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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허무검-145화 (145/152)

[연재]황정허무검(145)

임원영   2004-07-30 22:20:29, 조회 : 1,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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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엑!"

뒤쪽으로 엄청난 속도로 튕겨져 나가는 만수괴왕의 비명소리였다.

입으로 녹색의 피를 꾸역꾸역 뿌려대며 경악과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튕겨져 나가는 여세를 몰아 그대로 도망을 가고 있었다.

와룡번신(臥龍飜身)의 초식으로 은성이 날린 무형시를 회피하다 어깨 부위에 치명상을 입은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혼비백산 도망쳤다.

만수괴왕의 영력이 끊겨서일까?

그토록 악종으로 덤벼들던 흉수(兇獸)들의 공격이 갑자기 멈추어졌다.

흉악한 이를 드러낸채 죽음을 불사하고 덤벼들던 혈편복들이 뿔뿔이 흩어져 날아가고 무리지어 무림맹의 선박으로 악착같이 파고들던 철갑묵린조도 적의가 사라졌는지 잠잠해졌다.

하지만 흉수들의 습성이 사라질리가 없었다.

강물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강물위로 수없이 떠오르는 흉어(兇魚)들의 사체(死體).....

그중엔 이무기만한 독두철수사도 수 마리 포함되어 있었다.

사체에 충혈된 듯한 눈을 가진 식인악잔어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을 보자 소름이 끼치는지 몸을 오싹 떠는 군협들도 있었다.

물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 붉은 기포가 쉼 없이 올라오며 황하를 붉게 물들였다.

흉수들이 더 이상 선박을 공격해오지는 않았지만 군협들은 서둘러 배를 뭍으로 몰았다.

독두철수사에게 공격당한 선저(船低)쪽으로 물이 스며들어와 배가 기울어지고 조금씩 침수되고 있으니 서둘러야만 하였다.

무림맹에서 동원된 선박이 특수하게 제작된 이중 바닥 구조가 아니었으면 진즉에 침수되었을 것이다.

외부의 공격이 사라져 전 인원이 총력을 기울이자 배는 빠르게 뭍으로 나아갔다.

돛대는커녕 방향키조차 혈편복의 공격에 부러져 선박이 아닌 거대한 나무 쪼가리에 불과하였지만 군웅들의 내력에 의한 반탄력으로 추진력을 얻은 결과였다.

무사히 뭍에 올랐지만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희생도 희생이지만 눈앞에 보이는 험한 산이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안객랍산(巴顔喀拉山)'

사천과 청해의 경계를 가르는 산으로 험난하기 이루 말할수 없는 산이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에 흉수와 괴수는 물론 독지와 독충까지 널려 있었다.

이곳에서 부서진 선박을 수리하고 선박에 기거하며 구조를 요청할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위험해도 경공을 발휘하여 험한 산맥을 뚫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무림맹 보금원의 상인들과 환자들은 어쩔수 없이 선박에 머물며 구조를 요청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무인들은 각자 삼일정도의 식량만을 구비한채 험난무비한 원시수림속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제일 앞쪽에 위치한 문파는 독과 암기에 능한 사천 당문의 고수들이었다.

현천교와의 결전에 참여한 오십명의 인원중 이십여명이나 줄어 있었지만 그들의 위상은 구대문파를 뛰어넘을 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특히나 곤륜지로와 이번 혈편복의 퇴치시 선상에서 허공으로 불을 뿜어대던 초열지옥화린기에 대한 인상은 경이를 넘어 은근한 두려움으로 무림인들의 뇌리속에 파고들어 있었다.

비록 한대밖에 남지 않았으나 사천당문의 위상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기물인 것이다.

험한 산중이지만 모두가 고수들인지라 이동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만수괴왕에게 일격을 당한 풍령자도 화산파 고수들 틈에 끼여 경공을 전개하고 있었다.

만수괴왕의 음공이 눈에 보이지 않는 괴이절륜한 공세라 완전히 피해낼수 없었지만 초극고수의 감각으로 호신기공을 펼친 덕분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상이 완치되지 않았는지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져 있었다.

