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황정허무검(141)
생존한 현천교도들이 패배를 시인하고 무릎을 꿇자 산중에 환호성이 울려 나왔다. 무림맹측 무인들의 가슴 벅찬 승리의 함성이었다. 너무 기쁜 듯 울면서 고함을 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함성 소리는 낮아져 갔다. 승리의 기쁨 못지않게 가슴 아린 고통과 아픔이 주변에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해 이 많은 피를 흘렸는지.....
웃음소리가 절규로 변하고 소리 없이 흐느끼던 애처로움조차 통곡 소리에 묻혀져 갔다.
현천교가 패배하고 무림맹이 승리하였지만 승리자는 없었던 것이다.
둘 다 패배자였다. 다만 현천교는 무릎을 꿇은 채로 오열하고 무림맹은 선체로 통곡하고 있는 차이였다.
현천교보다는 덜하지만 무림맹측의 피해도 말로 표현치 못할 정도였다. 곤륜파를 돕기 위해 나선 2800여명의 인원중 살아남은 인원이 1500여명도 채 안되었는데 그나마 300명은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무림맹 보금원의 상 인들이었다.
죽어간 영웅 호걸들 중에는 공동파의 장문인 조차 속해 있었다. 때문인지 공동파 무인들의 안색에는 승리의 기쁨을 찾아 볼수가 없었다. 하나같이 침통한 표정들이었다.
지옥의 악귀들이 떼지어 휩쓸고 간 듯한 참상에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지만 군웅들에게는 아직도 할일이 남아 있었다. 부상자를 돌보고 항복한 현천교도와 사파의 무인들을 관리하는 일만이 아니었다.
전사자들에게 따로이 봉분을 만들어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적무대주인 복마승(伏魔僧) 혜초로부터 피해 상황을 보고 받은 무림맹주의 안색도 편치 않아 보였다. 전투는 승리로 끝났지만 승리의 댓가로 너무도 많은 것을 지불하였기 때문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문상과 초극고수 들 그리고 이번 전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해동신룡이 눈에 띄였다.
"휴우!"
슬며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나마 저들이 늦지 않게 지원하러 와 주었으니 다행이지 하마터면 몰살을 당할뻔 하였던 것이다. 해동신룡이 현천교주의 목을 베어오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지도 모르고 말이다.
고마움 때문인지 맹주는 다시 한번 은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약관을 벗어나지 못한 준미한 귀공자로 온몸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무인이 아닌 고아한 학자(學者)풍이었다.
얼굴만으로는 무림의 초극고수들조차 상대키 어려운 괴인을 단 일검에 처치할수 있는 고수라고 전혀 상상할수 없었다.
그런데 은성의 얼굴을 바라보던 맹주는 은성의 눈빛이 어느 한곳으로 집중되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수 있었다.
그곳으로 시선을 돌려 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
의문은 오래지 않아 풀려졌다. 은성의 시선이 머물던 청령전 뒤쪽에서 놀라운 신법으로 달려오는 십여명의 인 영들이 보였던 것이다. 행색을 보니 곤륜파의 도인들이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은성을 다시 한번 일별한 맹주가 곤륜도인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제일 앞쪽에 백 설처럼 하얀 머리카락과 수염을 나부끼며 달려오는 도인은 곤륜파의 장문인 곤륜상인 이었다.
곤륜파의 혈전을 마무리 짓고 청령전의 무림맹 군웅들을 도와주러 온 것이다.
하지만 이곳도 이미 전투는 끝나 있었다. 무림에서 곤륜상인(崑崙上人)이라 불리는 운학진인이 수뇌진들에게 로 다가온후 감사와 겸양의 인사가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진행되어졌다. 애써준 은혜에 보답키 위함인 지 중상자 치료와 항복한 현천교도들에 대한 뒷수습은 곤륜파에서 맡기로 하였다.
곤륜파도 이번 사태로 사백오십여명 정도의 인원 손실이 발생하였지만 대다수가 청령전에 머물던 무공이 낮은 제자들이었다. 제자수로 따지면 삼할이 사라졌고 청령전도 완전히 파괴되어 졌지만 얻은 것에 비하면 작은 희 생이었다. 청해성을 주름잡던 현천교가 무너진 오늘 이후로 청해성은 완전히 곤륜파의 수중에 들어오게 된 것 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운학진인의 안색은 어둡지만은 않아 보였다.
초극고수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전하던 운학진인이 은성 앞에 도착하더니 그 누구에게 보다도 더 깊숙이 허리 를 숙이며 감사해 하였다.
"해동신룡(海東神龍) 이라 불리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대협께서 현천교주를 참살하던 일검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천상에서 뇌신(雷神)이 현신하신줄 알았습니다."
