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황정허무검(99)
심해 깊은 곳에서 묵귀영 수법을 익히면서 이미 수리(水理)에는 자신있는 은성이었다. 심기를 조절하여 화살 같은 속도로 물속을 이동해 가면서 심안으로 사방을 살펴 보았다.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진흙을 물에 푼듯이 걸쭉한 강물속에서 무엇을 볼수 없었겠지만 심안을 운용해서인지 대낮에 사물을 보듯이 은성은 세밀히 살필수가 있었다. 심안(心眼)으로 사물이 내뿜는 기세와 색상까지 파악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유령왕과 싸우는 상대는 용과 같이 생긴 거대한 괴물이었다. 뿔이 없고 머리가 두개 달린 것이 달랐지만 전설 속의 용이 아닌가 생각되는 괴물인 것이다. 그런데 이 괴물의 비늘은 매우 특수한 것 같았다.
쇠로 만든 강철 바위조차 꿰뚫어 버리는 강기로 이루어진 유령왕의 권세에도 견디어 내고 있었다. 권세에 격 중되면 충격이 있는지 그 거대한 몸을 격하게 흔들며 발광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황하가 날뛰고 있는 것 같 았다.
유령왕과 마찬가지로 쌍두곤(雙頭鯤)도 온몸이 무기로 사용되고 있었다.
두 개의 거대한 주둥이에서는 투명하고 길쭉한 혓바닥 모양의 강기가 채찍처럼 휘둘러져 끊임없이 유령왕을 노리고 있었으며 집채만한 몸뚱아리와 변화무쌍하니 사방을 난도질하는 칼날같은 꼬리도 쉴세없이 유령왕을 공격하고 있었다.
아무리 유령왕이라도 강기조차 통용되지 않는 강한 비늘을 가진 괴물과 대적하기에는 힘겨운 것 같았다. 괴물 의 입에서 나오는 투명한 강기는 극한의 음한지기(陰寒之氣)가 포함되었는지 차가운 한류가 형성되어 주변의 물과 뒤섞여 와류조차 형성시켰다.
유령왕의 신법은 물속에서도 자유자재로 발휘되고 있었다. 석동(石洞)에서 보다는 조금 느려져서 은성의 심안 을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쌍두곤에게 타격을 허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꾸아아아아아악..."
빗살같은 속도로 쌍두곤의 공격을 피한 유령왕이 역습을 하여 강기를 한점에 모아 공격하는 역추공(力錐功)을 발휘하자 괴물이 황하가 떠나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무리 단단한 비늘을 가졌다고 하지만 강기를 응축시 켜 공격하는 유령왕의 수법에는 견딜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괴로움이 심했는지 쌍두곤이 뜨거운 장작불 위에 올려진 미꾸라지처럼 발광하면서 강 밑바닥을 깊숙이 파헤치며 휘저어 놓아 버렸다.
"솨라라라..쿠르르르."
진흙이 퇴적되어 형성된 황하의 뻘흙이 어지러이 치솟아 올라가고 근처에는 소용돌이가 일어 위쪽으로 뻗어 올라갔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강물위에 떠있는 선박들이 위험할 것은 불문가지였다. 은성이 심기를 발휘하여 급히 물살을 진정시켰다.
그런데 심기를 발휘하여 물살을 진정시키던 은성은 황하 상부로부터 수십척의 배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림맹에서 만든 배들보다는 작은 크기였지만 거센 물살을 헤치고 거침없이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위쪽에서 풍겨져오는 긴장감이 고조되더니 어느새 치열한 격전음으로 바뀌자 은성은 다급함을 느꼈다. 유령왕 과 합세하여 괴물을 빨리 죽이고 올라가야 할 것 같았다.
잠깐 사이, 유령왕과 쌍두곤의 대결은 좀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다.
쌍두곤의 주둥이에서 뿜어져 나와 넘실거리는 투명한 강기와 정면으로 부딪힌후 쌍방이 충격을 받고 주춤하는 사이 쌍두곤의 다른 머리 한개가 번개같이 급습해왔다.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기세가 달랐다. 핏빛으로 물든 눈동자에 투명한 강기 안쪽에도 진한 핏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심안을 운용하고 있는 은성이 보기에도 갑작스런 이번 공격은 좀전보다 몇배나 위험스러워 보였다. 쌍두곤의 머리통이 달려들며 와류를 형성해 유령왕의 영활한 신법조차 방해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전력을 다한 공격인 것이다. 하지만 쌍두곤은 유령왕의 신위를 무시하고 있었다. 지상에 이렇게나 강한 놈이 있다니?
