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151화 (151/152)

[연재]황정허무검(151)

찰나와 찰나의 엇갈림이 겹쳐지면서 옥동자(獄童子)의 운명이 결정되어졌다. 영기가 사라지기 직전 일자혜검 에 의해 술사 주변의 공간이 구속되어져 버린 것이다. 공간이 이그러져 태초 혼암의 어둠으로 변화되어지자 영기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눈앞으로 다가오는 하얀 물체... 영기가 미세한 먼지로 화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한번 빠져들면 혼 과 넋조차도 소멸하여 빛과 어둠으로 사그라드는 무극지정(無極之井)에 잠긴 것이다.

"꺄아아악!"

야차귀노의 제자인 옥동자가 혼백조차 남기지 못하고 영원속으로 소멸될때 은성은 작은 깨달음으로 환희에 젖 어 있었다. 찰나지간 섬전처럼 스쳐간 깨달음이었다.

허무경 팔단계에서 십단계를 관통하는 원영지체(元靈之體)를 이루는 방법이었다. 극악한 사술로 영체를 단련 하여 육체를 버리면서 삶을 갈구하던 옥동자가 은성에게 영감을 심어준 것이다.

옥동자의 영혼이 소멸되자 전세에 엄청난 변화가 발생되었다. 묵강시와 혈강시는 물론이고 절정고수들조차 쩔 쩔맬 정도로 극강한 위력을 발휘하던 녹옥강시(綠獄剛尸)가 시체처럼 굳어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검강을 운용하여 묵강시를 난도질 하였는데 더 이상 혈강시가 튀어 나오지도 않았다. 혈강시는 난도질할 필요 조차 없었다. 핏물처럼 녹아 대지로 스며들어가 버렸다.

귀신같은 신법에 검기에 정통으로 격중되어도 끄덕 없던 녹옥강시도 시체처럼 뻣뻣한 육신이 절정고수들의 검 강에 몇조각으로 토막났다. 그런데 요괴들과 금사자는 옥동자의 죽음과 무관한 것 같았다.

칠룡과 검후의 활약에 이십여마리 밖에 남지 않은 요괴는 더 발악적으로 항거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숫자는 빠른 속도로 줄어 들었다. 강시들을 처치한 절정고수들이 가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구의 금사자였다.

달뢰대라마와 무상과 상대하면서도 조금도 밀리지 않던 금사자들이 옥동자가 죽자 갑자기 뺑소니를 쳐 버렸다.

금사자의 가장 무서운 점은 신출귀몰한 신법에 있었다. 귀신이나 유령이 있어도 저처럼 빠르고 변화무쌍할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녹옥강시도 빠르지만 그보다 두 배는 빠른 것 같았다.

그런 금사자들이 맘먹고 도망을 치니 아무리 초극고수라 하여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따라가 보았자 제압할 수 있다는 장담도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조금 따라가다 할 수없이 뒤돌아 오는 두 초극고수가 갑자기 고개 를 뒤쪽으로 향했다. 방금 무엇인가가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든 것도 같았다.

놀란 눈빛으로 자세히 살폈지만 저 멀리 두개의 금빛 점만이 보일뿐이었다. 그나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금사자들의 뒤를 따른 건 다름 아닌 유령왕이었다. 심언(心言)으로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 후 금사자들의 뒤를 따르는 유령왕을 바라보던 은성의 귓가에 마지막으로 남은 요괴(妖怪)가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을 옮겨 팔십여 자루의 병기들이 땅에 꽂혀진 곳으로 향하면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술사가 죽으면 술법에 이용된 귀신과 유령 혹은 정령들은 신성한 법약(法約)이 풀리고 자유의 몸으로 환원되 는 것이 원칙이었다. 자유자재로움을 추구하는 본능 때문에 봉인된 술체(術體)를 벗어나 원래 있어야 할 곳으 로 회귀하는 것이다. 술법을 펼친 흉측한 꼽추가 일자혜검(一字慧劍)에 소멸된 후 강시들이 일시에 동작을 멈 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령왕이 쫒아간 금빛 강시들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강시가 분명한데.. 술법을 건 술사 가 따로 있었다는 말인지.... 하지만 금빛 강시 또한 죽은 술사에 의해 봉인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렇다면.... 휴! 알 수 없는 문제였다.

