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150화 (150/152)
  • [연재]황정허무검(150)

    녹옥강시와 요괴들이 퍼져나갈때 흉측하게 생긴 꼽추에게 짓쳐드는 고수도 있었다. 무형검을 든 무상이었다.

    삼십육계중 금적금왕(擒賊擒王)의 계책대로 적의 우두머리를 치고자 함이었다.

    '파아아앙'

    공기를 꿰뚫는 듯한 폭발음을 내며 다가섰지만 내기를 응축시켜 창처럼 길어난 무형검을 앞으로 내뻗을 수가 없었다. 섬전처럼 옆구리로 다가온 금빛 검강에 문호가 크게 위협 당했던 것이다. 할 수없이 무형검을 당겨 금빛 강기를 막아서야 했다.

    당기면서 진기를 변화시킨 듯 창처럼 날카롭던 무형검은 둥근 방패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자르지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무적의 위력을 가진 무형검 못지않게 무형간(無形干)의 위력도 절대적이었다.

    '빠가가가각!'

    부딪히는 찰나 수십여 줄기로 분화되어 수비가 불가능해 보였는데 금빛 검강이 무형간을 뚫지 못하고 뇌전이 일 듯 작은 갈래로 나뉘어 한쪽으로 삐져 나갔다.

    상대방이 공격을 하면 반드시 반격을 하는 것이 무공의 기본이었다. 불시에 가한 공격이 실패하자 허공에 실 상을 흩트리는 금사자를 향하여 무형간의 중앙에 위치한 팔각 문양에서 세치 정도의 검강이 쏘아져 나갔다.

    금사자와의 거리는 절대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무형시(無形矢)는 금사자의 허상만을 관통한 채 허망 하게 사라져 버렸다. 귀신조차 탄복할 만한 신법이었다.

    '스스스스슷'

    허공에 금빛 잔영은 수십여개로 불어나 있었는데 어느 것이 실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 금빛 잔영 모두 가 검강을 휘몰고 달려들자 무형검으로 변화시킬 여유도 없이 무형간으로 일일이 방어하였다.

    '빠직..빠직..빠지직.'

    유령같이 빠른 신법에 극도의 환(幻)이 가미된 변화무쌍한 검법속에서 무상은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무형간의 패도적인 위력과 변화난측한 공수 전환이 없었다면 반각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았다. 내기를 변화 시켜 무형간을 회전시키자 검풍이 팔방으로 뻗어 나와 허공 가득한 금사자의 잔영을 하나 둘 소멸시켰다.

    싸우다 보니 언제 이동하였는지 꼽추와는 이십여장이나 떨어져 있었다.

    환상인양 소림의 범각대사가 꼽추에게 나아가는 것이 언뜻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롭게 구경할만한 여유 가 없었다. 옆쪽에서 검강이 꽃잎처럼 피어나 사선으로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실체가 모호한 금사자의 신형이 수십여구 겹쳐져 따르고 있었다.

    금강부동신법(金剛不動身法)으로 꼽추에게 달려들던 범각대사의 앞길을 막아선 자는 온몸을 검은 장포로 가린 괴인이었다. 가만히 막아서는데도 사악한 마기(魔氣)가 감당할 수 없는 기세로 쏟아져 나오자 급히 부동명왕 심공(不動明王心功)을 운기하였다.

    신법을 멈추고 심공을 운기한 덕분에 마기의 침습은 방어하였는데 강력한 마기에 앞쪽으로 몸이 나아가질 않 았다.

    주르륵...

    항마신공인 부동명왕심공으로도 감당할 수 없자 몸이 조금씩 밀려났다.

    "타핫!"

    신승이라 일컬어지는 범각대사의 신공이 밀리는 것을 목격한 삼극 반전자가 쩌렁한 기합과 함께 몸을 날렸다.

    검은 장포를 입은 괴인은 별다른 움직임 없이 범각대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항마법신인양 위압적으로 달려든 범각대사가 매우 괴로운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지만 세상은 검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 그의 평소 지론이었다. 일체의 사마를 단 일검에 멸절시킬 자신도 있었다. 사악함을 물리치는 데에는 일심진력(一心眞力)이 필요하였다.

    '고오오오오오!'

