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26화 (26/150)

26. 불현듯 찾아오는 그것

드르렁, 쿨……. 드르렁, 컥컥! 쿠울…….

‘어우, 시끄러워! 저 자식을 죽여, 살려?’

옆에선 도모스라는 돼지 한 마리가 침대에 누워 세상모른 채 코를 골며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홀로 심심하게 요한을 기다리고 있던 헨더슨은 그가 돌아오자 반색했다.

“오셨습니까. 알파 경.”

“그래, 별일은 없었지?”

“예, 그런데 이렇게 해서 정말 아반가르디 남작이 제안을 받아들일까요? 사실 교역로가 완성된 것도 아니고, 이제 막 공사를 시작…….”

헨더슨은 걱정하며 묻다가 요한이 검지를 세워 자신의 입술로 조용히 가져다 대자 입을 다물고 그를 지켜보았다.

요한은 조심스럽게 마나를 확장하여 방 전체에 오러막을 펼쳤다.

그러자…….

파직.

“…….”

요한은 자신의 감각에 걸리는 불순물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다기가 놓여 있는 테이블이었는데 그가 아래를 훑어 살피자 무언가가 그의 손에 걸려 나왔다.

“그게 뭡니까?”

“도청 아이템.”

“네?”

파직!

헨더슨의 질문에 요한은 도청 아이템을 움켜쥐며 대답했다.

그의 주먹에서 한순간 스파크가 튀어 오르자 그는 다시 도청 아이템을 테이블 밑에 붙여 두었다.

그런 식으로 요한은 방 이곳저곳에 숨어 있던 도청 아이템들을 찾아 전부 망가트렸다.

“예가르 이 자식이……!”

헨더슨은 도청 아이템을 설치해 둔 사람이 예가르라고 생각했는데 이를 갈며 분개했다.

하지만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예가르의 짓은 아닐 거다.”

“네? 그게 무슨…….”

“예가르는 신뢰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온 장사꾼이다. 이런 식으로 걸리면 손해, 안 걸리면 이득 같은 도박꾼의 마인드로 사람을 상대할 자는 아니지.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그럼 알파 경은 누구 짓이라 생각하는 겁니까? 이 저택에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이 예가르 말고 또 있다고요?”

요한은 침묵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심적인 확신은 가지고 있었다.

예가르의 저택에서 예가르 몰래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

도청 아이템을 설치하면서까지 보다 많은 정보를 원하는 이유.

만약 걸려도 예가르에게 쉽게 뒤집어씌울 수 있는 상황까지…….

그 모든 걸 더하면 결론은 하나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제국의 그림자가 여기에도 숨어 있었나…….’

떠오르는 신흥 귀족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말단 귀족이다.

그런데 제국의 스파이는 여기서도 숨어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누구건 진범이 있다면 밝혀지겠지. 그나저나 아까 뭘 물어봤더라?”

“아, 맞다. 교역로 말입니다. 이제 막 공사를 시작했는데 이런 식으로 일을 서둘러도 되는 겁니까? 저쪽에서는 아직 아무런 검증도 되지 않은 교역로를 선뜻 이용할 것 같진 않은데……. 그런데 왜 그렇게 보십니까?”

요한이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자 헨더슨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그거 네가 생각한 거냐, 헨더슨?”

“참나…… 여기서 멍청하게 곯아떨어진 돼지 녀석이 가르쳐 줬겠습니까? 도대체 사람을 뭘로 보고…… 저도 그 정도 생각쯤은 하고 산다고요.”

“네 말이 맞아. 너도 생각한 걸 장사에 잔뼈가 굵은 예가르가 생각하지 않을 리 없겠지. 그렇다고 해서 끝날 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도 없잖아. 자작령의 백성들 모두가 굶어 죽은 뒤에 개통할 수는 없으니까. 안 그래?”

“그럼 더더욱 위험한 거 아닙니까? 예가르가 거절하면 우리는 다음 농사 때까지 진짜 쫄쫄 굶어야 할 겁니다. 아니, 다음 농사 때까지 버티지도 못 할 거라고요.”

헨더슨의 걱정을 요한도 십분 이해했다.