병기들을 향해서 은성이 한손을 내밀자 금제되어 있는 것처럼 빳빳이 서있던 검과 도들이 일제히 쓰러져 버렸 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검과 도로 무질서하게 쓰러지는 병기들은 어느새 두세 조각으로 부러져 있었 다. 유형화되어 병기들을 묶어놓은 심기를 회수한 후 찝찝한 기분에 심기로써 병기들을 분질러 놓은 은성이 수뇌부들에게 걸어가다 멀리에서 날다시피 다가오는 인영을 보았다.

'풋!'

하마터면 실소가 터져 나올 뻔 하였다.

다가오는 인영은 연분홍 장삼에 한껏 멋을 낸 풍류공자였다. 한손에 부채를 들고 우아한 신법을 발휘하고 있 었는데 자세히 살펴볼 필요도 없이 유령왕이었다. 그런데 군협들이 유령왕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것도 잔뜩 긴장한 기색이었다. 유령왕이 한손으로 들고 있는 두 구의 시체 때문이었다.

휘익!

시체처럼 추욱 늘어진 두 구의 금사자를 다짜고짜 은성에게 던진 유령왕이 더러운 것이라도 묻었는지 손수건 을 꺼내 손을 닦으며 은성에게 말을 걸었다.

"이형! 오랜만이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들었네."

[그것들 내 부하들이다. 관리 잘해!]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심언은 상당히 거칠고 야성적이었다. 얼떨결에 금사자 두 구를 받아든 은성은 모산에서 오면서 연습한대로 연출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유형이구려. 무림에는 뜻이 없다고 하더니 여긴 어떻게...."

[부하들이라니.... 백성이 아니고 유령 부하란 말이오?]

"하하! 이형은 별걸 다 기억하고 계시군. 그동안 소주와 항주에서 지냈었는데 마교가 다시 창궐하여 무림맹을 빼앗겼다는 소문을 듣고 이형이 걱정되어 달려오는 중이네. 곤륜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하여 이렇게 마중을 나 오게 된 것이네."

[맞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야차귀노에게 제압되어 끌려간 유령국 최고의 전사 구천유장(九天幽壯)들이다.]

은성에게 유형이라는 호칭을 듣는 유령왕은 은성과 매우 친한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은성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 흔들고 어깨까지 톡톡 두들기고 있었다. 은성의 어깨를 두드린 후 은성이 안고 있는 금사자의 이마를 툭 튕기더니 재차 말을 이었다.

"오다가 황당한 일을 겪게 되었네. 아 글쎄, 금빛 나는 물체가 하늘을 날다 툭 떨어지지 뭔가. 험 험! 마침 호주머니도 비었고 하여 쫒아 가보니 황금은커녕 봉인이 풀려 빈껍데기만 남은 강시였네. 버리고 올려다 아까 워서 주워왔는데 쓸모가 없을 것 같으면 그냥 버리도록 하게."

[내게 방도가 있으니 지금은 맡아 주기만 해라. 짜식들이 충성심은 높아서 내 목소리를 듣더니 유계로 돌아가 지 않고 나를 따르겠다고 하더구나.]

의문이 확연히 풀리는 순간이었다. 금사자속에 봉인된 유령들은 술사가 죽은 후 유계로 돌아가려다 유령왕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유계의 왕인 유령왕의 명령은 자유 본능보다도 더 중요하였다. 유령왕이 시키는 대 로 사지(死地)를 벗어났다가 계략대로 죽은 체 하고 있었다.

"어쨋든 잘 왔네. 자네가 우리를 도와준다면 큰 보탬이 될 것이네. 그리고 이것은 자네 전공이 아닌가? 나보 다는 자네가 더 필요할 것이네."

은성이 금사자 두 구를 건네자 유령왕이 머뭇거리며 주저하더니 마지못한 듯 받아들였다.

처음과 같이 한손으로 옷자락만 거머쥐고 잡았는데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금사자 때문에 모여든 군웅들은 전설적인 미남인 송옥과 반안에 비견될 정도로 영준하게 생긴 서생이 은성과 격의 없이 친한 사이인 것을 확인하자 유령왕에 대한 적의(敵意)를 완전히 풀고 있었다.

