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9절 :
"음, 알겠다. 요즈음 내가 너무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것 같구나."
두통이라도 있는지 구천진인이 양손으로 태양혈 부위를 부드럽게 눌러 지압하자 은성이 구천진인의 안색을 살 폈다.
"사숙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구천진인의 얼굴색이 술을 먹은 듯이 붉은색으로 변해져 있음을 간파한 은성이 걱정이 된다는 듯한 음성을 발 했다. 심장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어보니 박동의 고저와 장단이 매우 불규칙 하게 들려 왔다.
"그렇더냐? 괜찮다. 큰 병은 아닐 것이다."
애써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 구천진인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병을 알고 있다는 눈 치였다. 심안을 발휘하여 구천진인의 몸 상태를 점검해본 은성은 사숙의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오장 육부들중 다른 장기들은 지극히 정상이었으나 심장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심포(心包)의 기능이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심장을 보호하여 주는 심포(心包)는 강한 화독에 중독되어 제 기능을 대 부분 잃어 가고 있었다. 심포를 꽉 메우고 있는 화독은 심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심장 또한 화독의 영 향으로 매우 위험한 지경에 와 있는 것이다.
"큰 병은 아닐지라도 몸에 이상이 있는데 방치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손을 줘 보십시오. 잃었던 입맛을 다 시 찾아 드리겠습니다."
은성의 말을 듣던 구천진인이 의아해 하는 눈빛으로 은성을 바라 보더니 선뜻 손을 내밀었다.
은성이 초금의가(草金醫家)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구천진인 이었다. 은성의 사부인 자운검은 은성이 꽤 높은 의술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구천진인에게 말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은성이 의술을 지니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구천진인이 선뜻 손을 내민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십년전부터 서서히 잃어간 미각이 지금은 거의 절정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어도 신지 매운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은성이 정확히 지적해낸 것이다.
품안에서 피독주가 든 목갑을 꺼낸 은성은 휘황찬란한 보광이 흘러나오는 피독주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는 구천진인의 손목을 잡았다. 심기를 발휘하자 영롱한 보광이 흘러나오는 구슬이 점차 달아오르듯이 붉은 색 으로 변해가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열기까지 뿜어 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검붉은 색으로 변한 구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더욱 거세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삼각(三刻)정도 지난 후부터는 열기가 약해지더니 반시진 정도 되어서는 더 이상 열기를 뿜어내지 않았다. 색도 검붉은 색에서 처음과 같이 영롱한 보광으로 변 해 있었다.
은성이 구천진인의 손목을 놓은 것은 거기서 이각여나 더 지난 다음이었다. 태극진기중 화기를 제압할 수 있 는 진수기(眞水氣)를 운용하여 구천진인의 심장과 심포에 가득 찬 화독을 제압하고 피독주로 화독을 뽑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무가지보인 피독주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독에 노출되어 제 기능을 잃어버린 심장과 심포의 기능을 회복시키고 심장과 연계된 혀의 손상된 조 직을 회복시켜 주는 일은 천인의 경지에 이른 은성에게도 다난한 일이었던 것이다. 타인의 몸에 무한정 주입 할 수 없는 태극진기에 비해 자유자재로 운용 가능하며 타인의 내기와 반목하지 않고 무한정으로 사용 가능한 심기(心氣)가 없었다면 이처럼 빠른 시간 안에 회복시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일다향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르자 은성이 치료를 마친 후에도 두눈을 감고 내기를 조정하던 구천진인의 두눈이 뜨여졌다. 지극한 시선으로 은성을 바라보는 구천진인의 눈빛에는 놀라움과 고마움의 감정이 교차되듯 흐르고 있었다.
"큰 은혜를 입었구나. 그런데 나를 치료하는데 사용한 구슬은 무엇이냐? 예사 물건이 아닌 것 같구나?"
닫혀진 채로 원탁위에 놓여진 목갑을 바라보며 구천진인이 묻자 은성이 목갑을 들어 구천진인이 잘 보이도록 한후 뚜껑을 잠시 열었다가 닫았다. 날이 밝아 창밖이 환했는데도 불구하고 방안에는 눈부신 보광이 일렁이었 다.
"중원으로 오면서 우연히 얻게 된 구슬인데 피독의 효과가 있습니다. 아마도 사숙님의 병세를 고쳐 주라고 하 늘에서 내리신 보물인 것 같습니다."
"피독주...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로구나. 잘 간직하도록 하거라!"
은성의 말을 듣고 보니 운명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세삼 느껴졌다.
자신이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구천진인이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지옥화조를 길 들이기 위함이었다. 지옥화조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밤새워 수련한 영력을 나눠주고 자신의 영혼에 깊숙 하게 갈무리된 도근(道根)을 빼앗기는 희생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도근이 약한 사람은 지옥화조를 강하게 키 울 수 없었다. 게다가 악령의 불꽃이라는 강한 화염을 발산하는 지옥화조를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또 다른 희생이 필요하였다.