"크워워웡!"

첫째날에는 거의 들리지 않았던 맹수들의 포효 소리였다.

두 번째 날부터는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었다.

피곤에 지친 밤에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윙윙거리며 신경을 거스리는 파리들이 절독을 지닌 혈승(血蠅)이라는 당문의 충고까지 겹쳐 뜬눈으로 날밤을 세웠다.

삼일째에는 이동속도가 상당히 더디어졌다.

이틀 동안 무리하며 경공을 펼친후 잠조차 재대로 자지 못한 결과였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심상치 않았다.

비라도 오려는지 회색빛 구름이 몰려다니는 하늘은 우중충하니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으며 날벌레들이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무리져 앵앵거리며 군웅들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포효소리만 간간히 내지르던 맹수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산해경에도 나오지 않는 괴상한 괴수(怪獸)조차 눈에 띄였다.

"끄아아악. 꺽꺽!"

언제 날아왔는지 허공을 날며 괴악한 울음을 내지르는 괴조(怪鳥)떼들도 있었다.

군웅들의 눈에 서서히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뒤쪽에서 검후와 보무당의 무인들과 보조를 맞추어 경공을 펼치던 은성도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직감하고 있었다.

맹수나 괴조들이 누군가의 명령을 받으며 결정적인 기회를 엿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날벌레는 물론이고 맹수들의 수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었다.

영안으로 살펴보니 군웅들의 옆과 뒤쪽으로 엄청난 수의 짐승들의 뒤따르고 있었다.

그중에는 위험해 보이는 괴수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괴조들도 문제였다.

"끄아아악, 끄아아악, 꿔윽!"

쉴세없이 시끄럽게 울부짖는 소리에 최면의 효과가 담겨 있었다.

이처럼 많은 짐승들에게 어떠한 목적의식을 줄 수 있는 존재라면.....

만수괴왕이 다시 출현한 것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영안을 집중하여 사방을 살펴보아도 만수괴왕의 흔적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할 수만은 없었다.

적극적으로 나서 만수괴왕을 찾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피비린내 나는 인간과 금수의 혈전이 또다시 펼쳐질 것 같았다.

[만수괴왕이 근처에 있는 것 같아. 조심해!]

검후에게 전음을 날린후 허공으로 비약하여 괴조들에게 심기를 날려 순식간에 십여마리를 살상하였다.

몰려있던 괴조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심기를 거둔 은성은 뿌옇게 잔영만을 남긴채 사라졌다.

흩어진 괴조들에게 일일이 심기를 날릴만한 시간은 없었다.

시급히 만수괴왕을 찾아 무찔러야 하는 것이다.

허공에 잔영조차 남기지 않을 빠른 속도로 군웅들의 앞쪽과 옆으로 삼백여장의 숲을 샅샅이 훑어보던 은성의 눈빛에 당혹스러움이 베어져 나왔다.

그 어디에도 만수괴왕의 흔적이 없었던 것이다.

혼자서는 무리인 것 같았다.

초극고수들에게 전음을 날리자 달뢰대라마와 무상 그리고 삼성검문의 반전자와 소림의 범각대사가 공중으로 솟아올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하늘을 날수는 있지만 지속력이 부족한 무림맹주와 삼천진인 그리고 중상을 입은 풍령자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금수들의 공격에 군협들을 보호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은성과 네명의 초극고수들이 사방을 종횡으로 날며 만수괴왕을 찾았지만 역시나 찾을 수가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토록 거대한 규모의 금수들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만수괴왕이 근처에 있을 것이 분명한데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행들이 갈 방향으로 멀리까지 살펴보던 은성이 급히 신형을 아래쪽으로 내리꽂듯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는 아연 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엄청난 함정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분지형태의 험한 계곡인데 늪지가 형성되어 있고 주변에는 작은 나무들이 빽빽하니 들어차 있었다.