"과하신 칭찬입니다. 천망애의 선인들과 곤륜파의 협도(俠道)들께서 분투하시는 와중에 기회를 얻어 요행히 일조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피와 죽음으로 결사항전하신 곤륜인의 공입니다."
은성도 허리를 깊숙이 숙여 답례하였다.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기회가 생겼다 하더라도 반선지경에 이르신 적운진인께서도 어렵게 상대하던 현천교 주인데 그 누가 일검에 참살할 수 있겠습니까? 이 대협 덕분에 남겨진 현천교의 창시자(創始者)들을 쉽게 제 거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 아니 그러면 현천교주와 함께 했던 자들이 일백년전 현천교를 창시했던 그 대도(大道)들이라는 말씀이신 지요?"
"그렇습니다. 자소전(紫小殿)에 도착한 현천교주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니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빈도가 보기에는 왠지.. 이지가 상실된 듯 보였습니다."
"음....."
은성이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현천교주를 실질적으로 조종하던 천축고수의 무위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현천교를 이끌던 대 도들을 제압하여 심령을 조종하고 자신의 꼭두각시를 교주로 내세워 무림 정복을 도모했을 것이다.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현천교에 얽힌 내막을 상세히 알고 있는 은성이었지만 함부로 발설할만한 내용은 아 니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그들의 존재를 안다면 무림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의식하지 않았지만 은성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무림의 잔악한 암류(暗流)에 답답하던 마음을 씻겨주기 위함인지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암울하니 답답한 마음은 전혀 시원스럽지가 않았다. 진득한 혈향(血香)에 절은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사천 무림맹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은성과 검후는 찰린호의 마지막 풍취를 즐기고 있었다. 햇살에 은빛으로 부서지는 잔 물결을 바라보며 모처럼 만에 여유로운 웃음도 지었다.
"하하하! 호호호!"
무엇이 그리 즐거운 것일까?
자세히 보니 은성과 검후 사이의 난간에 금아가 앉아 있었다.
"아 글쎄. 농담이 아니야! 내가 살던 섬의 옆집 굼팅이가 영약(靈藥)만 찾아다니더니 약물 부작용으로 똥배가 튀어나와 날지도 못한다니까."
농담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천연덕스러운 표정이 가관이었다. 은성과 검후가 자신의 말에 매우 즐겁다는 듯 한 반응을 보이자 금아는 더욱 신이 나는 것 같았다. 붉은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더니 다시 부리를 열어 말 을 하였다. 비밀 이야기인 듯 이번에는 목소리를 매우 낮추었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험..험, 내가 눈을 뜨면 백리를 보고 냄새 또한 백리 이내....."
두리번 두리번.
"좀 줄일까? 오십리? 삼십리?..... 어쨌든 여기에서도 한건 했다. 키륵 키륵 그것도 엄청난 걸로 말이야."
독특한 의성어에 매우 득의에 찬 눈빛이었다. 비밀인 듯 정작 중요한 것은 엄청나다는 말로 얄밉게 감추어 두 는 금아였다.
"호호호! 엄청난 것이라니...뭔데?"
하지만 검후가 은근한 목소리로 살짝 운을 떼어주자 자랑을 하고야 말겠다는 열망이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성을 순식간에 패대기쳐 버렸다. 속삭이듯 나직했지만 아직은 단순한 금아였다.
"곤륜산이 영산이라고 했잖아. 혹시나 하고 이곳 저곳 살펴보다 어제 동쪽 끝에서 천상초(天上草)를 발견했지. 하계에서는 구경조차 할수 없다는 천상초인데..키륵 키륵."
"그래서 어쨌는데?"
천상초라니 들어본적이 없는 약초였건만 유독 그 부분을 은밀한 목소리로 발음하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신비 영약인 것 같았다.
"어쩌긴... 거기 두고 왔지."
"뭐! 아니 누가 캐어 먹으면 어쩌려구 그냥 두고 온거야!"
검후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처럼 귀중한 영초라면 당연히 챙겨야 할 터 인데 그냥 두고 왔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엥, 은하야! 천상초가 잡초냐? 내 눈에 띄고 다른 것들 눈에도 띄게. 내 눈에 띈 이상 다른 것들 눈에는 안 띌 것이고 다른 것의 눈에 먼저 띄였다면 당연히 내 눈에는 안 띄였을 것인데 넌 그런 단순한 이치도 모르냐?"
"....."
이상한 논리로 할말이 없게 만드는 금아였다. 검후가 뻘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딴에는 그런 검후를 이해할수 없었는지 은성에게 동조를 구했다.
"은성아, 내말 맞지? 그렇지?"