시체처럼 늘어진 금사자도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금사자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 군웅들이었다. 은성과 유령왕의 대화를 듣던 무림맹주는 유령왕이 대단한 무위를 가졌음을 알 수 있었다.

무림맹에 큰 보탬이 될 거라는 은성의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령왕에게서 절정의 경지 이상 가는 고수만이 내비치는 평범 속의 비범한 기운이 은연중 풍겨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협! 이분은 누구신지요?"

소개를 부탁하는 말이지만 주변의 군협들에게 확실한 정체를 밝혀 달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다. 하지만 무 림맹주의 물음은 모산에서 출발시 유령왕이 짜놓은 각본에 포함된 질문이었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유령왕이 말했었다.

"제가 중원에 와서 처음 사귄 친구인데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느라 여러 협사님들에게 결례를 범한 것 같습 니다. 이 친구는 유신비(柳神秘)라고 불리는데 유령문(幽靈門)이라고 일인비전되는 문파의 장문이랍니다. 강 호에 나서기를 싫어하여 이름은 없지만 능력은 저 못지않은 친구입니다."

"유령문?"

무림맹주 옆에 있던 문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유령문이라면 삼백년 전 강호무림에 출현한 적이 있었던 문파인데..혹 연관이 있는지요?"

무림역사에 박식한 문상다운 질문이었다.

"아닙니다. 저희 유령문은 철저하게 일인 비전만을 유지하고 있으며 세력을 이룬 적이 없습니다. 천년 전통을 가진 유령문의 유일무이한 문규(門規)는 바로 협의(俠義) 두 글자입니다."

협의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유령왕의 안색에 신광이 번득였다. 생긴 것 같지 않게 강인한 기상까지 은연중 내 풍기고 있었다.

"유대협의 유령문에서 협의를 표방하신다니 반갑기 이를데 없습니다. 뜻이 부합되면 동지이고 친구이지요. 앞 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문상이 공손히 반겨 줌으로써 유령왕은 새로운 변신체를 정식으로 공인받을 수 있었다.

그 절대적 공로는 물론 은성의 몫이었다. 사파의 거두라 하여도 은성이 믿을 수 있는 자라 소개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은성에 대한 신망은 높다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재주가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은성이 소 개한 대로라면 절정의 수준을 넘어섰을 수도 있었다.

"이 친구의 재주는 무공뿐만이 아닙니다. 저를 처음 만났을때 자기에게 열가지 뛰어난 재주가 있으니 십절종 사(十絶宗師)라 불리워야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아마 저 시체들도 소생시킬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적군이 아 닌 아군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은성이 자기를 치켜 세워줌은 물론 각본대로 적절한 안배를 해주자 겸손하고 품위있는 표정을 유지하던 유령 왕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크카카카카! 잘하고 있구나. 얼싸!]

내심을 들킬까 싶어 더욱 품위있고 고상한 표정.

"십절종사라니 유형의 재주가 나와 비등한 것 같군. 그래 어떤 재주들인가?"

은근히 자기 자랑을 하며 개방주 만취개가 끼어들었다.

자신의 개잡아 먹고 오리발 내밀기, 하품하며 연타로 방구 끼기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십여가지 재주를 공 개해야 되는가 고민하면서 말이다.

"하하! 십절이라 대단한 재주도 많지만 그중에는 반각 안에 여자 후리기처럼 신공이랄 것도 없는 재주도 포함 되어 있습니다."

은성이 유령왕의 뻔뻔하고 반지르한 얼굴을 보며 놀려주기 위해 말했다.

[대놓고 기생 오라비라고 하지 그러냐! 앞으로 이 몸이 무림 제일 미공자로 불리워질 것 같아서 시샘하는 거 냐?]

은성에게 심언을 날리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부드러운 미소로 은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친구! 반각 안에 여자 후리기가 신공이 아니면 그 무엇이 신공이라는 말인가? 내가 가진 열 가지 재주중 제 일이 바로 그 신공이네. 그 신공을 성취하기 위해 내가 읽고 수련한 책자만 백여가지가 넘네. 닭살 신공, 뇌 살안공, 살인미소, 여심 심층 분석학, 순간 포착술, 뿌린대로 거두기 위한 백팔가지 실력 정석.... 휴! 그 모 든 걸 완벽히 익힌 후 삼년동안 실습한 이후에야 간신히 대성한 신공이라네."

