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황정허무검(152)
영안을 머릿속으로 집중하여 영체를 찾아보았지만 실체가 없었다. 실체는커녕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정?기?신 삼위일체 이후 느꼈던 감각이 허상이었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자위하며 더욱 샅샅이 훑어보았지만 없었다.
뇌 속에 없다면 다른 곳에 머물고 있을 수도 있었다. 오장 육부는 물론이고 이곳 저 곳을 세심히 관조하였 지만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억지로 찾지 않을 때는 가끔씩 나타나 당혹스럽게 하더니 막상 그 존재를 확인하 려니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허탈한 마음에 명상에서 깨어나 다음을 기약해 보려 했지만 자리가 아까웠다.
천?지간의 기운이 화합되어 마음이 평온해지고 영대(靈臺)가 수정처럼 맑아 마음공부 하기로는 이곳처럼 좋은 자리가 없는 것이다. 영체를 찾겠다는 생각을 버리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영안을 집중하지 않고 넓게 풀어놓은 은성은 한적한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마음가는 대 로 이 곳 저 곳을 배회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한없는 자유 속에 이리저리 표류하던 영안이 재미있는 것을 발 견해 내었다. 경맥과 락맥을 지나 세맥을 관찰하면서 발견된 현상이었다. 미세하게 분화된 세맥들이 더욱 분 화되어 최종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작은 생명체가 있었다.
'이럴 수가..!'
작은 생명체는 몸 어느 곳에나 있었다. 아니, 몸 전체가 작은 생명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이 맞는 표현 같았 다. 오장 육부는 물론이고 피부와 뼈 심지어는 머리카락과 눈동자 까지도 작은 생명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충격(衝擊)....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작은 생명체는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완전한 독립체로 존재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죽어가는 것도 그리 고 이제 막 생성되는 생명체도 있었다.
'....'
끝없이 생성소멸하는 생명체들이 모여 인간을 구성하고 있다니.... 믿기지 않았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작은 생명체들은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피가 왕래하고 기가 순행하며....
문득 천부경속 석삼극 무진본(析三極 無盡本)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무극이 태극으로 변화되고 태극이 천지 인 삼재로 변화되었지만 그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수없이 변화해도 그 본질은 하나라는 말이기도 하였다. 인간이 소우주 이듯이 우주도 인간처럼...
아! 작은 발견이었지만 은성에게는 전율이 일 듯한 큰 발견이었다. 생명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더 깊은 사유가 가능할 대 발견이었다.
작지만 무수한 생명체들이 모였는데 어떻게 일사분란한 하나의 인격체로써 행동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자 영안을 집중하여 단 한 개의 작은 생명체를 조심히 관찰하였다. 아무리 심안을 완성하고 영안이 개발되었다고 하지만 작은 생명체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었다.
마음은커녕 느낌조차 공유되지 않았다. 하지만 얻은 것이 있었다. 작은 생명체에서 기(氣)뿐만이 아니라 영기(靈氣)조차 미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희미하여 영기인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였지만 분 명한 영기였다. 작은 생명체들이 뿜어내는 영기가 모여든 것을 확인한 결과였다.
영기가 흘러가는 통로는 심기와는 또 달랐다. 경락을 주요 통로로 하는 심기와는 달리 특정한 통로가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마음이 가는 것처럼 통로가 바뀔뿐더러 그 실체도 뚜렷하지 않았다. 모여들어 흐르고 있 는데 느껴지기도 하고 전혀 느껴지지 않기도 하였다.
무슨 조화란 말인가?
한참동안 관찰하고서야 심증을 얻을 수 있었다. 영기를 관찰할 수 있는 마음의 깊이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깊은 강물 속에 한줄기 지류인 듯 너무 얕은 곳에서도 그렇다고 너무 깊은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치 밤하늘에 희미하게 빛나는 별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시선의 깊이를 조절해야 하는 것과 같았다. 보이지 않다가도 시선의 깊이를 별들의 형상이 보이는 깊이에 일치시키면 갑자기 드러나는 별들의 조화처럼 영기도 마음의 깊이를 일치시켜야만 확연히 보이는 것이다.
역시나 영안을 정화시켜 깊이를 조정하다 보니 영기가 확연히 드러나 보였다. 가끔씩 스쳐 지나가듯이 나타났 다 사라지는 정도가 아닌 혈관이나 심기처럼 선명한 기류였다. 그 영기들이 최종적으로 모여들고 있는 곳...그곳에 영체가 있었다.
