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황정허무검(139)
천망애의 가장자리 까지 다가간 중년인이 망망대무(茫茫大霧)를 바라보았다.
은성과 적하진인은 목전에 없는 듯한 태도였다. 절벽 밑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온 안개가 중년인의 발목을 타고 올라왔다. 무릎 언저리까지 안개에 잠긴 중년인의 뒷모습이 구름 위에서 하계(下界)를 바라보는 천선(天仙)의 모습인양 신비스러웠다.
"당신이 현천교주이오?"
적하진인도 어느새 중년인의 등 뒤에 이르러 있었다.
"....."
묵묵부답 이었다.
중년인은 여전히 자욱이 퍼진 안개바다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한참이 지난 후에 뒤를 돌아보았다. 탈 속한 선인인양 현기어린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안광이 매우 부드러워 보였다.
"안목이 없군... 현천교주가 나를 신처럼 받들어 모신다면 이해가 가겠소?"
"신(神)! 그렇다면 이 모든 사태의 주모자가 바로 당신....."
적하진인이 바짝 경각심을 돋우웠다. 불안감이 일시에 몰려왔다. 저자가 현천교의 최고 수뇌라면 대사형은.. ...
'스팟!'
[이대협, 잠시만 시간을 끌어주게!]
은성만이 들을수 있는 심어를 날린 후 대사형의 수련장인 천중동(天中洞)으로 몸을 날렸다. 적하진인이 몸을 날리자 뒤쪽에 서 있던 은성이 몇 발 앞으로 다가섰다.
"현천교주와 백만의 교인들이 신처럼 받들어 모신다고 하셨는데 그만하면 된 것 아닌지요. 부족한 것이 없을 뿐더러..무력으로 중원을 도모해 보았자 얻을 것도 없지 않습니까?"
은성의 질문이 의외였을까?
깊이 가라앉아 있던 중년인의 눈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연후 새삼스럽게 은성의 눈빛을 바라보더니 쓴 웃 음을 지었다.
"대단한 젊은이로군. 대단해... 하지만 아쉽군..."
무엇이 그리 아쉽다는 말일까?
중년인은 은성의 명이 길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함인지 잠시 뜸을 들인 중년 인이 뒷말을 이었다.
"자네 말대로 중원을 정복해 보아도 나의 마음속 갈증은 풀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네. 하지만 그들에게 나의 능력을 입증해 보일수는 있을 것이네....."
조금은 허탈해 하는 목소리였다.
"그들? 그렇다면 당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더 있다는 말입니까? 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이 처럼 무책임하고 잔인한 혈겁을 일으키다니..."
은성이 분기에 찬 목소리로 중년인을 날카롭게 질책하였다. 장내에 찬 한기가 일었다. 그런데 은성이 발하는 한기보다 몇 배나 차갑고 살기에 찬 기운이 뒤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품에 누군가를 안아든 채로 허공을 날 아오는 적하진인 이었다.
다가오자마자 냉혹한 목소리를 발했다.
"대사형을 헤친 사람이 당신이오?"
격한 감정을 분노로써 표출하고 있었다.
"허허! 보면 모르겠소! 세분 모두를 상대하려고 왔는데 한명밖에 없어서 상당히 아쉬웠다오. 할수 없이 한명 을 먼저 명부로 보내 드리고 남은 두분을 기다리는 중이었소."
오만하기 이를데 없는 중년인이었다. 반선의 경지에 오른 세명을 혼자서 상대하러 왔다니.....
"이놈! 능력이 혓바닥을 받쳐 주는지 보겠다."
두눈에서 분기를 쏟아내며 적하진인이 대사형의 시신을 허공부양의 수법으로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기대 하시게!"
짧게 끊어치는 소리였다.
그런데 중년인의 외침이 끝나는 순간 은성의 옆에 있던 적하진인이 뒤로 나뒹굴어 졌다. 암격에 당한 듯 얼굴 이 백지장처럼 하애지더니 이윽고 피를 한사발이나 토해 내었다. 십장여나 밀려나 간신히 한쪽 무릎을 일으켜 세운 적하진인이 원독에 찬 눈빛을 발했지만 괴인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훈계까지 하였다.
