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115화 (115/152)

[연재]황정허무검(115)

심기는 순식간에 광대하니 퍼져 나갔지만 그 넓은 지역에 꽂혀있는 도들에 모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었다.

은성의 심기를 거슬러 날아오르는 도들의 숫자만도 셀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직도 떠오른 도들에 비해서 땅 에 꽂혀있는 도들이 몇배나 많았지만 신도합일된 엄청난 기세로 쳐들어오고 있는 술사들과 함께 이 많은 도들 이 비도술로 날아든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때 심기를 집중하여 지일이(地一二)의 수법을 펼치면서 공중으로 떠오르는 도들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 보던 은성의 뇌리에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기발한 방법이 떠올랐던 것이다.

넓은 지역으로 광대하게 퍼진 심기를 오장여 공간으로 한정시키자 그곳에 꽂혀있는 도들은 은성의 심기대로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가 있었다. 그 도들을 이끌고 심기를 옆으로 이동시키자 처음에 제어했던 부분의 도들이 지상에서 한치 정도 떠오른 상태로 심기를 따라왔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은성은 심기를 최대한의 속도로 이동시켜갔다. 파죽지세(破竹之勢)런가?

개울물이 모여 강물을 이루고 강물이 모여 넓은 바다를 이루는 법이었다. 넓은 대지에 도들이 파도처럼 뭉쳐 져 공중으로 거대한 도기를 내뿜으면서 내달리고 있었다. 이미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던 도들조차 밑에서 솟아 오른 도기에 견디다 못해 땅으로 떨어져 도의 무리속으로 합류되어져 갔다.

사태가 역전되어져 감을 느낀 듯 천왕도가 발악하듯 더욱 심하게 요동을 치고 있었지만 대세는 거스릴수 없을 것 같았다. 은성이 몰고 가는 도의 숫자가 많아지자 도들은 위쪽으로 첩첩이 쌓여지면서 이동해 갔다.

그 높이가 어느새 삼장여나 달해 있었다.

한편 보무당원과 술법사들간의 싸움은 천왕도와 은성의 기세 싸움보다도 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오십 명의 술사들이 비도들 사이로 곡예를 하듯 날아오다가 여섯명이 보무당원들에 의해 죽어 떨어졌지만 보무당원 들 사이로 뛰어든 사십사명의 술사들의 능력은 놀라운 바가 있었다. 비도보다도 몇배나 빠르게 날아다녔으며 몸이 도에 붙은 듯 도신일체가 되어 무림고수들보다 더 변화무쌍하니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공중으로 치솟아 올라 현천교 술사의 머리를 아작낸 철두파의 고수가 밑에서부터 치솟아 오른 다른 술사의 도 신에 목이 꿰뚫려 한참을 따라 날아 가다가 목이 분리되며 처참하니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라한에서 왔다 가 석인에 의해 내상을 당했던 고수는 반각도 지탱하지 못하였다.

격전장은 검과 도가 날고 피가 튀며 비명소리로 아우성을 이루고 있었다. 술사들의 비명과 보무당원들의 비명 소리가 어우러져 들렸다. 하지만 역시나 최강을 자랑하는 보무당이었다. 단지홍의 양손에서 일시에 뻗어나간 지풍들이 하늘에 혈선을 드리우고 있었으며 사숙의 손에서 뻗어나간 혈요인은 사숙과 의지로 연결되어 있는 듯 사숙 주위를 멤돌다 다가오는 술사들의 목을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빠르게 날아다니는 술사들도 금룡각 묵사풍의 묵시는 피해갈 수가 없었다. 조금전까지만 하여 도 술사들이 모여서 술법을 금제하였기 때문에 부적으로 목표한 사물을 끝까지 추적시키는 법술인 신전법(神 箭法)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 있었다.

신도합일되어 날아다니는 술사보다도 묵시(墨矢)의 속도가 몇배나 빨랐다. 견디다 못한 몇 명의 술사가 혼전 의 장을 떠나 쏜살같이 도주하였지만 끝내 뒤 쫒아간 묵시에 생을 다한 듯 멀리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 다. 그런 묵사풍의 주변은 해동역사의 유성추가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철저하게 방어해주고 있었다.

