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116화 (116/152)

[연재]황정허무검(116)

곤륜천문(崑崙天門)

높이가 백장이나 되는 깎아지른 듯한 석벽 하단부에 나 있는 좁은 틈새를 일컫는 말이었다. 전설에는 인세에 성산(聖山)을 만들어 놓았으나 그 비경(秘境)을 인간들에게 모두 보여줄수 없다며 하늘에서 천군을 보내 막아 놓았지만 곤륜산의 산신이 도력으로 몰래 뚫어 놓았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하늘의 천군이 강림하여 막아 놓은 석벽이어서 그런지 재질도 평범하지가 않았다. 검은 흑오석으로 칼로 내리 쳐도 불똥이 튈 정도로 단단한 석벽이었다. 두세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좁고 울퉁불퉁 비뚤비뚤 한데 곤륜파에서 불편을 무릅쓰면서도 통로를 개조하지 못한 이유였다.

흑오석의 특징은 또 하나가 있었다. 검고 단단할 뿐 아니라 물이나 기름에 접하면 미끄럽기 이를데 없다는 것 이었다. 높이가 일백장이라면 무공이 고강한 몇몇 사람은 성벽을 넘어가서 적의 의표를 찌르고 상하 양측에서 공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원숭이는 커녕 신법에는 최강이라고 자신하는 곤륜 도사들도 일찌감치 포기한 곤륜천문 이었다. 날개 가 달리지 않는한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곤륜천문을 장악하고 최대한 신속히 빠져 나가는 방법이 최선 의 방법이었다.

무림맹의 군웅들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장소이니 절세의 고수나 상상치 못한 위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뻔히 예상되어졌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고수가 있다면 맞서 싸워야 되고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면 위험을 제거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중대한 임무는 차기 무림을 대표한다는 구룡삼봉에게 주어졌다. 아니, 검후가 빠졌으니 구룡에게 주어진 셈이었다. 천부경에 심취된 검후가 수뇌부들에게 양해를 구한 것이었다.

무림 군웅들을 뒤로 하고 곤륜천문으로 향하는 모용천은 곤륜천문이 십여장이나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는 듯한 미묘한 긴장감에 가슴속 호연지기가 서서히 들끓어 오름을 느끼고 있었다. 애써 감정을 자재하여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좌우를 둘러보니 믹음직한 동료들 뿐이었다.

"입구에 대단한 고수가 있는 것 같으니 긴장들 하게."

내력을 운용하도록 모용천이 동료들에게 알리자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당파의 진허(眞虛)였다.

"모용형님이 계시는데 긴장이 될 리가 없지요. 설마하니 선공을 이 아우에게 양보해 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

"허! 진허 아우는 내가 언제 선공에 욕심 내었다고 그러는가? 다만 상대가 무위를 짐작조차 할수 없는 고수이 니 몸조심을 하라는 말이었네. 아우의 무공과 술수가 높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 보게, 곤 륜천문을 단신으로 막아설 고수라면 그 무위가 어떠할지를..."

모용천이 주의를 주었지만 혈색이 초록으로 빛나 야수처럼 보이는 진허는 고집을 꺽지 않았다.

"그럼 형님께서 선공을 저에게 맡겨 주신다는 말씀으로 알아듣겠습니다. 반대 하시는 분 없으시죠?"

주변을 뚤레 뚤레 바라보며 동의를 구하는 진허는 생긴 것 같지 않게 귀엽고 천진해 보였다.

"흐흐, 그럼 결정된 것으로 알겠습니다."

진허가 발걸음을 재촉하여 일행의 앞쪽으로 나섰다. 그런 진허를 모용천은 걱정반 기대반의 심정으로 바라보 고 있었다. 진기를 운용하는지 진허의 몸 주위로 초록의 기운이 더 짙어지고 있었다.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책없이 제가 나선 것은 아닙니다. 일전에 형님과 옥룡형님의 대결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아 폐관수련하며 새로이 익힌 비장의 무공이 있습니다.]

모용천의 심사를 아는지 진허가 전음을 보내왔다.

[알겠네. 그렇지만 재삼 당부하는데 심상치 않아 보이는 적수이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음, 나타난 것 같네.]

모용천의 전음이 끝날때쯤 곤륜천문의 안쪽에서 한사람이 조용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가슴에 검 하나를 품고 서 태연히 걸어 나오는데 이천여명의 무림 군웅들이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세수 육십이 넘어 보였는데 인 생을 초탈한 듯한 표정이었다. 단정히 빗어 넘겨 뒤로 묶은 석자길이의 흰머리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대단한 젊은이들이구만. 하지만 내 상대가 아니니 물러가게. 가서 맹주나 무상을 불러오게나."

구룡중 이곳에 모인 인원은 여섯명 뿐이었다.