제발 맞다고 하라는 간절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하매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예를 들어볼까? 금아 네가 보통 잡새는 절대 아니잖아. 그런데 내눈에도 보이고 옆의 하매 눈에도 보이고 그리고 저쪽 사람들 눈에도 보이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건데."
"..음... 그게....야! 내가 천상초가 아닌데 왜 나하고 비교하고 그러냐! 어쨌든 내말이 맞다. 무조건 맞다. 우리 엄마가 그러셨다. 그러니 절대적으로 맞다. 알았냐?"
우격다짐이었다.
자신의 어머니까지 들먹여 합리화시키는데 야박하게 잘못되었다 따질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하자."
두손을 들어 활짝 펼쳐 보이며 은성이 마지못해 시인을 해주었다. 하지만 금아는 섭섭한 것 같았다.
"그러면 그런것이지. 그렇다고 하자는 또 뭐야! 검후 편드는 거지? 그렇지? ....에이 애인없는 새 서럽다 서 러워!"
꿍시렁 거리더니 이번에는 목소리를 갑자기 높였다.
"어짜피 지금은 약효도 없다. 시간이 더 지나야 될 것 같더라. 숙성이 되면 먹으려고 그냥 두고 왔다. 됐냐?"
"처음부터 그렇다고 할 것이지....."
검후가 귀엽게 입을 오므리며 금아를 가벼이 나무랐다.
"금아 너 그거 먹으면 옆집 굼팅이처럼 배불뚝이 되는거 아니야?"
은성도 금아를 놀리었다.
"무슨 끔찍한 소리.....에잉 여기 못 있겠다. 푸드득..피윳"
은성과 검후의 협공에 금아가 쏜살같이 창공으로 몸을 내빼었다. 영약이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인지 날아가 는 방향이 곤륜산 쪽이었다. 푸른 하늘에 걸쳐져 있는 흰 구름 사이로 빠르게도 사라져 갔다. 구름 사이로 사 라지는 금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은성이 검후에게로 시선을 돌리었다.
[진경(眞經) 공부는 어때?]
전수해준 천부경에 대한 성취도를 묻고 있는 것이다.
검후의 신색을 보니 일신우일신으로 무위가 높아져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천부경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 을 알수 있었지만 혹시나 다른 애로점이 있는지 걱정이 되는 은성이었다.
[천지간의 이치가 함축된 천비지서(天秘之書)라는 말을 요즈음 또다시 실감하고 있어요. 오묘한 뜻을 깨닫고 사문의 무공에 적용시켜 희열에 들떠 있다가 며칠후에 그 구절을 다시 떠올려 보면 더욱 더 깊은 신묘함이 담겨져 있으니..... 오라버니! 고마워요.]
검후도 천부경과 같은 천서(天書)는 누구에게도 쉽사리 전수해 주지 못하는 비전지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 다. 아마도 자신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은성이 부모님처럼 믿고 따르는 사부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었 다. 그만큼 자신을 깊이 믿고 사랑한다는 증표이기도 하였다. 하염없는 고마움이었다.
[하매! 진경으로 천도(天道)를 수련하다 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무공은 자연스럽게 증진될거야. 내가 보기에 조금만 더 수련하면 하매의 무공도 초식(招式)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를수 있을 것 같아.]
[훗!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오라버니! 사실 어제 밤에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낮에 진기를 많이 소모하여 밤에 운기조식을 했는데 갑자기 부공삼매지경에 들었어요. 하도 신기하여 조식이 끝난후 장난삼아 시도해 보 았는데 글쎄 허공답보가 되더라구요. 믿어지지 않았어요.]
검후가 한손을 들어 봉긋이 솟은 왼쪽 가슴위에 올려놓으며 아직도 두근거린다는 몸짓으로 말을 하였다.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엽고 어여쁠수가 없었다. 은성의 가슴도 덩달아 두근거려지고 있었다.
은성이 손을 뻗어 검후의 탐스런 머릿결을 쓰다듬자 머리에 꽂힌 금접(金蝶)이 장난스레 눈꺼풀을 깜박여댔다.
손가락으로 툭하니 금접을 친 은성이 손을 내려 검후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은 채로 내달리는 배의 가장자 리에 이는 흰 포말을 바라보았다.
수뇌들은 물론이고 초극고수들 조차 타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게의치 않는다는 행동이었다. 검후도 그런 은성 의 행동이 싫지만은 않은지 은성에게 몸을 기댄 채로 초록으로 반짝이는 호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은성과 검후의 관계를 진즉부터 눈치챈 수뇌부들은 별다른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못볼 것을 보았다는 표정으로 은성과 검후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무당파의 초극고수이면서 술 법으로 천신조차 움직일수 있다는 삼천진인(三天眞人) 이었다. 혼인도 하지 않은 남녀가 부끄러움도 없이 꼭 붙어 있음을 탓하려는 것일까?
