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86화 (86/152)
  • ■ 제 86절 :

    그것은 무림맹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상과 문상은 그가 온전히 믿고 의지하며 존경하는 무림맹의 핵심 인물 이었다.

    "문상! 연락한 무림문파들의 동태는 어디까지 파악되었습니까?"

    무림맹주가 앉은 채로 문상에게 물었다.

    천무원주를 포함하는 다른 원주들이 독립적인 지위를 지니고 맹주에게 직접 보고를 드리는 것과는 달리 암영 원주와 보금원주는 먼저 문상에게 보고를 드리고 문상이 맹주에게 종합하여 보고하는 것으로 무림맹의 명령체 계가 이루어져 있었다.

    문상은 암영원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만을 맹주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 정보는 무림맹주보다도 문상이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다.

    "무림 구대문파중 사천에 위치한 아미파와 청성파는 오늘중으로 도착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소림사 와 무당파를 비롯한 나머지 육대문파 사람들도 이삼일 안으로는 모두 집결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대세가중 사 천 당문 사람들과 진주언가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오늘 늦게나 도착할 것 같습니다. 남궁세가와 제갈세가 그리 고 개방과 보타문 문도들도 삼사일 안으로 모두 집결할 수 있습니다. 모용세가도 지리적으로 멀기 때문에 정 확한 날짜를 산정하기 어렵지만 기일 안으로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림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그리고 개방과 보타문을 비롯한 수많은 무림 협사들이 이번 현천교와의 결전에 참 여하기 위하여 무림맹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십년동안 지속되었던 암묵적인 무림의 평화가 현천교로 인 하여 붕괴되면 혈륜이 어디까지 구를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불똥이 어디부터 떨어질지 아 는 사람 또한 한명도 없었다.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불안감에 사로잡힌 무림문파들이 문상의 요구에 따라 무림맹으로 정 예 세력들을 대거 보내주기로 약속하였다.

    문상이 현천교를 거론하면서 혹시나 현천교의 배후에 마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인 한마디 때문이었다.

    무림문파에서 현천교를 상대하기 위해 파견되는 전력(戰力)과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 파견되는 전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현천교를 상대하기 위해서라면 무림맹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서 무인 몇 명만을 보내줄 것 같 았던 문파조차 현천교의 배후에 마교가 있을 것 같다고 말하자 장문인을 포함하여 최정예 무인들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던 것이다.

    마교를 상대하기 위한 정파의 최정예 세력들이었다. 현천교의 배후에 마교가 없더라도 현천교를 와해 시킨 후 계속적으로 무림맹에 남아 마교와의 일전에 대비하도록 유도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문상과 보금원주는 무림 협사들이 무림맹내에서 거처하는 동안 소홀함이 없도록 철저히 준비를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잘 알겠습니다."

    문상과 보금원주의 목소리를 듣는 무림맹주의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감돌고 있었다. 현천교의 배후에 마교가 있음을 거의 확신하고 있는 무림맹주였다. 이번에는 기필코 마교의 세력을 뿌리 채 뽑은 후 영원히 소멸시켜 무림의 평화를 지키고 무림수호지문인 삼성검 문의 이름을 만천하에 드높이고자 하는 웅심이 가슴 깊이 조용 히 용솟음쳐 오르고 있었다.

    며칠후면 무림맹에는 협의를 지향하는 영웅호걸들이 가득차게 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여 폐관중인 대제자는 물론 삼성검문에서 전대 무림맹주이자 조부에게 무공을 배우고 있는 하나뿐인 아들조차 불러들였다. 무공수련 도 중요하지만 무림의 영웅 호걸들과 친분을 맺고 이름을 떨칠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회의가 거의 끝나가자 문상이 출전에 관련된 다른 세세한 사항들을 각원에 전달하여 주었다. 이미 모든 계획 이 세워져 있는 듯 문상의 머릿속에서 실타래가 풀려 나오듯 술술 풀려져 나오고 있었다.

    새벽이 다가오고 있는 무림맹은 어둠에 덮여 마지막 단잠을 이루고 있었다. 줄기차게 내리던 빗줄기도 어느새 그치고 처마 끝에서 한두방울씩 떨어져 내리던 빗방울 소리조차 자취를 감춘 고요한 새벽이었다.

    은성은 침상위에 고요히 누워 있었다. 잠고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니었다.

    지금 은성은 누운 채 명상에 잠겨 있었다. 억지로 잠을 청하면 못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은성의 몸은 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잠이 필요없다고 밤에 일없이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육체적인 수련 이 별 소용이 없다고 판단된 은성은 밤마다 명상에 잠겨 인간과 자연 그리고 선도를 참선하였다.

    오늘밤 은성의 화두(話頭)는 '느낌'이었다. 어제 낮에 천추영웅전에서 흘러 나왔던 기묘한 느낌 때문이었다. 밤에 천추영웅전을 방문하였지만 생각지 못한 결계 때문에 아무런 소득도 없이 보무당으로 돌아온 이래 지금 까지 일념으로 생각하고 있는 화두였다. 은성의 의식은 단 한점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계에 위치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바다를 지혜의 노(櫓) 한 개만을 의지한채 항해 하는 작은 조각배가 되어 어디론지 나아가고 있었다. 표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다.

