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80화 (80/152)
  • ■ 제 80절 :

    보무당의 무인들이 식사를 하는 식당은 수십개의 밀폐된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중앙에 담소를 하고 차를 나눌 수 있는 식탁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무당의 특성상 열 아홉 개 문파 각각 이서 그들 나라의 전통 적인 음식을 주문하여 방에서 따로 식사를 하였던 것이다.

    "와!"

    식탁위에 차려지는 음식을 보며 은성이 기쁨에 찬 소리를 질렀다. 오래간만에 보는 해동의 음식들이었기 때문 이다. 오행진기를 수련하여 오장육부가 튼튼해서 그런지 어떤 음식을 먹어도 비위가 맞고 소화가 잘되는 은성 이었다.

    중원에 도착한후 볶음 요리가 주류를 이룬 산동요리(山東料理)와 어류나 육류를 이용하지 않고 버섯이나 채소 만을 이용해서인지 검후가 즐겨 먹었던 정진요리(精進料理)는 물론 맵고 톡 쏘는 사천요리까지 골고루 먹어 보았지만 고향의 맛에 비할 수는 없었다.

    중원의 요리들처럼 색(色), 향(香), 미(美)의 조화를 중시하지는 않았으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혀끝에 침이 감돌고 온몸 가득이서 애타게 갈구하는 그 무엇인가가 양념처럼 잔뜩 버무려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부보다 먼저 음식에 손을 댈 수는 없었다. 은성이 연신 군침을 삼키며 사부의 손끝을 주시하자 자운 검이 미소를 지은채 급히 젓가락질을 하였다. 사숙까지도 식사를 시작한 이후에야 은성은 음식을 먹을 수 있 었지만 숟가락질 몇 번에 밥 한 그릇이 어디로 갔는지 깨끗하니 비어져 버렸다.

    사부와 사숙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밥 한 그릇을 더 주문하여 차지한 이후에야 조금 느긋해지는 은성이었다.

    "천천히 먹어라! 내 밥도 빼앗아 먹을까봐 두렵구나."

    은성이 오래간만에 해동 요리를 먹기 때문에 식욕이 남다르다는 것을 모를리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 르게 먹는 것 같았는지 자운검이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눈을 돌려 사제를 보니 밥과 찬을 어찌나 꼭꼭 씹어 먹던지 아직도 밥그릇에는 밥이 가득하니 담겨 있었다.

    두수저 정도나 먹은 것 같았다. 예전보다 몇배는 느린 속도였다. 하지만 얼굴은 희열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수저를 들어 식탁 중앙에 놓인 된장국을 조금 떠 먹어 보고는 지긋이 눈까지 감고 음미하는 것이 무슨 예식에 참석한 사람 같았다.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끄덕이더니 입가에 미소까지 한아름 지었다. 그리고는 눈을 떠 미 소 가득하니 은성을 바라보았다.

    "사질! 고맙네..."

    기쁨에 겨운듯하던 구천진인의 목소리는 의외로 애상에 젖어 있었다. 식사 분위기가 조금 숙연해지는 것 같았 다. 그런데 다시 한번 된장국을 떠 입에 넣던 구천진인이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오늘 두 번째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구천진인의 품성으로 보아 절대로 아무데서나 눈물을 흘릴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밥을 먹다 말고 눈물까지 흘리다니...식사 분위기가 자신 때문에 숙연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도포자락으로 눈물을 훔친 구천진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질 앞에서 또 못난 꼴을 보였구만... 저는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그리고는 휭하니 나가 버렸다. 밥그릇의 반의 반도 비우지 못한 채였다. 식사를 더 하라고 사제를 잡으려던 자운검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내밀던 손을 살그머니 거두었다. 구천진인이 나간 후 식사 분위기가 침잠되어지자 자운검이 입을 열었다.

    "네 사숙이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나셨나 보다. 늙으면 어려진다더니 오늘 따라 감정이 예민해 진 것 같구 나."

    "..."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졌는지 자운검이 계속 말을 이었다.