그곳에 수많은 금수들이 숨을 죽인채 매복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늪지 주위에 수없이 날아다니는 검붉은 비충(飛蟲)들은 한눈에 보아도 괴이절독한 극독을 함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늪지와 풀 속에 숨어있는 이름모를 독물(毒物)들.....

등 뒤에 식은땀까지 돋아날 정도였다.

이미 해동 계룡산에서 독물들의 놀라운 위력을 실감한 은성이었다.

그중 흑사(黑蛇)는 검기로도 상하게 할수 없었으며 금사(金蛇)는 은성의 태극진기조차 뚫고 들어올 정도로 빠르고 강한 독물이었다.

'그리고 사왕(蛇王)의 위력은 그 얼마나 가공스러웠던가..!'

쏘듯이 허공으로 튕겨 올라간 은성이 일행들에게로 날아가 무림맹주에게 전음을 날려 앞쪽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무림맹주의 외침소리로 군웅들의 발길이 멈추어지자 지금껏 군협들에게 겁만 주고 있던 금수들이 사납게 울부짖으며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충혈된 듯 시뻘건 눈동자로 으르렁거리며 광기에 차 다가오는 금수들의 수는 셀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파안객랍산(巴顔喀拉山)에 이 많은 금수들이 살고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사방에서 다가와야 할 금수들이 유독 뒤쪽에 몰려 있었다.

나직한 울부짖음과 사나운 포효소리 그리고 광기에 찬 혈안으로 군웅들을 위협하여 앞쪽으로 내모는 듯한 형국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허공에 떠있던 은성이 안절부절 하였다.

조금 더 밀리면 독물들과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죽음의 함정으로 빠져들 터이니 내려가 군웅들을 도와야 하겠지만 만수괴왕을 찾지 못한다면 처절하면서도 무익한 살상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금수와 독물들을 죽이는 와중에 군웅들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고 말이다.

"크와와왕! 쿼어엉!"

산이 울리는 포효소리와 함께 급기야 금수들이 군웅들에게로 짓쳐 들어갔다.

엄청난 기세였다.

호랑이와 표범 그리고 혈랑(血狼)과 은성도 처음 보는 괴상한 생물체들이 진액이 줄줄 흐르는 아가리를 쩌억 벌린채 뛰어 오르고 공중에서 정신이 헷갈릴 정도로 시끄럽게 울부짖던 괴조들도 군웅들에게 일제히 쏘아져 내려갔다.

내려가서 군웅들을 도와야 하는가?

어찌할 바 몰라 첨예한 갈등을 하던 은성의 눈빛이 돌연 이채를 발했다.

회색빛 구름을 잠시 벗어난 양광속에 스치듯 내비친 금색 물체.....

빨리듯 구름속으로 들어간 물체가 금아인 것 같았다.

설마..무엇을 보았을까?

허공중에 머물며 갈등하던 은성의 몸이 또다시 사라져 버렸다.

은성의 잔영이 희미하게 이어진 곳은 회색 구름 속이었다.

공간을 격하듯이 엄청난 속도로 회색빛 구름 가까이 이른 은성은 구름속에서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금아를 발견할수 있었다.

금아와 싸우고 있는 것은 십여마리나 되는 흰 독수리들이었다.

금아보다 대여섯배나 큰 몸집에 사납기 이를데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이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는 곳에서 싸늘한 한기가 뭉실뭉실 세어 나왔다.

그리고 그 백색 독수리들의 뒤쪽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

은성이 조용히 숨을 골랐다.

전설속의 혈붕이 보였기 때문이다.

육장여나 되는 거대한 날개를 부채 부치듯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데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 신기했지만 소름끼치는 녹안에서 줄줄이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금새라도 은성에게 덮쳐들 듯 보였다.

그리고 혈붕의 등 뒤에 숨어있는 존재는..다름 아닌 만수괴왕이었다.