천령개(天靈蓋)라고 불리우는 백회혈(百會穴)에 맞닿아 있는 곳. 마음의 밭인 뇌 속에 작은 모습으로 자라난 또 다른 자신이었다. 영안의 깊이를 달리하면 보이지 않았지만 특정한 깊이에서는 선명히 보이는 영체는 아직 뚜렷한 형상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지가 형성되어져 있으며 이목구비중 눈(眼)과 귀(耳)의 형상이 갖추어져 있었다.
뇌 안에 자리 잡은 영체는 은성과 별개의 존재는 아니었다. 영안에 마음을 더하면 영체는 마음 가는대로 조절 되었다. 그렇다고 은성과 완전히 혼연일체되어 있지도 않았다. 은성이 생각하는 것이지 뇌 속 영체가 생각하 는 것 같지는 않았다. 참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관계였다.
그런데 영안으로 뇌리 속 영체를 살피던 은성의 마음은 영체 속에서 간절히 속삭이는 깊은 이끌림을 느낄 수 있었다. 형언할 수 없이 미묘한 느낌으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영혼의 속삭임이었다.
그 느낌이 이끄는 곳은 영체의 뇌가 위치한 머리 부분이었다. 은성의 백회혈에 영기로써 연결된 신비지문(神 秘之門)... 천고의 신비인 금단의 성문(聖門)이 은성의 영혼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금단의 문은 열려져 있지 않았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일까?
잃었던 영혼을 되찾는 듯 너무도 간절히 원하여 이끌림에 순응하여 찾아 왔건만....
받아 들일 수 없다고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오기나 자존심 같이 저급의 감정이 아닌 영혼의 부름에 충실 하기 위한 고차원적 성감(聖感)이었다. 영체의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영체의 백회혈 외에는 들어갈 입구가 없 었다. 어쩔 수 없이 또다시 시도하여 보았지만 번번이 가로 막혀졌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일까?
또 다른 마음의 깊이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영안을 정화해가며 깊이를 조절해 보았지만 하등 소용이 없 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은성의 마음이 부르르 흔들렸다.
그럴듯한 방법을 찾아냈던 것이다. 이 또한 천부경 속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바로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이 었다. 무극의 고요함 속에서 세상천지를 탄생시키는 작은 움직임이 잉태되었다는 구절이었다.
천지가 억지로 탄생되어질 수는 없었다. 순리에 따라 무극에서 태극으로 변화되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 되어졌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순리에 따라.... 영안 속에 내재된 심기를 영체 속에 투입하려던 억지를 접고 마음으로 조용히 영 체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영체와 마음의 감응을 시작하였다. 더 이상 둘이 될 수 없다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서...
변화는 미세하게 시작되었다. 심기가 아닌 은성의 영혼이 영체의 이끌림에 따라 조용히 영체의 마음속으로 스 며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영체의 백회혈은 닫혀진 것이 아니었다.. 활짝 열려져 있었다. 다만 들어갈 수 있 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억겁의 시간이 지난 것 같았지만 찰나의 순간이었다. 은성의 영혼이 영체 속에 깃들여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 다.
영체는 크기는 물론이고 형상도 형체도 자유로운 존재였다. 과거나 미래를 오갈 수는 없지만 공간적 제약은 없었다. 순식간에 몇 십리를 오고갈 수 있으며 땅속이나 물속 심지어는 천간계나 지간계도 자유자재로 왕래 가능하였다.
예지력이 발달하여 능력이 고도화되면 미래를 꿰뚫어 볼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영체를 이룸은 현세의 삼차원 적인 존재에서 벗어나 사차원의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물론 완벽한 사차원적 존재로 화신하기 위해서는 원 영지체를 이루어 육체에서의 속박을 완전히 벗어날 때 가능하였다.
은성의 머릿속에 잠재되어 형성된 영체가 활성화되자 생각의 중심이 영체로 이동되어졌다. 은성의 영체이니 은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지만 영체는 또 다른 은성처럼 행동하였다. 조용히 머물러 은성의 몸에 대한 모든 현 상을 관찰한 후 스르르르 은성의 천령개를 빠져나왔다.
천령석 위에 앉아있는 은성의 몸 주위로 성스러운 후광이 흘러나오자 다시금 빨려들어가 심기를 조절하여 후 광을 없애고 투명한 호신강기를 펼쳐 몸을 보호시킨 후 재차 빠져나왔다. 영체로써 육체를 이탈한 은성은 영 안이 수십 배로 향상되어졌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천령석 아래 깊숙이 숨어있는 영물 두꺼비의 모습도 확연히 보였다.