"도(道)란 모름지기 아침에도 도이고 저녁에도 도이며 , 살아서도 도이고 죽어서도 도이어야만 하는 것이오. 한순간도 도를 놓침이 없이 경계해야 하거늘 사소한 정(情)으로 평정을 잃다니..... 당신네 사형제들의 한계 이오."
중년인의 능력을 간과하고 호신기공을 채 펼치지 못한 적하진인이 암격에 당하는 순간 은성은 이미 허공으로 몸을 도약하고 있었다. 태극진기로 호신기공을 겹겹이 쌓은채 묵귀영의 신법으로 허공에 수많은 잔영(殘影)을 만들었다. 반선의 경지에 이른 적하진인이 단 한수에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은성이었다.
아마도 심기에 당한 것이리라.....
심안이 사라진 지금 심기에 대처할 방도가 전무한 형편이었다. 심안이 있다고 하여도 심기를 온전히 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호신기공과 천하제일의 보법인 묵귀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야릇한 미소와 함께 자신을 주시하는 중년인의 눈빛을 바라본 은성은 허상이 중년인에게 전혀 통하지 않음을 알수 있었다.
심안처럼 사물의 본성을 꿰뚫어 볼수 있는 능력을 중년인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거리를 좁혀야 한다.'
본능이 속삭이는 소리였다. 심기를 사용하는 고수와 거리를 둠은 자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선제공 격 이었다.
"스팟!"
묵귀영의 신법으로 공간을 단축시키며 달려드는 은성에게서 수많은 검환이 쏟아져 나왔다.
조사지공중 인일삼(人一三)의 수법이었다. 검환은 뇌전처럼 빠르게 쏘아지는 것도 있었으며 방원 일장을 환하 게 비추이며 느리게 다가가는 것도 있었다. 너울 너울 춤을 추는 검환도 있었으며 멀리 돌아 큰 타원을 그리 며 쏘아져 가는 검환조차 있었다.
하지만 중년인은 너무도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검환을 쏘아 보낸후 화룡검에서 칠장이나 되는 붉은 검강이 피 어올라 허리어림으로 다가오는 데에도 눈썹 한번 까닥이지 않았다.
"터텅! 픽."
불꽃 놀이를 하듯 검환이 중년인과 두자나 떨어진 허공에서 폭멸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여유를 느끼던 중년인의 몸이 심하게 출렁거려졌다. 일반진기에 비해 몇배나 위력적인 태극진 기를 얕잡아본 댓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다른 검환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눈부시게 선명한 검환이 호신기 공에 부딪혀 폭파할 적에는 주춤하니 한 발자국 뒤로 밀려나기도 하였다.
그제서야 여유로움에서 벗어난 중년인이 천지를 두 동강 낼 듯한 기세로 허리쪽으로 다가오는 검강을 향해 전 신지력을 다 쏟아 방어하였다. 심기를 다 쏟아 방비한 때문인지 붉디 붉은 검강을 빗겨나게 만들었지만 은성 이 쉽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경각심이 든 모양이었다.
허공으로 튀어올라 은성에게 덮쳐 오는데 신법의 빠름이 묵귀영에 버금갈 정도였다. 오면서 무차별적으로 심 기를 날린 듯 호신기공에 감싸진 은성의 몸이 이리저리 허공중에 휩쓸렸다.
심기로도 부족한지 보랏빛 진기마저 뿜어져 나왔다.
자광(紫光)은 구름속에서 빠져나오는 양광처럼 삽시간에 은성이 머물던 허공을 꿰뚫었지만 어느새 은성은 그곳을 벗어나 있었다.
공격이 실패한후 절대절명의 위기감을 느낀채 묵귀영의 신법으로 중년인의 공격을 피하던 은성은 잃었던 심안이 조금씩 살아남을 알수가 있었다.
중년인이 펼치는 심기가 매우 미세하니 느껴져 왔다.
너무 늦게 알아채는 바람에 등뒤에 일격을 허용 당했지만 호신기공 덕분인지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순간 이동한 은성이 흔들리는 심신을 안정시키며 손가락 끝에 작은 검을 만들어 내었다.
무형시(無形矢)였다.
진기가 흐트러져 세 개밖에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현재로서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허공중에서 갑자기 선회한 은성이 묵귀영을 극한으로 펼쳐 중년인과 가까워지면서 무형시를 발사하였다.
하지만 단 두개밖에 방출시킬수가 없었다.
