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113화 (113/152)
  • [연재]황정허무검(113)

    대석인(大石人)들은 무자비하기 이를데 없었다.

    어른 몸통보다 더 두꺼운 석곤(石棍)을 휘둘러 동작이 느린 석병 대여섯명이 한꺼번에 파괴되어졌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석곤이 빗나가자 다른 한손으로 가까이에 있던 석병들을 밀치듯이 던져 보무당원들이 수 비를 하도록 유도하더니 어느새 껑충 뛰어올라 보무당원을 노리고 석곤을 내리쳐왔다.

    가까스로 피한 보무당원이 몸을 틀어 도약하며 검기가 운용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허리에 적중된 검을 채 뽑기도 전에 태산압정의 초식으로 무식하게 내리쳐오는 거대한 석수(石手)를 피하려면 검을 포기해야만 했다.

    공중에서 회선표의 신법으로 둥글게 한바퀴 돌아 가까스로 석수를 피한채 또다시 검을 잡아챘지만 검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대석인은 허리가 깊숙이 베어졌는데도 행동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아니, 거대한 덩치에 생채기가 난 것에 노 했다는 듯이 더욱더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어느새 접근했는지 또다른 대석인이 다가와 합공을 펼치자 다급한 보무당원이 뇌려타곤의 수법을 펼쳐 가까스로 두 석인의 공세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방심했던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석병에게서 갑자기 뻗쳐오는 주먹을 허용하고 말았다.

    '으윽!'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기에 죽었을 것이라 안심하고 있다가 불시에 공격당한 것이다. 등뒤쪽을 허용하고 이장 여나 피를 토하면서 튕겨 가는데 눈앞으로 대석인의 거대한 석곤이 몰아쳐왔다. 내상을 입었지만 손에 든 검 에 끌어모을수 있는 내공을 총동원하여 마주쳐 가면서도 자신감은 전무한 상태였다.

    자신이 보무당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석인의 석곤보다 더 빠르고 강력한 것이 있었다. 보무당원이라는 자부심과 끈끈한 동료애였다. 유성처 럼 빠른 신법으로 죽음 직전에 간신히 자신을 잡아채준 사람은 비단 화의를 입은 중년인 이었다.

    대리국에서 온 단섬이라는 무인이다.

    평소 보무당내에서 그가 가장 싫어하는 무리가 바로 대리국의 무인들이었다. 자신들이 색목인이라서 그런지 일부러 회피하는 듯해 보였으며 왕족이라고 도도해 보이는 표정과 어딜 가던지, 심지어는 전투에 나가는데도 비단 화의를 걸쳐입는 꼬락서니가 매우 못마땅해 보였다. 코딱지만한 대리국의 왕족이면서 중원에 버금갈 크 기를 지닌 아라한의 명문무가 출신인 자신들을 무시하다니...

    무공이야 다섯명의 대리국 고수 모두가 대단하다고 들었지만 싸움은 실전이니 직접 붙어보아야 아는 것이다.

    평소 앙숙은 아니지만 마주쳐도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았는데 자신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다니...가슴속 깊은 곳에서 뭉클하니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눈을 돌리니 자신을 공격하던 대석인중 한명이 기우뚱 하는 것이 보였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보무당주가 도강 을 운용하여 대석인의 좌측 다리를 날카롭게 잘라내었던 것이다. 도기가 아닌 도강을 운용해서일까?

    강철처럼 단단하고 두꺼운 다리가 쉽사리 잘라져 나갔다. 다리를 잘라내자 기우뚱하던 석인이 보무당주를 향 해 석곤을 내리쳐왔다. 하지만 이를 보지 못했는가?

    보무당주는 그 자리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한바퀴, 두바퀴...다섯바퀴

    보무당주가 도를 중단에 놓고 다섯바퀴를 도는 동안에 석인의 몸뚱아리는 계속해 줄어들고 있었다. 무를 듬성 듬성 잘라내듯이 석인의 양쪽 다리를 번갈아 가며 토막낸 보무당주의 도강이 상단으로 이동한 것은 석곤이 보 무당주의 머리위에서 한치정도 밖에 남지 않았을 때였다.

    가속도의 원리 때문일까?

    보무당주의 회전속도는 그 조차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가공스럽기 이를데 없었다. 여섯바퀴, 일곱바퀴...그리고 열바퀴를 채우고서야 회전을 멈추고 그 속도를 이겨내지 못해 돌풍처럼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는 보무 당주의 발 밑에는 조각난 석곤과 형체조차 어지러운 돌조각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삼백근 현철도의 무거운 중량을 회전의 축으로 삼은 비장의 절초 회룡참마(回龍斬魔)의 제 삼초식이었다. 날 아가는 그가 도착하는 지점은 또다른 대석인이 위치한 곳이었다.

