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연재]황정허무검(114)
무슨 생각에 감정이 복받혀 오르는지..... 은성의 눈가에 주르륵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매를 들어 눈가를 훔친 은성이 서글픈 표정으로 보무당주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다가 차디찬 돌덩어리인 양 땅바닦에 처박혀가는 세명의 대석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은성이 보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차디찬 형체속에서 죽어간 술사들의 처참한 형상을 심 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고군분투하며 지금까지 세명의 대석인을 처치하였지만 협공에 걸려 죽음의 순간에 석인들이 동작을 멈춘 사실 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사방을 살피고 있는 보무당주는 지금 이순간 은성의 안중에 없었다. 두리번 거리다가 허공에 떠있는 은성을 발견하고는 그제서야 상황 파악을 한 듯 고맙다고 손을 흔들었지만 은성은 답례를 보낼 심정도 아니었다.
은성은 진정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태극진기로 사람을 죽이던 심기를 사용하여 사람을 죽이던 죽이고 죽는 것 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죽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심기에 당해 죽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신이 죽어가는 것이 실감은 날까?
저들도 생존의식은 있지만 어쩔수 없이 싸움에 참가 했을 텐데 저항다운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허망하니 죽어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림(武林)이었다. 처절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속에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나와 내 동료가 죽어간다는 잔인한 현실에 혈수(血手)를 꺼내 또다시 피에 적셔야만 하는 곳이 바로 무림인 것이다. 무차별적 으로 살수를 휘두르고 소중한 인명을 파리 목숨 마냥 아무 거리낌 없이 살상하는 피와 광기로 점철된 곳이었 다. 무림에 몸을 담그었다는 사실이 한없이 서글퍼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에도 보무당원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을수도 있었다.
보무당주가 몸을 날려 보무당원을 핍박하는 대석인들을 향해 도강을 흩뿌리는 것을 보며 은성도 눈물을 멈추 었다. 인간으로서 같은 인간을 죽이는 것처럼 잔인하고 슬픈 일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반드시 죽어야 하 는 현실이라면 선인(善人)보다는 악인(惡人)이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옥에 가랴...'
한명의 악인을 처치하여 백명의 선인이 살수 있다면 죽어 지옥에 가더라도 기꺼이 악인을 처치할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결심을 굳혔는지 허공에 걸려있던 은성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 그 자리에는 마지막으로 흘 렸을 눈물 한방울만이 지면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대석인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보무당원들은 놀라운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토록 힘겨운 대결을 벌였지만 아무리 싸워도 기력이 전혀 쇠퇴하지 않는 듯 시종일관 위력적인 공세를 퍼붓던 대석인들이 십여명이나 한꺼 번에 터져나가고 있었다.
검강을 펼쳐서야 잘라낼 수 있는 단단한 석체(石體)가 두부처럼 으깨지며 터져나가자 그속에서 비릿한 혈향도 뿜어져 나왔다. 사방으로 비산되는 돌조각 사이로 언뜻 드러난 사람은 놀랍게도 해동에서 온 은성이라는 젊은 무인이었다. 황하에서 쇄목을 처리하던 날 선보였던 어풍비행(御風飛行)이라는 신법으로 보아 무공이 대단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라니.....
희미한 자취만 남긴채 사라지는가 싶더니 한쪽에서 또다시 폭음이 몰아쳐왔다. 그리고 연이어 들려온 폭음소 리를 끝으로 더 이상 하늘과 땅을 뒤집을 듯한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들어보니 그토록 위압적 인 기세로 광란하듯 설쳐대던 대석인(大石人)들중 재대로 서있는 놈은 단 하나도 없었다.
석병들도 놀랐음인가?
아니면 석병들을 조정하던 술사들이 놀랐는가?
석병들의 움직임이 멈춰져 있었다.
"모두들 전력으로 나를 따르십시오!"
주진인이 이처럼 좋은 기회를 놓칠수 없다는 듯 군웅들에게 소리친후 종이학이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칠십명의 보무당원중 대석인에게 죽음을 당한 사람은 단 네명이었다.
육십육명의 보무당원들도 눈으로 직접 보았지만 믿기 어려운 은성의 무공에 감탄만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부상을 당한 사람들도 많았으나 모두가 경공을 발휘하여 순식간에 주진인과 보무당주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주진인과 보무당주의 앞에는 어느새 도착했는지 은성이 달리고 있었다.
은성이 대석인들에게 펼친 무공은 포달랍궁 보리패엽장중 패엽만장(貝葉萬掌)의 초식이었다.
