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황정허무검(143)
임원영 2004-07-23 00:50:27, 조회 :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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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아침 일찍부터 선상에 높은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이라서 잠에서 깨어나라고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수뇌부들의 비상소집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은성이 타고 있는 배에 대부분의 수뇌들이 타고 있었지만 몇 몇 다른 선박에 타고 있는 수뇌들도 있었다.
최고위급을 알리는 북소리 때문일까?
대고(大鼓)소리가 울린지 반각도 안되어 선상에 수뇌진들이 모두 도착하였다.
맹주의 안색을 본 수뇌진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서려졌다.
맹주는 한숨도 자지 못한 듯 초췌해져 있었는데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였다.
사람들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한 맹주가 비상소집을 취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한 탓인지 선상에는 숨막힐듯한 고요가 휘돌았다.
"여러분에게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착잡한 음성으로 첫마디를 꺼내자 긴장이 더욱 고조되어졌다.
긴장 때문인지 침 넘어가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져 왔다.
"무림맹(武林盟)이 어제 저녁 마교의 무리들에 의해 점거되어졌다고 합니다."
짤막한 말이었다.
하지만 선상의 군웅들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양 경천동지할 내용이었다.
철옹성으로 회자되는 무림맹이 단 하루사이에 마교에 넘어가다니.....
'웅성 웅성'
여기저기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무림 동도 여러분! 어젯밤부터 상황을 보고하는 전서구에 실린 내용을 보면서 제 가슴도 까맣게 타 재가 되었습니다. 등 뒤에 날개가 없는 것이 한이 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무림맹까지는 아무리 서둘러도 열흘은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큭.., 수성원주이신 무적지(無敵指) 구유현님과 수성원 소속 내당의 무사 전원이 몰살 당했다고 합니다. 수성원 외당 소속으로 무림맹을 지키기 위해 올라온 인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비통한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수성원주인 무적지 구유현은 강기조차 꿰뚫는 묵살지공(墨殺指功)을 익히고 있는 초고수였다.
십년전 마교와의 대전(大戰)에서 권마황과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였을 정도로 극강한 무공을 익힌 고수인데 무림맹을 지키던 수성원의 전 무인과 함께 하루밤새 죽음을 당했다 하니 무림맹을 쳐들어온 마교의 성세가 어떠하였음은 불문가지나 마찬가지였다.
"맹주! 청..청무원은 어떻게 되었는지요?"
조금 떨리는 듯한 목소리의 검후였다.
청무원 소속인 동생 고일검의 생사가 걱정되어서인지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런 검후의 내심을 모르는 맹주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급하니 중요한 요점만 적혀진 전서구에 검후의 동생 생사여부가 적혀 있을리 만무하였다.
"내당에 있던 암영원과 보금원 그리고 청무원의 문하생들은 다행히 천추군림전 지하에 위치한 비밀 수로로 몸을 피했다고 적혀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성원의 무인들이 전멸되어지는 최후의 순간에야 결정된 피신이기 때문에 상당수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몸을 피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천무원의 흑무대 대다수가 마교도들에게 살상되었고 말입니다."
천무원의 흑무대는 일반적인 무인들이 아니었다.
무림맹의 비밀 살수조직이었다.
무공이 고강한 것은 물론이고 은신술과 잠입술에 능하니 몸을 피하려고 마음 먹는다면 손쉽게 빠져나갈수도 있는 무인들이었다.
그런 그들조차도 대다수가 몰살되었다 하니 전투가 얼마나 급박하고 참혹했는지 미루어 짐작할수 있을 정도였다.
맹주의 말을 들은 검후의 안색에 일만의 희망이 생겼지만 붉어진 눈가에는 작은 이슬 방울이 맺혀져 가고 있었다.
누가 볼까 두려워 얼른 소매 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려는데 눈앞에 불쑥 내밀어지는 물건이 있었다.
하얀 손수건 이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은성이 한손을 잡아주며 자신이 정표로 준 흰 손수건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가려 눈물을 닦아 주었다.
또다시 왈칵 눈물이 쏟아져 버렸다.
그런 검후를 가슴으로 끌어당긴 은성이 다정한 목소리로 위로해 주었다.
"관상을 보건데 동생은 절대 단명할 상이 아니야! 아무일도 없을 거야. 믿을수 있지?"
