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118화 (118/152)

[연재]황정허무검(118)

곤륜천문을 지나 이백여장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자연의 조화런가? 갑자기 치솟아 올라 하늘 높이 뻗혀진 산줄기는 일백여장 높이의 험준한 협곡을 생 성시켜 놓았다.

곤륜지로가 절경이라더니.... 바위틈에 절묘하게 자라난 천년 고송은 풍상에 시달린 듯 가는 뿌리로 허공중에 위태롭게 걸려 있었고 이름 모를 잡풀은 수양 버들인양 밑으로 오장여나 늘어져 있었다. 그 가는 줄기마다 간 간히 피어있는 작은 꽃송이가 수줍게 하늘거렸다.

산봉우리에 걸린 흰구름은 이곳을 떠나기 아쉬운 듯 자꾸만 머뭇거리고 바람조차 쉬어 가려는 듯 협곡안에서 멤을 돌았다.

하지만 무정한 것이 인간이었다. 천혜의 절경이라 소문난 이곳은 넘치는 살기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간 듯 산 새 한 마리 없었으며 풀벌레 소리조차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감정이 배재된 눈빛일까?

내면 깊숙이 침잠된 눈빛으로 묵묵히 곤륜지로를 주시하던 문상이 백우선을 접으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수뇌 부들을 둘러보던 문상의 눈빛에 안타까움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각자의 임무와 위치는 모두 숙지하고 계실 것입니다. 말씀 드렸듯이 이곳 곤륜지로가 최대 격전지가 될 것입 니다. 현천교의 정예 무인들이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저하면 앞뒤로 협 공을 받아 피해를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힘들겠지만 죽음을 불사하고 최대한 빠르게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합니다. 곤륜지로만 빠져 나가면 생로는 열릴 것입니다. 자, 출발합시다!"

시간이 다급했는지 문상의 어조는 평소보다 조금 빠른 편이었다.

문상의 출발 신호와 함께 제일 먼저 나아가는 문파는 소림사였다. 소림 장문인인 혜원(慧元)대사를 필두로 일 백여 소림승이 선두로 달려 나갔다. 장문인을 호위하려는 듯 바짝 붙어선 칠대금강의 모습도 보였다.

소림사의 승려들 다음으로 따르는 세력은 무림맹 수무당의 오십여 고수였다. 소림사를 호위하듯 양쪽으로 늘 어선채 따르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신법이 고절하기 이를데 없었다. 무림맹 최고 전력이라는 수무당의 오십여 고수 전원이 출동하다니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수무당의 고수들과 십여장의 사이를 두고 무당파의 고수들이 뒤따랐다. 그들의 신법도 수무당 고수들에 뒤떨 어지지 않고 있었다. 무당파의 뒤쪽으로는 남궁세가, 화산파, 제갈세가, 아미파 등 구대문파 오대세가의 무리 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협곡이 좁아 한꺼번에 몰려갈 수는 없었다. 미리 작전을 짠 문상의 지시대로 출발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 다. 보무당은 부상자가 많은 관계로 뒤쪽으로 배정되어 있었다. 보무당의 뒤쪽으로는 후방 경비를 책임진 청 무대 뿐이었다.

소림의 뒤를 따르던 수무당의 고수들이 갑자기 속도를 내었다. 순식간에 소림의 고수들을 추월하는가 싶더니 땅을 박차고 좌우의 절벽으로 치솟아 오르기 시작하였다. 협곡의 높이가 일백여장이나 되어 까마득해 보였지 만 수무당의 고수들에게는 지척의 거리였다.

처음에 도약해서는 좌우의 협곡을 번갈아 밟아가며 탄력을 받아 상승하였다. 그리고 협곡의 간격이 넓어진 삼 십여장을 지나서는 검이나 장으로 절벽을 찌르고 후려치며 그 반발력으로 일보에 삼장여씩을 솟구쳐 올랐는데 물찬 제비와 같이 날렵한 신법이었다.

문상이 잘못 예견했다는 말인가?