    "휴.., 사문에 들어선 후 무공과 법술에만 전념하다가 꿈에 노모가 보이길레 집에 찾아 갔는데 사제의 노모께 서 노환에 지병이 겹쳐 죽기 직전이었다고 하더구나. 그렇게 말렸는데도 부엌에 가셔서 손수 된장국을 끓여 따뜻한 밥과 함께 내오셨는데 그것이 늙은 노모의 마지막 남은 소원이었단다. 이십년 동안 헤어진 자식이 손 수 끓이신 된장국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시면서 노모께서는 웃으시며 눈을 감으셨다고 하더구나..."

    "..."

    사부님의 설명을 듣던 은성의 눈시울도 붉어져 갔다.

    구천진인의 심정이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려서 돌아가신 어머님과 제대로 효도한번 하지 못하고 비 참하게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더 이상 식사할 맘이 내키지 않았는지 자운검이 수저를 내려 놓자 은성도 슬그머니 수저를 내려놓았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데 차가운 인상에 비쩍마른 사람이 식당으로 들어오다 자운검을 보고는 아는 체 를 하였다. 사부를 따라 포권지례를 한 은성은 들어오던 사람이 해동 금룡각의 인물임을 알아보았다. 소매에 수 놓여진 금룡의 문양 때문이었다. 사년전 집을 떠나 동방파에 가는 도중 계룡산에서 보았던 기진 일행의 소 매에 수 놓인 것과 똑같은 문양이었다. 좀전에 금아에게 흰빛 암기를 쏘아낸 장본인 이기도 하였다.

    은성이 심기(心氣)를 발휘하여 암기가 비껴 나도록 하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던 것이다. 식사 시간에 늦은 것으로 보아 비껴 나간 암기를 찾는데 고생 꽤나 한 것 같았다. 속으로 쌤통이다 하는 생각이 들 었다.

    보무당 숙소에 들어서니 거실에 향기로운 다향이 풍겨져 나왔다. 구천진인이 차를 끓여 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식사 분위기를 애매하게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손수 차를 끓인 것 같았다. 하지만 구 천진인의 사연을 들은 은성은 차라리 송구스럽기까지 하였다. 마음을 추스르기도 힘들었을 텐데 애써 자재하 시고 이렇게 차를 끓이신 사숙에 대한 존경심마저 들었다.

    "사숙님, 차 향기가 맑고 그윽하니 마시지 않아도 절로 선경에 든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사제의 차 끓이는 솜씨가 입신지경에 이른 것 같구나."

    은성에 이어 구천진인의 기분을 맞추어 준 자운검이 좌정한 후 찻잔에 입을 대었다.

    "사제, 혹시 차를 잘 끓이는 술법이라도 새로 익혔는가?"

    자운검이 농담을 아주 진지한 어조로 말하자 구천진인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사형도 농담이 아주 느셨군요. 차맛은 정성에서 우러나온다고 누누이 저에게 강조하신 분이 누구신데 그러십 니까?"

    "하하하! 내가 그랬던가? 농담이 아닐세. 오늘따라 유난히 차 맛이 좋으니 하는 말일세. 하하하!"

    자운검의 웃음소리를 따라 숙연했던 식사시간의 기억은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거실내에는 화기애 애한 분위기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사제간에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 던 은성은 귀에 익은 발자 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검후가 동방파 숙소에 가까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검후와 대동하고 있는 사람 또 한 굉장한 무공의 고수였다. 내공을 안으로 갈무리한 초절정의 고수였지만 허무경 칠단계를 완성한 은성의 심 안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사부님, 어제 제가 말씀 드린 검후가 오는가 봅니다."

    은성의 말에 자운검이 내기를 청각에 집중하여 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자운검도 고수였지 만 검후와 그 옆의 사람은 걸으면서 아무런 소리조차 발하지 않는 초절정의 고수였기 때문이다.

    "허허! 네가 자운곡과 계룡산에서 천고의 기연을 얻었다고 하더니 실로 가늠할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 같구나. 검후라면 무림맹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맹주와 버금가는데 그냥 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

    자운검이 일어서서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듯 옷 매무새를 가다듬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구천진인이 놀란 눈 을 하며 엉겁결에 따라 일어섰다.

    "사형! 검후가 이곳을 오다니 무슨 일이랍니까? 그리고 온다는 통보라도 받았는지요. 왜 갑자기 일어서는 것 입니까?"