    한편 육십여명의 대석인이 달려들 때 생기를 느꼈던 은성은 생기가 삼십여명의 대석인에서만 흘러나온다는 사 실을 알수 있었다. 똑같은 크기의 대석인 이라도 생기가 흐르는 대석인들의 동작이 훨씬 빠른 것 같았다.

    무작정 무기를 휘두르는 다른 석인들에 비해 사용하는 초식도 깊이가 있고 훨씬 정교해 보였다.

    무공의 고수들인 보무당원들을 상대하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으며 여기저기서 보무당원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보무당원들에 비해 속도에서만 조금 뒤질뿐 훨씬 위력적이고 파괴력이 높았던 것이다.

    저멀리서 대리국의 단지홍이 대석인에게 지풍을 날리는 것이 목격되었다. 하지만 석병에 비해 대석인의 덩치 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그리고 몸을 이루고 있는 돌의 단단함도 차이가 심했다. 단지홍이 날린 지풍이 대석인 의 팔목 부위는 관통했지만 가슴으로 파고든 지풍은 도중에 힘이 다한 것 같았다. 호수에 돌멩이 하나 던진 것 처럼 파고든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교묘한 신법으로 석병들을 피하면서 대석인의 목부위에 정통으로 맞히자 간신히 작은 구멍을 만들어낼수 있었 다. 그렇지만 목에 십여개 이상의 구멍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대석인의 전투력 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석자는 되어 보이는 목부위에 작은 구멍 십여개는 나룻배에 생긴 못자국 정도였다. 대석인이 몸을 돌려 단지 홍을 향해 달려들자 은성이 묵귀영의 신법을 펼쳐 대석인이 몸앞을 가로막았다. 갑자기 허공중에 생겨난 듯 나타난 은성의 모습에 대석인이 주춤한 찰나 은성의 손가락에서 금빛 기운이 뻗쳐 나갔다.

    동방파의 미륵지가 태극진기로 펼쳐진 것이다. 은성이 펼친 미륵지가 파고드는 부위는 대석인의 명치 부근이 었다. 그곳은 생기가 뻗혀져 나오는 부위이기도 했다.

    '피윳'

    명치를 파고든 지풍이 대석인의 등뒤쪽으로 관통되어 뻗어 나갔다. 그런데 착각일까?

    대석인의 등 뒤쪽으로 빠져나가는 금빛 기운 주위로 붉은 빛이 어리어지고 있었다.

    '푸확...'

    붉은 액체..바로 피였다. 금빛 기운이 사라졌는데도 붉은 액체는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뿜어져 나오던 혈 액의 양이 줄어들어 흘러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은성은 자신이 공격한 대석인에게서 생기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느낄수 있었다.

    "와르르르..꽈당"

    그리고 거대한 덩치의 대석인이 힘없이 땅바닥에 나뒹글어 버렸다. 널부러진 대석인의 가슴속에서 흘러나온 것은 인간의 피일 것이었다. 그것도 심장 한복판이 꿰뚫리며 흘러나온 피일 것이다. 하지만 은성은 망설이고 있을수 가 없었다. 자신이 조금 머뭇거린 순간 비명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보무당의 무인이 당한 것이다.

    이형 환위의 수법으로 공간을 좁혀 순식간에 이동한 은성의 손에서 다급하게 패엽건곤의 초식이 펼쳐졌다.

    보무당원 한명이 매우 위급지경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대지를 울리며 뻗어나간 패엽건곤은 포달랍궁에서 자랑할만한 절세초식이었다. 보무당원의 옷자락을 펄럭이던 대석인의 거대한 도끼는 물론이고 어른 허리통만 한 팔뚝마저도 한꺼번에 바스라져 버렸다.

    이놈에게서도 생기가 느끼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은성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지를 흩뿌렸다. 은성의 오지 에서 오행의 다섯가지 기운이 뻗쳐 나가 대석인의 등뒤로 파고들었다. 빠져나오는 오행의 기운속에 희미한 혈 향이 베어져 나왔다.