폐관에 든 소림사의 정천스님과 곤륜 청령전에 있는 신제갈 제갈천 그리고 구룡만 알뿐 누구에게도 신분을 밝 힐 수 없는 신비인, 이렇게 세명이 빠져 있었다. 육룡이 모인 자리에서는 주변의 초목이 바르르 떨 정도로 강 한 기세가 흘러 나오고 있었는데 노인은 육룡을 흘낏 보고는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고 단정을 내린 듯 싶었다.

"노인장, 너무 자신을 과신하는 것이 아니오?"

초록색 기가 온몸에서 한자 정도나 풍겨 나오고 있는 진허였다.

"네놈은 누구냐?"

진화가 덜된 듯 얼굴 조차도 털이 난 야수같은 놈이 주제도 모르고 끼어드는 것이 못마땅한지 노인의 한쪽 눈 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무당 제자 진허라고 하오."

"무당파? 껄껄! 하는 짓을 보니 삼천 늙은이에게서 잔재주 좀 배웠나 보구나. 그렇다면 당장 가서 삼천이란 놈을 데리고 오너라. 삼천이라면 모를까 네놈 실력으로는 내 검을 뽑을 자격도 없다."

광오하기 이를데 없는 말이었다. 무당파의 삼천진인 이라면 도력이 하늘과 통해 있다고 소문난 진인이었다.

하늘의 천신조차 청해 부릴 수 있다는 삼천진인조차 안중에 없는 것을 보니 필경 미친 것이 분명하였다.

"삼천 장로님께서 무당산을 떠나지 않은 세월이 삼십년이 넘었소이다. 노인께서 그분을 모욕함은 장로께서 무 당산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를 악용하고자 함이 아닙니까?"

모욕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진허의 머리칼이 곤두서고 있었다.

"쯧쯧, 어린 놈이 하늘 높은줄 모르는구나. 좋다. 어디 네놈이 자랑하는 재주를 펼쳐 보거라! 내검을 뽑거나 한발짝이라도 물러서게 만든다면 은퇴하여 다시는 무림에 나오지 않으마."

기분이 상한 듯 노인이 진허를 바라보며 살기를 내뿜었다. 그런데 일순간에 불과했지만 살기를 받은 진허의 초록색 기운이 강하게 흔들거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무당의 구양신공(九陽神功)은 정력을 굳건히 지켜 사마가 근접치 못하고 정심하기가 이를데 없는 신공이었는데.....

"헉! 알고 보니 노인은 사술을 익힌 듯 싶구려. 그러나 무당의 무공에는 사술이 통하지 않을 것이오. 봐줄 필 요는 없소. 정정당당히 대결하겠소. 받으시오!"

노인의 살기를 접하고서야 노인의 무위가 자신이 상대키 어려울 정도라는 것을 감지하였는지 진허가 먼저 공 격을 시작하였다. 그 변화가 추측불가 하다는 칠성둔형(七星遁形)의 신법으로 노인의 시선과 사각인 방향으로 파고들어 무당의 자랑인 태극검법을 펼쳐 내었다.

초록색 강기가 수많은 원형을 이루고 원형은 고리로 연결되어 노인의 주변을 에워싸더니 순식간에 수축해 들 어갔다. 태극검법은 막힘이 없으며 유유롭기 그지없는 검법이었다. 일파로 몰려가는 원형강기 뒤로는 어느새 다시 생겼는지 또다른 강기 고리가 뒤따르고 있었다.

위험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인은 품속에 검을 안은 채로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원형강기가 사층으로 불어나고 첫 번째 강기가 그의 몸에 작렬하기 직전에서야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그런데 사술(邪術)이런가....?

노인의 몸에 부딪혀가는 강기들이 노인의 옷자락을 타고 흘러내려 흙속으로 파고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강 기는 엉뚱한 곳에서 솟아 올랐다.

"파바바바밧"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오룡이 급히 회피한 자리는 강기와 함께 터져나온 흙먼지로 뿌옇게 변해 있었다.

역부족이라는 말인가?

태극검법이 노인에게 통하지 않음을 눈치챈 진허가 칠성둔형을 역으로 밟아 물러난후 짧게 숨을 들이킨후 재 차 달려들었다. 전광석화 같은 동작으로 품속에 들어갔다 나온 왼쪽 손에는 여러 가지 색상의 작은 깃발들이 한웅큼 들려 있었다.

보기에는 어린아이들이 소꿉 놀이하면서 가지고 놀 것 같아 보이는 깃발이었지만 천지자연의 정화를 불어넣은 신기(神旗)들이었다. 진허는 왼손으로 순간적으로 몰려 들어간 태허정령기(太虛精靈氣)가 깃발속으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후 회심의 미소와 함께 하늘을 향해 왼손을 흩뿌렸다.