    심력을 단 한 개의 점으로 집중시켜 검속에 담은 후 삼성검법중 일성광휘(一星光輝)의 초식을 펼쳐내는 반전 자는 분명 느낄 수 있었다. 눈앞의 검은 장포인이 두 조각으로 분리되는 것을 말이다. 회심의 미소를 짓고 다 음 목표인 꼽추를 찾아 눈을 돌리는데 그곳에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자가 보였다.

    검은 장포의 인영이었다.

    '분명 두 조각으로..헛!'

    좀 떨어진 곳에 또 한명의 인영이 있었다. 쌍둥이처럼 닮은 두 명의 장포인이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동시에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웃음이 분명해 보였다. 분신술인가?

    환상일지도 모른다며 정신을 추스르고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던 반전자가 갑자기 으스스 몸을 떨었다. 주변 경관이 사라지고 검은 장포인외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음....."

    낮은 침음성과 함께 반전자가 검자루를 고쳐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돋아났는지 검자루에 끈적함이 묻어 나왔 다.

    "캬캬캬캬, 문상! 그대도 힘을 보태야 할 것 같지 않는가?"

    얼굴에 흉측한 상처로 가득한 꼽추가 한쪽에서 대적중인 검은 장포인과 범각대사 그리고 반전자를 힐끗 본 후 문상에게 말했다. 문상의 시선도 그쪽을 향해 있었는데 표정은 없었지만 속으로는 무척 놀라고 있는 것 같았 다. 놀랍게도 검은 장포를 입은 괴인은 여전히 한가로이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앞의 두 초극고수는 절대 한가롭지 못했다.

    소리 내어 금강경을 읊으며 미미한 발걸음으로 힘들게 다가가는 범각대사는 정신력을 다투고 있는 것처럼 보 였는데 심기가 달리는지 계인위로 하얀 진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범각 대사에 비해 반전자는 상태가 더욱 위중해 보였다. 텅 빈 허공에 검을 휘두르고 있는데 몽마(夢魔)에 사 로잡힌 것 같았다. 위급지경에 빠진 사람처럼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초식도 어지러워져 갔다.

    "저 괴물은 그대가 소환한 것이오?"

    목전의 상황은 초 위급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문상은 초연한 표정으로 어쩌면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크크크! 무슨 꿍꿍이 속인지는 몰라도 너의 정체를 빨리 드러내는 것이 그나마 나을 것이다. 어짜피 죽을 터 이지만 발악은 하고 죽어야 할 것이 아니냐?"

    꼽추가 비꼬았지만 여전히 대답이 없는 문상이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다.

    "문상의 담이 얼마나 큰지 꺼내 보아야 속이 풀리겠구나. 네놈이 언제까지 정체를 감출 것인지 보겠다. 다 죽 은 이후에도 끝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지 지켜보겠단 말이다. 케케케케."

    분통이 터진다는 듯이 심술궂은 괴소를 흘러낸 꼽추의 등 뒤에서 삼십여자루의 병기들이 일제히 뽑혀져 나왔 다. 검이나 도 뿐이었지만 생김새는 조금씩 다른 병기들이었다. 뿜어져 나와서는 꼽추의 온몸을 둥글게 감싸 고 서서히 맴돌기 시작하였다. 병기에서 사악한 요기와 마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크카카카카카카!"

    주변이 떠나갈 듯 거대한 굉소를 떨쳐내자 갑자기 요기와 마기가 증폭되어 병기에 실려졌다. 엄청난 살기가 휘도는 것이 금새라도 사방으로 폭출될 것 같았다.

    "엥! 어떤 놈이 감히 내 웃음소리를 흉내 내고 있는 거야?"

    무산에서 날아와 은성과 함께 고도를 낮추던 유령왕이 지상에서 울려오는 괴소(怪笑)를 듣자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면서 다시 변신하였는지 은성의 영안에만 보일 수 있는 심기지체(心氣之體)를 유지하고 있었다. 화룡검도 은성에게 돌려주었는지 시력에는 형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건 또 뭐야? 지옥계의 마귀 아니야! 이런 잡것이..."

    금빛 광채를 내는 금사자를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훑어보다 검은 장포로 온몸을 가린 존재를 발견하자 유령왕 이 다짜고짜 그쪽으로 쏘아져 내려갔다. 놈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해낸 것이다.