“알아. 지금 당장 마차를 이용할 만큼 길이 정비되지 않은 건 사실이야. 하지만 나귀와 말의 등에 짐을 싣고 다니는 건 충분히 가능해. 애초에 구르칸 오크들이 사용하던 길을 조금 손보는 정도니까. 지금 예가르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있을 거고. 그걸 위한 사흘이거든.”

요한의 말대로 현재 예가르의 휘하 정보상들은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히로벤칼 자작령을 조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흘 후에는 남작도 구르칸 산맥 교역로가 진짜 건설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사실상 협곡을 건너는 다리만 완성되면 기능 자체는 문제없는 데다 다리를 건설하는 건 금방이니까. 남작도 이 사실을 알게 되겠지.”

인부들로는 흉작 때문에 농사가 망해서 쫄쫄 굶고 있는 백성들을 대거 활용하였다.

그 덕분에 공사 속도는 범에 날개를 단 듯 신속했다.

다만 지금은 어음을 돌려 인건비를 감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여기서 교역로 유치가 실패하게 된다면 어음은 비수가 되어 요한에게 돌아올 터였다.

“그럼 문제가 전혀 없는 겁니까?”

“아니, 제일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지.”

“그게 뭔데요?”

“안전.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구르칸 산맥의 위협 말이야.”

“아…….”

주파하듯이 교역로를 통과하는 건 검증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역로를 이용하는 것처럼 오래 걸려 천천히 이동하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완벽한 검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시간도, 돈도, 사람도 엄청나게 잡아먹는 방법이라 지금은 쓸 수 없어. 그래서 손해가 발생 시 열 배의 보상금을 내걸었던 거고.”

“아무리 그래도 구르칸 산맥을 통과하는 건데 손해가 전혀 없을 수 있을까요?”

헨더슨의 진심 어린 걱정에 요한은 피식 웃으며 장담했다.

“없다, 티끌만큼도. 그 사실에는 내 목숨을 걸어도 좋다.”

“알파 경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왜인지는 몰라도 마음만큼은 정말 든든하네요. 물론 진짜로 아무 일도 없어야겠지만요. 그래도 예가르가 그걸 믿을까요? 도모스의 성격은 남작도 잘 알 텐데 만약 피해가 발생해도 모르쇠로 외면해 버린다고 생각하면 굳이 모험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요한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헨더슨을 노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경계했다.

“살대로 말해. 너 헨더슨 아니지?”

“……저 웁니다, 진짜로.”

피식.

“농담이야. 아무튼 네 말대로 계약서라고 해 봤자 종이 쪼가리에 불과할 뿐, 내가 대리인이라고 해도 어쨌거나 실질적인 오너는 저 돼지 녀석이잖아. 예가르도 그걸 가장 크게 걱정할 거다. 여기서부터는 내 추측이지만 아마 예가르는 사흘 뒤에 크림포드 백작가의 공증을 언급할 거야.”

“백작가의 공증이라……. 아하, 그렇군요! 백작가의 공증을 받는다면 도모스도 감히 사기를 치지는 못할 테니까요.”

“그래, 그리고 그거야말로 내가 가장 바라고 바라던 기회라고 할 수 있지.”

“네? 백작가가 공증을 서는 게 왜…….”

똑똑똑.

“들어와도 좋다.”

때마침 노크 소리가 들리고 요한이 허락하자 시녀가 들어와 고개 숙여 인사했다.

“히로벤칼 자작님, 저녁 만찬이 준비되었습니다. 만찬장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다. 자작님을 깨워 준비하고 나가도록 하지. 밖에서 기다려 주겠나.”

“네, 알겠습니다.”

시녀가 밖으로 나가 문을 닫자 요한이 도모스에게 다가가 그를 깨웠다.

드르렁, 퓨우……. 드르렁, 퓨우…….

“야, 인마. 얼른 일어나. 밥 먹으러 가자.”

툭. 철퍼덕!

“커헉! 가, 감히 누가 이 몸을……!”

요한이 다리로 툭 밀자 침대 위에서 떨어진 도모스.

놀라서 깬 그가 분개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요한과 눈이 마주쳤다.

“감히는 니미, 눈곱 안 떼? 내가 떼 줄까?”

“크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어휴,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야지!”

