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120화 (120/152)

[연재]황정허무검(120)

유령왕이 사라지자 은성의 몸도 두둥실 떠올랐다.

어느새 협곡의 정상에 이른 은성의 손에는 피묻은 청강검 한자루가 들려 있었다. 오행진기중 진수기를 주입하 자 검에 묻은 핏자국이 씻기우듯 사라져 버렸다. 좌정한 자세 그대로 눈을 감고 심기로써 심안을 발휘하자 유 령왕의 활약이 눈에 보이듯이 선명히 펼쳐졌다.

곤륜천문을 지나 놀라운 속도로 곤륜지로를 들어서던 현천교의 정예 고수들은 갑자기 협곡 위에서 이장은 될 듯한 거대한 바위들이 떨어져 내리자 기겁을 하고 말았다. 이장 정도 크기면 검기나 장력은 물론 검강으로도 쉽게 감당할수 없는 크기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떨어져 내리는 바위들이 하나같이 네모 반듯 했다. 그리고 바위들이 떨구어지기 시 작하는 지점도 협곡 정상이 아니었다. 그냥 평범하고 평탄한 절벽이 갑자기 거대한 바위를 토해내는 형국이었 다.

일시에 뒤로 후퇴한후 경공에 자신이 있는 듯 십여명이 원인파악을 위해 떨어지는 바위를 미꾸라지처럼 피하 며 솟구쳐 올랐지만 갑자기 불어난 바위세례에 순식간에 일곱명이나 희생되고 말았다. 신법이 고강한지 운이 좋았는지 살아난 자들은 다행히 볼수 있었다. 바위가 튕겨 나오기 직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붉은 광채 가 번뜩이고 있다는 것을.....

붉은 광채가 사라지면 네모 반듯하게 잘리워진 바위가 절벽속에서 미끄러지듯 튕겨져 나와 협곡 아래로 떨어 져 내렸다. 붉은 광채의 이동 속도는 직접 보고도 믿을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신법이 아니라 눈빛으로도 쉽 게 쫒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눈깜박일새도 없이 다른쪽 절벽으로 이동하여 거대한 바위를 잘라내고 있었다.

쏘아져 나오는 바위에 또다시 한명이 희생되고 남은 두명이 되돌아가 현천교의 수뇌부들에게 사실을 설명하자 모두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떨어져 내린 낙석이 협곡을 가로막는다고 진군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갑자 기 늘어나는 낙석을 대처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이 보여야 상대할수 있을 터인데 적은 보이지 않고 시선을 집중해도 발견하기 힘든 붉은 광채가 원인이라니..... 일각이 여삼추 같은 긴급한 순간에 발이 묶이니 초조감과 안타까움은 더욱더 극에 달해졌다.

되던 안 되던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현천교 수뇌부의 지시에 따라 경공에 자신이 있는 고수들 삼십여명이 협 곡 절벽에 거머리처럼 바짝 달라붙어 물고기가 급류를 타고 오르듯이 미끄러지며 신형을 이동하였다.

불안정해 보이는 신법이었지만 의외로 이들의 이동속도는 매우 빨랐다.

게다가 절벽에 바짝 붙어 이동하자 위에서 떨어지는 바위덩이에 의한 피해도 적었다. 삼십여명의 고수가 큰 피해없이 앞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보던 현천교의 수뇌부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또다시 일백여명의 고수 들을 지정하였다.

그런데 전진 명령을 내리려던 수뇌부중 한명의 손이 부르르 떨리더니 힘없이 아래로 늘어트려졌다. 그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꿈을 꾸는 것인가..?

눈을 깜박이고 손을 들어 두눈을 세차게 비벼 보았지만 잘못 본 것은 아니었다.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면.....

"....."

절벽속에서 두께 한자 정도의 석기둥들이 갑자기 튀어나오며 절벽을 타고 이동하던 고수들을 불시에 기습한 것이다. 절벽에 너무 바짝 붙어 이동해서인지, 아니면 설마하니 절벽이 살아 꿈틀대듯 공격해올줄은 몰랐던지 공격을 피해낸 고수는 채 십여명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절벽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석기둥에 격중되어 중상을 입고 협곡 중앙으로 몸을 드러낸 고수들 대부분 이 위쪽에서 쏟아져 내리는 낙석에 희생되어졌다. 낙석을 피했다고 완전히 살았다 장담할수는 없었지만 말이 다.