아니었다. 갑자기 절벽의 틈새와 상부에서 암기와 화살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하나같이 내력이 담겨져 있었다.

쏘아져 내려오는 숫자 또한 셀수 없을 지경이었다. 예상된 공격이었지만 대처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어떤 암 기들은 검기조차 뚫고 들어왔다. 적들에게도 무시못할 고수들이 많이 있다는 증거였다.

수무당의 뒤를 이어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는 무인들은 무당파의 고수들이었다. 하나같이 원로 고수들인 수무 당의 고수들에 비해 내력이 약할 터인데도 상승속도는 크게 뒤지지 않고 있었다.

바로 무당파의 비전신법인 제운종(梯雲縱) 덕분이었다. 무당의 검법은 무림 일절이었다. 송문고검이 번뜩이면 각종 암기와 화살들이 수수깡처럼 잘라지고 튕겨져 나갔다. 감당치 못할 정도로 깊은 내력이 담긴 암기를 내 리친 무당 제자 한명의 신법이 주춤 거려졌다. 간신히 암기는 물리쳤지만 도약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제운종을 익히기 위해 천화포접공을 죽도록 단련한 무당제자였다. 간신히 절벽에 검을 들이미는 순간 발끝을 검끝에 댄채 허리가 크게 휘어지더니 용수철처럼 다시 솟구쳐 올라가고 있었다.

절벽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은 화살과 암기 뿐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돌덩어리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떨어지는 돌덩이들을 검끝으로 쳐내면서 눈부신 신법으로 절벽에 발끝을 찍으면서 이동하던 수무당의 고수가 갑자기 눈앞으로 커다란 바위 하나가 떨어져 내리자 검강을 끌어올려 바위를 내리쳤다.

"쩌저저적....."

바위는 단단하지 않았던지 박살이 나서 사방으로 비산되어 졌지만 순간적으로 시야가 막히었다.

'피리리릿' 하며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회룡구번(回龍九飜)'이라는 신법으로 발끝을 절벽에 댄채 아홉바퀴를 돌며 빠르게 피신하였지만 너무 늦은 것 같았다. 아니, 그 자신에게 집중된 공세가 너무 많았던 모양이었다. 온몸으로 피를 뿜어대며 실 끊어진 연처럼 떨어져 내리는 그의 시야에 역시나 피를 흠뻑 뒤집어 쓴채로 낙하하는 무당 제자의 모습이 희미하게 투영되어졌다.

협곡 아래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제일 앞쪽에 위치한 소림 고수들은 인산인해로 달려드는 현천교의 호교무인들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점혈을 하여 무공만을 못쓰게 하던 소림승려들도 끝도 없이 달려드는 호교무인들에 의해 한명 두명 동료들이 죽어가자 이제는 살수를 쓰고 있었다.

현천교의 호교무인들에 비해서 무공이 몇배나 뛰어난 소림승들이지만 좁은 협곡에서 죽음을 불사한 호교무인 들이 결사적으로 달려들자 쉽사리 앞으로 나아갈수는 없었다. 피를 뒤집어 쓴채 시체를 밟고 한발 한발 나아 가는 모습은 불문의 고승이 아닌 지옥의 야차와도 같았다.

살생을 금지하는 승려로써 도저히 감당키 어려운 현실이었다.

그래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계도를 뻗어내 두명의 현천교 무인을 살상한 승려 한명이 갑자기 허탈한 웃음을 짓더니 피묻은 계도를 땅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기회를 놓칠세라 뻗쳐나온 몇자루 검이 그의 몸을 산적 꿰듯이 꿰뚫었지만 하탈한 승려의 웃음소리는 그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소림의 뒤쪽을 따르던 남궁세가의 고수들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돌덩이들에 의해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일백여장 높이에서 떨어져 내려오다 보니 가속도가 붙은 돌덩이들의 위력은 검기로도 감당치 못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땅바닥에 부딪힌후 박살나 날아드는 파편조차도 살인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화살과 암기조차도 떨어져 내리니 싸우지도 못하고 큰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절벽 가장자리로 붙어 수비에만 치중하라!"

