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92화 (92/152)

■ 제 92절 :

새벽이 가까워 졌음을 별자리를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가 있다.

깨달아 천지교통(天地交通)의 경지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주변 상황과 천지 자연의 본질 을 직시하는 경지를 넘어서 그 인과 관계를 파악하고 미래를 본능적으로 예측 가능한 경지이다.

변화하는 상(象)속에 고정된 이론을 만들고 진리라 설파하는 학자들과는 다르다. 변화의 본질을 느끼고 굳이 이해하려고 집중하지 않아도 시시각각 변화되는 진리를 자연스럽게 알수 있는 경지가 바로 천지교통의 경지인 것이다.

계절에 따라 낮과 밤의 길이가 다르고 지역에 따라 낮과 밤이 찾아드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잠을 자다가 문득 깨어나도 시각을 알 수 있는 경지이다. 잠조차도 거의 필요가 없지만 말이다.

새벽녘, 은성의 옆에는 부적이 가득이 널려 있었다. 육합천서상의 법술과 주문은 모두 외웠지만 부적은 형상 조차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외울 수가 없었다. 요귀 소환술등은 몇 장씩을 그렸지만 사용하지 않을 부적등도 한 장씩은 모두 그려 놓은 은성이었다. 만일을 대비하여 필요시 보고 그리기 위함이었다.

잠령수( 靈水:주문을 외우고 물그릇에 손가락으로 부적 글씨를 일곱 번 쓴 물)를 주사(?砂)에 개어 괴황지에 쓴 부적중 몇 장은 채 마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유령왕에게 태극진기를 모두 전해주었기 때문에 부적을 말리기 위해서는 심기(心氣)를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태극진기가 모두 소진된 것은 아니었다. 하단전 및 중단전은 물론 오장육부 속에 깃든 진기마저도 모두 빠져 나가자 중단전의 내단에 갈무리된 태극진기가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급속도로 빠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비해서는 일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정도로도 못할 것이 없을 정도였다. 금호를 만들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검강은 시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태극진기와 태극진기보다 강력하고 유용한 심기(心氣)가 있었지만 부적을 집어든 은성은 습관대로 태 극진기를 진화기로 변화시켜 부적을 말리었다.

마른 부적을 품속에 갈무리한 후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 천부경(天符經)의 내용을 떠올렸다. 하루의 시작을 천부경의 신묘함으로 열고자 함이었다. 무량한 진여의 세계에서 노닐기를 한참여 은성은 사부님이 깨어났음을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잠시 후 은성은 사부님의 방에 들어가서 큰 절을 올리며 문안인사를 올리었다. 은성이 들자 자운검이 안도해하는 눈치였다. 은성의 경지가 남다르다는 것을 은성에게 직접 들어 알고 있었지만 내심 걱정이 되었던 것 같았다.

"언제 도착하였느냐?"

따뜻한 관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어제 저녁 자정 넘어서야 무림맹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늦은 시각이라 미처 안부인사 올리지 못했습니다."

은성이 사부에게 대답하는 동안에 사숙인 구천진인이 자운검의 목소리를 듣고 은성이 왔음을 느꼈는지 자기의 방문을 열고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윽고 사숙이 방안으로 들어서자 은성이 문안 인사를 올렸다.

"사숙님, 밤새 편안히 주무셨는지요?"

"편안치 못했다. 곤륜으로 떠나기 전 돌아오겠다는 녀석이 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는데 편안히 잠을 이룰 수가 있겠느냐? 아마 사형은 한숨도 자지 못했을 것이다."

사숙의 말씀에 급히 사부를 바라보니 눈가에 웃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은성이 걱정할까봐 억지로 내기를 운용하여 얼굴 표정을 관리하시는 것 같았다. 사부님의 온정에 은성의 감정이 뭉클해져 왔다.

"사부님, 죄송합니다. 밤이 늦었더라도 문안 인사를 올려야 했는데..."

"괜찮다. 내가 너를 믿지 못하면 누구를 믿겠느냐? 고민하던 일은 잘 해결되었느냐?"

"예, 사부님!"

은성이 씩씩이 대답했다.

"무슨 고민이더냐? 늙은이들은 알아서 안 되는 고민이냐?"