모든 진기를 한 지점에 집중하는 패엽건곤(貝葉乾坤)에 비해서는 위력이 저하되지만 심기를 전력으로 운용하 여 펼친 패엽만장의 초식은 방원 이십장을 초토화 시킬만한 위력이 있었다. 게다가 초식을 정묘하게 변화시켜 십여 가닥으로만 장세를 집중 발휘하였으니 그 위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쇠처럼 단단한 몸을 가진 대석인들조차 십여명씩 한꺼번에 파괴될 수밖에 없는 죽음의 절세 초식이 바로 패엽 만장이었다.
"아니..저것은?"
갑자기 주진인이 은성을 제끼고 뛰어갔다. 그가 집어드는 것은 땅바닥에 떨어져 빙빙 멤돌고 있는 종이학이었 다.
"관학정상(關鶴呈祥)의 술법이 깨어지다니....그렇다면?"
주진인의 눈빛에 긴장감이 어리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요?"
아직도 마음이 편치 않은 듯 침통한 표정으로 은성이 주진인에게 다가왔다.
"아마도 근처에 대단한 술법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진세의 핵심축에 거의 당도한 것 같은데 관학정상(關鶴呈 祥)의 술이 통하지가 않으니 낭패로군요."
"종이학이 날아온 방향대로 그대로 직진하면 되지 않습니까?"
보무당주인 독행도 혼원비가 물었다.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관학정상의 술법을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의 술법가라면 , 그리고 그 술법 가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면 지학(紙鶴)을 조정하여 방향을 바꾸어 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주진인이 말을 마칠때쯤 은성은 보무당원들이 위치한 곳에서 사숙이 혈요인(血妖刃)을 꺼내 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혈요인의 붉은색 기운은 여전하였다. 하지만 붉게 달아올라 허공으로 떠오르는가 싶던 혈요인이 어떤 금제에라도 가로 막힌 듯 바르르 떠는 것이었다.
사숙이 급히 왼쪽 손가락을 물어 몇방울의 피를 뿌려주자 도인(刀刃)에서 뿜어지는 붉은 기운이 요사스럽게 발광되었지만 반자정도나 더 떠오를 뿐이었다. 주문을 외우면서 영력을 보탠 덕분인지 혈요인이 방향을 바꿔 한 지점을 가리키는가 싶더니 다시금 좌우로 격렬하게 흔들렸다.
무리하게 법술을 운용한 듯 사숙의 얼굴색은 창백해져 있었다. 소매를 흔들자 혈요인이 사숙의 오른쪽 소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숙님, 괜찮으신지요?]
은성이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로 전음을 날렸다.
[괜찮다. 그런데 근처에 술법을 금제하는 강력한 술법이 펼쳐져 있는 것 같구나.이처럼 강한 술법이라면 분명 코 한두 사람이 펼치지는 않을 것이다. 혈요인이 동남방을 가리켰지만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숙의 말씀이 맞다면 주진인의 말대로 적의 술사들이 종이학의 방향을 바꾸어논 셈이 되었다. 그런데 술법을 금제하는 술법이라니...하긴 자신의 심안조차도 재대로 발휘할수 없는 절진이니 술법이라고 금제하지 못할까?
심안을 발휘해본 은성은 역시나 자신의 심안이 억제 당하고 있음을 재삼 확인하였다.
처음에 진세를 들어올 때에는 그래도 칠장 정도는 바라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오장여 거리밖에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면 결론은 단 하나였다. 가까운 곳에 술법과 심안을 억제할수 있는 술사가, 아니 술사들이 모여 있을 것이었다.
"잠시만 검을 빌려 주시겠습니까?"
은성이 주진인을 따라온 모산파의 문인 한명에게 부탁하자 은성과 비슷한 또래의 문인이 허리에 찬 검을 풀어 선뜻 빌려 주었다. 평범한 청강검이었다.
술법을 익히는 모산파라고 무공을 익히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무공중에서 경공을 가장 중요시 하였지만 대부 분의 술사들이 호신지술로 검술과 권법도 익히고 있었다. 검기조차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낮았지만 뒷골목의 시정잡배 정도는 몇 명이라도 거뜬히 상대할 수 있었다.
유령왕에게 화룡검을 맡겨놓아 적수공권으로 진법안으로 들어왔지만 적을 상대함에 전혀 불편이 없었던 은성 이었다. 하지만 지금 펼치려는 수법은 검이 있어야만 했다. 전설의 무형검을 익히기 전에는 검이 없을때 불편 한 점도 있는 것이다.
받아든 검은 은성에 의해서 곧바로 땅에 처박혔다. 땅속에 박힌 검을 잡고 두눈을 감은채 은성이 묵념이라도 하는듯한 자세를 하자 일행들이 침묵으로 기원하여 주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은성의 무공으로 보아 뭔가 심오한 무공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종이학이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어 주기 위함일 것이다.