놀라고는 있었지만 유령왕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는 눈치챌 수 없었던 것이다. 은성이 전해준 태극진기가 유 령왕이 본시 지닌 귀기로운 기운을 모두 억제시켜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충격을 받은 사실이 부끄 럽다는 듯이 인상을 팍 구긴 유령왕이 전력을 발휘하여 신법을 펼쳤는지 은성의 심안을 또다시 벗어나 버렸다
.
'쉬리리릭'
순간 쌍두곤을 지나쳐 가는 유령왕의 뒤쪽에서 엄청난 비명소리가 또다시 울려 나왔다.
"케에엑..꾸아악..!"
독기를 뿜고 달려들던 쌍두곤의 정수리 부근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는지 그곳으로부터 검은 핏물조차 흘러 나왔다. 강기를 응축시켜 역추공(力錐功)의 수법으로 정수리를 가격한 것이 분명한데도 몇백년 동안 지하 깊 숙이에서 단련된 단단한 비늘에 충격이 감소되어졌는지 아직도 숨통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화아악'
아무리 황하의 물이 혼탁해도 은성의 심안은 유령왕이 드디어 화룡검(火龍劍)을 뽑아들었음을 확연히 느낄수 있었다. 스스로 무적임을 자랑하는 유령왕이 드디어 자존심을 굽히고 화룡검을 뽑아들 정도로 괴물이 대단한 것이다.
유령왕이 화룡검을 뽑아들자 쌍두곤도 화룡검의 기세에 주춤하였다. 음기만을 축적한 쌍두곤이 양기의 결정체 인 화룡의 내단이 봉인된 화룡검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물살을 가르고 눈앞으 로 다가오는 화룡검을 막을 방법까지는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급한대로 유령왕과 가까운 칼날같은 꼬리를 휘둘러 유령왕의 등뒤를 가격하여 갔지만 귀신도 울고 갈 감각을 지닌 유령왕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은성에게서 배운 신법을 활용하여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피하면서 하나된 동 작으로 휘돌며 화룡검을 휘둘렀다.
'사아악'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울려 나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처참하였다. 몇아름이나 될 것 같은 쌍두곤 의 꼬리가 깨끗이 절단되어 버렸다. 화룡검을 이루는 쇠는 보통 쇠가 아니었다.
몇만도나 나가는 유성에서도 완전히 녹지 않고 남아 있었던 현철보다 몇배나 단단한 유성철인 것이다. 귀선문 의 개파조사인 귀선진인(鬼仙眞人)이 화룡의 뼈를 다듬는데 사용한 검이니 보통 단단하고 날카로울 리가 없었 다.
"꾸에에에엑"
울부짖음 속에 쌍두곤의 끊겨나간 꼬리가 갑자기 물속에서 '파악' 하니 터져나가 버렸다. 그러자 사방으로 검 은 핏물이 뿜어져 나가 황하의 물조차 검은 색으로 번져가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쌍두곤의 머릿속에 위치한 음한지기 핵심진원의 통제를 벗어나자 과도한 음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터져나가 버린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터져나간 부근의 검은 물살이 처억 갈라지며 급속하니 그 범위를 넓혀 사방으로 엄청나게 강한 충격을 전해주고 있었다. 은성이 없었다면 강물 위에 해일이라도 일 것 같은 위력이었다.
미쳐 날뛰는 쌍두곤은 분별력조차 사라진 것 같았다. 두개의 머리가 괴음과 함께 불시에 유령왕에게 달려 들 었다. 그러나 유령왕의 신법은 표홀하기 이를데 없었다. 이성을 잃고 다짜고짜 달려들던 쌍두곤의 머리 하나 가 또다시 날카로운 화룡검에 잘려지는가 싶더니 터져나가 버렸다.
그런데 꼬리와는 달리 쌍두곤의 머리가 터져 나가는 위력은 막대하기 그지 없었다. 검은 피가 강기처럼 일시 에 퍼져나가 유령왕은 물론이고 멀찍이 떨어져서 이들의 격전에 날뛰는 물살을 제어하던 은성조차도 순식간에 덮쳐 버렸다.