그토록 찾아 헤메도 없더니 영안이 미치기 힘든 높이의 구름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먼거리에서 금수들을 조종할수 있다니 만수괴왕의 능력을 다시 평가해야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날아가 금아와 싸우고 있는 백색 독수리에게 심기를 발하자 흰 독수리들이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북해 만년빙설 속에서 맹수들을 포획하며 사는 사나운 금수(禽獸)들이었지만 선인지경에 이른 은성의 심기를 감당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다섯 마리의 독수리를 처치한 은성이 목표를 바꾸어 혈붕에게로 날아갔다.

"쿠아아아앙!"

하늘에 뇌공신(雷攻神)이 현신한 것일까?

대지가 들썩일 정도의 괴음이 천지간을 떨쳐 울렸다.

금수들과 싸움을 벌이던 군웅들조차 고막이 터져나갈듯한 충격에 양손으로 귀를 움켜쥘 정도였다.

금수들의 반응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그토록 맹위를 떨치던 흉성은 어디로 갔는지 땅바닥에 사지를 붙이고 털썩 쭈그러든채 두려움에 가득한 눈빛으로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오줌까지 질질 지리고 있을 정도였다.

어마어마한 혈붕음(血鵬音)은 가까이에 있던 은성과 금아에게 가장 큰 위력을 발하고 있었다.

음파에 쏠려 금아는 뒤쪽으로 날아갈 정도였다.

하지만 금아는 평범한 새가 아니었다.

금아와 싸우던 백색 독수리들이 혈붕음에 당해 실 끊어진 연처럼 지상으로 떨어져 내려갔건만 같이 쏠려 나가던 금아는 다시 뒤돌아 날아오고 있었다.

어리지만 완전히 성숙하면 용을 잡아 먹을수 있다는 금시조의 기상이었다.

금색 광선인양 한점 두려움 없이 산처럼 거대한 혈붕에게 날아가는 것은 금시조의 패기이자 자부심이고 말이다.

혈붕음을 간신히 견뎌낸 은성이 심기를 혈붕에게 쏘아 보내자 어느새 나타났는지 만수괴왕이 예의 가공할 음파를 뿜어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심기를 방향까지 정확히 감지하여 맞공세를 취한 만수괴왕의 놀랄만한 영력이었다.

때를 맞추어 혈붕이 거대한 날개를 떨쳐 흔들었다.

날아가다 잽싸게 방향을 바꾼 금아는 간신히 소용돌이치며 밀려드는 바람의 영향력을 벗어났지만 은성은 아니었다.

만수괴왕과 겨루느라 돌풍처럼 밀려드는 바람에 고스란히 노출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결정되어졌다.

은성의 심기와 부딪힌 만수괴왕의 음살지력이 폭음소리와 함께 터져나가 허공에 뿔뿔이 흩어지고 심기는 만수괴왕에게로 짓쳐 들어갔던 것이다.

어느새 달려들었는지 녹색눈을 할퀴고 쪼아대는 금아를 방비하느라 한쪽 날개를 휘젓던 혈붕이 다른쪽 날개로 막아내지 않았다면 만수괴왕의 가슴은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었다.

혈붕의 깃털만 허공중에 분분히 흩날리는 중에 무형검을 빼어들고 달려들던 은성은 또다시 터져 나오는 혈붕음에 신형을 멈칫하였다.

처음보다 몇 배는 더 지독한 위력....아마도 사력을 다한 울부짖음인 것 같았다.

심기로 호신강막을 쳤는데도 불구하고 온몸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심기를 가중하여 간신히 버텨낸 은성은 어느새 저 멀리로 날아가고 있는 혈붕에게로 폭사되어 날아갔다.

만수괴왕을 이번에도 놓칠수 없다는 모진 각오를 한채 말이다.

그러나.....

혈붕에게로 악착같이 달라붙어 급기야 혈붕의 한쪽 녹안을 터트려버린 금아가 고개를 숙인채 발악하듯 휘두르는 혈붕의 발길질에 채이고 말았다.

이어지는 날개짓에 또다시 격중되어진 금아가 힘없이 떨어져 내려가는 것을 보고는 통한의 눈물을 삼켜야만 하였다.