그리고 아무 미련도 없이 오른손에 잡힌 검에 모든 진력을 불어 넣었다. 좌측으로 옮겨간 검이 보기 답답할 정도로 우측으로 이동되어져 갔다. 진허가 물러난후 좌측 손에서 무엇인가를 공중으로 던질 때만 해도 여유로 움을 잃지 않았던 노인의 눈빛은 어느새 진중해져 있었다.

품속에 있던 검도 검집채 노인의 손에 들려져 밖으로 나왔다. 고색창연(古色蒼然)한 검집이며 손잡이였다. 그 런데 노인이 품속에 검을 안고 있을 때와 비록 검집째이지만 밖으로 꺼내 들고 있을 때의 위세는 천양지차로 변해 있었다. 검에서는 뇌전이 솟아 나오듯이 수십갈래의 검기가 치솟아 올라가고 있었다.

'치지지지직....우르릉'

허공으로 솟아오른 검기는 어떤 강대한 기운에 맞부딪힌 듯 주춤하며 기세가 감소되었지만 곧이어 뇌전이 일 렁이듯 큰 빛으로 화해 허공을 유린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검에서 검기를 뿜어내면서도 노인의 눈빛은 진허의 두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허가 시전하는 검초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 싶었다.

이토록 어린 나이에 일자혜검(一字慧劍)이라니.....

그냥 놔두면 후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자 노인의 검에서 무형의 기운이 흘러 나왔다. 검기나 검강도 아니었고 눈에 보이지도 않았지만 진허는 알 수 있었다. 형체도 없는 무형의 기운이 자신의 검로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

모든 진력을 다해 검을 우측으로 밀어내려 하였지만 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형의 기운이 조금 더 강해진 듯 도리어 검이 좌측으로 밀려나자 짧은 비명과 함께 진허의 손아귀에서 검이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윽....."

한쪽 무릅을 땅에 꿇고 꾸역꾸역 핏물을 뱉어내는 진허의 혈색은 더 이상 초록색이 아니었다. 무당의 최상승 무공인 일자혜검을 펼치다가 노인의 역공에 진기가 역류하며 주화입마에 걸린 것이었다. 절망에 빠진 진허의 눈속으로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는 작은 헝겊 조각들이 들어왔다.

'유룡참쇄진(流龍斬殺陣)'이라고 삼천진인께서 개발한 비장의 술수조차 깨어진 것이다. 상대키 어려운 적수를 만나면 사용하라고 자상한 미소와 함께 건네준 비보(秘寶)였는데..... 진허의 목구멍에서 다시 한번 '왁'하니 큰 핏덩이가 넘어오면서 진허를 혼절시켜 버렸다.

"노인장은 누구시오?"

앞으로 나선 모용천이 허공섭물로 진허를 끌어당기며 물었다. 삼장여 거리에서 허공섭물로 일백근이나 나가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을 보며 노인의 안색은 또다시 변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자신도 무시할 수 없는 고수 인 것이다.

뭐하는 놈들이라는 말인가?

노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당에서 태극혜검과 함께 가장 심오한 검법이라 칭해지는 일자혜검을 펼치는 녹면 도사가 내력만 강했다면 자신은 꼼짝없이 은퇴하여 무림을 떠날뻔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놈은 그놈보다도 몇배나 더 강해 보였다. 아니, 무위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그 성취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나이는 이십대 중반밖에 안되어 보이는데....고민에 빠졌던 노인의 눈빛이 일순간 빛을 발했다.

앞으로 나서 묻고 있는 젊은이의 정체를 짐작했기 때문이다.

"모용가의 가주시구먼, 모용건과는 어떤 관계인가?"

"조부이십니다."

"많이 닮았군 그래. 이미 돌아가셨겠지?"

"저희 가문의 내력을 잘 알고 계시는 듯 하군요."

"그럼, 관심이 많지. 많고 말고....."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듯 노인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 검 이름이 무엇이라고 했지? 늙으니 기억력이 저하되어서 말이야?"

모용천의 어깨위로 검의 손잡이가 삐죽이 나와 있었는데 아마 노인은 이검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모용천 이 모용가주라는 것을 짐작한 이유도 이검 때문일 것이다. 가주에게만 전해지는 장문지보였기 때문이다.

"유심초(有心草)라고 불리웁니다."

"맞아 맞아. 유심초였지. 내가 왜 그 이름을 까먹었을까? 자네 조부에게 왜 유심초라고 불리는지 질문까지 해 놓고 말이야. 그래 유심초는 많이 자랐는가?"

누가 들어도 뜻 모를 질문이었다. 하지만 노인과 모용천은 잘 알고 있었다.

"직접 겪어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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