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124화 (124/152)

[연재]황정허무검(124)

검끝에 천지자연의 조화가 깃든 초극의 검법.

비록 그 무한한 검의를 온전히 파악할수 없어 본 위력의 십의 일조차도 표출해낼수 없었지만 일자혜검은 아직 도 무림의 전설이었다.

그 무량한 진경을 깊숙이 참오(?悟)하기 위함인가?

은성의 두눈이 살며시 닫혀졌다.

일각, 이각 그리고 반시진여 동안이나 닫혀 있었던 은성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이미 반박귀진의 경지를 넘어 선 은성의 눈빛이 변화될리는 없었지만 반시진 동안이나 별의별 상상을 하며 지켜보던 진허는 은성이 뭔가를 깨우쳤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은근한 기대를 담은 눈빛으로 은성을 지켜 보았다.

은성이 한손을 들어 가만히 앞을 가리키자 안력을 최대한 집중하여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관찰하였다. 아직은 주변에 변화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은성의 손이 느리게 그것도 아주 느리게 우측으로 이동되었다.

"아!"

순간 진허는 무언가 무량한 순리가 그를 꼼짝 못하도록 옭죄어 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숨이 콱 막히어 오고 온몸을 옴짝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오직 죽음의 공포만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정신을 하얗게 표 백시켜가고 있었다. 지옥의 염왕을 마주한 듯이 오직 죽음만이 존재하는 지옥의 겁화였다.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하며 생을 포기하려는 순간 죽음의 사기(死氣)가 급속도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이번에 는 생기가 밀려 들어왔다. 온몸에 활력이 넘치고 주변에는 봄이 아닌데도 새싹이 돋아나올것만 같았다. 환희 에 찬 표정으로 은성을 보니 우측으로 움직이는 손이 아직 반도 이동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은성의 손이 가리키는 곳은 아름드리 고목들이 즐비한 숲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사기와 생기가 교차하는 데에도 숲이 조금도 변화하지 않다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없는 숲 에 질문을 던질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선을 돌려 은성의 손끝을 주시하던 진허는 어느 순간부터 은성의 손이 더 이상 우측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미세하니 진동하고 있었지만 고정된 자리였다. 그에 따라 주변을 온통 감싸고 있던 알 수 없는 생기도 급격히 감소되어졌다. 은성의 손끝이 축 쳐져 밑으로 내려오자 언제 무슨일이 있었느냐는 듯 숲은 평상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은성의 눈빛도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초연한 빛을 띠고 있었다. 초연한 눈빛도 잠시 얼굴가득 웃음을 안고 자신에게 다가왔다.

"오늘 도우님 덕택으로 천외천의 무공을 견식할 수 있었습니다. 제 배움이 아직은 부족하여 무공의 진의를 완 전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깊고 신묘하기가 여타 무공에 비교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견식케 해준 은혜 감사하기 한량 없습니다."

장삼봉 조사에게서부터 전해진 무공이니 깊고 신묘하기야 하겠지만 너무 추켜 세우는 것은 아닌지 마음 한켠 으로 의아해 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무당 무공의 심오함을 인정해 주는 소리를 들으니 사문에 대 한 자랑스러움에 가슴이 뿌듯해지고 어깨에도 제법 힘이 들어가지는 진허였다.

단 두 번 본 것으로 얻어봐야 한정된 일부이겠지만 나름대로 얻은 것이 많다고 하니 그 또한 반가운 말이었다.

"이대협께서 단 두번 본 것으로 이 무공의 진의를 파악해 내셨다 하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혹시 제가 펼치면 서 실수한 것이 있는지요?"

예의상 내뱉은 말이지 무엇을 기대하고 한말은 아니었다.

수년동안 고심하며 갈고 닦은 초식을 단 두 번 밖에 보지 못한 초심자가 어떤 조언을 해줄수 있다는 말인가?

자신에게 너무나 큰 은혜를 베푼 은성에게 보답키 위해 무당파가 자랑하는 무공을 견식시켜 주면서 혹시나 거 절할까 저어되어 달았던 조언을 바란다는 억지 조건 때문에 의례히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은성의 대답은 그의 상상 밖이었다.

"초식이 너무나 심오하고 현묘하여 저 또한 자신할 수 없어서 깊은 조언을 드릴수 없는점 유감스럽게 생각합 니다. 초식을 살펴보니 앞 부분에 조금 길었던 자세들 만으로도 각개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수 있겠으나 앞 부분의 자세들은 뒷부분에 펼치신 단 한수에 모조리 축약되어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날카로운 안목이었다.