    혈향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은성이 몸을 날린 곳은 사부님이 악전고투(惡戰苦鬪) 하는 장소였다. 은성이 건네 준 조사지공에서 중검의 묘리가 담긴 무진중(無盡重)의 초식을 익히신 덕분에 대석인 한명을 처치하였는데 운 이 없게도 한꺼번에 두명의 대석인이 덮쳐들고 있었다. 게다가 두명 모두 생기가 흐르는 빠르고 강한 놈들이 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사부님 주위에는 유난히 석병 또한 많이 있었다. 동작이 다소 느리지만 여전히 위력적 인 석병들이었다. 정신집중을 방해하는 귀찮은 존재들이지만 조금 약하다고 등한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하여 간신히 버티고 있던 자운검은 대석인중 한명이 갑자기 한쪽 무릅을 꿇자 황망중 에도 의아심이 들었다. 그런데 한쪽 무릅뿐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덩치가 무너지면서 양손까지도 쭉 뻗어 죽 은 개구리처럼 사지를 바르르 떠는가 싶더니 곧바로 잠잠해지는 것이었다.

    조금 여유가 생겨 나머지 한명의 대석인에게 이형환위의 수법을 펼치던 자운검은 남은 대석인도 왠지 행동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두손을 느려트린채 꼿꼿이 서있는 것이 마혈이라도 제압당한 것 같았다.

    돌로 만들어진 괴물에게 마혈이 있을리 없을 것이라 생각되어 졌지만 길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단 한번의 도약으로 허공중에서 멀뚱히 서있는 대석인의 머리통 근처에 당도한 자운검의 검이 번뜩였다.

    '번쩍'

    자운검의 손에 든 검이 한자가 넘는 검강을 흩뿌리자 대석인의 목이 힘없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나갔다. 그런 데도 대석인은 땅에 쓰러지지 않았다. 옷자락을 펄럭이며 여유롭게 내려서면서 다시금 검을 휘둘러 두명의 석 병을 처치한 자운검에게 전음이 들려왔다.

    [사부님! 사숙님을 도와 주십시오!]

    보지 않아도 제자의 목소리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멀리 번뜩이는 제자를 보니 이형환위의 신법을 펼치고 있 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형환위가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이형환위가 저토록 신출귀몰하게 변화될 수가 있다 는 말인가?

    청출어람(靑出於藍) 이라고 새삼스레 제자의 뛰어남에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끼는 자운검이었다. 은성은 동방 파의 자랑이자 해동의 자랑인 것이다. 그리고 또한 자신의 제자이기도 하였다.

    사부님을 위하여 대석인들에게 미륵지를 날려 휘어들도록 유도한 은성은 적중된 듯 동시에 들려오는 미약한 신음소리를 등뒤로 한채 재차 몸을 날리고 있었다. 한쪽에서 사숙이 다른 보무당원과 대석인 한명을 합공하고 있었는데 형세는 유리해 보였다. 생기가 없는 놈이니 안심할 수도 있었지만 사숙을 도와주는 보무당원도 사숙 과 마찬가지로 검기밖에 운용할 수 없음을 알자 검강을 운용할 수 있는 사부님께 전음을 보냈다.

    술법을 펼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격전에서는 사숙보다 사부님이 더 강한 것이다.

    은성이 날아가는 곳은 보무당주가 세명의 대석인에 둘러싸여 위험에 빠진 곳이었다. 격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경기가 사방으로 난무하고 있었는데 촌각의 시간도 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해 보였다. 이형환위에서 묵귀 영의 신법으로 변화시켜야 할 정도로 다급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은성의 눈앞을 가로막는 존재들이 있었다. 좌우로 두명의 대석인이 시야를 방해하며 은성쪽으로 달려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과 상대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허공을 차며 재차 도약한 은성이 전개한 것은 일 종무종일(一終無終一)의 수법이었다.

    조사지공 최후의 무공이며 상단전이 발달하지 못하면 펼칠 수도 없는 무공을 심기를 운용하여 펼친 것이다.

    유령왕조차도 피하지 못하고 몸이 터져나갔던 무공이었다. 인간이 견뎌낼 수는 없었다.

    석인의 몸속에 술법으로 은잠한 채 석인이 자신의 잠력을 사용할 수 있는 요석지술(妖石之術)을 펼치던 극락 조단의 술법사 세명의 몸이 석인속에 봉인되어진채로 터트려지며 육신이 형체를 잃어버렸다. 허공에서 몸을 돌려 뒤쪽으로 따돌린 대석인 두 명에게 포달랍궁의 무공인 패엽건곤을 펼쳐낸 은성은 허공중에 걸린 듯 내려 올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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