검후가 너무나 듣고 싶은 말이었다.
붉어진 눈망울로 은성을 올려다보며 검후가 고개를 끄덕이었다.
여전히 눈가에는 눈물방울이 서려 있었지만 입가에는 억지 웃음인 듯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내기를 해도 좋아. 걱정마!"
다시 한번 위로해 주며 은성이 검후를 껴안은 두손에 힘을 주었다.
울먹이던 검후가 은성의 품속에서 마음을 가라 앉혔는지 금새 숨소리가 차분하게 유지되어졌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은성의 품에서 살짝 빠져나온 검후가 손수건을 곱게 접어 다시금 은성에게 건네어 주었다.
"오라버니..! 고마워요."
검후의 말에 은성이 미소로 대답해 주었다.
은성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걱정보다는 희망을 머금고 있는 것이 좋았다.
죽었을지도 모른다며 절망에 빠져있기 보다는 살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대책을 세우고 후일을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맹주! 그동안 십여년 동안이나 잠잠하던 마교가 본격적으로 준동하였다면 무림맹에서 그칠리 없을 것 같은데 혹 다른곳도 위험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닌지요?"
점창파의 장문인 일양자였다.
북명신공과 사일검법은 물론이고 천룡무상신공(天龍無上神功)으로 당대에 이름높은 고수였지만 무림맹과 근접한 사천성 내에 문파가 있으니 다른 누구보다도 불안함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장문인께서는 심려 놓으시기 바랍니다.제가 알기로 마교 총관인 쌍뇌(雙腦) 포병인은 쓸데없이 힘을 분산시켜 일을 어렵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뿌리를 자른후 머리를 자르는 계책으로 힘을 집중하여 이곳에 모인 군웅들을 공격해올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 모인 협사들만 제거해도 무림은 머리를 잃은 용이 되어 갈팡질팡 허덕이다 제풀에 지쳐 쓰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힘들이지 않고 무림을 재패할수 있겠지요."
참으로 소름 끼치는 말이었다.
모여든 수뇌들이 한기가 돈다는 듯한 눈빛으로 방금 말을 꺼낸 문상을 일제히 바라보았다.
문상이 무림맹에 속해 있다는 것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수뇌도 있었다.
하긴 마교에서 다른 문파를 공격했더라면 그들 문파에서 장문인이 있는 이곳으로 전서구를 띄우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무림맹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희생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고 말이다.
문상의 말을 듣고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선상위의 분위기가 점차로 진정되어져 갔다.
그렇다고 완전히 안심할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다음 목표가 이곳에 있는 군협들이라니 무언가 조속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누군가 궁금한 사항이 있는 모양이었다.
종소리처럼 우렁차며 걸걸한 목소리로 문상에게 묻는 사람은 다름 아닌 무림 오대세가중 진주언가의 장문인 언일권이었다.
"문상! 이번에 현천교와의 결전에서 가장 우려했던 일이 현천교의 배후에 마교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현천교와의 결전에서는 잠잠하던 마교가 왜 갑자기 현천교가 무너지는 순간에 맞추어 준동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는지요? 현천교를 도와 싸웠더라면 무림맹에서 승리를 장담할수 없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듣고 보니 충분히 궁금할만한 사항이었다.
하지만 몇 명에 국한될 뿐이었다.
대다수의 수뇌들은 그 이유를 예측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언 장문인, 저희가 무림맹에서 청해로 향하는 와중에도 무림맹의 정보기관인 암영원(暗影院)은 끊임없이 첩보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맹의 안위가 걸린 일이라서 총력을 기울였는데 암영원 대다수의 이목은 현천교가 아닌 마교의 동태 파악에 쏠려 있었습니다. 청해성 쪽에서 마교의 자취가 발견되어졌다면 현천교와의 싸움은 또다른 양상으로 벌어졌을 것입니다. 원래대로라면 현천교와의 결전을 마교쪽에서 간과하지 않았겠지만 공교롭게도 마교쪽에 크나큰 우환이 발생한 시기라 작전이 변경된 것 같습니다."
"크나큰 우환이라니 어떤 일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참으로 정보에 둔감한 장문인이었다.
모두들 알고 있는 사항인데도 모르는 것처럼 묻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대답을 해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무림오대가문의 하나인 진주언가의 수장인 때문이다.