일자혜검의 진수는 제일 뒷부분에 평범하니 가로로 내지르는 한수에 요약되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앞부분의 자세들도 각개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수 있다는 말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 은성이 뒷부분의 위력만을 보고 지레 짐작한 것 같았다. 어쨌든 뒤에 펼쳐진 한수 속에 모든 위력이 갈 무리되어 있다는 것을 안 것만 하여도 대단한 안목이었다. 은성의 설명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도우님의 무공 경지는 마음에서 하고자 하는 바가 거리낌이 없는 단계를 넘어서고 형(形)과 마음을 모두 버 리는 형의구망(形意俱忘) 단계로 들어섰는데도 불구하고 초식으로 전해지는 무공이란 미명 때문인지 아직도 초식에 연연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무공과 마찬가지로 이 무공도 형의구망의 단계에 접어들어야만 진정한 진의를 깨우치실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얻게 되는 성취는 지레 짐작키 어려울 것입니다."

"아!..... 그것 때문이었구나!"

뇌리속에서 무언가 와장창 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순 먹구름이 걷히듯 머릿속이 환하게 트여져 밝아져 왔다.

"하하하하! 맞다, 맞어. 하하하하! 야호!"

진허가 감정 통제가 되지 않는지 미친듯이 웃더니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더니 갑자기 은성에게 보여주었던 일자혜검을 펼쳐 보였다. 처음에 은성에게 보여줬던 것과는 또다른 무 공이었다. 같은 무공이었지만 왠지 달라보이는 것은 시전자의 무의(武意)가 변화되어졌기 때문이리라 .....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니면 생각같이 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진허는 계속해서 동일한 초식을 반복해 연습하고 있었다. 동일하면서도 다른 것은 은성의 조언에 따라 머릿속 에서 잠시 스쳐간 깨달음이 조금씩 초식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쨌든 초식이 반복되어 질수록 무공의 진정한 위력이 조금씩 살아나는 것이 느껴지자 은성의 미소도 조금씩 짙어져 갔다.

깨달음을 얻었지만 온전히 무공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몇 달은 걸릴 것이었다. 이처럼 분발한다면 그 기한이 조금 짧아지겠지만 말이다. 진정한 형의구망에 접어들면 무공의 위력이 세배는 강해질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형의구망이 이 무공의 진의를 완벽히 밝혀주는 것은 아니었다. 천지자연의 이치가 담긴 무공의 진의를 껍질 정도나마 파고들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하긴 천비지서(天秘之書)인 천부경의 내용에 깊은 깨우침이 있는 자신도 반 정도밖에 성취가 없을 정도로 심오하기 이를데 없는 무공이었다. 설령 진의를 설명해 준다 하여도 우이독경이 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신들린 무당마냥 무념무상의 상태로 검무에만 열중하는 진허를 바라보던 은성도 조금 멀찍이로 물러나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빠져 들었다.

진허와 마찬가지로 그도 일자혜검의 진정한 오의를 깨우치기 위함이었다. 비록 깨우쳐 익히고자 하는 수준은 달랐지만 그 열망만은 비슷한 것 같았다. 두 눈을 감자 은성도 금새 깊은 성찰속으로 잠겨 들어가 버렸다.

은성이 명상속에서 눈을 뜬 것은 한시진이 넘어서였다. 한시진동안 천부경의 전반부 내용을 구체화시켜 하나 의 검법을 완성시키는 큰 틀을 맞추어 가고 있었지만 생각같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천지간의 모든 이치가 담 긴 천서의 내용을 글이 아닌 무공으로 그것도 단 한초식속에 담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었다.

그런데 상식을 벗어나는 파격을 무당의 일자혜검에서 발견한 것이다. 진허의 시범을 보며 가능성을 얻었을 뿐 이지 진의(眞意)가 상실되어 조잡한 초식으로 전락한 일자혜검에서 실상 은성이 얻을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 가능성 하나를 큰 기둥으로 삼고 밑그림을 그리고 틀을 맞춘후 지붕을 얹고 단장을 해야 하는 것은 온전한 은성의 몫이었다.

일자혜검이면서 일자혜검과는 전혀 다른 은성만의 일자혜검이 머릿속에서 서서히 구체화되어져 가고 있었다.

초식명도 달라야 할 것이다.

무엇이 좋을까?

천지간의 모든 이치가 담기어졌으니 우주진검(宇宙眞劍)이 좋을까?

아니면 인간으로서는 익힐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심오난측하니 천외신검(天外神劍)이 좋을까?

둘다 마음에 들었지만 아직은 성급한 결정이었다.