허공에 둥실 떠있는 자신의 머리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가는 굵기로 영선(靈線)이 펼쳐져 천령석 위에 있는 육체의 백회혈에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희한하게도 몸을 비틀고 꼬고 난잡하니 움직여도 영선(靈線)은 꼬이거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음이 일자 영체가 절로 따랐다. 백여 장 밖의 거송(巨松)에 마음이 닿았는데 어느새 그 앞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축공술(蹙空術)이라고 해야 되나?
허공을 접어 순식간에 그 자리에 도착하는 것처럼 신비하기 이를데 없는 경험이었다. 천여 장 넘어 야트막한 산을 바라보며 마음을 동하자 이번에도 거짓말처럼 그 앞에 위치해 있었다. 눈 한번 깜짝할 시간도 소요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믿어지지 않는 속도였다.
스르르르릇... 다시 돌아와 눈앞의 거대한 바위를 향해 손을 내밀자 손이 바위 속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팔꿈치에 이어 어깨 몸통 그리고 온몸이 다 들어갔는데 영안으로 사물을 바라보아서인지 바깥 풍경이 눈에 선 하게 드러나 보였다.
휘익하니 튀어나와 땅속을 질주해 보았다. 믿을 수 없게 걸리적 거리는 것이 전혀 없었다. 마치 허공을 나는 것 같았다. 땅속을 달리면서도 땅위의 전경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허공과 땅속의 경계가 사라져 버린 것 이다.
'스스스스스'
유령처럼 홀연히 스며 나온 은성의 영체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곳은 검후의 숙소였다. 검후의 위상 때문 인지 무림맹에서 천막으로 숙소를 지어 편안히 잠 잘 수 있도록 특별히 고려해준 것 같았다.
검후는 얇은 요를 덮은 채 잠들어 있었다. 초저녁 요괴들과의 싸움에 몸이 피곤했었는지 깊은 수면에 빠져 있 었다. 검후 옆에 놓인 빙검 여래혼. 눈을 뜨면 손을 뻗쳐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지척에 놓아둔 여래혼의 붉은 수실이 문득 애처로워 보였다.
가까이 다가와 검후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니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긴 속눈썹에 오똑한 콧망울 그리고 앵두 같은 입술하며 어여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예쁜 옷을 입고 또래들과 어울려 인생의 꿈과 아름다움을 만끽 해야할 꽃다운 나이의 검후였다.
그런데 이런 누추한 곳에서 혈향이 채 가시지도 않은 검을 옆에 둔 채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손을 내밀어 검후의 볼을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영체라서 눈물이 흘러나오지는 않았지만 은성의 가슴은 애처 로움에 젖어 흔들리고 있었다.
천부경의 수련으로 검후의 무위는 엄청나게 강해져 있었다. 곤륜산을 떠나올때 허공답보(虛空踏步)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했었다. 그 정도면 사부의 원수인 마교의 광명우사와 견줄 수 있을 터이지만 승부를 장담할 수 는 없었다. 그 때문인지 요즈음 검후는 밤낮으로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 수면도 운기조식을 끝낸 이후에 취했을 것이다. 애잔한 느낌으로 검후의 속눈썹을 살짝 쓰다듬어 줄때 잠든 검후의 얼굴에 미미한 변화가 생겼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아마 행복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꿈속에 자신이 나타났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은성이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영체의 이동이라서 그런지 잠든 검 후는 물론이고 검후의 머리에 꽂혀진 금접조차 은성이 다녀감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허..!'
육체가 있는 천령석으로 가려던 은성의 영체가 내려선 곳. 새벽이 가까워져 오는 인시말 인데도 불구하고 밀 담인지 내밀히 오고가는 소리가 있었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느낌으로 전해지는 심언이었다. 좌정하여 앉아 있는 유령왕의 변신체 유신비, 그리고 그 앞에 반듯한 자세로 서있는 두 구의 금사자에게서 들려오는 소리였 다.
[켈켈켈, 잘 들었느냐! 오늘부터는 일반 강시처럼 뻣뻣이 행동하거라. 내일은 조금 부드럽게..그래야 글피 정 도부터 자유롭게 행동해도 의심이 덜할 것이다. 알겠느냐!]
[존명!]
유령왕의 지엄한 명령에 금사자들이 충성어린 목소리로 동시에 대답하였다.
[너희들은 무조건 나의 명령에만.... 음, 예외가 있다. 내가 이대협이라 칭하신 분께서 명령하면 내 말인 듯 따르거라! 너희들이 상상할 수 없는 신인의 경지에 이르신 분이라 너희들을 부릴 일은 거의 없을 터이지만 혹 시라도 명령을 내리면 철저히 복종해야 한다. 알겠느냐!]
[존명!]
