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147화 (147/152)

[연재]황정허무검(147)

임원영   2004-08-17 03:49:10, 조회 : 618

용량 : 13K

유령들의 왕이라고 하지 않을까봐 어느새 유령왕도 은성의 곁에 위치해 있었다.

[설명해 주겠다는 말이 무엇이냐?]

심어(心語)로 뜻을 전해서인지 섬광처럼 날아가면서도 또렷이 들려왔다.

[전에 마교의 야차귀노가 강제로 유령들을 봉인해 강시로 만들었다고 말한적이 있었지요?]

[..... 그랬었다. 야차귀노라도 나타났느냐?]

[마교측에서 싸움을 핑계로 병기를 내버렸는데 그 속에 봉인된 것이 유령들인 것 같소. 병기 속에 유령을 봉인시켜 조종하는 술법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소?]

[맞다. 그런데 강시가 아니라 병기라니....으드드득.]

원한이 깊은지 유령왕이 이를 갈았다.

[유령왕 말씀대로 야차귀노가 유령들을 장악하고 흉악한 일에 사용하고 있다면 앞으로 부딪힐 일이 많아질 터인데 어떻게 하면 되겠소?]

함부로 죽일 수도 없지 않느냐는 소리였다.

[크카카카! 걱정 말고 죽여라! 설마 유령이 불사신이란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봉인된 형체가 파손되면 힘 또한 사라지는 것이다. 술법을 펼친 놈을 죽이면 봉인의 계약까지 완전히 풀리니 금상첨화 이지만 말이다. 크카카카카카카!]

듣기에 거북한 괴소(怪笑)를 미친 듯이 질러대던 유령왕이 갑작스런 심정의 변화가 생겼는지 투명한 몸체를 서서히 변화시켰다.

위엄 있고 강인한 중년 무인의 모습에서 귀공자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옷과 장신구조차도 모양과 색상까지 감안하여 완벽히 변화시키자 전설적인 미남인 송옥과 반안 보다 나았다.

은성에게 살짝 윙크를 보낸 후 은성의 허리춤에 걸린 화룡검을 빌려 옆구리에 차니 영준하면서도 강인한 기상까지 은연중 내풍겼다.

유령왕의 갑작스런 변신에 영문을 몰라 은성이 빤히 바라보자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이형! 보기에 어떠시오?]

말투도 부드럽고 젊잖았다.

[멋집니다.]

[그렇소? 이형이 보기에 괜찮으시다니 앞으로 인간들 앞에 나타날 때에는 이 모습으로 현신하고 싶구려. 허락해 주시겠소?]

[허락..? 좋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는 누구라고 불러야 하는 것입니까?]

[허허허! 유령왕이니 유형이라고 부르시구려.]

[하하! 유형, 잘알겠소이다. 그리고 화룡검은 유형께서 보관하십시오.]

[허허허! 감사하오.]

심어로 오고가는 말이었지만 유쾌한지 서로의 마음속에 따뜻한 기운이 오고갔다.

쐐애애애액.

차가운 밤공기가 사정없이 뒤쪽으로 밀려나며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어! 저건 뭐야?"

늦은 밤 으슥한 곳을 찾은 금룡각의 해동역사가 한손을 들어 눈앞을 가린 나뭇가지를 젖히며 내는 소리였다.

저 멀리에서 메뚜기 때처럼 통통 튀어오는 물체들을 발견한 것이다.

자세히 보니 사람의 형상인 것도 같았다.

하지만 뻣뻣하니 몸을 굳힌 채 고무공처럼 튀어 오르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강..강시인가?"

힘을 주어 다급히 볼일을 마치고 후다닥 뒤처리를 하였을 때에는 눈에 선명히 보일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강시가 분명하였다.

"침입자다!"

경비무인의 고함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계곡을 뒤흔들었다.

'캉, 퍼펑..크윽'

황급히 철추를 챙기고 몸을 날리는데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병기로 피부를 내려치는데 들려오는 소리가 날카로운 금속음이었다.

약간은 거무스름한 피부를 가진 강시들이었지만 철로 갑옷을 만들어 걸친 것도 아닌데...