은성이 고민을 풀었다는 소리에 구천진인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물었다.

"아닙니다, 사숙님. 실은 사숙님께서 빌려주신 육합천서를 보며 요귀를 부리는 법술을 익히고자 하였는데 이 곳 무림맹은 술법을 익히기 적당치 않아 잠시 자리를 옮겼던 것입니다."

"... 천서안에 있는 수많은 법술중에서 요귀 부리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니 뜻밖이로구나. 곤륜으로 떠나기 까 지의 짧은 시간 안에 익히기에는 적당한 것이기는 하지만 요귀는 불러봤자 예시 능력도 없고 전력도 약해 큰 도움이 안될 것이다. 그래도 그거라도 배웠다니 다행이다."

술법을 익히는 방법과 장소를 진즉에 알려주지 않은 걸 내심 후회하는 구천진인이었다. 주변에 결계를 친 덕 분에 지옥화조(地獄火鳥)를 불러와 수련하면서도 한번도 들키지 않았는데 요귀 따위를 불러와 수련한다면 들 킬 염려가 전혀 없을 텐데...

"빌려주신 천서(天書)는 유용히 보았습니다. 사숙님의 말씀처럼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술법이 많았습니다. 그 러한 술법들과 마주쳤을 때를 대비해서 자세히 살펴 보았습니다."

은성이 공손하게 건네주는 육합천서를 받은 구천진인이 천서를 품속에 소중히 갈무리했다.

"앞으로 현천교와의 싸움에서는 이보다 훨씬 기묘하고 이상 야릇하며 무서운 술법들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극락조단의 고수들은 배교와 밀교의 극악한 술법등을 적어도 한 두가지씩은 익힌 자들이다. 유념해 두거 라! 그리고 너는 술법보다는 무공 위주로 수련을 하여서 아직은 나보다는 천서를 의지함이 적을 것이다. 육합 천서는 나중에 동방파에 돌아가면 반드시 너에게 물려주마."

"명심하겠습니다. 사숙님."

구천진인의 사질에 대한 애정도 사부 못지 않은 것 같았다. 사부와 사숙의 넘치는 애정에 은성은 가슴 한켠이 따뜻해져 왔다.

"은성아! 이번 곤륜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자칫하면 목숨조차 위험할 수 있다. 무림 맹의 초청으로 왔으니 응당 전력을 다해 도와주어야 하겠지만 우리가 아직까지 이곳에 남은 이유를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마교의 야차귀노와 상대하기도 전에 곤륜산에 뼈를 묻을 수는 없으니 신중히 처신하기 바란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그리고 잠시 후에 광장에 모이면 무림맹주가 곤륜으로 가는 경로를 소상히 알려주겠지만 육로와 수로 두가지 를 모두 이용한다고 하더구나. 수전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준비할 것이 있으면 철저히 챙기거라!"

"사부님, 그럼 곤륜으로 갈 때 나뉘어서 이동하는 것인지요?"

은성이 걱정스레 묻자 눈치가 빠른 구천진인이 먼저 대답해 주었다.

"하하! 걱정하지 말아라! 두개조로 나뉘어서 출발하지만 다행히 보타문은 우리와 같이 이동할 것이다."

은성의 내심을 짐작한 사숙의 대답에 은성이 무안해진 듯 급히 변명을 하였다.

"사.. 사숙님, 그게 아니고..."

하지만 은성의 변명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것이 아니기는 뭐가 아니라는 말이냐. 그것이 아니면 그럼 무엇이냐?"

은성을 놀리려고 작정했는지 사부조차도 가세하며 은성의 말을 잘랐기 때문이다.

"저... 사..사부님. 출발할 시간이 거의 돼 가는 것 같은데 준비할 것을 챙겨 오겠습니다."

급기야 은성이 자기 방으로 뺑소니를 쳤다. 그러자 자운검의 방에서 연신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사실 은성이 준비할 것은 별로 없었다. 방에서 화룡검 하나를 챙기니 더 이상 챙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지저(地低 )에서 은성을 따라다니는 유령왕은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동방파의 숙소에서 나오는 보무당 앞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내당주의 설명대로라면 해동과 대리국을 포함하여 열아홉개 문파 칠십여명의 무인들이 모여 들고 있는 것이다. 은성이 바라보니 하나같이 내 공이 정심하고 고강해 보이는 무인들뿐이었다. 각파의 원로급 고수들이라서 그런지 나이도 지긋하고 전투 경 험이 출중해 보였다.