다행이라면 석기둥을 피해낸 고수들은 더 이상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낙석은 현천교의 주력 세력이 협곡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방해함이 목적인 듯 현천교도들의 앞쪽에서만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통과하려 는 사람이 없으면 조금 뜸하다가도 통과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을 보면 인위적으로 조종 되어지는 것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술법인지? 아니면 무슨 조화 때문인지 알수 있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을까?

현천교도들중 술법에 능한 극락조단의 고수들 일백여명이 선두로 튀어나왔다. 튀어나오면서 허공중에서 몸을 이동시켜 삼각의 형태로 착지한 이들의 양손바닥은 앞쪽에 위치한 동료의 명문혈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 오르고 있었다. 기회를 포착했음인지 제일 앞쪽에 위치한 고수의 모아진 손바닥에서 눈이 부실 듯한 장강(掌剛)이 절벽의 한지점으로 빗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꽈과광..우르륵 쩌쩍, 꽈르르르륵."

장강에 명중된 지점이 일시에 초토화되어져 버렸다. 여력이 남았는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멀쩡한 부위까지 금 이 가 갈라졌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장여 크기의 낙석은 계속해서 생성되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세명의 고수가 급히 내달아 선두의 세명과 교체 되었다. 교체된 세명중 뒤쪽의 두명은 간신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앞쪽의 한명은 전신에서 검은 묵혈이 세어 져 나오고 있었는데 이미 절명했는지 움직임조차 없었다.

또다시 거대한 장강이 쏘아져 나갔지만 이번에는 거리가 조금 멀었다. 삼십여장 밖의 절벽을 휩쓸었지만 처음 보다 파괴력은 현저하게 약화되어 있었다. 죽음을 각오한 듯 세명의 고수가 또다시 앞쪽으로 다가가 자리를 차지하였지만 현천교의 수뇌부중 한명이 이들을 말리었다. 뒤쪽에서 연이어 공력을 전해주던 고수들이 더 이 상 견뎌내지 못할 상태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떨어져 내리는 낙석들이 바람을 휘몰고 바닥에 부딪혀 잘게 깨어진 채로 비산되며 다시 충돌하여 튀어 다니고 있었다. 산이 무너져 내리는 굉음과 사방을 유린하는 바위조각들 그리고 자욱한 먼지 때문에 감히 앞으로 나 서지 못하던 현천교도들의 눈에 이채가 뜨여졌다.

왠일인지 우박처럼 떨어져 내리던 낙석들이 더 이상 떨어져 내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급히 몸을 날릴 수는 없었다. 몸을 빼낸 후 협곡안으로 사라져간 십여명의 현천교도들처럼 무작정 달려나가기에는 갑자기 찾아온 정적과 고요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완벽한 정적도 아니었다. 좌우의 협곡에서 미세하니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또다른 위험을 준비 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고 하여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정적을 깨고 이십여명의 현천교도들이 갑자기 몸을 날렸 다. 붉은 광채가 하나밖에 없었음을 인지한 듯 열명이 넓게 퍼졌으며 절벽에서도 멀찌감치 떨어진 채로 최대 한 신법을 빨리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바위속에서 석기둥들이 화살처럼 쏘아져 오고 있었기 때문이 다. 이들중 무공이 약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하지만 피하기에는 협곡의 폭이 너무나 좁았다. 그리고 절 벽 자체가 석기둥을 쌓아 형성되어진 듯 쏘아져오는 석기둥의 수가 너무나 많았다.

신법으로 서너개를 피해내고 눈앞까지 닥쳐든 또다른 석기둥은 무공을 사용해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옆구리 부 근에 둔탁하게 와 닿는 충격과 함께 더 이상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갈빗대가 모두 부러져 나가고 오장육부 가 터지며 자리를 바꾸는 치명상에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눈 몇 번 깜박일 동안에 협곡안으로 몸을 날린 이십여명의 현천교도들이 내력이 담긴듯한 기세로 절벽 양쪽에 서 무수히 쏘아져 오는 석기둥에 맞아 전원 사망하자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분위기를 보니 이번 침묵은 조 금 길어질 것 같았다.