    은성이 기연을 얻고 검후를 만났다는 대략적인 이야기를 어제 저녁 자운검에게 했지만 수련을 위해 자리를 비 웠던 구천진인은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제에게는 내 따로 이야기 하겠네. 어쨌든 검후께서 우리 은성이와 연분이 있어 지금 가까이 온 것 같으니 마중을 나가세."

    검후가 방문하는데 방안에서 기다림은 예의가 아니었다. 나라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지만 무림맹 소속으로 머 무르는 동안에는 규범에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당주급 이상이면 예의를 갖추어 주어야 했는데 검후는 보무당 이 소속된 천무원의 원주인 무상(武相)과 비슷한 위상을 가진 존재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보무당주인 독행도(獨行刀) 혼원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해외 여러 문파들의 고수들이 모인 보무당이었지만 보무당주는 중원인이였다. 중원인에 말주변도 부족하고 무 뚝뚝한 독행도 이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문파간에 차별하지 않고 최대한 자율성을 존중해 주 며 무엇보다도 실력이 뒷받침 되어졌기 때문이다. 무림맹에 입문하기 전에는 정사를 막론하고 중소문파의 장 문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바로 독행도 혼원비 였다. 이름난 문파라면 무슨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비무에 응하게 만들어 굴복시키고 다니는 취미가 있었기 때 문이다.

    삼백근이나 나가는 현철도를 수수깡처럼 다루는 그의 신력과 철저한 실전 경험으로 완성된 그의 강맹하고 무 자비한 도법이 멈춘 곳은 무당산 초입이었다고 하였다. 칠년전 갑자기 비무행을 멈추고 무림맹에 들어왔는데 보무당주직을 맡았으면서도 끊임없이 무공만 수련하는 무공광으로 소문나 있는 그였다.

    보무당주의 옆에는 한 떨기 꽃봉우리처럼 청초하면서도 아름다운 아가씨가 다소곳이 서 있었다. 전대 검후가 마교의 광명좌사에게 죽은 후 보타문에 있는 새로운 검후가 무림맹으로 향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자운검은 첫눈에 앞에 있는 아가씨가 검후임을 알 수 있었다. 경장차림을 하지 않고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포권지례를 하려던 자운검이 손을 올리려다 말고 깜짝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검후가 양손으로 치맛 단을 잡고 다소곳이 앉으며 공손히 큰 절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 익숙한 해동의 예의범절(禮儀凡節)이었다.

    "보타문의 고은하라고 합니다. 오라버니께 사부님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어여삐 봐 주시기 바랍니다."

    옥이 구르는 듯한 영롱한 목소리로 날아갈 듯 고운 자태로 인사를 마친 검후가 구천진인에게도 다시한번 절을 하였다. 검후의 예를 받은 자운검과 구천진인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둘 다 검후의 얼굴과 은성의 얼굴을 번갈아 돌아보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당황해 하고 있었다.

    "사부님, 손님이 찾아 왔는데 문 밖에만 머물게 하실 거예요? 안으로 들어가셔야죠?"

    은성의 말을 듣고서야 자운검이 제 정신을 차린 듯 급히 검후를 안으로 들도록 하였다. 검후가 안으로 들자 보무당주는 자기 소임을 다하였다는 듯 검후에게 포권을 한 후 돌아가 버렸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검후는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아마도 긴 치마가 영 어색한 것 같았다. 은성의 사부를 만나러 오기전 검후가 들인 정성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다. 보타전에 들어 그녀의 몸 시중을 드는 시녀들에게 해동의 예의에 밝은 사람을 수소문한 후 예절을 배우고 인사법을 익혔으며 해동에서 아가씨 들이 즐겨 입는 옷을 밤새워 짓도록 부탁을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한번 연습을 하고 은성의 사부에 대 한 인상착의를 물은 후 보무당주를 대동하고 문안 인사를 올리려 온 것이다.

    비단으로 지은 화려한 의복이 예쁘기는 하였지만 활동하기에는 매우 불편하였다. 하지만 은성의 사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밤새워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았다.