술사들을 상대하느라 비도술에 당한 보무당원들도 꽤 되었는데 일각여나 지난 후부터는 왠일인지 날아드는 비 도들의 숫자가 현저하게 감소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세한 전력이 일각이 지나서부터는 일방적인 싸움 으로 전개되어졌다.

주작봉을 휘둘러 주작형상의 진화기(眞火氣)를 뿜어대던 주진인은 이제서야 조금의 여유가 생겨 사방을 관조 할 수 있었다. 십여명밖에 남지 않은 술사들은 보무당원들의 협공에 쩔쩔매고 있었다. 도망치지 않는다면 반 각도 넘기지 못하고 몰살당할 것 같았다.

'퍽...'

죽음을 불사한다는 듯이 저돌적으로 파고들던 술사 한명이 뒤통수에 묵시가 박혀들며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 는 것을 바라본 후 은성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 주진인의 입이 절로 벌어져 갔다. 일각전 땅에 도를 꽂는 은성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 같았는데 어느새 빼 들었는지 은성은 도를 공중으로 서서히 휘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주진인이 놀란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넓이가 오장여나 되고 높이가 십장여나 되는 거대한 도산(刀山)이 위치한 곳에서 백여자루의 도들이 솟아올라 은성이 휘두르는 도에 따라 허공을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백여 자루의 도들이 날카로운 도끝을 한쪽 방향으로 향하고 거대한 도의 형상을 이룬채 날아가는 곳에는 도기를 극도로 끌어올린 듯 처절히 울부짖는 천 왕도가 버티고 서있었다.

천왕도의 손잡이 끝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괴인도 어느새 일어났는지 길다란 머리카락을 미친 듯이 휘 날리며 무언가 부르짖고 있었다. 허공에 대고 양손을 미친놈처럼 허적이고 있었는데 사람이 아니라 지옥의 야 차와 같은 형상이었다.

괴인의 몸부림이 심해질수록 천왕도의 울부짖음도 심해져 가고 있었다. 천왕도의 처절한 울부짖음에도 불구하 고 일백자루 도들은 천왕도에 부딪혀 갔다. 천왕도의 주변에 넘실거리던 도기에 몇십자루의 도들이 기세를 잃 고 주춤거렸지만 뒤따라 오는 거대한 도세는 도도하기 이를데 없었다. 은성의 심기에 의해 조종된 일백여개의 도들이 천왕도에 부딪히자 그토록 강해 보이던 천왕도에 서서히 금이가기 시작하였다.

"드드드드득..쩌적..꽈과과광."

아직 반수정도의 도가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한채 산산조각이 나서 비산되는 천왕도의 파 편사이로는 미친 듯이 중얼거리던 괴인의 육편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백여자루 도에 꿰뚫렸는지 아니면 천왕 도의 파편에 맞아 몸이 분시되어 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처참하기 이를데 없는 최후였다.

천왕도가 파괴되는 순간 진세내에는 예기치 못한 변화가 벌어지고 있었다. 간신히 버티던 오륙명의 술사들이 갑자기 힘을 잃고 공중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보무당원들에 의해 허망하니 생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군웅들이 내력을 운용해야 할 정도로 강한 광풍이 돌풍처럼 휘몰아치더니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 듯이 하며 사라져 갔 다.

"와! 보무당 만세!"

난데없이 들려오는 함성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고함을 지르며 무림맹의 군웅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쪽에는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가는 무리들도 보였다. 진세를 믿고 뒤쪽에 포진해 있었던 현천교와 사파의 무리들이었다.

진법이 펼쳐졌던 장소를 둘러본 은성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토록 우글거렸던 석병들과 수만자루의 도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땅위에 굴러다니는 자갈들과 현천교의 술사들이 사용했었는지 몇자루의 도들 이 부러진채로 나뒹굴고는 있었다.

환상 이었던가?

그러나 환상은 아니었다. 삼백여장밖에 안되는 짧은 거리에 즐비하니 널려진 시체들이 말없이 대변해 주고 있 었다.