한개는 진기가 달려 손가락 끝에서 허무하니 스러져 버렸다.
그러나 빛조차 꿰뚫을 정도로 섬전처럼 날아간 무형시는 중년인의 백의 끝자락만 찢어 놓은채 흐릿한 운무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말았다.
그리고 걷잡을수 없는 기세로 몇줄기 심기가 닥쳐 들었다.
중년인과 가까워진 탓으로 또다시 심기에 얻어맞은 은성이 허리가 반으로 접힌채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내상으로 호신기공 마저 약해진 것이다.
무방비한 상태로 날아가는 은성에게로 또다시 중년인이 신형을 번뜩이었다.
그대로 방치해도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죽을 것이 뻔했지만 이왕이면 확실히 해 두고자 하는 일종의 결벽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뒤엉켜 꽈리를 튼 모양으로 와류처럼 회전하던 보랏빛 강기가 은성의 몸에 닿기도 전에 중년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은성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등 뒤의 적하진인을 잠시 소홀히 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것이다.
중년인도 은성과 같이 천망애 아래로 떨어지고 있을까?
아니었다.
천망애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인영은 은성 단 한명 뿐이었다.
적하진인의 일격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중년인은 중상을 입지 않은 듯해 보였다.
허공중에서 몸을 틀어 가공할 속도로 적하진인에게로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둘 사이의 공간에 번갯불 같은 광망이 일렁거리고 대기가 폭발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컥!"
무형시를 방출한후 중년인의 심기에 적중당한 은성은 일순간 숨이 막혀져 왔다.
정신조차 아득하여 영혼이 혼돈의 어둠속에 갇힌 듯 아득해져 갔다.
그런데 혼미해진 의식속에 섬전이 일고 꿈결인양 뇌성벽력이 울려 퍼졌다.
머릿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엄청난 충격으로 감각이 사라지고 의식조차 희미해져 가더니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져 오기 시작하였다.
억겁의 혼암속에 잠겨든 것처럼 몽롱했던 의식이 밝고 환하게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밝고 환한 의식의 정중앙을 찰나적으로 꿰뚫는 섬광이 있었다.
"대삼합육(大三合六)"
그토록 오매불망 깨닫기를 학수 고대하던 천부경의 구절이었다.
순간 시간이 영원속에서 멈춰진 것 같았다.
천연(天連)이 닿으면 찰나의 시간에도 깨달을수 있는 것이 도(道)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대삼합육' 이라는 네글자로 인해 은성은 순간적으로 진허(眞虛)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고 진무(眞無)의 상태는 아니었다.
의식속에 선연히 떠오르며 대삼합육 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은성이 진허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깊이를 더하는 동안 은성의 육체에서는 깨달음의 경지가 서서히 시현되어져 가고 있었다.
은성의 중단전에 형성된 내단으로 인중에 고인 심기들이 스며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폐쇄된 상단전은 어느새 뚫려져 있었다.
머릿속에 섬전이 일고 대 폭발이 발생하면서부터 인지도 몰랐다.
인간은 불완전한 동물이다.
하지만 소우주인 인간은 완전함을 이룰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몸속에 내재된 천지인 삼재의 조화인 정?기?신(情氣神) 을 합일시켜야만 가능하였다.
하지만 정기신을 완전히 합일시키기처럼 어려운 일도 없었다. 정을 다스려 기를 모으고 이를 기반으로 신을 키운후 정기신의 감각을 순일한 상태로 유지 성장시켜야 했다. 그것도 조화의 경지까지 성장시켜야 하는 것 이다. 비로소 기에 정이 깃들여 내단을 형성시킬수가 있다.
천기와 지기가 아무리 넘쳐나도 뭉쳐져 단을 형성하지 못하는 이치는 정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은성의 정과 기의 결정체인 내단(內丹)으로 신(神)의 결정체인 심기가 스며들자 은성의 내단이 여의주처럼 칠 색 서기(瑞氣)를 내뿜기 시작하였다. 칠색 서기는 은성의 바깥으로도 은은히 뻗어 나가고 있었다. 서기는 서 서히 회전하는 내단을 감싸고 더욱더 휘황찬란한 빛을 더해갔다.