아직 검법조차 완성되지 못했는데 초식명부터 확정지으려 하다니..... 실웃음을 지으며 나름대로 무당의 일자 혜검을 발전시키기 위해 가열찬 노력을 기울이는 진허를 바라보았다. 은성이 깨어난 이유가 미친 듯이 일자혜 검을 연습하던 진허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던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듯 동작을 멈추고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든 것처럼 보이던 진허가 또다시 일자혜검을 진중히 펼쳐 내었 다. 이번에는 긴 초식이 아니었다. 앞부분의 자세는 모두 생략하고 진정한 오의가 담긴 마지막의 한 자세만을 펼쳐내고 있었다. 초식에 사로잡혀 초식속에 담긴 오의를 파악하지 못한채 배우고 익힌대로 무작정 펼쳐내던 진허의 모습이 아니었다.

초식속에 진정한 무의가 깃들인 부분만을 가려 펼쳐내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라 할수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검법속에 깃들여져 펼쳐지고 있었다. 서서히 검을 가로뉘여 뻗어가는 진허의 검끝에서 노을처럼 뻗혀 져 가는 기세가 있었다. 그 기세는 검강처럼 강하고 빨랐지만 또 다른 기운이 서려 있었다.

바로 세상을 압도할 듯한 거대한 두려움에 몸과 마음이 얼어붙어 사지를 꼼짝 달싹도 할수 없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듯한 기운이었다. 아직은 기세만이 뻗혀 나오지만 진허의 진경이 높아지면 다를 것이다.

기세가 형상화되는 경지에 이르면 무적의 일자혜검이 완성되어질 것이었다.

"스르르르....쿠쿵..콰다다당."

진허의 시연이 끝난 직후 진허에게서 삼장여나 떨어진 곳에 위치한 거대한 고목 세그루가 베어지며 거대한 울 림과 함께 땅으로 쓰려져 버렸다. 초식을 마무리한 진허가 바라보아도 놀랄만한 일이었다.

검강을 펼칠수는 있었지만 기껏해야 한그루 그것도 일장이상 떨어져서는 자신할수 없었던 과거였다. 그 과거 라는 것도 기껏해야 며칠전이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이 지난 오늘 자신이 보인 무위(武威)는..... 은성의 치 료 덕분에 내공이 급상승했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 정도라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내공뿐이라면 이러한 위력이 불가능할 것이었다.

자신이 이정도 위력을 발휘할수 있다는 것은 은성의 조언으로 깨달음을 얻어 일자혜검의 성취가 또 다른 경지 로 들어섰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가슴 벅찬 희열에 입술조차 파르르 떨려왔다. 깨달음이 아직 채 반영되 지 않은 일자혜검의 위력이 이정도라면 향후 자신의 성취는.....

"이..이대협!....."

진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뻔히 은성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속에는 고마움과 감사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깊은 신뢰까지 모두 깃들여져 있었다. 진심은 말이 아닌 눈빛 하나로도 충분히 전달할 수가 있 었다.

"도우님, 성취를 축하드립니다. 무당의 무공 덕분에 오늘 저도 세삼 안목이 트였습니다. 모두가 무림의 홍복 입니다."

진허의 경지를 보고 안목이 트였는지 아니면 일자혜검을 보고 자신이 얻은 무공진의 때문에 안목이 트였는지 조금은 애매한 말이었다.

사방은 벌써 어스름이 깃들여져 있었다. 시각을 헤아리니 술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둘다 일생에 다시 찾아오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기연을 접해서인지 쉽게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고 있었다.

영광된 이 자리를 좀더 기억해 두기라도 하려는 듯이.....

"도우님! 이 초식은 범상한 무공이 아니라 깊은 현묘지비가 담겨져 있는 천하절세 검법입니다. 혹시 숨겨진 비사라도 있는지요?"

은성으로서는 절실하면서도 참기 힘든 의문이었다. 해동 영산인 미륵산에 비밀리에 남겨져 있던 천부경의 일 부 내용이 이역만리 중원의 무공으로 승화되어 유구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니 의문이 없을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진허로서는 그냥 평범한 질문으로 받아들여졌다. 무공을 배운 사람으로서 그 무공의 내력을 알고자 하 는 것은 너무나 당연시 되는 심사(心事)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무공은 무당의 무공이면서 검법서가 남겨지지 않은 유일한 검법입니다. 현현자(玄玄子)라고 불리시 던 장삼봉 조사께서 우화등선하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펼쳐 보이셨던 검법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후대에 와 서 정형화된 검법서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왠일인지 구전되어 익히신 세분들의 검로(劍路)가 서로 다르고 모두가 자신의 무공이 진전을 이은 것이고 정통이라 주장들을 하셨기 때문에 검법서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들었습니다. 비록 검로는 다르지만 얼추 비슷하고 위력조차 비교키 어려워 그냥 일자혜검 이라 통칭하여 부르고 구전으로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무림에 알려지지 않은 비사였다.