보무당의 조직 구성은 매우 간단했다. 당주 독행도 혼원비 이하 모든 구성원의 신분이 평등한 것이다. 하지만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는지 당원들은 다섯 줄로 늘어서고 있었다. 동방파와 금룡각의 무인들을 위주로 해동의 고수들이 한 줄을 차지하였으며 그 옆으로 나란히 네 줄이 들어섰다.

"히야!"

은성이 옆줄에 있는 귀족적인 차림의 중년인들을 바라보며 감탄을 하자 은성의 앞에 있는 구천진인이 뒤를 돌 아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대리국에서 오신 왕족들이시다. 상인처럼 보이지만 보통 무위가 아니시다."

그런 것 같았다. 은성이 감탄한 것도 그들의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복장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 는 기도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삼백근 현철도를 등뒤로 사선으로 맨 보무당주 독행도(獨行刀) 혼원비의 뒤를 따라 광장으로 가면서 은성은 뒤쪽에서 따라오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아 두었다. 보무당에서도 해동에 근거를 둔 사람만이 일렬로 늘어선 줄 이었기 때문이다.

동방파 뒤로는 금룡각의 무인 세명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일전에 안면을 익힌 백광필살 이라는 무인의 뒤로 검은 활을 든 중년인과 옆구리에 사람 머리통만한 커다란 철추를 맨 거인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로는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노인 두명이 뒤따랐다. 백의 도복에 가슴까지 흰 수염이 나부끼고 용모조차 비슷하여 구분키 어려웠는데 등뒤에 커다란 호리병을 짊어지고 있었다. 한사람은 붉은 호리병, 그리 고 다른 사람은 검은 호리병이었다. 용모는 비슷해도 타인이 그들을 구분하기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광장에 도착하니 그 넓은 광장이 무인들로 가득하여 빈 공간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으니 분위기가 난잡하고 시끄러울 수도 있었는데 의외로 조용하고 긴장된 분위 기였다.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는 무인들중 무림맹 소속 무인들이 서 있는 곳에 자리를 잡은지 일각여가 지 나자 더 이상 광장으로 들어서는 무리가 없었다.

무림맹의 수많은 무인들 속에 섞여 있었지만 은성은 금새 검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검후는 중앙의 단상을 기 준하여 무림맹의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각파의 장문인들과 함께 앞쪽에서 군웅들을 바라보며 서 있었기 때문이다. 검후의 눈길은 앞쪽을 직시하고 있지 않았다. 은성이 들어선 보무당쪽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하매! 나야... 걱정 끼쳐서 미안해...]

은성이 심령으로 언어를 전하자 초조해 하던 검후의 옥용이 활짝 밝아졌다. 눈에 총기가 반짝이는가 싶더니 검후가 전해준 하얀 손수건을 살짝 들어 올린 은성을 발견했는지 입가에 미소까지 어리어졌다.

[오라버니! ... 별일 없으셨어요?]

검후의 애절한 전음을 들으니 은성은 검후에게 다시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왔다. 이처럼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검후에게 편지 한통만을 남긴 채 며칠동안 훌쩍 떠나갔었으니...

[그럼. 천신(天神)이 보살피고 하매가 노심초사 무사하기를 염원해 주는데 무슨 일이 생길리 있겠어? 내 이번 일을 사과하는 의미에서 나중에 하매를 열번 업어줄께.]

[참 오라버니도...]

검후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힌채 손으로 입을 가리며 전음을 발하였다.

이때였다. 광장의 앞쪽 중앙에 세워진 단상위로 서서히 떠 올라가는 사람이 있었다. 무림맹주 삼성검 반도승 이었다. 단상에는 오르는 계단이 있었지만 맹주는 계단을 이용하지 않았다. 뒷짐을 지고 유유히 허공답보(虛 空踏步)를 펼쳐 단상으로 올라갔다. 은성이 보기에는 무리한 내공 운용으로 동작이 불완전 하였지만 그래도 다행히 실수는 없었다. 순간 무림맹 광장이 떠나가라 함성이 울려 퍼졌다.