재수가 없었는지 침입한 강시 중 한 구는 자신에게로 튀어 왔다.

"하아아압!"

사람 머리통만한 천붕추(天崩鎚)가 해동역사의 머리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멤돌다 강시를 향해 나아갔다.

단순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공격초식...

투천쇄산(投天碎山)의 초식이었다.

텅..콰드드드득, 콰광!

파천의 기세로 쏘아져 나간 천붕추에 가슴을 강타당한 강시가 십여장 뒤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간단하게 한 구의 강시를 처치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해동역사의 눈살이 서서히 찌푸려지고 있었다.

거암이 거칠게 굴러간 흔적인 듯 움푹 파인 고랑 너머에 천붕추에 격중된 강시가 멀쩡하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틀비틀.

멀쩡하지는 않았는지 잠시 헤매던 강시가 검은 눈에서 사이한 빛을 낸 후 또다시 고무공처럼 몸을 튕겼다.

통! 통!

단 두 번이었다.

한번에 오장씩 두 번을 도약하자 창처럼 길게 뻗힌 강시의 양손이 어느새 해동역사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도저히 강시의 몸놀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신법이었다.

"흥! 시체 따위가 감히....."

모추(母鎚)인 천붕추에서 벽력같은 파열음이 발생되더니 해동역사와 강시 사이의 땅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하였다.

대지를 스치는 천붕추로 흙을 빨아올려 일시지간 토막(土膜)을 형성한 후 상대의 시선을 뺏는 둔천승지(?天昇地)의 초식이었다.

연이어 만년한철로 제조된 유성추가 먹이를 노리는 독사처럼 토막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도 부족하여 또다시 날아가는 천붕추는 확실한 마무리를 위함이었다.

토막이 흩어져 사방으로 비산되어졌다.

강시의 두개골로 폭풍처럼 몰려가는 천붕추가 이번에는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는지 해동역사의 눈가에 만족의 빛이 스쳤다.

푸꽝!

천붕추에 맞아 완전히 박살난 머리통이 끈적한 액체와 함께 강시의 목뒤에서 꺽인 채로 대롱거리자 눈시울이 찌푸려졌다.

"억!"

또 다른 상대를 맞기 위해 강시의 심장으로 파고든 유성추를 회수하던 해동역사가 갑작스레 외마디 고함을 질렀다.

유성추에 강시의 시체가 딸려 왔던 것이다.

그런데 해동역사가 비명을 지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머리통이 박살나고 심장에 유성추가 깊숙이 박힌 채로 딸려왔던 강시가 가까이 이른 후 느닷없이 공격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왠지 모를 섬뜩한 느낌에 최대한 빠르게 몸을 회피하였으나 옆구리 부위에 살이 지져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갈비뼈도 몇 개는 부러진 것 같았다.

'스스스스승.'

귀에 익숙한 소리였다.

사형인 백광필살(白光必殺)의 독문병기인 '설아'가 출현한 것이다.

소리만으로도 마음이 급속히 안정되어졌다.

"견딜만 한가?"

그토록 단단한 강시를 무 자르듯 두 쪽으로 잘라낸 설아를 받아들며 사뿐히 내려선 이는 역시나 사형이었다.

"이까짓거..으읔"

옆구리 쪽에 꽤 많은 선혈이 흘러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기지개를 펴며 건재함을 과시하던 해동역사가 괴로운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잠시였다.

너덜거리는 상의를 부욱 찢어 상처를 힘껏 동여매더니 언제 아팠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형! 저놈들도 대단하지만 설아는 정말..... 에잉, 마땅히 표현할 말이 없네. 어쨌든 대단한 설아요."

흑룡강성에서 온 철두파의 고수들과 격렬히 싸우고 있는 강시를 바라보며 또다시 전의를 불태우던 해동역사가 사형의 손에 들린 백색 원반 모양의 무기를 보며 부럽다는 듯이 너스레를 떨었다.

비록 천붕추에 정통으로 가격되어 머리통의 절반이 날아갔지만 만년 한철로 만들어진 유성추에도 가슴이 관통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강시였다.