아직도 무림인들은 일자혜검을 단 한개의 정형화된 초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다. 하긴 비슷비슷하게 생겼으 니 직접 당해도 쉬이 구별할 수는 없을것이 분명하였다. 게다가 절세 검법인 일자혜검과 두 번이상 맞부딪히 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할수 있었다. 일자혜검을 펼칠 정도의 무당 고수라면 상대에게 두 번의 기회까지 주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긴 설명을 하였지만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숨 한번으로 한가닥 여유를 되찾은 진허가 다시 말을 이었다.

"조사께서는 말년에 황정경(黃庭經)에 심취되어 있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데 언제 일자혜검처럼 심오한 무공 을 창안하셨는지..."

은성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황정경(黃庭經) 이라니요?"

하지만 이런 은성을 보며 진허는 자신의 말이 잘못 전해졌음을 느꼈는지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였다.

"아니..아니! 황정경은 무공서가 아닙니다. 도가에서 신선지경에 들기 위해서는 어찌 어찌 해야 한다는 말이 구술되어 있는데 너무 추상적이고 난해하여 지금은 서가 한쪽에 방치되어 먼지만 쌓여지고 있을 것입니다. 저도 조사님의 전설을 듣고 혹시나 하여 먼지를 털고 살펴 보았는데 머리만 아플뿐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 니다. 무도는커녕 문리조차 엉망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누군가가 심심파적으로 그럴듯하게 끄적여놓은 알 맹이 없는 잡서(雜書)로 판단돼 바로 덮었던 책입니다."

진허가 형편없는 책이며 거론할 가치도 없다고 평가절하 하였지만 은성의 생각은 또 달랐다. 우화등선 하였다 는 장삼봉 진인께서 눈이 없어서 말년을 황정경을 끼고 살았을리 만무하였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은 누구도 황정경을 거들떠 보지 않는다는 말인지요?"

은성의 말을 듣던 진허가 피식 실소를 지어냈다. 형편없는 잡서라는 평가는 그만이 내린 결론이 아니었다.

무당의 무공서 및 술법서 그리고 도가 관련 책자들은 그 중요도에 따라서 세 개의 서실로 나뉘어져 보관되어 지고 있었다.

일자혜검에 비견되어지는 태극혜검과 태극권등의 무공서들은 당연히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금령서실에 보 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황정경은 그 앞쪽에 위치한 은령서실과 무당의 문하제자라면 모두가 관람할수 있는 중 요성이 떨어지는 책들만 모아놓은 동령서실에 조차도 비치되어 질 수가 없었다.

황정경이 비치된 곳은 태령서실이라 불리워 지고 있는 곳이었다.

말이 태령서실이지 사실 서실도 아니었다. 무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조차 마음대로 관람할 수 있는 서실 이 바로 태령서실 이었다. 잃어 버려도 괜찮은 수준낮은 책들만 보관되어 있었는데 황정경은 그 속에서도 유 구히 보관되어 전해져 내려오는 몇 안되는 책들중의 하나였다.

"이대협께서 황정경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제가 나중에 기회를 봐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몇 년이던 기 한만 정해주시면 대여가능한 책입니다만 보시고나서 실망하실 것 같아 저어될 뿐입니다.?

책을 보고나서 실망하는 은성의 표정이 벌써부터 눈에 선명히 부각되는 진허였다. 그런데 예상외로 은성의 집 착이 대답했다.

"진허 도우님에게 미리 감사를 드립니다. 부탁 드리겠습니다."

은성의 공손한 부탁이니 안들어 줄수는 없었다. 그깟 잡서 하나로 자신에게 상상치도 못할 은혜를 가져다 준 은성에게 공치사를 받을수 있다니 황정경에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았다.

"걱정 마십시오. 이 대협의 은혜에 보답키 위해서라면 그보다 백배 어려운 일이라도 만사 제쳐두고 달려와 시 행할 것입니다."

"은혜는 무슨....."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한채 은성의 시선이 텅빈 하늘쪽으로 돌려졌다. 밤이 더욱 깊어져 어두워진 밤하늘로 무 언가가 쏜살같이 내달리다 직각으로 굽어지며 떨어져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이 멀고 심안이 없더라도 그 무언가의 정체는 알수 있을 것 같았다. 공기를 떨쳐 울리며 고요한 숲속에 굉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다 름 아닌 금아였다.

