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96화 (96/152)

[연재]황정허무검(96)

"문상! 무엇인지 아시겠는지요?"

"아닙니다. 산해경(山海經)은 물론 세상의 희귀한 존재들이 모두 망라된 신수이괴(神獸異怪)라는 서책에도 없 는 기이한 생명체 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문상이 자신없다는 듯이 맹주에게 대답하자 옆에 있던 무당 장문인이 나섰다.

"금빛 광채가 나는 것으로 보아 오행을 근본으로 삼는 정령(精靈)도 아니고 요수(妖獸)나 잡귀(雜鬼)도 아닙 니다. 위력으로 보아 천계의 신수(神獸)이거나 지옥의 마수(魔獸)밖에 없는데 본적도 없거니와 한번도 들어보 지 못한 기수(奇獸)인 것 같습니다."

무당파의 도인들은 도를 닦아 우화등선(羽化登仙)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우화등선을 하기 위해 심신을 단련 하고 심신을 단련키 위해 무도에 전념하였지만 연단과 법술에 능한 도인들도 많았다. 장문인은 이들 중 어느 한가지라도 소홀히 할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무당파의 장문인은 이들 세가지에 두루 능통한 천재들 중에서 엄선되어졌다.

"왜 우리를 도와 주었을까요?"

유령왕의 신위에 놀라 멍한 표정을 짓던 당기독이 이제야 정신이 돌아왔는지 문상에게 물었다. 문상이라고 모 든 것을 알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당기독이었지만 그래도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 문상이었다.

학문의 깊이는 물론 박학다식 하기로 소문난 문상은 어떠한 난제도 쉽게 해결하곤 했던 것이다.

"장담할 수 있는 것은 금빛 기수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현신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유추해 보면 금빛 기수를 현신할 수 있는 술법가가 우리 일행중에 속해 있거나 아니면 우리 뒤를 따르며 암중 보호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알수 없지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을 꺼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나 현명한 문상이었다.

문상의 대답을 듣자 주변 수뇌부들의 얼굴에 가득했던 의구심이 옅어지고 안색마저 밝아졌다. 아직은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절대적 위력을 소유한 조력자가 있다니 용기가 북돋아지고 안색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뇌부들이 유령왕의 정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동안에 뒤쪽에서 경공을 발휘해 급히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 다. 모산파의 주진인 이었다. 흑무를 벗어나 이동할 때 조사할 것이 있다며 가장 뒤쪽으로 물러 났었는데 무 엇이라도 발견한 것 같았다.

"맹주, 역시 현천교의 소행이었습니다. 현천교 극락조단(極樂造團)의 고수들 사체(死體) 오십여구가 발견되었 습니다."

주진인의 말이 끝나자 문상을 제외한 수뇌부들이 주진인을 따라 경공을 펼쳤다. 문상도 적안설룡구가 끄는 마 차에 올라 급히 뒤를 따랐다. 주진인이 발을 멈춘 곳은 지형적으로 매우 기이한 장소였다. 흑무가 펼쳐진 곳 과는 오백여장이나 떨어져 있었는데 주변보다 조금 높은 분지였다.

분지 주변에 기묘한 방위(方位)를 잡은채 위치한 바위에 찢긴 부적들이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결계가 펼쳐졌 던 것 같았다. 아마도 주진인이 파괴시킨 것 같았다.

분지 안쪽은 바람한점 불어오지 않은채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텅비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분지 주변을 빙 둘러가며 오십여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신분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하나같이 왼쪽 가슴에 넘실거리는 물살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지상천국을 만들자는 목적하에 창시된 현천교는 만민평등을 교리로 삼고 있었다. 지상천국은 모두가 대등하고 평등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교의 문양에는 물이 세겨져 있었다. 물처럼 자유롭고 물처 럼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물의 문양은 청색실로 수놓고 있었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배교와 밀교의 법술을 익힌 고수들이 많은 극락조단의 고수들은 보라색 실로 그리고 현천교가 창시된 이래도 백여년 동안 기괴하고 강함 위주로 변형된 도가 무공에 성취가 깊은 고수들이 많은 현세화단(現世化團)은 붉 은색 실로 수놓고 있었다.

분지에 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있는 이들은 모두가 보라색 물살이 수놓아져 있었다.