한편 유령왕의 공세를 간신히 벗어난 아홉명의 현천교도들은 최대한의 속도로 협공을 달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현천교의 최대 숙적인 정파놈들의 꽁무니를 따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아홉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무공에는 나름대로 자신들이 있었는지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절벽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몇 번 구경해본적이 있는 검환(劍環) 같았다. 검에서 튀어나오지 않고 바위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못내 의아했지만 피할 엄두를 낼수 없는 눈부신 속도와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간신히 막아낸 검날을 두조각내고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위력을 보건데 분명한 검환이었다. 동료들이 추풍낙엽처럼 떨 어져 내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서너명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협곡안을 그물망처럼 헤집고 다니는 검환을 보니 동료들의 생사가 뻔히 예측되어졌다. 다섯 셀 시간도 짧으리라..... 불행히도 그의 예측은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조시지공인 지일이의 초식에 인일삼의 수법을 가미시켜 절벽속으로 강기를 쏟아 검환으로 적을 몰살시킨 은성 은 이제는 물러나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안을 두쪽으로 분산 운용하여 조금전 군웅들이 협곡을 완 전히 벗어났음과 적도들의 중심부에 커다란 폭발음이 들린 이후로 정파인들이 행보가 눈에 띄게 빨라졌음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유령왕에게 전음을 날려 그만 돌아올 것을 지시한 은성의 신형이 바람인양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검강으로 보호된채 바위속을 누비고 다니던 화룡검 또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사라져 간 유령왕의 미련이 남았음인가?

양쪽 협곡의 절벽이 기분 나쁜 음향으로 갈라지면서 남은 현쳔교도들의 발길을 붙잡아 두고 있었다. 화룡검에 간직된 열양지기를 검기로써 협곡 이곳 저곳에 심어두며 사라져간 때문이리라.....

자욱한 먼지가 가라앉은 후 더 이상 붉은 광채가 이곳에 머물지 않음을 눈치챈 현천교의 정예 고수들이 몸을 날려 곤륜지로를 빠져 나왔다. 하지만 허탈한 순간이었다. 현천교의 포위망을 완전히 벗어난 정파 고수들의 꽁무니가 저멀리 사라져 가고 있었다.

뒤쫒아 갈수는 없었다. 양측에서 협공하겠다는 작전이 실패한 이상 추적하여 싸운다고 승산이 있는 것도 아니 기 때문이다. 흐트러진 전열을 재정비하여 다음을 기약함이 백번 옳았다.

유령왕 만큼이나 신출귀몰한 묵귀영의 신법으로 어둠속에 그림자가 스며들 듯 감쪽같이 진에 합류한 은성은 내심 안도하며 보무당 무인들을 따라 유유히 몸을 날렸다. 저멀리 어슴푸레 보이는 전각이 곤륜파의 청령전인 것 같았다, 곤륜산이 천지간에 제일가는 성산이라는 호평은 계곡을 타고 흐르는 영기와 짙푸른 숲속에서 풍겨 져 나오는 맑고 신묘한 기운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았다.

피와 죽음이 몰려들고 있었지만 대자연 어디를 둘러보아도 생기가 넘쳐 흐르지 않는 곳이 없었다. 풀잎들이 바람에 하늘거리고 기묘한 봉우리 틈틈이 자라난 청솔은 꿋꿋함을 뽐내고 있으며 수줍게 피어난 야생화는 알 싸한 향취를 뿌려 주었다.

그런데 빠진 것이 있었다. 유독 새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고개를 드니 저높이 구름 사이로 검은 형상들이 점점이 눈에 들어왔다. 매 종류인 것 같은데 하나같이 시커멓 고 거대한 크기의 놈들이였다.

무슨 이유로 몰려있는 것일까?

알수는 없었지만 알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주변에 새소리가 끊긴 이유였다. 어쨌든 주변 경관을 감상하며 달 리다 보니 청령전이 금새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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