    빠르고 변화무쌍하기로는 오계(五界)에서 내노라 하는 유령왕이었다. 섬전처럼 나아가는 한참 뒤쪽에서 공기 가 파열되는 소리가 힘겹게 뒤따랐다. 소리가 신형을 따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유령왕의 공격을 알아차릴 수 없었는데 검은 장포의 괴인만은 예외였다. 위기를 감지하자 희뿌옇게 형체를 흩어 버렸다.

    "꽈과과과과과광!"

    산이 허물어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나왔다. 검은 장포를 입은 괴인이 위치한 곳을 기준으로 십여 장 넓이의 분화구가 생겨나며 사방으로 흙과 돌덩이들을 비산시켰다. 오장여 깊이로 함몰된 근처 백여장으로 돌과 흙덩이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나가는 것이 화산이 터진 것 같았다.

    그것으로도 부족한 것 같았다.

    어둠보다도 짙은 묵영이 발광하듯이 혼자 날뛰자 주변의 지형지세가 순식간에 뒤바뀌어 버렸다. 바위가 잘게 쪼개져 폭사되고 대지가 삼장여나 솟아올라 파도처럼 춤을 추었다. 허공으로 이동한 듯 대지가 요란스레 비명 을 내지르더니 땅속으로 꺼졌는지 대지가 온천수마냥 거세게 들끓었다. 깊숙이 파고 들어갔는지 잠잠하다가 폭발하듯이 튀어나와 또다시 사방을 유린하고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지고 있었다.

    유령왕이 검은 장포를 입은 괴인에게 폭사되어 내려갈 때 은성은 내려서며 영안으로 사방을 훑어보고 있었다.

    제일 먼저 시선을 돌린 곳은 역시나 검후 쪽이었다. 검후는 칠룡과 함께 요괴들과 싸우고 있었는데 요즈음 무 공이 일취월장한 때문인지 구룡중 수위인 모용천 보다도 더욱 높은 신위를 보이고 있었다.

    빙검 여래혼에서 뻗혀 나오는 만년빙설같은 한기가 요괴들의 야성조차 꼼짝 못하도록 얼려버리는지 요괴들이 검후 앞에서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였다. 요악한 비명을 내지르며 종횡무진하는 유심초 또한 보통이 아니었 다. 물을 만난 물고기마냥 푸르스름한 피를 뒤집어 쓴 채 요괴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사부와 사숙의 안위까지 확인한 은성도 유령왕의 뒤를 따라 유성처럼 쏘아져 내렸다.

    유령왕이 검은 괴물에게 가한 일격으로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자 위태로운 모습으로 밀려나는 두 명의 초극고수를 돕기 위함이었다. 진기가 딸렸는지 간신히 몸만을 보호한 채 가랑잎처럼 쓸려가는 두 고수에게 심 기를 발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킨 은성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호신공을 발해 사방에 난무하는 대지의 파편들로부터 몸을 보호한 후 신형을 뒤집어 심기를 가한 곳은 다름 아닌 흉악스레 생긴 꼽추 쪽이었다.

    "끄아아악..부스스."

    병기에 지간계의 유령과 정령들을 봉인시켜 호신(護身)으로 삼은 옥동자(獄童子)는 제 정신을 차릴수 없을 지 경이었다. 사부인 야차귀노의 명령으로 지옥의 흑살귀(黑殺鬼)를 데리고 올때만 하여도 정파의 군협들을 모조 리 지옥으로 보내고 마교의 영웅으로 부각되는 자신을 꿈꾸었던 옥동자였다.

    반마신(半魔神)의 경지에 이른 흑살귀 뿐만이 아니라 금사자들의 위력도 마교의 십대장로에 버금갈 정도라서 믿음은 거의 확고하였다. 정파의 초극고수로 짐작되는 두명의 고수가 흑살귀에게 제압당하여 맥을 추지 못할 때만 하여도 신념은 깨지지 않았다.

    그런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랄까?