그러자 천망애 아래로 추락하는 속도도 서서히 감소되어지기 시작하였다. 은성이 대삼합육(大三合六)이라는 글자에 대한 깨달음이 깊어져 갈수록 서기가 짙어져 가더니 이윽고 서기가 은성의 중단전 부근에서 조금씩 치 솟아 오르며 은성의 얼굴 쪽으로 이동하였다.
목을 지나 서서히 올라간 서기가 멈춘 곳은 은성의 상단전 이었다.
한참 동안이나 상단전에서 머물며 찬연히 뿜어져 나오던 서기는 굳게 닫힌 은성의 양쪽 눈으로 흘러들더니 더 욱더 밝은 빛을 뿜어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서기가 은성의 백회혈 쪽으로 파고 들어갔는지 백회혈에서 뿜어 져 나와 다시금 상단전 쪽으로 스며들어가면서 서서히 희미해져 가기 시작하였다. 서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일 각여나 지난후에야 장엄한 표정을 짓던 은성이 진허의 경지를 빠져 나오며 서서히 두 눈을 떴다.
두 눈을 떴지만 은성은 그대로 누워 있었다. 방금전 자신이 도달한 경지에 대한 넘치는 희열 때문이었다.
천부경 81자중 '대삼합육'이라는 네글자에 대한 깨달음만으로 은성이 얻은 것은 너무도 거대하였다. 말로 형 용할수 없을 정도였다. 심기를 둘러보니 중단전에 위치한 내단은 물론이고 태극진기 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아쉬울 것은 전혀 없었다. 무형의 심기가 바로 유형화 되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이제는 태극진기 없이 심기 만으로도 유령왕과 같은 존재를 만들어 낼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왠지 심기가 마음과 혼연일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전처럼 상단전에 간직된 심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곧 심기인 진정한 심즉통(心卽通)의 경지에 도 달한 것 같았다. 심즉통의 경지는 동방파의 시조인 덕수선인이 남긴 미완의 경지로 얼마전까지 은성이 펼쳤던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의 무공경지보다도 한단계 위의 경지이기도 하였다.
은성이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오늘의 깨달음으로 은성은 허무경 팔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허무경 팔단계 는 영안이 트이고 미래에 대한 예지가 어느정도 가능하며 완전해지면 영육이 몸을 벗어나 공간 이동이 가능한 경지였다.
의지가 일자 몸이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몸을 똑바로 세운체 뇌전처럼 쏘아가던 은성은 천망애 위쪽에서 또다른 물체가 떨어져 내려옴을 발견하였다.
심기가 일자 낙하하던 물체가 속도를 잃고 자연스레 은성의 품안에 안겨져 왔다.
적하진인이었다. 의지속에 분노가 일었는지.....
은성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천망애로 올라오니 중년인은 한가로이 청학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반선인 적운진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쉬리리릿'
기다리던 적하진인 대신에 은성이 올라서자 매우 뜻밖이라는 눈빛이었다. 잘못 보지는 않았는지 눈을 크게 뜨 고 은성을 살펴보았다.
"죽지 않았나?"
이상한 질문이었다.
"죽었었소."
그에 걸맞는 대답이었다.
"죽었었다고....!"
양 미간이 찌푸려 지는 것으로 보아 이해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천축에서 왔소?"
이번에는 은성이 뜬금없는 질문을 하였다.
"아니, 어떻게 알았나? 혹시 그들이....."
말끝을 흐린 중년인이 피식 실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그럴리는 없지....."
중년인이 나직이 중얼거릴때 은성은 품안의 적하진인을 심기로써 멀찍이 옮겨놓고 있었다. 중년인에게 진 빚 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에는 제가 죽었지만 이제는 당신이 죽어야 할 것 같소."
"내가..? 자신 있나?"
주제를 알라는 듯한 말투였지만 내심 긴장되었는지 안색이 다소 굳어져 있었다. 절벽 아래에서 솟구쳐 나온 은성이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인양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비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
말을 채 끝 마치지 못한채 은성의 신형이 일장여나 이동하였다.
중년인이 심기로써 공격해온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었다. 심기의 공격이 심안에 확연히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전에 적하진인과 심기를 겨룰때에도 간신히 느낌만이 있었을뿐 이처럼 선명히 알수는 없었는데.....