"은성아! 여기서 뭐하냐?"

금아가 붉은 눈동자를 두리번 거리다 한쪽에 선 진허를 발견하였다.

"저 퍼렇게 생긴 놈은 또 누구냐? 너한테 맞았냐?"

어두운 밤인데도 환히 보이는 모양이었다.

"금아야! 말을 곱게 해야지. 무당파의 진허 도우님이시다."

은성의 소개에 금아가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 거렸다.

"무당파? 그럼 저 퍼랭이도 작두타고 춤출수 있겠네?"

"으이그..."

금아는 검각산에 다녀온 이후로 더 짓궂어진 것 같았다. 날개를 퍼득여 진허에게 쪼르르 날아간 금아가 이번 에는 직접 물었다.

"야, 퍼랭아! 너 은성이에게 맞았다고 위에 이르면 안된다. 딸랑이 찬 무당들이 작두들고 쫒아오면....어! 이 놈은 작두대신 검을 들었네? 너 아직은 새끼 무당이냐? 작두 무겁다고 검 들고 다니래?"

정말 못말리는 금아였다. 진허조차도 뚱하니 두눈을 휘둥그레 뜰뿐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처럼 능수능란하게 말을 하는 것이 신기하였지만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고 혼자서 쏘아대는 통에 응대할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하지만 금아는 진허가 벙어리인줄 아는 모양이었다.

"에이! 무당하면 말빨인데 이놈은 형편없네 그려. 야이 푸르팅팅한 새끼 무당아! 진로를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이직(移職)해라! 이직.....내 쫄따구로 와라. 하늘을 나는 기술을 가르쳐 주마."

예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싸가지 없는 새가 연이어 쫑알대는 소리가 참으로 가관이었다.

어처구니도 없었다. 대꾸할 필요는커녕 상대할 가치도 없을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있는 진허가 재미없었는지 금아는 다시금 은성에게로 날아갔다.

"은성아. 애들 가려가면서 사귀어라. 검후같이 이쁜 개집애들이나 니네 사부처럼 멋진 수염을 가진 영감쟁이 도 아닌데 뭐하러 저런 덜떨어진 놈하고 시간을 죽이고 있냐? 괜히 찾는다고 나만 고생했잖아."

금아의 푸념에 무안해진 은성이 미안스런 눈빛으로 진허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도문의 대제자답게 수행이 깊 은 진허는 크게 불쾌해 하는 안색은 아니었다. 은인과 친분이 있는 영물인지라 화를 자재하는 건지는 몰랐지 만 어쨌든 금아에게 더 이상 실례하지 못하도록 따끔한 훈계를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괜히 영물소리를 듣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은성의 안색이 조금 변해진 것을 재빨리 알아챈 금아가 먼저 선수를 치고 들어왔다.

"야! 내가 뭐 때문에 너를 찾아 다녔는지 궁금하지 않냐?"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무슨 일인데?"

안색은 덜 풀렸지만 눈빛은 어느새 풀려 있었다.

"저쪽 현천교놈들 있는 쪽에서 난리가 났는가 보더라. 불빛이 번쩍 번쩍 하는데 구경하느라 다 나와있다. 의 리없게 우리만 볼 수 없어서 너 찾으러 다녔다."

며칠동안 조용하던 전세에 큰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진허와 시선을 마주친 은성이 급히 몸을 날리자 뒤따라 진허도 경신술을 발휘하였다. 은성의 어깨에서 벗어난 금아가 뒤따르다 말고 거대한 나무숲의 한쪽으로 비행경로를 바꾸었다.

'쌔애애액'

어찌나 빠른지 주변숲이 일렁거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숲 안쪽으로 날아든 금아가 뭔 일인지 깜짝 놀라며 허 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살펴보았던 숲의 일부분이 자신의 날개짓에 진동되어지자 가 루로 화해 산산히 바스라져 버렸던 것이다.

못되어도 몇십그루는 될 것 같았다. 이해할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직접적인 위협은 없었길레 안도하며 하늘높 이 솟구쳐 오른 금아가 급히 은성의 뒤를 따랐다. 은성이 일자혜검을 펼치면서 죽음만이 가득한 사기(死氣)가 집중되어졌던 숲의 일부분이었지만 금아가 이를 알리는 없었다.

'의리도 없이 혼자 내뺐다.'고 쫑알쫑알대며 속로를 내기에도 바쁜 금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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