역시나 기계적인 대답이었다. 유령왕이 자신을 배려하는 것을 영체로써 살피던 은성은 다시 한번 영체의 능력 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유령들간의 심언을 제삼자가 들을 수 있다니 영체가 아니고서는 꿈도 꾸지 못할 경지 였기 때문이다.
아마 유령왕도 지금 자신이 내린 명령을 은성이 미소와 함께 듣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야차귀노에게 부하들을 모두 잃고 철저히 혼자로 버려진 유령왕은 핵심수하인 구천유장(九天幽壯)중 두 명을 되찾자 오래만에 회포를 풀고 있었다.
[오호장군! 너 언제부터 그렇게 딱딱해졌냐? 니가 떠벌이인 것 온 유계가 다 알고 있으니 예전처럼 말해도 된 다.]
두구의 금사자중 조금 마른 체형의 금사자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대..대왕님! 그..그래도 되겠습니까?]
[켈켈켈! 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너희들과 수많은 백성들을 잃고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앞으로는 탈 권위(脫權威)를 통치이념으로 삼을 것이다. 백성과 친 형제 같고 친 아버지같은 대왕 말이다. 걱정 말거라.]
[대왕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야차귀노의 저주에 걸려 유령모(幽靈母)님과 마교에 끌려가서 강압적으로 봉 인을 당했지만 봉인을 받기 전까지는 언제나 대왕님 생각 뿐이었습니다. 저희보다 유령모(幽靈母)님의 고초가 ..흑흑흑!]
떠벌이라 불리우는 금사자가 슬픈 목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감정이 무척이나 풍부한 유령인 것 같았다.
[그럼 유희(幽姬)는? .... 울음을 그치거라!]
[예, 그러니까 흑흑! 유령모님은 흑흑흑흑흑...]
[울음을 그치래도!]
중요한 질문을 하는데 떠벌이라 불리는 금사자가 울고만 있자 유령왕이 짜증난다는 듯이 준엄한 목소리를 내 었다.
[예. 흑‥흑‥흑.]
하지만 감정이 폭발했는지 쉽게 그칠 기새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유령왕이 다른 한구의 금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 왠일인지 질문을 하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더니 뜬금없는 말을 꺼내었다.
[팔호장군 한심이! '존명' 말고 아는 단어 아직도 없냐?]
[존명!]
유령왕의 고개가 미련 없다는 듯이 옆으로 휙 돌아갔다.
[떠벌이! 죽을래?]
준엄함을 넘어 살기에 찬 목소리였다.
[헉! 대..대왕님. 방금전 친아버지같이 감싸 주신다고....]
냉엄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듯 숨 넘어갈 듯한 울음을 그친 금사자가 파랗게 질린 목소리로 심언을 보냈 다. 평소 유령왕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는지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친 아버지에게 맞아 존재가 사라진 유령도 있었던 것 같은데...]
[허거덕! 대..대왕님 궁금하신 것이 무엇인지요?]
사색이 된 목소리로 묻는 금사자였다.
[유희는 어찌 되었느냐?]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조금은 떨리고 있었다.
[유령모님은 마교에 끌려오신 후 저희 구천유장들과 분리되셨습니다. 아마도 악독무비한 야차귀노가 극악한 술법으로 금제를 가하고 있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음....]
유령왕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였다. 분위기가 숙연해지자 떠벌이도 입을 꾹 다물었다.
[....]
[유희! 내 그대를 구해줄 것이니 조금만 더 기다리시오. 반드시..반드시 구해주겠소. 유희! 유희!]
구슬픈 목소리로 유령왕이 계속하여 '유희'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애닲은지 은성의 가슴 도 찡해져 왔다.
유령왕의 비사(悲詞)를 듣자 은성은 유령왕이 자신에게 봉인을 자청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듯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밝은 모습이라니....
스스스스슷....
영체가 사라져 간 허공에는 새벽 안개가 응고된 이슬인 듯 몇 방울이 떨구어지고 있었다. 공간을 격하여 육체 속으로 빨려 들어온 영체는 육체이탈로 인한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았는지 뇌리속에서 고요히 움직임을 멈추 었다.
영적 휴식이 필요함을 느꼈는지 영체 밖으로 마음을 밀어내자 마음은 영안의 깊이를 바꾸어 본래의 자리로 회 귀되었다. 영체를 발견하기 전의 은성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바탕 꿈을 꾼 것처럼 믿기 힘든 시간이었다. 잠시 후 은성은 영적 체험에서 오는 신비한 경험을 떠올리며 심기를 조절한 다음 오랜 명상에서 깨어났다.
깨어나 보니 온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져 있었다. 허무경 팔단계의 경지가 완성되었음을 자축하는 희열 때문인 것도 같았다. 동녘이 밝아 오는지 산 너머로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