남궁세가주 창궁검 남궁진의 외침소리는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절벽 상부 사수'

오백여 현천교 호교 무인들과 사파 무인들이 죽음으로 맹세한 지상 목표였다. 절독에 담구었던 암기와 화살들 이 조금씩 떨어져 가자 쌓아두었던 돌덩이를 던지고 작은 돌멩이조차 내력을 가해 던지고 있었지만 적들은 물 러남이 없었다.

저들도 오늘 전투의 승패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암기와 화살들은 재고가 부족하였지 만 돌덩이들은 무진장 널려 있었다. 이곳만 사수할수 있다면 적들이 협곡 아래로 무사통과 할 수는 없을 것이 다. 아니, 이곳을 영원히 사수할 필요까지도 없었다. 앞으로 한시진만 더 버텨도 승리는 현천교가 차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쏟아지는 암기와 돌덩어리 사이를 유룡이 헤엄치듯 교묘하게 피하며 올라오는 적의 고수는 신법만 보아도 엄 청난 무위를 짐작할수 있었다. 이곳까지 당도한다면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자신과 같은 무공수준으로 는 열명이 덤벼도 당해내지 못하리라.....

고개를 돌리니 옆의 동료들도 비장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장여까지 다가온 적에게 활과 암기는 물론이고 돌덩어리들이 집중적으로 발사되었다. 그런데 그자의 신법은 신묘하기 이를데 없엇다. 손에 들린 검에 크게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기묘하니 허리를 틀어 피하면서 계속해 솟구치고 있는 것이다.

그걸 보며 비장한 눈빛을 보이던 현천교의 고수 다섯명이 한꺼번에 뛰어내렸다. 검기와 도기를 앞세우는 그들 의 눈에는 일백여장 높이의 절벽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단 한번의 기회밖에 없음을 절감하면서도 과감히 검을 휘두르고 찢겨진 동료의 육신사이로 검을 밀어 넣어 공격하고 있었다.

눈앞으로 날아오는 검기를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손에 들린 도에 도기를 운용한채로 비도술을 발휘하는가 하 면 검기에 잘린 팔에 삐죽이 튀어나온 흰 뼈로 적의 미간을 찍어갔다. 다시한번 번뜩이는 검기에 죽어가면서 도 마지막 동료가 죽기직전 내뻗은 혈검이 적의 단전을 파고드는 것을 보니 입가에 웃음이 세어 나왔다.

교를 위해 죽어감은 지상 천국을 앞당기는 거룩한 순교인 것이다.

그러나 죽음조차 도외시한 현천교도들의 발악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절벽상부는 무림맹 수무당 고수의 발길 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한명이 어려웠던 것이다. 가장 먼저 올라선 수무당 고수가 미친 야수처럼 날뛰자 현천교도들의 공세가 허술해지기 시작하였다.

그틈을 타고 또 한명의 수무당원이 올라오자 공세의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수무당원들에 뒤이어 무공이 고강 한 무당의 고수들이 올라서자 더 이상 절벽 밑에서 올라오는 고수들을 향해 공세를 취하는 현천교도들과 사파 의 무인들은 없었다. 그들보다는 일단 올라온 적들부터 제거하고 볼 일이었기 때문이다.

협곡 아래처럼 절벽 상부도 어느새 인간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잘라진 팔다리가 시체와 함께 무수히 떨 어져 내려가고 핏물에 젓은 병장기들조차 무더기로 떨어져 내렸다.

소림이 뒤쪽으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채우게 된 남궁세가의 고수들은 악에 받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위아래 어디를 봐도 지옥 아닌 곳이 없었다. 벌써 남궁가의 무인들이 십수명 죽어 쓰러졌다. 하나같이 숙부요 조카이며 아비나 자식같은 존재들이었다.