    수많은 의구심과 가능성을 지혜의 노로 열어 헤쳐가며 한쪽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노를 저어가 기를 한참여 눈앞에 희미한 불빛이 나타났다. 작고 보잘 것 없었지만 불빛이었다. 어두운 밤바다에서 등대를 발견한 듯 은성이 의념은 강한 추진력으로 배를 저어 가기 시작하였다. 배 뒤편으로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자 욱이 불빛에 반짝이더니 이윽고 배는 밝은 빛 더미에 파묻혀 형체를 잃어 버렸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은성의 의식은 광채속에 잠긴 그 무엇인가를 볼 수 있었다. 지금껏 목표하며 탐구했던 물음에 대한 해답이었다. 어제 느꼈던 기묘한 느낌에 대한 정체가 풀려진 것이다. 그것은 영안(靈眼)이었다. 은성이 이미 익혔던 심안(心眼)보다도 더욱 고절한 경지였다. 허무경 팔단계의 경지가 천추영웅전 쪽에서 흘 러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완전한 단계는 아닌 것 같았다. 허무경 칠단계를 완성한 자신의 심안에 감지 되어진 것으로 판단될 수 있었다. 허무경 팔단계의 경지라면 이미 인간의 경지를 벗어났다는 말이었다. 영육이 몸을 벗어나 공간 이동을 하고 미래조차 어느정도 예측 가능한 경지가 허무경 팔단계의 경지인 것이다.

    그들이 허무경을 익혔을리는 없지만 만류귀종(萬流歸終)이라고 어떤 천서(天書)를 경지 이상으로 수련했을 것 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세 줄기 느낌이 상이한 것으로 보아 선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련한 방법은 각기 다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수련으로 반선인의 경지에 오른 절대자 세 명이서 천추영웅전의 결계속 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결계속에 갇혀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 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미 목적한 화두를 타파한 은성의 의식은 한달음에 의식세계로 되돌아 나와 버렸다. 의식 세계로 되돌아 왔다고 지혜의 빛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식세계에서의 생각 은 절실함이 부족하고 간간이 쓸데없는 생각들이 끼어 들어왔다. 몰입의 정도가 부족한 것이다. 허무경 구단 계에 들어서야만 극복할 수 있는 문제점 이었다. 누운 채 천부경을 되뇌어 보며 이리저리 생각하던 은성이 갑 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었다.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중의 인이삼(人二三)이란 구절 때문이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지며 그 각자의 몸에 하늘과 땅의 이치가 담겨져 있다는 의미이었다. 정기신(精 氣神) 삼위일체(三位一體)가 되어야만 완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정(精)은 생명의 근원이었다. 하지만 정만 있으면 생명체라고 할 수 없고 성장할 수 없다.

    기(氣)는 생명을 움직이는 근본으로 땅 즉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되돌아 가는 힘이었다. 그렇지만 정과 기 만 있다면 초목과 같이 성장하기만 할뿐 자아가 없다.

    신(神)은 생명이 추구하는 방향이자 회귀할 수 있는 힘으로 하늘의 완전함에 이르는 비밀이 감추어진 본질적 인 신비였다.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으로 변화된 후 끝없이 분화되는 그 말단의 종말(終末)에서 다시금 무극으로 회귀시킬 수 있는 작지만 거대한 씨앗인 것이다.

    정에 신이 깃든 정령(精靈)과 정기를 잃고 형체없이 떠도는 귀신(鬼神)이 있다면 기신(氣神)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정이 없는 기가 어떤 형체를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특수한 경우 형체를 유지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바로 내공이 천인의 경지에 오른 절세 고수들에 의해서였다.

    소림사의 마인(魔人)이 내공으로 아수라혈마왕의 형체를 만들어 냈으며 자신 또한 사신권법(四神拳法)을 펼치 면서 내공으로 청룡, 주작, 백호, 현무 등 사신의 형체를 만들어 상대방을 공격할 수가 있었다. 내공 소모가 심하고 극강한 내공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경지이지만 이미 태극진기를 완성한 자기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 니었던 것이다. 내공으로 형체를 만든 후 상대방에게 쏘아 보낼 수도 있고 이기어검처럼 계속적으로 조정하여 멀리서 상대방을 물고 늘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단점이 있었다. 의식을 그곳에 계속적으로 집중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절세고수가 배후에서 공격해 온다면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흐트러지지 않도록 진기를 집중시켜 형체를 만들고 신이 깃들이게 하면 어떨까?

    귀신이나 정령을 부릴 수 있는 술법은 동방파에서 이미 배웠던 은성이었다. 육합진인에게서 배운 정갑대법(丁 甲大法)과 통천여의대법(通天如意大法)이 있었던 것이다. 다행이라면 은성이 허무경 칠단계를 이루고 심기(心 氣)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것이었다. 상단전에 기인하는 심기는 중단전에 내단을 형성하여가는 태극진기 에 비해 위력이 훨씬 막강하였다. 굳이 태극진기가 없더라도 하등 불편함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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