그런데 한 뼘 크기밖에 되지 않는 얇은 원반 모양 무기인 설아의 공격에 두부처럼 잘리어져 나간 것이다.

저 멀리 세 명의 철두공 고수들이 허공을 날아다니며 한 구의 강시에게 집중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였다.

강시도 빠르지만 철두파 고수들의 몸놀림은 신기할 정도였다.

강성 일변도의 단순한 무공인 것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오묘한 무리(武理)가 깊숙이 내포되어 있었다.

머리로 들이박기 전에는 변화막측하고 유하기 이를데 없으나 마지막 공격에는 강중강(剛中剛)의 원리를 이용하였다.

강시의 공격방법이 단순하여서 인지 공격 성공 빈도가 무척이나 높았다.

쿵! 까강! 꽈쾅!

몇 십번은 들이 박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강시는 쓰러지지 않았다.

저 정도 공격이면 바위가 아니라 무쇠라도 찌그러들었을 것인데 아직도 강시는 멀쩡해 보였다.

"젠장, 철인이 따로 없구만. 이크."

방심했는지 한명의 철두공 고수가 강시에게 가격당해 가슴살이 완전 헤집어지며 나가 떨어지는 것을 본 해동역사가 몸을 날렸다.

자신의 몸이 성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것이 평소 친하게 지냈던 모양이었다.

무림맹을 떠날 때 칠십명의 보무당원도 이제는 사십오명밖에 남지 않았다.

환난을 같이 하다 보니 정이 더 깊어져서 보무당원들 모두 이제는 한가족같이 친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쯧쯧! 저놈의 성격은..."

열화와 같은 사제의 성격을 나무라던 백광필살도 사제의 뒤를 따르기 위해 내력을 돋웠다.

그의 손에 들린 설아는 어느새 회전하기 시작했는지 미미한 소성을 발하다가 투명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몸을 날리려던 백광필살은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한 살기에 급히 앞으로 몸을 굴려야 했다.

뇌려타곤(懶驢陀坤)으로 창피하기 이를데 없는 초식이었다.

전율이 이는 살기가 아니었다면 절대 펼치지 않았을 것이다.

뇌려타곤의 초식에서 비스듬히 착지한 오른발을 비틀어 번개같이 좌로 일장여를 이동하였다.

허리를 직각으로 구부려 뒤로 튕겨지듯 쏘아지며 설아를 사선으로 그어가던 백광필살의 입에서 단말마가 튀어나왔다.

"헉!"

자신에게 공격을 가한 것이 상상치 못한 요물이었던 것이다.

일장은 됨직한 붉은 핏덩어리였다.

사람의 형상을 닮았지만 형체가 자유자재로 바뀌니 요물이 분명하였다.

붉은 그림자 같은 유체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와 거대한 형상으로 덮쳐들었다.

휘릿, 휘리릿!

설아를 날리자 유체가 찢어지며 길다란 틈새가 벌어졌지만 틈새는 일순간에 메꾸어져 버렸다.

설아를 정신없이 휘둘러 기막(氣膜)을 형성하자 주춤하였지만 기막 사이로 붉은 유체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것이 한시적인 방어법 이었다.

무언지 근본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였다.

기막을 거둠과 동시에 뒤쪽으로 몸을 날린 백광필살의 두 눈이 크게 확산되어졌다.

변화 막측하기가 헤아릴 수 없기에 속도에서는 뒤질 것이라 생각한 붉은 유체가 자신의 신법보다도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급하게 설아를 휘둘러 또다시 기막을 형성하려 하였지만 이번에는 조금 늦었다.

사방이 붉게 변하더니 끈적한 액상이 전신을 덮어 내렸다.

호신을 위해 내기를 뿜어내서 아직까지 직접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지만 전신을 내리 누르는 힘이 무림 고수 이상이었다.

설아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인지 양손에 가해지는 압력이 가장 강했다.

붉은 유체가 전신에 압박을 가해 옭죄어 오는 것을 내력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시간이 길어지자 백광필살의 눈가에 초조함이 짙어져 갔다.