'와! 와!'

'무림맹 만세! 맹주님 만세!'

무림맹이 떠나갈 듯 울려 퍼지던 함성은 잠시 후 아주 단순한 동작 하나로 일시에 멈추어졌다. 맹주가 한손을 들어 이제 그만 함성을 그치라는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무림맹주의 위상과 권위가 그 어느때보다도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광장안이 일시에 조용해지자 무림맹주가 내심 흡족한 표정으로 광장안의 군웅들을 바라보았다.

현천교를 타파하고자 곤륜으로 떠나기에 앞서 무림맹주로써 이번 출정의 의의와 개략적인 작전을 설명하고 군 웅들의 사기를 드 높여주기 위한 연설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광장안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똑똑히 듣 도록 하기 위해서는 음성에 내공을 돋우어야 했다.

"무림 협사 여러분! 지금 이순간 우리의 친구인 곤륜파가 잔악하고 사악한 현천교에 의해 유린당할 위험에 처 해 있습니다. 그러나 현천교가 위험하고 방대한 세력이지만 그들만으로는 감히 곤륜을 도모하려 하지 않을 것 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뒤에는 알수 없는 세력이 도사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무림 협의지사들과 맞설수 있는 거대한 세력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무림을 정벌하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 들기 위해 끊임없이 암약하고 광분하는 마교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무림 동지 여러분! 제 아무리 현천교가 사 악하고 마교의 위세가 가공하다 하여도 우리는 우리의 친구인 곤륜파를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위험을 방치하면 며칠후에는 우리의 위험으로 곧바로 직면될 것입니다. 우리는 나와 친구를 위해 그리고 무림의 안녕 을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무림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모여든 것입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 다."

허공답보를 펼칠 정도의 내공인지라 무리맹주의 음성은 광장 말단에 위치하고 있는 무림인의 귀에도 선명히 들려지고 있었다. 맹주의 목소리는 감정이 풍부하게 실려져 있었다. 잔잔한 음성이 비장하게 변했다가 침울한 가 싶더니 격앙된후 마지막에는 확고하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승리를 외쳐대고 있었다.

맹주의 목소리가 끝을 맺자 광장이 떠나갈듯한 함성이 울려 나왔다. 승리의 의지들이 뿜어져 나와 무림맹을 가득 덮을 정도였다. 그것들은 자신감으로 군웅들의 가슴으로 다시 돌아왔다. 자신감 뿐만이 아니었다. 순식 간에 군웅들의 가슴은 협의지심에 활활 불타 올라오고 있었다. 무림의 안녕은 우리가 지킨다는 굳은 결심이 확고해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광장안에 함성이 조금 가라앉자 맹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곤륜파와 현천교의 대치상황과 미리 출발한 무림맹 의 선발대가 곤륜산에 가까이 당도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 많은 무림협객들이 곤륜으로 가기 위해서는 보급물자의 규모가 커서 물자들을 호송하며 수로(水路)로 이동하는 조와 육로(陸路)로 이동하는 조로 나뉘어 출발한다며 각조의 인원과 자세한 이동경로를 말하였다.

마지막으로 무림맹의 설립 취지와 정의는 여러분의 힘으로 굳건히 지켜질 것이라고 외쳐 다시 한번 군웅들의 의지에 불을 지른 이후 무림맹주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 되어졌다. 이미 수뇌부에서는 행동방침이 자세히 시달되어 있었던 모양 이었다. 수로로 이동할 인원들이 먼저 신속하니 빠져 나가고 있었다. 무림맹의 무상(武相)이 조장인 수로조는 무림맹의 청무대와 보금원의 상인들 그리고 구파오가(九派五家)를 제외한 유명문파의 무인들이었다.