피에는 피 죽음에는 죽음으로 보답함이 남궁가의 철칙이었다. 그리고 최소한 열배는 되어야 함은 남궁가의 자 존심이었다.

협곡내의 전투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문파는 사천의 당문이었다. 그들이 앞으로 나서자 죽음도 불사 하던 현천교도들의 눈빛에 비로소 공포가 떠오르고 있었다. 하긴, 이상스런 병기를 짊어진 당문 고수의 손에 들린 기구에서 느닷없이 뿜어져 나온 불길에 접한 십여명의 동료가 땅에 떼구르르 구르며 처절한 비명과 함께 죽어가고 있는데 두려움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 불꽃이 살을 도려내지 않는 한 꺼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살을 도려내도 고통에 겨워 발광하듯이 비명을 지 르다가 죽어간다면 더더욱 그럴테고 말이다. 불꽃은 협곡을 가득 메울때도 있었다. 한꺼번에 두명 또는 세명 이 동시에 불꽃을 쏟으면 고통과 비명소리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허공을 가득 덮은 수많은 종류의 암기들은 왜 그리도 독한지.....

공포는 빠르게 확산되어져 가고 있었다. 공포는 전염되기 마련이다. 누구부터 도망치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현천교도들중 도망치는 자들이 속출하더니 잠시지간에 걷잡을수 없는 혼란이 발생되었다.

못 빠져 나가서 울부짖는 사람까지 생길 정도였다. 불꽃에 휘말려 죽어가면서 몸을 날리던 고수에 의해 불꽃 이 달라붙은 무인도 곧이어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깔려죽는 사람까지 생길정도로 난리법석을 떨더니 짧은 시간 안에 몇십구의 시체만이 덩그렇게 남겨놓고 앞쪽 협곡이 텅 비어져 있었다.

절벽 상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수무당과 무당파 그리고 뒤늦게 가세한 점창의 고수들이 뛰어내리고 있 었다. 절벽 상부에 있던 오백여 적도들을 모조리 참살한 것 같았다. 일단락이 된 것 같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군웅들이 빠른 속도로 협곡을 통과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적도들이 숨겨놓은 비장의 공격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절벽의 중간정도 위치에서 거대한 바위덩어리 들이 수백개나 쏟아져 내려왔다. 바위가 떨어져 내리는 곳은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에 소속되지 않 은 유명문파의 고수들이 통과하고 있는 대오의 중간정도 되는 위치였다.

절벽 중간에 바위를 숨겨놓을 장소가 있었다니?

급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공격이어서 그런지 무림맹측의 피해는 매우 심각할 정도였다. 수십명이 한꺼번에 죽 음을 당했다. 그런데 공격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허공에서 분분히 떨어져 내리는 것은 분명 적도들이었 다. 그들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고서야 어떻게 갑자기 안보이던 바위들이 굴러떨어질 수 있었는지 추측할 수가 있었다. 벼랑에 수십개의 구멍을 파고 그곳에 바윗돌을 차곡차곡 쟁여놓은 모양이었다.

고수들이 동원되어 작업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약간의 경사를 두어 제일 앞에 위치한 받침돌을 빼내 면 한꺼번에 우르르 바위들이 쏟아져 내려가도록 장치를 하였을 것이다. 제일 앞쪽 받침돌 옆에 홈을 파고 고 수 한명이 숨어 있다가 준비된 신호에 따라 동굴을 덮은 위장막을 걷으며 받침돌을 제거하고 바위덩어리들이 연달아 굴러 떨어진후 동굴 안쪽에 은신해 있었던 고수들과 같이 저렇게 날아내려 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날아 내려오는 기세를 보니 녹녹한 자들이 아니었다. 협곡은 위쪽으로 갈수록 넓어졌지만 밑으로 내려갈수록 사이가 좁았다. 그래도 그들이 위치한 지점은 골 사이가 오장이 넘었는데 아무런 지장없이 골과 골 사이를 오 고가며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면서 뛰어내리고 있었다.

분기에 넘쳤음인가?