은성이 시전하고 있는 것은 조사지공의 검법중 제이절인 지일이(地一二)의 수법이었다. 지중(地中)으로 진기 를 보내서 검기나 검환을 적의 발밑으로부터 솟구쳐 오르게 하는 상승의 초식이었지만 지금 은성은 지일이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응용하여 펼치고 있었다.
진기를 지중으로 방출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중으로 흘러드는 기세를 받아들여 느끼고 있었다.
술사들이 가까이에 있다면 그들이 내뿜는 기세는 대기에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대지에 육신 을 지탱하고 있는 한 그들의 기세는 땅속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천부경의 내용중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이라는 구절을 깨달은 이후 생명이 없을 것이 라 생각되던 대지(大地)가 생동적으로 살아 움직임을 알 수 있었던 은성이었다. 인간의 심장과 같이 역동적으 로 살아 숨쉬고 인간의 혈액처럼 힘찬 기운이 산맥을 따라 휘달리며 그 기운은 평야나 호수까지도 아니 미치 는 곳이 없었다.
인간의 피부가 아주 작은 느낌조차 감지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지에 촘촘히 펼쳐진 그물망에는 미세한 진기의 흐름조차 감지되어져 지중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사숙님이 예측하신 방향에서 거대무비한 기운이 발동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뻗혀 나오는 기운은 이상하게도 도기(刀氣)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니, 그냥 도기라고 해도 될 것 같았 다.
그 도기가 진세의 핵심축에서 도도하게 흘러나오며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었다. 술법의 기운이니 일반 내기와 는 많이 다를 것이라 예상했던 은성은 내심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목표했던 대로 적들이 진법을 조 정하는 핵심축이 있는 장소는 발견한 셈이었다.
서서히 지일이의 수법을 거두고 눈을 뜬 은성이 검을 돌려주며 군웅들에게 입을 열었다.
"진세를 무너트릴 수 있는 진축이 눈앞에 있습니다. 동남방으로 이십장 정도 떨어진 자리입니다. 하지만 그곳 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말을 멈추고 잠시 군웅들을 둘러본 은성이 재차 입을 열었다. 적들의 기세가 너무 강함이 걱정되어졌는지 조 금은 불안에 잠긴 목소리였다.
"이곳에서 그들과의 사이에 막혀진 장벽을 제거하자마자 공격이 쏟아져 나올 것이니 잠시후 제가 신호를 보내 면 철통같은 수비태세를 갖추며 저를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비록 적들의 기세가 대단하지만 승리는 언제나 우 리 보무당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자, 돌진합시다!"
제일 앞에서 내달리는 은성을 따르는 보무당원들은 은성의 몸이 금빛으로 환하게 빛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 리고 금빛으로 빛나는 은성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 후 갑자기 금빛이 몇배로 확산되자 진세가 흔들리면서 은 은한 뇌성 소리가 울려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세속에서 구역을 가로막던 장벽이 찢겨져 나가듯 부서지자 갑자기 눈앞이 환해져 왔다.
환한 빛속에서 쏘아져 오는 날카로운 도기들은 은성이 예고했던 적들의 공세인 것 같았다. 미리 내기를 운용 시켜 놓았던 병기를 휘두른 덕분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섬뜩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군웅들에게 새하얗게 날이선 도(刀)들이 비도술로 날아든 것과는 달리 태극진기에 심기조차 운용하여 장벽을 크게 벌려놓은 은성에게 날아온 것은 십장은 되어 보일 정도로 거대한 도기(刀氣)였다. 장벽을 부수자 마자 덮쳐드는 도기에 미처 피할 겨를이 없던 은성이 심기로써 간신히 도기를 빗겨가게 만들었지만 촉망중에 펼치 느라 완벽하지 못했는지 도기가 은성을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상반신 좌측 어깨 부근의 옷이 가루로 화해 바스라져 버렸다. 검후의 어머님께서 선물해 주신 옷이 었는데.....
좌측 어깨가 스친 검기에 충격을 받았는지 얼얼했지만 은성은 아찔함에 따른 두려움은 없었다. 대신 화가 치 밀어 오르고 있었다.
귀선문의 절세보법인 묵귀영의 신법이 다시 발휘된후 은성의 신형은 허공을 날아오는 비도들을 피하느라 여념 이 없는 보무당원들의 선두로 떨어져 내렸다. 허공에는 온통 날아다니는 비도들 뿐이었다. 하지만 은성의 손 이 하늘로 쳐들려 포달랍궁의 패엽만장의 초식을 펼치자 하늘 가득한 비도들이 반이나 줄어들어 버렸다.