요한이 손을 들어 올리자 재빨리 일어나 대충 씻고 준비를 마친 요한 일행은 그렇게 시녀의 안내를 받으며 준비된 만찬장으로 향했다.

* * *

“크하하하! 이럴 필요 없는데 신경을 많이 썼구먼. 예가르 경.”

“누가 찾아오셨는데 대접에 소홀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하루, 극진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도모스 경. 하하하!”

아닌 게 아니라 예가르가 준비한 만찬장은 도모스를 대접하기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좀 과할 정도로 호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이게 다 얼마래…….’

요한조차 커다란 접시 위에 올려진 음식들을 바라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평범한 서민들은 평생가도 먹을 기회조차 없는 산해진미들이 뷔페식으로 몇 테이블이나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만찬장 한쪽에는 특별히 섭외한 오케스트라가 은은한 연주로 분위기를 잡아 주고 있었다.

또한 예가르가 특별히 초청한 지역 유지들도 자리에 참석해 도모스를 빛내 주고 있었으니 도모스의 입꼬리가 귀에 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저런 식으로 도모스를 구워삶을 작정인가? 나쁘지 않네. 아부를 좋아하는 도모스에게 안성맞춤의 전략이긴 하니까.’

요한은 예가르의 부질없는 노력에 찬사와 위로를 함께 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애초부터 도모스에게는 결정권 자체가 없다는 걸 예가르는 꿈도 꾸지 못하겠지.

“으헤! 으헤헤헤헤!”

물론 도모스가 좋아 죽는 모습을 보는 게 좀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가끔씩 이런 식으로 고삐를 풀어주는 건 나쁘지 않았다.

‘도가 지나칠 수준만 아니라면 오늘 하루는 그냥 풀어주자.’

“저…… 알파 경?”

‘응?’

요한은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을 확인하고는 살짝 불편함을 느꼈다.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리리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매우 반갑게 그녀를 맞이하며 인사했다.

“누군가 했더니 레이디 리리아셨군요. 처음 만났을 때와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몰라볼 뻔했습니다.”

“그렇죠? 이상하죠? 저도 사실 드레스는 많이 어색해서…….”

리리아가 씁쓸하게 웃으며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자 요한이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다뇨. 처음 봤던 아가씨의 모습이 활기 넘치는 야생화였다면 지금은 정원에 핀 장미와 같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제 눈에 아가씨는 여전히 강인하고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화끈!

그 순간 리리아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내, 내가 미쳤나? 갑자기 왜 이러지?’

상대는 목소리도 괴상하고, 얼굴도 드러내지 않는 정체불명의 남자.

심지어 오늘 처음 본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데 제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네? 아, 그게…….”

리리아는 도저히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 예가르와 협상을 하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옆에서 지켜본 것뿐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협상이 끝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 남자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신부 수업만큼 싫어했을 드레스를 오늘은 자신이 직접 골라서 입었던 것도 그랬다.

그런 이상 현상은 만찬장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끄러미 이 남자만 쳐다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그를 찾아간 것이었다.

당연히 용건 따위 있을 리 없었던 리리아는 허둥지둥하다가 아무렇게나 손가락을 가리키며 무슨 말이든 내뱉었다.

“저, 저거 때문에요!”

‘…….’

요한은 그녀가 손가락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미간을 크게 찌푸렸다.

지금만큼은 가면을 쓰고 있는 게 천만다행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오케스트라에 맞춰 남녀가 함께 춤을 추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

제정신을 차린 그녀도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미, 미쳤나 봐! 이러면 마치 내가 먼저 알파 경에게 춤을 신청한 것처럼 보이잖아?’

여기서 거절을 당하면 그것만큼 수치스러운 것도 없었다.

심지어 가족들은 물론이고 지역 유지들도 모인 자리가 아닌가?

그런데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이 비단 리리아 본인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얘가 진짜 무슨 생각으로…….’

요한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중요 거래처의 하나뿐인 딸을 창피 줄 순 없었으니 일단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렇군요. 리리아 아가씨, 그렇다면 저에게 잠시만 시간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고, 고마워요…….”

‘휴…… 다행이다…….’

리리아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요한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조심스레 얹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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