협곡 아래에서도 위쪽으로 솟구쳐 올라가는 군웅들이 보였다. 적들이 내려올 그 짧은 시간조차 기다려줄수 없 다는 성질급한 고수들이었지만 그수가 갑자기 불어나 일백여명 정도의 적도들 보다도 더 많아졌다.

좁은 협곡을 사이에 두고 공중전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위쪽에서 굴러 떨어진 바위덩어리에 참혹하게 죽 어간 세명의 보타문도들을 애도할 시간도 없이 검후의 몸도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단 세명에 불과했지만 친자매같이 생각하던 제자들이었다.

보타문의 진산무공을 익혀 고수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지만 아직 검끝에 피한방울 묻혀 본적이 없 는 순정(順靜)한 제자들이었는데 육포인양 짓이겨져 형체조차 구분할수 없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다니.....

붉어진 눈빛으로 고개를 드니 현천교의 고수 한명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며 속도에 탄력이 붙었는지 거센 폭 풍우가 내리치듯 덮쳐오고 있었다. 기세를 살펴 일단 피하고 허점을 살펴 검초를 발휘함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성난 여래혼은 광포한 빙룡이 되 어 폭주하였다. 빙검 여래혼에서 석자 길이의 검강이 뻗쳐나와 주변 대기마저 차갑게 냉각시키더니 그 기세 그대로 하늘위로 뻗쳐 올라갔다.

"쐐애애애액...."

공중에서 일도양단의 기세로 거침없이 내려오는 현천교 고수의 눈빛에 당황스런 빛이 스쳐 지나갔으나 폭풍우 처럼 쏟아져 내려가는 자신의 속도에 자신이 있었는지 그도 더욱더 속도를 내어 내리 꽂혀갔다. 그의 손에 들 린 도에는 짙은 도기가 서려 있었다.

도강의 초입에 들었으니 도강이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현천교의 고수는 솟구쳐 올라오는 검을 살짝 비켜나게만 만들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것 같았다. 검강과 도강이 부딪히자 커다란 폭음이 일 어났다.

얼음이 날리듯 한기가 퍼져 사방으로 뻗혀지고 현천교의 고수는 어느새 검후의 몸 가까이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나 검후는 눈앞으로 떨어져 내려오는 현천교의 고수에 대한 공세를 취하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며 발밑으 로 떨어져 내려가는 것은 산목숨이 아니라 시체였기 때문이다. 검강에 관통당해 가슴에 한자나 되는 구멍이 난 사람이라면 시체라고 불리워도 될 것이었다.

빙검 여래혼은 공격할 목표를 정했는지 살떨리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또 다른 적수를 덮쳐가고 있었다. 이번 에는 무척이나 신법이 빠른 적이었다. 어찌나 빠른지 이기어검으로 날아드는 빙검을 세차레나 피해내고 있었 다. 간신히 피해냈다고 하지만 신법으로는 검후보다도 더 우세한 것 같았다.

그러나 괜히 이기어검이 유명한 것은 아니었다. 뇌전처럼 빠르게 다가오는 여래혼을 둥글게 몸을 말아 간신히 피해냈다 싶은 순간 여래혼이 갑자기 뒤로 후퇴해 손잡이채 신법이 빠른 현천교도의 목으로 박혀든 것이다.

"제..에길....꾸르르륵....."

목뼈는 물론 숨통이 완전히 끊겨진 현천교 고수는 목을 빠져 나가는 여래혼을 보며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리 이기어검이래도 앞으로 날아갔다 다시 방향을 바꿔 회전하여 뒤돌아오면 충분히 피할 자신이 있었는데..... 나름대로 억울한 죽음이었다.

쉴 틈도 없이 또다시 날아가는 빙검 여래혼으로 검후가 현천교의 고수들을 계속해서 처치하고 있었지만 날아 올라간 다른 고수들도 검후처럼 일방적인 싸움을 벌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밑에서 올라간 고수들은 그래도 각 파에서 내노라 하는 고수들 뿐이었는데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적들이 쏘아져 내려오는 기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그들의 무공이 고강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상대하던 현천교 호교무인들과는 비교조차 불허할 정도였다.

