그렇게 요한의 시신을 안아들고 직접 화장터로 향했다.

요한의 시신을 손수 관에 넣고, 뚜껑을 닫아, 가마에 넣는 것까지 하이든은 본인의 손으로 직접 아들의 마지막을 챙겨 주었다.

그 모습을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무리 개망나니 같은 아들이었다 하더라도 본인의 손으로 아들을 죽이고 그 최후를 챙겨 주는 아비의 심정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불을 다오.”

마지막으로 횃불을 넘겨받은 하이든이 가마에 불을 붙이자 기름을 머금은 마른 장작은 금세 엄청난 불을 토해 내며 관을 삼켰다.

그 불길이 얼마나 강렬한지 뜨거운 열기와 시뻘겋게 물든 내부는 들여다 볼 수도 없을 수준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불이 꺼지고 가마에 남은 것은 뼛가루뿐이었다.

그때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하이든은 그제야 통곡을 하면서 죽은 아들의 뼛가루를 쓸어 상자에 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손수건을 꺼내거나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하이든의 슬픔을 헤아렸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요한은 죽었다. 알파의 정체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분의 추측처럼 요한은 아니었어. 이건 그분의 계획에 생각지 못한 변수가 되겠군…….’

군중 속에 숨어 있던 그림자들은 요한의 죽음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묵념으로써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알파를 확인한 뒤, 소리 소문 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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