"...."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너무나 태연한 유령왕의 목소리에 모두가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나 만취개는 유령왕을 화화공자(花花公子)로 단정지었는지 상종 않겠다는 듯이 냉정하게 돌아서 버렸다.

정정당당하게 얻어 먿는 거지 체면에 여자나 후리는 놈팽이와 놀아날 수는 없는 것이다.

"맹주! 이곳에서 십리만 가면 용안(龍安)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그리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방에 가득한 사기(死氣)와 혈향에 문상이 맹주에게 건의하였다.

"용안(龍安)? 용이 편안히 거할 수 있는 곳이라니 좋습니다. 그리로 옮기지요."

맹주도 두말없이 승낙하였다.

하나같이 고수들이라서 정리도 신속하였다. 사상자는 묻고 부상자는 부축하거나 멜 것에 뉘인 채로 또다시 수 많은 희생자를 낸 음시곡(陰尸谷)을 소리 없이 떠났다. 유신비라는 미남고수로 변신한 유령왕은 은성을 졸졸 따라 다녔다. 어쩔수 없이 보무당의 무인들에게 또다시 소개시켜 주어야 했다.

용안에 도착하여 지세를 살피던 은성은 작은 계곡에 천지의 기가 융화되어 피어오르고 있음에 깜짝 놀랐다.

험하지 않고 야트막한 계곡인데도 천혜의 명당인 것이다. 지기가 흘러나오는 지혈은 몇 군데 느껴졌다. 그런 데 지기 속에 조금씩 천기가 섞여들어 있었다.

지기가 아닌 천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천기혈(天氣穴) 있는 것 같았다. 태극진기를 완성하고 심기조차 완성한 은성이 아니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미묘한 기감이라서 달리 눈치 챈 자는 없는 것 같았다. 천기(天氣)가 흘 러 나온다는 특이한 사실 빼고는 용안(龍安)이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안온하고 평안한 지세였다.

"흠!"

드디어 문제의 장소를 발견한 은성이 걸음을 멈추었다. 은성이 걸음을 멈춘 곳은 뾰족하고 더러우며 악취를 풍기는 검은 바위 앞이었다. 코를 쥐어틀어야 할 정도로 심한 악취를 풍기고 있었는데 주변에는 풀한 포기 자 라지 않는 험지였다. 넓이는 이장여가 되는데 뾰쪽 뾰족 하여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은 바위였다.

그런데도 은성은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검은 바위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바위의 정 중앙 유독이 뾰족이 솟은 첨석 위에 올라앉았다.

푸스스스.... 은성이 앉은 자리의 바위가 잠시지간에 부스러져 편안한 평석으로 화했다.

피부 호흡을 하고 굳이 호흡을 하지 않아도 몇날 며칠을 견딜 수 있는 은성이었다. 지독한 악취였지만 생각한 번 바꾸니 천상의 향기로 느껴졌다. 눈을 감고 영안을 발휘하니 십장여 깊이로 깊숙이 묻힌 검은 바위, 천령 석(天靈石) 속에서 요동치는 천기(天氣)가 감지되어졌다. 천령석 중앙에 존재하는 천기는 핏줄처럼 여러 갈래 로 퍼진 석혈(石穴)로  천기를 보내주고 있었는데 은성이 앉은 자리는 가장 큰 석혈이 위치되어 있었다.

두 번째 큰 석혈은 지하 깊숙이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 악취를 뿌리고 이곳을 험지로 위장한 장본인이 웅크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작은 두꺼비였다. 영성이 깃든 영물인지라 은성에게 적대감을 표출해 내고 있었다. 은성이 심언으로 내일 이곳을 떠날것이라는 느낌을 전해주자 잠잠해졌는데 오늘밤 이곳에 들이닥친 수많은 인마들 때문에 심기가 편치 않은 것 같았다.