무림 구대문파가 모두 제외된 것은 아니었다. 불문의 특성상 말을 탈수 없는 문규(門規) 때문에 소림과 아미 의 고승들도 수로조에 포함되어졌기 때문이었다. 은성은 빠져 나가고 있는 무리에서 소림 장문인 혜원 대사와 칠대금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타고 갈 선단은 무림맹의 내성과 외성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수로에 서 출발할 만반의 준비를 끝내 놓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수로로 이동한다고 하여 곤륜산까지 수로만 이용할 수는 없었다. 무림맹에서 수로를 따라 가다 장강(長江)을 만나 청해성 쪽으로 이동한후 사천성의 끝쪽에 위치한 안강(安羌)에서 당극(唐克)까지 오백리 길은 육로였다. 육로로 이동하는 조도 당극을 통과하게 되겠지만 당극에서부터는 황하(黃河)의 수로를 이용할 수가 있었다.

황하의 줄기를 따라 배를 타고 이동하여 청해성의 악o호(鄂o湖)와 찰 o호(?o湖)에 이르면 수로는 끝이었다.

그곳부터 곤륜산까지는 또다시 육로로 이동하여야 하는 것이다. 곤륜산까지는 삼백리 길이 남아 있었다.

무림맹주와 구파오가를 포함하여 육로로 이동하는 조도 당극에서부터의 여정은 동일하였다. 다만 조를 나눈 것은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함이었다. 무림맹이 무림맹을 벗어난 이후부터는 이미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 는 것이다. 곤륜파에 당도하기 이전에 현천교에서 의외의 급습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무림맹의 주력이 빠져나간 이후를 대비하여서 이미 중원의 각성에 배치된 외당의 고수들도 대부분 무림맹 수비를 위해 불러들 인 상태였다. 청무원의 어린 무인들과 천무당 소속의 흑무대원들도 무림맹의 수비를 돕기 위해 한명도 출정시 키지 않고 있었다.

무림맹의 청무대와 소림과 아미파가 주축인 수로조를 이끌고 무상이 광장을 빠져나간 직후 은성이 속한 조도 무림맹을 빠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생사교(生死橋)를 지나 주작 제이문에 이르자 마방을 관리하는 보마대에서 각자에게 배정된 말을 건네주고 있었다.

은성에게 배정된 말은 이십일전에 무림맹에 들어올때 타고 왔던 백마였다. 은성을 기억하기라도 하는 듯 반갑 게 울어 대더니 은성의 의지가 이르는 대로 순종적으로 따라 주고 있었다.

무림맹의 수성원 소속인 내당과 외당의 고수들은 물론 장차 무림맹의 주축을 이룰 청무원의 어린 무인들이 주 작 제일문 밖에까지 양옆으로 늘어서 뜨거운 배웅을 해주는 가운데 은성도 주작 제일문을 벗어났다. 청무대원 중들 검후의 동생인 고일검을 발견하고 은성이 손을 흔들며 전음을 보내자 고일검이 검을 들어 건투를 빌어주 었다.

아무리 무림맹이 관가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 하여도 성도 시내에서 큰 무리를 지은채 이동할 수는 없었다. 성 도에서 백여리 떨어진 청성산까지는 몇십개 단위로 나뉘어 순차적으로 이동한 후 다시 모이기로 하였다.

무림맹주와 구대문파 오대세가 장문인들을 포함하여 검후와 개방의 방주가 주축인 수뇌부들이 호위 무인들과 함께 제일 앞서서 달려갔기 때문에 은성은 검후와는 떨어져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아주 멀리 떨어 진 것은 아니었다. 수뇌부들을 제외하고는 무림맹의 무인들이 제일 앞서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호위대와 수무 당에 이어 보무당이 뒤따르고 있었다.

청성산에 도착한 이후에야 비로소 진영을 정비할 수가 있었다. 여기부터는 인적이 많은 도시는 피해서 이동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림맹의 저력은 무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행들이 진열을 재정비하기 위해서 모이는 장소에는 언제 준비하였는지 식사 준비가 완비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여든 군웅들의 특색을 참조하여 기호에 맞는 음식들이 별도로 준비되어 있었다.

사부와 사숙을 따라 지급된 음식을 타온 은성은 편평하고 너른 바위에 앉았다. 유유상종(類類相從) 이라고 금 룡각의 무인들과 커다란 호리병을 맨 해동의 노인 두명도 너른 바위위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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