아니었다. 삼천진인의 눈빛은 누구를 탓하고자 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긴장된 듯 하였지만 호기심어린 눈빛이었다. 그 눈빛이 고정된 곳은 검후의 윤기 도는 검은 머리에 꽂힌 금색 나비모양의 장신구였다.
"검후! 머리 장신구를 잠시 빌려줄수 있겠나?"
은성과 함께 물보라를 구경하다 고개를 돌린 검후는 삼천진인의 난데없는 요청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두눈을 빛내었다. 무림의 대선배가 요구해오는 것이니 잠시 빌려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금접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이 느껴질뿐만 아니라 은성이 처음으로 선물한 장신구로 무척이나 소 중히 여기는 물건이었다. 머리위로 손을 올리면서도 아쉽다는 듯이 자꾸만 손이 멈칫거려졌다.
"무엇 때문이신지요?"
옆에 있던 은성이 난처해 하는 검후를 대신하여 물었다.
"음... 저 장신구는 예사 물건이 아닌 것 같네. ..요기(妖氣)가 느껴진다네."
삼천진인의 말이 끝나자 검후는 무슨 말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제는 은성이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술법과 귀신을 살피는 능력이 탁월한 삼천진인이다 보니 금 접에 수상한 기운이 어려있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저..진인께서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제가 선물한 물건인데 장신구를 만들면서 연모(戀慕)의 염(念)이 가득 담겨져서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은성의 말을 듣던 검후가 얼굴을 붉힐때 은성은 삼천진인에게 따로이 심어를 보내고 있었다.
[실은 제가 검후를 보호하기 위해 강기(剛氣)에 유령을 봉인하여 선물한 것입니다. 검후에게는 알리지 않았는 데 위급지경에만 현신하여 검후를 도와주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은성의 심어를 들은 삼천진인이 태연한 신색으로 고개를 끄덕이었다.
"허허! 그랬었던가! 연정이 지극하여 생기를 발할 정도라니 드물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진실로 부러 운 한쌍이구려."
은근한 어투로 검후의 볼을 더욱더 붉게 만들었지만 머릿속은 은성이 한 말을 되새김질하며 뒤죽박죽 혼란지 경에 빠져 있었다.
[그 무슨 말인가? 강기에 유령을 봉인할 수 있다니..무슨 말도 안되는..그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도인답지 않게 성질 급한 질문이었다.
"하매의 미모를 돋보이기 위한 장신구였는데 그 효능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두사람의 시선이 은성을 향했다. 두사람의 시선을 동시에 받은 은성이 입가에 미 소를 한아름 짓는가 싶더니 천연덕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매의 미모에 가려 장신구가 전혀 돋보이지 않으니 기껏 선물한 보람이 없어서 하는 말입니다."
"참 오라버니도...."
너무도 노골적인 칭찬에 검후가 수줍은 듯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창피함을 가리기 위함이었지만 목 부위까 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험..험! 이것 참나."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될지 몰라 헛기침을 터트리는 삼천진인의 머릿속으로 차분하니 은성의 심어가 들려왔다.
[진인, 설명하자면 시간이 길어질 듯 한데 오늘 저녁에 시간을 내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입조차 벙긋하지 않았지만 혜광심어처럼 은밀히 진행되는 둘만의 대화였다.
"젊은 사람들 틈에서 내가 괜한 주책을 부렸나 보군. 늙다리 도인은 물러갈 터이니 둘이서 계속 좋은 시간을 갖기 바라네."
은성의 닭살이 돋는 듯한 말에 못내 적응할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삼천진인이 후비적 후비적 멀어져 갔다.
그래봤자 사장여나 떨어진 곳이었지만 말이다.
"치! 오라버니는 어쩜 그런 말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해요."
검후가 살짝 눈을 흘기며 말을 하는데 은성의 얼굴은 아직도 미소가 머물고 있었다. 후다닥 검후 옆으로 다가 와 좁은 어깨를 꼬옥 끌어 안으며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어때, 기발한 작전이지? 한방에 보내 버렸잖아!"
"풋!"
검후가 한손을 들어 급히 입을 막으며 웃음보를 터트렸다. 그러더니 뒤로 돌아 은성의 어깨를 앙증맞게 토닥 이었다.
"오라버니 못됐어."
누가 들을까봐 나직이 속삭이면서 말이다.
"정말이야. 금접도 예쁘지만 하매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새발의 피야. 눈에 띄이지도 않는걸!"
검후의 양어깨를 부드러이 감싸 안은 은성이 하얀 목덜미로 시선을 낮추었다. 시선을 머리위로 두지 않은 것 은 정말 다행이었다. 금접이 샐쭉하니 눈을 흘기며 은성을 노려보고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