전신을 눌러오는 압력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었는데 숨을 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벗어나기 위해 뛰어올라 보고 떼굴떼굴 굴러도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날뛰던 백광필살이 체념하였는지 붉은 유체에 싸인 신형을 조용히 멈추었다.

신형은 갈수록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묵강시에게 한명의 동료를 잃은 철두파의 두 고수는 분노가 극에 달한 것 같았다.

텅..터덩!

울룩불룩한 머리통이 붉게 달아올라 있는데도 불구하고 쉴세 없이 강시를 들이박고 있었다.

쿵..쿠구쿵!

허공을 날아다니며 이곳 저곳을 들이 박아대는 철두파 고수들의 연수합공에 강시가 계속적으로 밀려났다.

"쓰버럴놈의 강시, 뒈저라 뒈저."

무릎을 구부려 회오리처럼 돌며 상하로 공세를 펼친 강시의 공격을 회피한 후 잽싸게 뒷덜미를 잡아채 몸의 균형을 흐트려 놓고 뒷통수에 따다다닥 연속 공격을 가하였다.

"이쪽이 약점인 것 같다. 아예 땅속에 꽂아 버리자."

허공높이 도약하여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정통으로 강시의 머리를 들이박은 다른 고수도 만만치가 않았다.

터더텅!

방아 찢듯 순간적으로 세 차례나 들이 박다 강시가 땅속에 박힌 무릎을 구부리며 손을 위쪽으로 뻗혀 공격하자 그때서야 살짝 몸을 틀었다.

어찌나 세게 박았던지 단단한 암석 속에 두발이 종아리까지 박혀 들어갔다.

강시는 초인적인 힘을 지닌 것 같았다.

무릎을 조금 구부리고 도약하자 쉽사리 빠져나와 버렸다.

그러나 빠져 나오기 위해 몸을 앞으로 조금 구부릴 때 등 뒤 약점이 노출되어졌다.

"빵야!"

이상한 외침과 함께 도리깨처럼 날아든 철두파 고수의 큼지막한 대갈통이 무지막지한 기세로 등허리를 박아 버렸다.

아무리 단단한 강시라도 관절이 있는 인간의 신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몸통이 뒤쪽으로 크게 휘어져 버렸다.

순간, 지금껏 기회를 엿보던 해동역사가 이때다 싶었는지 천붕추를 날렸다.

부상으로 신법이 원활치 않자 정중동(靜中動)의 원리로 움직임을 자제한 후 큰 거 한방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까가강! 떠엉!

철판이 파열되는 소리와 함께 강시의 몸통이 반대쪽으로 활처럼 휘어진 채 천붕추에 쏠려 암반 속으로 반 이상 파고 들어갔다.

"이놈은 우리 몫이야. 이 우라질 새끼가 사제를 해쳤다구."

돌 속에 처박힌 강시의 몸통을 쇠망치인양 머리통으로 내리치며 철두파의 고수가 해동역사에게 외쳤다.

"떠그랄놈! 뒈져라!"

한명은 무릎을 구부리고 암반에 파묻힌 강시 옆에 앉아 천붕추에 맞아 깊이 함몰된 맞은편 가슴팍을 연속해서 들이 박았다.

쉬리리리릿!

유성추도 불을 뿜었다.

유성추가 강시의 머리통을 헤집어 놓은 후 또다시 천붕추로 양발을 짓뭉개 놓고서야 해동역사는 안심을 하였다.

머리통이 박살나고 심장에 구멍이 난 상태에서도 공격이 가능한 강시였지만 이정도 타격에서는 움직이기 힘들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두개골은 물론이고 양 다리와 함몰되어 터져나간 가슴팍에서 피처럼 붉은 액체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빠가닥!

철두파 고수의 쉴 사이 없는 공격에도 부들부들 떨며 움적거리던 두 손이 오장여나 하늘로 치솟아 유성처럼 내리꽂힌 공격을 끝으로 힘없이 아래로 쳐져 내렸다.

이제야 끈질긴 생명이 다한 것이다.

두 번째 강시의 죽음을 확인한 후 다소 여유를 찾은 해동역사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때서야 힘겹게 상대하던 묵강시 말고 또 다른 괴물들이 사방에서 날뛰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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