무림이 어수선하다보니 전대장문인이 자식들중 무공이 고강한 자에게 장문인 자리를 물려주기로 약속함으로써 문을 등한시한 장문인이 선출되어진 결과였다.
무공 외 대다수의 업무를 머리가 총명한 자식들이 주관하지 않았다면 진즉에 오대세가에서 추출되었을 것이라는 억측조차 무림에 나돌고 있는 형편이었다.
"언 장문인께서도 익히 들으셨을 것입니다. 마교 십대 장로중 권마황과 번뇌마승이 죽고 독중지마가 한팔이 잘라져서 마교가 발칵 뒤집힌 사건 말입니다. 그 때문에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마교의 계략에 역이용 당한 면도 있습니다."
"역이용이라니요?"이번 질문은 언일권 뿐만이 아니라 수뇌진 모두가 궁금해 하는 사항이었다.
은성조차도 솔깃하여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무림맹의 눈과 귀가 모두 청해성으로 쏠려 있다 보니 사천으로 마교의 무리들이 스며듦을 살피지 못한 것입니다. 동쪽에서 소리 지르고 서쪽을 친다는 삼십육계중 성동격서(聲東擊西)의 계략에 보기좋게 걸려든 것입니다. 그 결과는 맹주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음....."
장내가 다시금 조용해졌다.
마교..,참으로 두려운 상대가 아닐수 없었다.
수뇌진들의 눈빛에서 두려움을 발견한 맹주가 돌연 앞으로 나섰다.
더 이상 초췌하고 수심에 잠긴 모습이 아니었다.
굳은 결심이 섰는지 단호한 표정에 안광조차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지금 무림은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 위기를 극복할 책임은 여러분에게 있고 말입니다. 예상대로라면 마교와 조만간에 마주칠 것입니다. 지금 어디선가 새파란 독아를 드러낸채 저희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주변을 둘러 보십시오. 마교에 버금갈 정도로 가공할 전력을 보유한 현천교를 물리친 우리들입니다. 아무리 마교의 위세가 가공하다 하여도 결국에는 정의의 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어 있습니다."
슬픔을 떨치고 비장한 표정으로 독려하는 맹주를 본 수뇌진들 사이에 조금씩 자신감이 피어 올랐다.
마교가 아무리 강하다 하여도 이곳에 있는 군협들 또한 결코 무시할수 없는 위세를 가지고 있었다.
무림맹을 출발할때에 비해서 인원이 줄었지만 전력은 오히려 그보다 우위에 있고 말이다.
한쪽에서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계신 초극고수들이 있는 한 마교의 어떠한 도발도 문제없이 타파할수 있을 것 같았다.
초극고수들중 군웅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은 의외로 해동에서 온 은성이었다.
현천교의 괴인을 단 일검에 처치하는 천신같은 신위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임이 끝난후 흩어질 무렵 은성은 문상에게 전음을 보내 보무당의 무인들이 있는 뒤쪽의 배로 가기를 희망하였다.
은성이 가면 달뢰라마도 동행할 것을 뻔히 알고 있지만 문상은 쾌히 승낙해 주었다.
사실 무림맹에서 은성에게 명령할 권한이 없었던 것이다.
무림맹에 남아 적을 상대해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할 형편이었다.
검후와 상의하여 검후도 같은 배로 이동하기로 결정된후 문상의 지시로 보무당이 승선한 배를 기다려 보타문의 여제자들과 함께 올라탔다.
총 아홉척의 배중 은성과 검후가 탄 선박은 뒤에서 두 번째에 위치되어져 있었다.
은성과 달뢰라마가 승선하자 배안에 타고 있던 무인들이 크게 환호하였다.
육지와는 달리 수상전에서는 배안에 타고 있는 모든 무력이 총동원되어 생사를 가늠하는데 은성과 달뢰라마가 승선함으로써 무적선(無敵船)이나 다름없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칠십여명의 보무당 당원은 이제 사십오명밖에 남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일당백의 절정고수들이었다.
은성이 책임지고 보호할 사람은 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보타문의 이십삼명 제자들도 보무당의 무인들처럼 은성에게 친근하고 정이 가는 사람들이었다.
보타문을 떠나올 때에 비해 일곱명이 줄어 있었는데 은성도 가슴이 무거워져 왔다.