    자신이 펼친 귀혼자멸소(鬼魂自滅笑)에도 끄덕 없을 정도로 높은 무위를 가졌음에도 애써 숨기는 문상을 선동 시켜 흑살귀에게 덤비도록 하려는 찰나 옆에서 산이 통째로 터져 나가는 괴현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병기에 요기와 마기를 극대화 시키는 초혼제령마공(招魂制靈魔功)이 궁극에 이르러 있는지라 몸을 피할 수도 없었다. 피하지는 못했지만 초혼제령마공을 십이성 운용하여 병기들로 하여금 자신을 보호하도록 명령하였다.

    하지만 도대체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문상의 공격은 커녕 간신히 안위를 도모하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느닷없이 병기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잘게 부스러졌다.

    '허억..!'

    숨을 크게 한번 몰아쉴 짧은 시간이었는데 허공에 남아있는 병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지옥의 무저갱에 서 소환된 흑살귀라도 절대 불가능한, 도저히 믿을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가능성은 단 한가지였다. 선마지약(仙魔之約)이 무너졌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며 고개를 내돌리려던 옥동자가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수그렸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초 점도 흐려져 있었다.

    어느새..끄어억.

    자신의 허리 아래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음을 확인하고서야 더 이상 육체가 쓸모 없어졌음을 알 수가 있었다.

    죽음이었다. 그런데도 옥동자의 눈빛에는 절망감이 없었다. 피가 거의 빠져 나간 듯 새하얀 입술로 오히려 미 소까지 짓고 있었다. 죽음조차 두렵지 않은지, 아니면 죽음은 또 다른 삶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야릇한 미소였다.

    심기로 초혼제령마공을 파괴하고 옥동자를 죽인 은성은 아직도 강시들과 요괴들이 날뛰고 있자 의외인 듯 당 혹스런 눈빛을 지었다. 요괴는 그렇다 쳐도 술법으로 봉인된 강시들과 저 멀리 우왕좌왕 몰려다니는 팔십여 자루의 병기들이 동작을 멈추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이자가 술법을 펼치지 않았다는 말인가?

    땅바닥에 널브러져 처참히 죽어있는 옥동자를 일별한 은성이 사방으로 영안을 발휘하였다. 유령왕과 싸우던 괴물이 다시 땅위로 솟아나오고 있는지 대지가 또다시 요동을 치고 있었다.

    주변에는 특별히 의심가는 자가 없었다.

    '스스스스슷'

    또다시 괴물이 지상으로 솟구쳐 오르는 기미가 느껴지자 은성의 신형이 허공을 갈랐다. 괴물이 솟아나올 것으 로 예상되는 상공을 선점한 후 심기를 가다듬었다.

    '쿠과과광!'

    땅속에서 검은 묵영이 튀어나온 후 이장여 넓이의 흙덩이가 휩쓸려 폭출되며 나는 소리였다. 번개처럼 나아가 는 은성의 무형검이 검은 묵영을 갈라 버렸다. 두 조각으로 나뉘어졌을 것이지만 혹시 하는 노파심에 또다시 불을 뿜는 무형검은 형체도 소리도 없었다.

    그런데 워낙에 빠른 속도로 달아나다 은성의 공격에 당했기 때문인지 묵영의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고 있었다.

    허리가 두 동강이 나고 한쪽 다리도 잘리어졌을 터인데.....

    [소용없는 짓이야. 지옥의 무저갱에서 소환된 초현실적인 마귀라서 물리적인 공격에는 상처조차 남지 않아! 허접하지만 나와 비슷한 존재지.]

    은성의 곁을 스치며 흑살귀의 뒤를 쫒는 유령왕이 남긴 심언(心言)이었다.

    불사귀(不死鬼)라는 말이었다. 신체를 절단해도 절단한 것이 아닌.., 죽여도 영혼이 남아있는 한 또다시 소생 하는... 하지만 방법이 있을 것이었다.

    진정한 불사귀라면 왜 유령왕에게 쫓겨 도망친다는 말인가?

    유령왕은 그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하여 물어볼 수는 없었다. 묵귀영의 신법을 극 대화하여 유령왕의 뒤를 쫒는 은성은 짧은 동안에 수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불사귀를 상대할 방법이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될지 안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괴물을 없앨지 도 모르는 단 한가지의 가능성이었다.

    자신이 배운 무공중 가장 신묘한 신공(神功). 아직 초식조차 완성시키지 못했지만 천지간의 모든 이치가 단 한초식으로 압축된 일자혜검의 초식이었다.