죽었는지 한없이 곤두박질치는 금아의 생사가 더욱 중요하였던 것이다.

허공을 날아 금아에게 다가가는 은성의 두눈에 두려움이 가득하였다.

'제발 죽지만 말아다오.'

간절한 마음으로 다가가 부드러이 금아를 받혀 안은 은성의 두손이 미미하게 떨려왔다.

금아의 심장이 멎었는지 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싸늘이 식어가는 체온.....

은성의 두눈에 울컥하니 눈물이 솟아 나왔다.

금아를 품으로 당겨 가만히 보듬어 안은채 은성은 내려오는 속도를 줄였다.

내려서며 심기(心氣)를 금아의 몸속으로 투입하던 은성이 두눈을 크게 뜬채 내려오는 속도를 아예 멈추었다.

미세하지만 생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심장이 멈추어져 혈류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뼈속을 타고 흐르는 진기는 멈추어지지 않고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한줄기 희망의 빛이 은성의 두눈을 스쳐 지나갔다.

심장이 계속해서 멈추어져 있다면 여래불이 와도 회생할 수는 없었다.

심기로써 금아의 심장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주면서 따스한 기운을 흘려 보내 주었다.

부족한지 왼손 약지에서 피를 내어 한참동안 먹였다.

정성이 통해서였을까?

멈추어있던 금아의 혈맥이 열리고 피가 조금씩 움찔거려졌다.

그리고 서서히 움직이더니 놀랍게도 조금씩 순환하기 시작하였다.

눈물로 범벅된 은성의 입가에 비로소 미소가 피어 올랐다.

한쪽 날개가 꺾이고 내상이 심했지만 피가 돌고 온몸이 따뜻해져왔다.

바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올려 붉은 눈동자로 은성을 바라보는 금아의 희미한 안광을 보자 은성의 두눈에서 다시금 걷잡을수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왜..왜그래? 검후가 다..다치기라도 했냐?"

"아..아니, 괜찮아."

은성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울먹이는 소리로 답했다.

"짜슥, 사내놈이 울기는....."

몇 마디 말도 힘이 들었는지 금아의 눈꺼풀이 사르르 닫히며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런 금아를 품속으로 가까이 당겨 꼬옥 껴안은 채로 은성이 조용히 땅으로 내려섰다.

혈붕이 날아가는 것을 목격하였는지 군웅들이 은성에게 환호성을 질렀다.

내려와서 보니 동물들의 사체(死體)가 여기저기 널려져 있었다.

고수들의 검과 도에 잘려죽은 동물과 당문의 초열지옥화린기에 당한 듯 매케하니 살타는 냄새를 풍기는 사체들도 많았지만 대다수가 아무런 외상조차 없이 죽은 사체들이었다.

혈붕음에 뇌혈관이 터져 죽었을 것이다.

기세가 강한 맹수들은 살아남았지만 두 번째 혈붕음이 끝난 직후 꼬리를 말고 모두 도망가고 없었다.

은성에게 만수괴왕이 쫒겨 도망치자 이들의 최면도 일시에 풀린 것 같았다.

격전지를 벗어나 금수와 독물들이 매복해 있던 계곡에 당도했건만 혈붕음에 놀라 도망갔는지 별다른 위험이 없었다.

세시진후 일행들의 눈앞에 조그마한 촌락이 보였다.

드디어 파안객랍산(巴顔喀拉山)을 완전히 넘은 것이다.

군웅들의 행색은 말이 아니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의복에 씻지도 못해 꾀죄죄하니 모두가 개방도들처럼 보일 정도였다.

조금만 더가면 도시(都市)가 보일 것이다.

그곳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말을 구입하여 사천의 무림맹쪽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무림맹은 말을 타고 가더라도 오일은 더 가야할 거리였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불어 닥칠 끊임없는 혈풍을.....

그 혈풍의 중심에 마기(魔氣)가 담기어져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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