자세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로 앉아 있었으며 겉으로 드러난 외상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들이 모두 죽었 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동공에 흰자위만이 보이고 안색은 혈색이 하나도 없었으며 심장 박동소리가 전 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뇌부들이 분지에 모두 도착했음을 확인한 주진인이 상황 설명을 하였다.

"흑무속에 나타났던 혈안은 이들의 의념이 뭉쳐져서 법술로 화한 것입니다. 오십여명이 의념을 모아 펼쳤기 때문에 그처럼 가공하고 상대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다행히 혈안이 파괴되어 한데 집약된 의념이 흩어지자 각자 그들의 법력대로 술법을 전개하였지만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죽어간 것 같습니다. 혈안이 깨지면 이들의 의념도 사라지고 의념이 사라지면 혼백이 흩어지기 때문입니다. 살펴본 결과 이들 모두 혼이 떠나갔습 니다. 이미 이승의 생은 끝나버린 것입니다."

"중앙에 있는 사람은 무엇 때문입니까?"

당문 장문인 당기독의 말처럼 중앙에도 시신 한구가 앉아 있었다.

"아마 이들의 우두머리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의념이 한 곳으로 모일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하 는 존재이지만 혈안이 깨어지는 순간 제일 먼저 죽었을 것입니다."

"..."

이들이 행한 술법의 잔인하고 사악함을 생각하면 날짐승과 들짐승의 밥이 되도록 시체를 방치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비록 잔악한 적도이지만 이들도 사람인 것이다.

분지를 빠져 나온 후 장문인들은 각파에서 인원을 차출하여 이들을 분지에 묻어주기로 하였다. 하늘조차 태울 듯이 가열차게 불타오르던 흑무는 연기조차 남지 않고 모두 꺼졌으며 주변에 나무도 없기에 시신을 태우지 못 하고 분지에 매장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결정이었다...

"커허!"

각 문파에서 차출된 제자들이 시체를 매장하는 동안에 옆구리에 매달린 주통(酒桶)을 꺼내 한모금 들이킨 개 방방주 만취개(滿醉?)가 쉰트림을 내뱉으며 다른 손에 들린 건포를 입에 넣었다. 습관인 듯 주독에 걸린 딸기 코를 손가락으로 몇 번 쓰다듬더니 옆에 있는 남궁세가의 장문인 창궁검(蒼穹劍) 남궁진에게 물었다.

"남궁가주, 땅속에 자라 모가지처럼 숨어 불쑥 튀어 나온 놈들도 현천교의 세력일까요?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우리 이목을 피할 수는 없었을 터인데 검후가 알려주기 전까지 전혀 기척도 알 수 없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믿겨지지 않는 만취개였다.

그들이 전문적인 살수 훈련을 받고 땅속에 숨어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었다고 하여도 땅밖으로 뛰쳐나와 살수 를 펼치기 전까지 그들의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니...

여기 모인 무림 군웅들이 무위를 생각해보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개방의 고수들만 하여도 있 을수 없는 일이었다.

개방에 입문하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수법들이 있었다. 가장 심혈을 기울여 가르치는 것은 구걸을 하는 방법이지만 이결 제자 부터는 개를 잡고 보신탕을 끓이는 방법을 전수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개방도의 진정한 능력은 다른 곳에서 판가름이 지어졌다. 바로 뱀을 잡고 요리하는 비법이었다. 이 비 법은 쉽게 배울 수가 없었다. 이 비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선배 걸개에게 최소한 털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황구 서너마리는 가져다 바치는 것이 개방의 전통이었다.

이 비법만 제대로 알면 수시로 영양 만점인 보신탕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경쟁이 생기지 않을리 없었다.