    유령왕의 신법이 흑살귀보다 빠른 것 같았다. 유령왕에게 간격이 좁혀져 가던 흑살귀가 허공을 크게 선회하여 다시금 되돌아오고 있었다. 치열한 혈전을 벌이고 있는 군웅들 사이로 뛰어들어 유령왕을 벗어나려는 속셈이 었다.

    그런데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자가 있었다. 심기를 발휘하고 자신에 못지않은 놀랄만한 신법... 인간의 경지 를 벗어난 존재였지만 뒤를 따르는 유령왕처럼 두려운 존재는 아니었다.

    검기에 심혼을 파괴하는 위력이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시하고 그냥 다가서는데 눈앞의 인간이 조금은 당혹스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멈추어 선채 장난처럼 느릿 느릿 손으로 허공을 그어가고 있었다. 손끝에 심기로써 검의 형상을 만들고 있었지만 사실 신경쓸 일은 아니 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신경이 쓰여지고 있었다. 뒤쪽에서 쫒아오는 유령왕 때문이 아니었다. 왠지 두려운.....

    갑자기 이마부위가 따끔거려 오더니 눈앞으로 검은 어둠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자신이 특기로 삼는 정신술 혼마난극술(混魔亂極術)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술법이었다. 당하는 사람이 감내 할 수 없는 공포스런 환상공격으로 진기를 소모시켜 죽이는 혼마난극술 보다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어둠의 세 상이었다.

    혼암의 무극이랄까?

    두려움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져 왔다. 어둠 속에서 깨알같이 작고 하얀 물체가 다가왔다. 그런데 그 속으로 모든 것이 빨려들고 있었다. 별과 달은 물론이고 세상 만물과 어둠도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심혼조차 오그라들며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미세한 먼지크기로 압축되어 흑살귀가 사라져간 공간에는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텅 빈 공간에 갑자기 달려온 유령왕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뭐..뭐야? 네 네가 없앴냐?"

    "...."

    은성이 대답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유령왕이 놀라 입을 떠억 벌렸다. 유령왕도 믿을 수 없었지만 은성 도 방금의 사태를 믿을 수가 없었다. 곤륜산에서의 깨달음으로 일자혜검에도 큰 진전이 있었지만 불사의 존재 라는 불사귀조차도 소멸시킬수 있다니..... 아직도 불완전한 초식인데 말이다.

    "어! 저 자식 저거 뭐하는 짓이냐?"

    유령왕은 은성의 능력을 그냥 받아들인 것 같았다. 천신조차도 부러워할 경이적인 능력의 은성을 진작부터 인 간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놀랍다는 듯이 고개를 휘휘 내젓다가 저 멀리 심상치 않은 광경을 보게 되었다.

    죽은 시체에서 영기(靈氣)가 어리더니 뭉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이런..."

    흠칫한 후 반사적으로 몸을 날리는 은성의 뇌리로 과거의 한 장면이 세세히 떠올랐다. 자신에게 화룡검과 묵 귀영의 신법을 익힐 수 있는 비급을 준 귀선문의 고진인을 죽인 마교의 노인이 도망치는 광경이었다.

    마교의 전대 장로인 적발지마가 숨이 다하자 천마해체대법(天魔解體大法)으로 신검에 영혼을 싣고 중원으로 도망친 일로 은성의 가슴에 한으로 사무치는 기억이었다. 그때는 영안(靈眼)이 없었기 때문에 실체화된 영기 가 빠져나가는 것을 미처 알아차릴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요괴와 강시들이 아직도 날뛰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심기에 당해 몸이 이등분 되어졌던 술 사가 아직 죽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극악한 사술로 육체는 죽었지만 정신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묵귀영을 펼쳐 몸을 날리던 은성의 손에는 이미 무형의 검기가 길게 맺혀져 있었다. 방금 전 불사귀를 죽일때 처럼 무형검으로 일자혜검을 펼치고자 함이었다.

    영기가 완전히 맺혀 사람의 형상을 이룬 후 술사의 백회혈을 벗어날 때쯤 은성은 술사 가까이에 이르러 있었 다. 그리고 은성의 일자혜검이 펼쳐지는 것과 동시에 술사의 영혼이 담긴 영기도 술사의 백회혈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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