허공중에 서린 붉은 안개는 서로의 심장을 터트려 뿜어지는 핏물이 안개로 화한 것이었고 간신히 한명의 적수 를 처치했다는 안도감은 눈깜박일 틈도 없이 믿을 수 없다는 불신감으로 변해갔다. 현천교라고 얕보았지만 현 기어린 무공은 정심키 이를데 없어 빈틈을 찾을 수 없었으며 끊임없이 면면이 이어지는 그들의 내공은 정파의 무공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순후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내공과 무공은 무림맹측 군웅들이 다소 우세한 편이었다. 하지만 현천교도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정파의 심장부로 뛰어든 상태였다. 한명이라도 더 죽이고 죽어가겠다는 독심과 처절한 승부욕은 다 소의 열세를 만회하고도 남았다.

그 때문인지 현천교 현세화단의 고수들 육십여명이 사십여명의 무림 군웅들과 함께 죽어갈수 있었다. 그들의 피해가 더 큰 것은 그들중에 검후처럼 절대경지에 든 고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은 사십여명의 현 세화단 고수들은 간신히 십여명의 무림군웅들만을 데리고 저승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싸우다 협곡 아래까지 도달한후 숫적으로 우세한 무림 고수들이 득달같이 협공하여 도살하다시피 한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십여명의 무림 군웅들을 참살한 것을 보면 그들의 독기서린 몸부림을 예상할수 있을 터였다.

현천교 현세화단 고수들의 무공 실력이 전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초열지옥화린기(焦熱地獄火燐機)라고 명명되는 비장의 무기를 짊어진 당문의 중년 고수가 앞쪽에 수많은 암기 로 무장한 당문 문도 세명의 호위를 받으며 경공을 발휘하고 있었다. 당문에서도 일곱 대밖에 없는 금단의 병 기였지만 곤륜행을 위해 특별히 동원된 석대중의 한대였다.

현천교는 물론 무림에 당문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 당문의 가족회의를 거쳐 간신히 얻어낸 병기로 오늘 무림에 첫선을 보였던 것이다. 안목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쉽게 꺼지지 않는 불꽃 정도로 인식하겠지만 초열 지옥 화린기를 짊어진 당기독은 이 불꽃의 위험함과 무서움을 몸서리쳐질 정도로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독의 정화가 서린 곳에서 양강지독이 몇백년 동안 응집되어지고 그것이 발화되면서 피어나는 절세지독인 화독(火毒)... 그 독성이 너무 강해 시전된 생명체의 혈관을 타고 들어가 심장을 불태우면서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비명과 함께 비로소 사라져 간다고 알려져 있었다.

아쉽게도 생명체에만 효과가 발휘되고 지속시간이 짧아 용독에 어려움이 있어서 그렇지... 무림 제일지독이라 는 무형지독에 버금갈 정도로 잔인하고 극악한 독이 바로 화독이었다. 이 화독 채취를 위해 숨져간 친동생이 꿈마다 나타나 슬피우는 것이 애통해서 자진 지원 하였지만 당기독은 아직도 이 저주스런 극독을 뼈속 깊이 증오하고 있었다. 죽어 지옥에 간다면 자신이 제일 앞서 있을 것이 분명하였다.

독문에서 초열지옥화린(焦熱地獄火燐)이라고 명명하는 화독을 사용하는 병기가 바로 초열지옥화린기였다. 당 문의 신병이기 제작술은 이미 강호에 소문이 자자하게 퍼져 있었다. 평범한 병기도 당문의 손을 거치면 무시 못할 신기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하물며 무림에 그들의 위상을 알릴 비장의 병기가 평범한 장치로만 구성되 어 질 리가 없었다.

화독이 뻗혀 나갈수 있는 길이와 펴져 나가는 넓이는 물론 상대에 따라서 화독의 농도까지 자유자재로 조절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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