검후의 상심을 예상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흑백이노(黑白二老)라 불리는 두명의 장로는 은성이 무안해할 정도로 은성을 깍듯이 대우해주고 있었다.
검후와 은성의 관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현천교와의 결전 이후로 은성의 위상은 그 누구보다도 높아져 있었던 것이다.
악린호(顎隣湖)를 지나 굽이치는 황화를 이틀이나 더 내려왔는데도 불구하고 예상된 마교의 공격은 없었다.
예상외로 마교의 공격이 없자 잔뜩 긴장한 군웅들은 초조감과 피로감에 휩싸여 있었다.
운기조식할 시간도 없이 잠조차 줄여가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마교의 공격에 대비하여 보초를 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조금이나마 긴장의 끈을 풀어도 될 것 같았다.
좁고 험한 수역을 지나 강폭이 넓은 수역으로 접어 들었던 것이다.
강폭이 넓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물살은 매우 거칠었는데 아마도 강바닥의 지형이 매우 험한 것 같았다.
선두의 배에 타고 있던 복마승(伏魔僧) 혜초도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야가 환히 트이니 일단 기습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다.
예상되는 적의 공격은 배를 이용하여 수상전을 벌이는 것인데 수전이라면 마교에 비해서 무림맹이 우세하고 말이다.
일백여장이나 떨어진 물가에 첩첩이 솟아오른 높은 산정 사이로 빼꼼이 고개를 내민 둥근 달도 오늘따라 포근하게 느껴져 왔다.
맞은편 산세도 거칠고 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달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빛을 내는 석벽 사이로 군데군데 검은 동굴이 수없이 뚫려 있었다.
수백만년동안 지하수에 녹아 자연적으로 발생된 석회암 동굴들이라고 하였는데 산세가 험해 사람은커녕 산짐승들조차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고 언뜻 들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검은 구름들이 간간이 달빛을 가로막아 밤의 정취를 흐려 놓았지만 그 또한 나름대로의 운치였다.
현천교와의 전투에 참전한 삼백여명의 적무대원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대원은 절반에도 못 미쳤다.
청령전에서 인간같지도 않은 괴인에게 일백여명이 일거에 몰살당한 때문이었다.
무림맹 최고 전력이랄수 있는 적무대인데 단 한명의 적도에 의해서.....
말은 못하고 있지만 남몰래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현천교와의 전쟁이 끝나고 무림맹에 회귀할때만 해도 돌아가면 소림사로 들어가 몇 년간 폐관수련을 할 작정 이었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이 또다시 마교와의 결전이 닥쳐든 것이다. 며칠동안 마교의 습격에 대비하여 잠도 거의 자지 않았지만 초긴장 상태 때문인지, 아니면 사무친 원한 때문인지 피곤한줄도 몰랐던 적무대주였 다.
긴장이 조금 풀어지자 온몸 가득이 피곤함이 몰려 들어왔다. 조금은 몽롱한 상태로 상념에 잠겼던 적무대주가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오싹하니 몸을 떨었다.
순간, 생각에 잠긴 듯이 느슨해져 있던 적무대주의 눈에서 번갯불같은 신광이 번뜩여졌다.
주변에 무언가 이상한 조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추워도 정순한 소 림 내공으로 단련된 자신을 떨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릴만한 거대한 공포가 다가오 고 있지 않는한 말이다.
무엇일까? 급하게 사방을 휘둘러 보았지만 선뜻 눈에 뜨이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머리끝이 쭈뼛하니 서는 듯한 이 묘한 느낌은..... 번쩍하니 고개를 들자 붉은 구름에 막혔는지 달빛 조차 빛을 잃고 있었다. 고개를 내려 강물쪽을 주시하려던 적무대주가 눈빛을 부르르 떨더니 급하게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비상 사태다! 하늘이다!"
내공을 실어 목청껏 소리치는 적무대주. 그의 눈이 공포로 부릅 떠지고 있었다. 달빛을 가린 붉은 구름이 커 다랗게 확산되며 몰려오고 있었다.
아니, 붉은 구름이 아니었다. 야천을 메우다시피 하며 괴악한 날개짓으로 순식간에 덮쳐오는 것은 수십만.. 아니 그이상의 붉은 박쥐때였다.
'찍 찌익..찌지직.'
사방이 섬뜩한 소리로 넘쳐나고 광기어린 눈동자가 야천을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