깨달음으로 심안이 영안의 경지에 다다른 것을 은성이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은성이 심기를 피할수 있음이 의외인 듯 중년인이 하늘을 가로질러 놀라운 속도로 은성을 덮쳐왔다. 덮쳐 오 면서 몇가닥 심기 공격을 가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은성은 전의 은성이 아니었다. 심기가 운용된 묵귀영은 태극진기가 운용된 묵귀영에 비할 수 없을 정 도로 빠르고 말이다. 중년인에게로 마주 날아가며 심기를 피해 번개처럼 번쩍이는 은성의 손끝에는 어느새 무 형검이 들려져 있었다.
은성의 놀랄만한 신법에 중년인의 두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처 은성의 위치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무언지 싸늘 한 기운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감을 느끼고는 전율이 이는지 몸을 떨었다.
은성은 어느새 그를 지나쳐 뒤쪽으로 사라져 가고 없었다. 허공중에 멈칫하여 몸을 멈추자 잘려진 몸체가 관 성을 이기지 못하고 제각각 쏠려 나아갔다. 두부에서 발끝까지 십여가닥으로 분리되어 흩어져 나간 것이다.
육편은 땅에 떨구어지면서 또다시 두조각으로 분리되었다.
무형검으로 동방파의 유성검법을 펼친 결과였다. 세로로 한번 그은후 가로로 연이어 펼쳤지만 은성도 유성검 법이 이토록 가공할 속도로 펼쳐질수 있음은 의외일 정도였다.
현천교의 실질적인 수뇌인 중년인을 처치한 은성이 땅에 착지한 곳은 화룡검이 떨구어진 장소였다.
화룡검을 주워들고 적하진인에게로 가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더니 그대로 적하진인에게로 걸어갔다. 멈추어 설때 심기를 발했는지 중년인의 처참한 육편조각들이 일시에 떠올라 천망애 아래 안개 바다로 떨어져 갔다.
적하진인에게 다가선 은성이 적하진인의 백회혈에 한손을 가져다 대었다.
절벽에서 올라오면서 한줄기 심맥이 희미하게 뛰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백회혈은 인체에서 최대 사혈(死穴)이었다. 하지만 최고의 생혈(生穴)이기도 하였다.
'생즉사(生卽死), 사즉생(死卽生).....'
일각여나 지났을까?
은성의 안색이 조금 환해졌다. 손을 뗀후 사방을 둘러보고 안전함을 재확인한 은성의 신형이 바람처럼 사라졌 다. 할일이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자소전에 도착한 은성은 아직도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음을 볼수 있었다. 현천교의 교주로 추정되는 자 의 무공은 상상 이상이었다. 다른 한명의 조력자가 있다고 하지만 단 둘이서 천망애의 적운진인과 막상막하로 대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천교의 교주 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돕는 조력자들의 무공은 청령전을 침입했던 괴인들보다 우세할 정도였 다. 싸우다 당했는지 한명이 죽어 있었지만 그들에게 당한 곤륜 무인들의 시체는 언뜻 보아도 백여구가 넘었 다. 그중에는 장로급에 속하는 무인들도 섞여 있었다.
화룡검에 심기를 불어넣자 여전히 붉은 검강이 튀어져 나왔다. 태극진기가 사라졌지만 심기로 진화기를 운용 하여 흘러 보냈기 때문이었다.
'번쩍'
하늘에서 붉은 뇌전이 내려치고 있었다.
우연인지 공교롭게도 뇌전은 적운진인과 뒤엉켜 들었다가 떨어져 나간 현천교주를 향해 있었다. 이상한 예감 이 들었는지 하늘을 응시한 현천교주의 안색이 하얗게 탈색되어져 버렸다. 피하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 을 감지한 것 같았다. 두눈을 꼭 감은채로 그렇게 현천교주도 명을 달리하였다.
붉은 뇌전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잘려져 나간 현천교주의 목만 둥실 떠올라 있었다. 느닷없는 변고에 망연 자실하던 조력자 한명도 넋을 놓다가 적운진인에게 당하니 전세가 급격히 변해져 버렸다. 한치의 우세도 점칠 수 없던 전장에서 힘의 우열이 확연히 드러나는 판세로 돌변한 것이다.
허공에서 내려서며 현천교주의 목을 받아든 은성이 다시금 방향을 바꿔 청령전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적들을 물리친후 천망애로 가보라고 적운진인에게 심어를 보낸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