연이어 펼쳐지자 드디어 하늘빛이 보이고 장내의 현황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장내는 도총(刀塚:도의 무덤)이라 불리워도 될 정도로 많은 도들이 땅에 꼽혀져 있었다. 넘어져 널브러져 있 는 도까지 포함하면 땅이 안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도들을 십장여 떨어진 곳에 넓게 포진하여 앉아있는 칠십 여 술사들이 조종하고 있었다.
이기어도처럼 도에 도기나 도강이 담겨져 있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이만한 수의 도들이 비도술이 아 닌 이기어도의 술법으로 날아왔다면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이곳에 서 있을수 있는 보무당원은 손으로 꼽을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몇 도에는 도기들이 담겨 있었는데 술사들의 능력에도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도기가 담긴 비도 술에 당한 보무당원 몇몇이 고통스러운지 신음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무서운 적은 술사들의 뒤쪽에 포진하여 있었다. 그곳에는 십장 높이의 거대한 천왕도(天王刀)가 오연히 땅에 박혀져 있었다. 검신의 삼분지 일은 땅속에 박힌 듯 보이지 않았지만 보이는 부분만도 엄청난 기 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방금 전 은성에게 날아온 도기와 비슷하게 생긴 도이었다.
은성은 천왕도의 손잡이 끝쪽에서 태연히 가부좌를 틀고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를 둘러싸고 있는 도기에 싸여 은은한 광채를 뿜어대고 있었는데 매우 위험해 보이는 존재였다. 진기가 넘쳐 흐르는 듯 풀어 헤 쳐진 긴 머리를 하늘로 휘날리며 진법의 핵심축인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조정하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결국 진세를 파해하기 위해서는 그를 죽이고 천왕도를 파괴해야 하는 것이다.
천왕도에서는 끊임없이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진동음이 고조됨에 따라 주변에 산재된 도 들이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고 이를 칠십여 술사들이 조종하여 보무당원들에게 날려 보내었다. 은성이 땅에 떨 어진 도 하나를 섭물진기로 잡아 당긴후 조사지공 이절중 인일삼(人一三)의 수법으로 도환을 방출해 내었지만 수많은 비도들을 다 막을 수는 없었다.
한편 보무당원 모두가 수비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리국 단지홍의 지풍은 비도들을 쳐내는 와중에 간간히 틈을 얻어 현천교의 술사들을 공격하고 있었으며 신법 최고라는 단섬은 비도들 사이로 파고들어 어느 새 술사들 가까이로 접근해 있었다.
금룡각의 백광필살(白光必殺)은 원반모양의 특이한 무기로 벌써 두명의 술사를 죽였으며 묵사풍의 검은 화살 은 하늘로 치솟아 올랐지만 술사들의 머리 위쪽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비도술을 가장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사람은 의외로 해동역사였다. 그의 천붕추에 연결된 유성추가 철삭에 의 지한채 풍차처럼 돌아가면 근처로 날아들던 모든 비도들이 철탑에 가로막힌 듯 힘을 잃고 땅에 떨어지고 있었 다. 도기가 운용된 비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만년 한철을 섞어 만든 철삭에 부딪히면 불꽃을 일으켰지만 부러지거나 튕겨져 나갔다.
세 번째로 닥쳐든 천왕도의 무서운 도기를 도강이 운용된 이기어도로써 제어한 은성은 몸을 날려 천왕도에 가 까이 접근하려다 멈칫 발걸음을 멈추었다. 천왕도의 앞쪽에 포진한 오십여명의 술사들의 기세가 좀전과 완전 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몸이 공중으로 일제히 떠오르는가 싶더니 약간 엉거주춤하니 도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일제히 보무 당원들에게로 쏘아져 가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비도들이 날아가는 속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올라탄 도와 혼연일체 되듯 훨씬 빠르고 행적조차 변화무쌍 하였다. 은성은 해동에서 신검이라 불리는 마검과 결투를 벌이 던 귀선문의 고진인의 모습을 보는 듯 하였다.
그들과 보조를 맞추려는 듯 천왕도가 지금까지보다 몇배나 격렬한 떨림으로 진동하자 땅에 꽂혀있는 도들이 솟아 오르기 시작하였다. 술사들이 탄 도 사이로 비도들이 계속해서 날아가는 것을 보면 이제는 천왕도에서 도의(刀意)를 발해 도를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급한 마음에 은성이 가지고 있던 도를 땅속 깊숙이 꽂은후 지중으로 심기(心氣)를 실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