은성이 굳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오늘밤 시험해보고자 하는 영적시도 때문이었다. 옥동자를 소멸시키면서 깨 달은 영감(靈感)이었다.

천령석 밑의 영물이 위치한 곳으로는 지기가 흘러나오는 지혈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두꺼비는 아래로는 지기 그리고 위로는 천령석의 천기를 받아 천지간의 기운으로 영력을 향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동물들도 천운을 받으면 천지비밀을 깨닫고 수련하여 영성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호흡과 영적 수련은 본능 에 따라 행하고 수련이 깊어지면 자연스런 흐름이 생성되어 저절로 알게 되어 있었다. 수련 시간과 성과는 제 각각이고 천운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다.

용(龍)이나 천년호(千年狐)처럼 내단을 형성하고 내단에 영기가 갈무리되면 승천하여 천간계로 오를 수도 있 었다. 신외지물이랄수도 있는 여의주에 의존하지 않고 원영지체를 이루어 우화등선한 선인들보다는 못하지만 결코 인간이 부럽지 않은 존재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은 듯이 수행에만 몰두해야 했다.

괜히 인간들 눈에 띄여서는 수행에 방해만 받고 자칫하면 화까지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위험한 존재 는 깨달음이 깊고 영성까지 높은 인간들이었다. 재수가 없으면 수백년 적공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기분 이 나쁘지만 꾹 참고 하룻동안 쥐 죽은 듯 견뎌야 하는 것이다.

영기가 선한 인간인 것 같아서 매우 다행이었다.

눈을 감고 마음을 고르던 은성은 영대(靈臺)가 새벽이슬같이 맑고 깨끗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천지간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어 주변에 말할 수 없이 평온한 기운을 은은하게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상에 오른 듯 한 기분이 되어 조용히 내부를 관조하자 마음은 어느새 영묘지경에 이르렀다.

곤륜산에서 천부경중 대삼합(大三合)이라는 구절을 깨닫고 진정으로 천지인 삼위일체를 이룬 후 은성은 여태 껏 경험치 못한 느낌을 소유할 수 있었다. 뇌 속에 또 다른 자신이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아닌 또 다 른 존재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육체적 정신적 교감이 완전하여 혼연일체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이질감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직은 존재감이 희미하지만 몸 전체에서 느껴질 때도 있고 작 게 변하여 뇌리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큰 듯 작은 듯 뚜렷한 듯 희미한 듯 없는 것 같으면서도 존재성이 있는 미묘한 느낌이었다.

무슨 징조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하였는데 드디어 그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이다.

선인의 경지에 들어서는 요체가 되는 영체(靈體)가 분명하였다. 깨달음이 높아지면 진기가 심기로 화하고 심 기에서 영기가 자라나 영체를 이루는데 영체는 육체를 다스리는 영혼의 또 다른 안식처였다. 도가 깊어지면 서서히 형상을 이루고 일정 수준에 이르면 육체에서 벗어나 자유자재로 활동도 가능하지만 한정된 시간만 육 체를 벗어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수준 나름이었다. 영체가 온연한 모습을 갖추고 그 능력이 상승되면 육체를 벗어나는 시간도 길어질 수 있었다. 마침내 육체의 구속을 벗어 던질 수 있는 완전한 영체 즉 원영지체(元靈之體)가 이루어지 면 우화등선하여 천간계로 갈수가 있는 것이다.

비록 원영지체의 능력은 그 수련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처럼 수명에 구속받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원영지체를 이루어 우화등선하는 것은 꿈처럼 요원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선인들도 영체가 성숙되는 단계에 이르러 육체적 수명을 연장시키는 정도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영체를 강화시켜 선인이 되는 또 다른 방법은 정령이나 영물 또는 귀신들의 영기를 강제로 흡취하는 방법이었 다. 극악한 사술로써 단기간에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었지만 영체가 불완전하여 원영지체를 이룰 수는 없었 다. 하지만 도근(道根)이 부족하여 선인이 될 수 없는 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방술이지만 노력하기 에 따라 원영지체를 이룬 선인과 근접한 경지로 나아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미 영체를 이루고 있음을 옥동자의 죽음을 통하여 알아차린 은성은 깊은 적막지경에 든 채 내부를 관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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