보무당의 숫자도 꽤 줄어 있었다. 칠십명이 들어왔는데 열 다섯명이 죽고 오십오명만이 남아 있었다. 모산파 의 문인 한명도 죽었으니 총 열여섯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중에 중경상을 입은 사람 도 많았다.

하지만 현천교의 귀명자가 알았다면 까무러칠 혁혁한 전과였다. 이천여명이나 되는 무림맹 군웅들 전부를 몰 살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며 자신만만해 하던 절진이 고작 열여섯명의 피해로 파해되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극 락조단의 술사 일백명이 죽고 극락조단 삼대고수중 한명인 바라밀(波羅密)조차 죽었으니 입에 거품을 물고 쓰 러질 것이었다.

"보무당주, 주진인 큰 일을 해 내셨소이다. 게다가 이처럼 빠르게 진세를 무너뜨릴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하 였습니다."

제일 앞쪽에서 달려온 수뇌부들 중에서 무림맹주가 진법을 파해한 공로를 치하하자 보무당주와 주진인이 일제 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맹주님, 이번 성과는 모두 이대협의 공이었습니다. 이대협이 아니었으면 진세를 뚫기는커녕 전원이 몰살 당 했을 것입니다."

주진인이 말을 하자 보무당주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허허! 이대협께서 또 한번 무위를 크게 떨치신 것 같군요. 이대협 덕분에 보무당의 위력이 배가 되었으니 이 또한 무림의 홍복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주진인의 말을 받아 무림맹주가 은성을 높이 치하해 주었다. 그런데 주진인은 그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 는 것 같았다.

"맹주님, 이대협의 무위는 보무당 내에서 발군일뿐만 아니라 무림신룡과 같아서 그 경지를 넘볼수 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곤륜산 청령전에 나타났다는 괴인도 이대협에 비해서는 몇수 모자랄 것입니다."

"맞네, 맞아. 없는 머리카락도 만들어내는 고절한 무공이니 그까짓 괴인쯤은 한주먹에 물리칠 수 있을거야."

개방의 만취개가 주책없이 은성을 편들고 나섰지만 누구도 주진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는 않 았다. 적무대주의 극강한 권세를 맨몸으로 맞고도 끄덕 없었다는 괴인이었다. 배교의 마공인 층층무상공(層層 無常功)을 익혀서 이기어검조차 육장으로 간단히 튕겨내는 괴인과 일대일로 대적할 수가 있을 것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주진인도 괴인의 무공이 고강함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인데 자신있다는 말투로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 는 것이다. 은성과 별로 친분도 없었던 주진인이 강력히 주장했기 때문인지 수뇌부들의 뇌리속에 은성의 존재 가 더욱 크고 뚜렷하게 각인되어지고 있었다.

"이대협, 주진인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보무당주는 후방으로 이동하여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고 편히 휴식하 도록 조치하게나."

보무당주가 자신의 명령에 공손히 목례를 올리며 물러나자 문상이 수뇌부들에게 시선을 돌리었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모두들 곤륜천문으로 갑시다!"

문상의 침착한 목소리였다.

절진의 위력이 예상키 어렵다고 하였으면서도 무사히 파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는지 문상의 얼굴에는 기뻐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처럼 담담한 기색으로 여유롭게 다음 작전을 지시하고 있었다. 은성을 바라보며 잠시 묘한 눈빛을 흘렸을 뿐이었다.

수뇌부들이 군웅들을 이끌고 저멀리 보이는 곤륜천문으로 몰려가고 있었지만 은성은 보무당주를 따라 보무당 의 무인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심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이후로 무공을 오랫동안 사용하 여도 내력이 저하되거나 피곤함을 모르게 되었으므로 휴식을 위해 가는 것은 아니었다.

진법속에서 술사들과 싸우면서 부상을 입은 보무당원들을 치료하기 위함이었다. 무림맹의 약수원에서 온 의원 들이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치료하고 싶었다. 어느새 보무당에 대한 애착이 깊어진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