    십년 동안이나 고향을 떠나 있다가 해동의 예절로 공손하게 절을 받은 은성의 사부와 사숙의 눈가에 감동의 기색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은성의 표정에도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설마하니 자기가 해동의 옷을 지어입고 해동의 예절을 익혀 사부에게 예를 올릴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무림맹의 숱한 눈과 귀가 이상한 복장을 한 자기를 흉볼 수도 있었지만 은성의 환한 웃음을 보자 모든 두려움 이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은성의 환한 웃음을 위해서는 이보다 더한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검후였다.

    돌아가신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다지만 언제나 은성과 함께 하고 싶었다. 남의 이목을 두려워 하기 에는 은성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깊어져 버린 것이다.

    "제 오라버니의 사부와 사숙이시니 저도 사부님!, 사숙님! 이렇게 부르겠습니다. 그래도 되죠?"

    자운검은 검후가 참으로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아가씨라고 느끼고 있었다. 귀엽고 애교어린 목소리로 부탁하 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다는 말인가..?

    "허허! 그러도록 하시게. 은성이가 검후 자랑을 많이 하던데 정말로 참한 아가씨로구만."

    자운검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부님! 오라버니가 저보고 뭐라시며 자랑을 했어요?"

    검후가 미소띤 얼굴로 은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허허허! 하도 많이 해서 다 기억할 수도 없겠구나. 어찌나 심하던지 팔불출 이라고 놀렸단다."

    자운검의 말을 듣던 검후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어른들이 계신 자리라 소리내어 웃을 수는 없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오는 기쁨을 다 감출 수는 없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틀림없이 제흉만 보았을 것이예요. 그렇죠 오라버니!"

    검후가 샐쭉한 표정으로 양손등을 날씬한 허리춤에 댄 후 말을 하였다. 하지만 입가에 피어오르는 미소를 다 감출 수가 없었던지 표정이 영 어설펐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은성이 행복하고 사랑스 러운 표정으로 검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매 나무랄데가 어디에 있다고 흉을 봤겠어. 자랑만 하다가 괜히 사부님에게 팔불출 소리만 들었는데 너무 하는 것 아니야?"

    "오라버니. 그 말 정말이죠?"

    검후의 표정이 순식간에 미소띤 얼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환한 웃음으로 구천진인이 따라준 차를 마시더니 감 탄을 하였다.

    "사숙님, 차 맛이 정말 좋네요. 마음까지 맑아 오는 것 같아요."

    검후조차도 차 맛이 좋다고 하자 구천진인의 입가에 미소가 어리어졌다.

    "실은 어렵게 얻은 벽라춘(碧羅春)이 남아 있어서 차를 끊인 것이다. 벽라춘 중에서도 차잎이 다 펴지지 않은 창(槍)과 기(旗)만을 모아서 만든 것으로 내가 끓이지 않았어도 맛과 향이 탁월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마지막 남은 벽라춘이란다."

    차맛이 좋기 위해서는 물과 정성만으로는 부족하였다. 좋은 찻잎이 있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다관속에 든 찻잎 이 마지막 남은 벽라춘이었던 것이다.

    "사숙님! 아무리 좋은 차가 있더라도 차를 끓이는 사람이 차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렇게 향이 좋고 그 윽한 맛이 우러나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차잎의 양과 물의 온도와 양은 물론 차를 우리는 시간에 따라서도 맛 과 향이 천차만별인데 사숙님이 끓이신 차 맛을 보니 이미 경지에 오르신 듯 하시네요."

    찻잔과 부딪힐때 나는 소리를 방지하기 위하여 나무로 만든 찻잔 받침위에 올려진 흰색 찻잔을 조심스럽게 들 어 차맛을 음미해본 검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숙님, 보타전에 좋은 찻잎이 있으면 제가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옥은 훌륭한 장인에게 맡겨져야 빛을 발한 다고 좋은 찻잎은 사숙님께서 우리셔야만 그 진가가 드러날 것 같아요."

    "허허, 보내주면 고맙게 받겠다. 아꼈다가 검후가 놀러 올때만 조금씩 끓여서 내오도록 하겠다."

    구천진인의 안색에도 즐거움이 가득하였다.

    한참동안 정담을 나눈 검후가 보타전으로 돌아갈 뜻을 비추자 자운검은 물론 구천진인 까지도 무척 섭섭해 하 였다. 은성은 찻잎을 얻는다는 핑계로 검후를 따라 가기로 하였으니 오히려 기뻐 하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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