조금 멀리 떨어진 은성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유령왕은 큰 타격을 받은 것 같았다. 쌍두곤의 머릿속에 농축된 진원지기가 터져 나가며 일시에 몰아친 기세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이다. 몸통에 수많은 구멍이 뚫린 유령왕 이 튕겨져 진흙 뻘속으로 깊숙이 쳐박혀 버렸다.
"꾸아아아아아악..."
몸통 한개를 잃은 쌍두곤이 하늘조차 떨쳐울릴 정도로 미친 듯이 울부짖자 황하가 몸부림을 치며 거세게 요동 을 쳤다. 은성이 충격에 잠시 심기가 약해진 틈을 타고 황하 밑바닥의 물살이 위쪽으로 솟구치며 무림맹 배들 이 있는 곳으로 덮쳐가기 시작하였다.
'큿'
유령왕이 당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은성은 유령왕의 안위를 살피러 땅속으로 따라 들어 갈수 없었다. 힘겹 지만 입술을 앙다물고 광란하는 황하의 물살을 제어하기 위해 온 힘을 다 기울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황하 밑바닥에 가까이 머물던 쌍두곤이 고개를 번쩍 쳐들고 황하 위쪽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몸을 솟구 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는 천계의 신들을 두려워하여 암중에 물상을 일으켜 저들의 배를 파괴하고 물에 빠 트려 죽이려 하였지만 생각이 바뀐 것이다. 악에 받친 듯한 붉은 눈동자로 위쪽으로 치솟아 올려가려는 쌍두 곤을 바라보는 은성의 눈에 다급함이 어리어졌다. 쌍두곤이 강위로 올라선후 벌어질 만행이 눈에 선했기 때문 이었다.
심기로 묵귀영의 신법을 발휘한 은성이 전력을 다해 쌍두곤에게로 날아갔다. 그러면서 심기를 발휘하여 선공 을 펼쳤다.
이때였다. 황하 밑바닥에서부터 무언가 붉은 광채가 솟아 올랐다. 빗살같은 속도였다. 어느새 붉은 광채는 쌍 두곤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유령왕이었다.
은성이 발한 무공에 단단한 비늘로 둘러싸인 쌍두곤의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텅하니 비어오고 유령왕이 발한 화룡검의 검강지기에 방어는 커녕 저항의지조차 잃은 쌍두곤의 머리가 두쪽으로 갈라진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 다.
다급함에 은성이 발휘한 신공은 조사지공 최후의 초식인 '일종무종일' 이었다. 상단전에 응축된 심기를 운용 하여 은성이 펼칠 수 있는 무공중 가장 강력한 무공이었다. 마음이 이는 순간 발휘되는 신공으로 유령왕의 신 법보다도 몇배나 더 빠른 신공이기도 하였다.
비명을 내지를 세도 없이 두쪽으로 갈라진 쌍두곤의 신형이 터져나가려는 순간에 은성은 심기를 최대한 발휘 하여 호신강기를 발휘하였다. 황하가 검게 물든 것도 그리고 황하 밑바닥에 위치한 물들이 모두 하늘로 빨려 올라간다는 느낌도 게다가 유령왕이 조금전보다 더 처참하게 갈갈이 찢겨지며 나가 떨어지는 것도 알아 차릴 수는 있었지만 돌볼 여지는 없었다.
전심전력으로 심기를 운용하여 호신강막을 펼쳐내서인지 호신강기가 꿰뚫리지는 않았지만 충격을 모두 완화 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은성도 유령왕처럼 튕겨나가 지하 깊숙이로 쳐박혀 들어가 버렸다.
"퍼버버버벅...휘리리릭."
들어가는 속도 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빠져 나오는 신형은 유령왕이 아니라 은성이었다.
쌍두곤이 터져 나가며 진원진기의 공격에 큰 충격을 받아서 몸 내부가 정상이 아니었지만 몸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사부와 검후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물살을 헤치고 올라가며 심안으로 살펴보니 황하는 완전히 흑하(黑河)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엄청난 한기가 느끼어지고 있었다. 무술이 약한 고수들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쌍두곤의 음한지기가 섞인 피이니 인체 에 치명적인 독성분도 가미되어 있을 것 같았다.
이래저래 강 상부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이 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