뱀을 잡는 절기들이 수없이 창안되었다. 맹독을 가진 삼보추혼사(三步追魂蛇)는 물론 일보단장사(一步斷腸蛇)와 무림고수 보다도 날렵한 금선사(金線蛇) 그리고 쇠조차 껍질을 뚫을수 없는 묵철사(墨鐵蛇)도 개방고수들 의 눈에 뜨이면 그날이 제삿날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황구를 향한 개방 고수들의 필사적인 집념은 겨울철 동면을 하는 뱀을 찾아내는 절기 창 안으로 고귀하게 승화됐다. 바위틈이나 땅속 깊숙이 위치한 가사 상태의 뱀조차 찾아내는 개방도들이 땅속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수들의 종적을 찾아낼수 없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별의별 인간 군상들이 다 모이는 곳이 개방이니 만큼 보유한 무공종류도 셀수 없을 만큼 다양한 곳이 개방이 었다. 개방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무공을 모르는 나이어린 꼬맹이들만은 아니었다. 언제나 개방적인 문호이다 보니 어중이 떠중이는 물론 무공 고수들조차 숱하게 입방하는 것이다.

입방시에는 규칙에 따라 그들이 가진 절기들을 적어 상부에 보고하다 보니 개방 총단에는 엄청난 수의 절기들 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절기들은 또한 수시로 제자들에게 전수되어졌다.

정보를 수집하고 조그마한 공을 세워도 그에 상응하는 절기들이 전수되니 개방도들의 무공이 고강해질수 있었 다. 그리고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개방도들은 절기들을 전수받기 위해서 정보 입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개방의 저력이 되고 있었다. 개방하면 무림인들의 뇌리에는 넘치는 정보와 수많은 절기가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개방의 방주가 모르는 사실을 남궁세가의 장문인 이라고 알 수는 없었다.

"방주께서 모르시는데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사용한 무공이 오로지 살인만을 목표로 하는 직선적이고 빠른 수법인 것으로 보아 전문 살수라는 것은 알겠지만 현천교 소속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흠..."

남궁세가주 에게서 시원스런 답변이 나오지 않자 만취개가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찔벅거렸다.

몸이 간지러운데 정확한 위치를 모를때 의심나는 곳을 여기저기 긁다보면 시원한 곳이 있게 마련이었다. 밥을 빌어 먹을 때의 요령도 같았다. 안준다고 굶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가급적 많은 놈들에게 생때를 쓰다보면 그 중에 한놈이라도 인정머리가 남아 있곤 하였다. 개방도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모용가주는 어떻습니까? 모용세가에서 모르는 검법과 도법은 앞으로 창안될 무공밖에 없다던데 의심가는 곳 이라도 있습니까?"

모용천은 이십대 중반이니 만취개에 비해서 새파랗게 어린 나이였지만 그래도 한 세가의 가주 신분이니 공대 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살수 조직인 백련곡(百蓮谷)의 도법과 유사하였습니다. 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도법에 부상국의 인자들이 사용하는 도법이 가미되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만취개의 작전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옆에서 모용천의 대답을 듣던 문상이 백련곡에서 부상국의 인자들을 받아들였다는 믿을만한 첩보가 있다고 증 언해 주었기 때문이다. 개방의 정보망을 능가할 정도로 무림맹의 정보 조직은 광대하였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돈을 받고 청부살인을 업으로 삼는 그들이 왜 현천교를 도와 주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무림맹의 문상이 속시원히 긁어 주었다.

현천교에서 백련곡에 은둔진결(隱遁眞結)을 전수해주고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라는 추리였다. 살수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은잠(隱潛) 능력일수도 있는 것이다. 흑무속에서와 같이 무림의 절세고수들조차 발견할수 없는 은둔진결이라면 백련곡에서 기를 쓰며 얻으려고 했을 것이 분명하였다.

의문은 속시원히 풀렸지만 수뇌부들의 뇌리에 한가지 걱정이 더해졌다.

백련곡의 살수들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백련곡의 살수들중 최고수인 십련(十蓮)은 지금껏 완수하지 못한 임무가 없었다고 소문나 있었다. 그들이 은둔진결까지 완벽히 익혔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목 언저리가 뻣뻣해 왔는지 만취개가 시커멓게 때에 절은 손으로 목 근육을 풀어 주었다.

목을 어루만지는 만취개의 시선은 검후를 보고 있었다. 도대체 은둔진결로 숨은 그들의 정체를 검후가 어떻게 알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의문은 나중에 풀기로 하였다. 현천교의 고수들을 다 묻었는 지 진열을 재 정비한 군웅들이 진군할 채비를 완벽히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천 삼백여명의 고수들이 경공을 발휘해 당극으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무공 고수들인지라 진군 속도 는 말을 잃기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세시진만 가면 당극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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