자신의 생기(生氣), 그것도 원초적인 생기를 나누어 주어야만 했다. 영적인 능력을 가진 지옥화조에게 온몸이 관통되어지는 고통속에서 심장속에 막 생성되는 피 맛을 보도록 하여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지옥화 조와의 완전한 심적동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영적인 동물이라고 하여도 이미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옥화조의 이글거리는 화기에 수시 로 노출되는 심장이 정상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서서히 죽어간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구천 진인은 지옥화조를 키우는 술법수련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방법 말고는 마교의 야차귀노를 상대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수 있을지 모르지만 죽기 전에는 반드시 지옥화조로 야차귀노를 분신시키고야 말겠다 는 각오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하였던 구천진인이었다. 한시진 전에 은성과 대화를 나누다가 괜한 복수심에 스 스로의 몸을 망치고 있다는 자괴심이 들어 눈물을 흘렸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자신의 몸이 너무 망가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복덩이인 사질이 가지고 온 피독 주로 인하여 치료가 불가능해 보였던 몸이 정상을 회복하였다. 이제는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아마 도 자신이 불쌍해 보여서 하늘에 계신 사부님이 피독주를 보내 준 것이라 생각하며 은성을 바라보니 밝은 얼 굴로 작은 미소를 띄운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입맛을 느낄 수 있게 되었는지 궁금하구나. 아침식사 시간이 된 것 같으니 사형과 함께 식당으로 가 자꾸나."
역시나 밝은 얼굴로 일어서는 구천진인은 말은 이렇게 하였지만 사실은 굳게 믿고 있었다. 사질의 말대로 혀 가 미각을 되찾았음을 말이다. 평소 조금은 부자연스러웠던 혀가 지금은 매우 부드러워져 있었다. 방문을 여 니 방문밖에 자운검이 서 있었다.
"허허, 보기 좋구만. 식사 시간이 된 것 같아 나와 보니 제자의 방에서 사제의 목소리가 들려 무슨 일인가 했 다네."
사부를 보자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는 은성에게 고개를 끄덕여 답례를 한 자운검의 얼굴에도 아침 햇살같은 미 소가 어리어져 있었다. 구천진인이 생각하기에도 실로 오래간만에 보는 사형의 웃음이었다. 은성이가 온지 하 루 밖에 되지 않았는데 동방파의 숙소가 이처럼 화기애애한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사질의 재주가 대단합니다. 천복(天福)만 있는줄 알았는데 의리에도 깊은 조예가 있습니다. 이처럼 다재다능 한 제자를 두시다니 사형이 부럽습니다."
반 농담 삼아 하는 말이지만 구천진인의 진심이 깃든 말이었다.
"사제 , 아직 늦지는 않았네. 나중에 해동에 돌아가면 사제도 제자를 두어보게. 혹시 아나? 우리 은성이 같은 제자를 거둘 수 있을지 말일세. 하하하!"
제자를 칭찬함은 사부에게는 뿌듯함 이었다. 자운검이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은성을 바라 보았다.
"은성아! 네가 어제 저녁에 구술하여 준 조사지공 때문에 늦잠을 잤더니 방금전에야 일어났구나. 우리 동방파 의 무공이 이처럼 지고무상 하다니 밤 늦도록 설렘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오래만에 해후한 사부와 제자는 밤 늦도록 자리를 함께 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는데 은성이 조사지공을 발견하 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그 내용을 적어서 사부님께 드렸던 것이다.
"조사지공 이라니?"
이를 알리 없는 구천진인이 묻자 자운검이 웃으며 말을 하였다.
"사문에 조사지공이 전해졌다고 듣지 않았는가? 그걸 발견한 사람이 은성이라네. 내용 또한 암기하고 있어서 어제 저녁 서책으로 만들었다네. 오늘부터 같이 수련하기로 하세."
"허허!'
구천진인이 연이은 낭보에 입조차 조금 벌린 채 은성을 바라 보았다. 사질이 복이 많다는 것은 오늘 아침 피 독주를 보며 느꼈지만 복이 많아도 보통 많은 것이 아닌 것이다. 몸이 회복되고 조사지공을 얻었으며 이처럼 복 많은 사질까지 생겼으니 꿈인가도 싶었다. 하지만 절대로 꿈은 아니었다. 보무당에 있는 칠십여명의 무인 들이 식사를 하는 식당으로 향하는 구천진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아직 실험은 해 보지 않 았지만 미각까지 돌아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십년동안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하고 단지 살기 위해 기계적으로 먹어 왔던 음식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닐 것이다. 비록 식탐을 금하는 것이 도인들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 이었지만 미각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앞을 보지 못하는 것과 비견될 정도로 불행한 일이었다. 한참 즐거운 상상속에 빠져 길을 걷던 구천진인이 갑자기 상상 속에서 빠져 나오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 보았다. 살기를 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하늘 위에서 그 무엇인가 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꽈르르르릉'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벽력소리 같은 굉음을 내고 있었다. 품속에 있는 혈요인을 꺼내려고 하는데 옆에서 사질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금아야!"
매우 다급한 목소리였다. 사질의 목소리에는 유성처럼 떨어져 내려오는 물체에 대한 걱정이 담겨져 있었다.
'콰아아아아..'
그런데 그렇게 급속하게 떨어져 내려오던 괴물체가 지상 이십여장 위에서 믿기 힘들 정도로 급작스럽게 속도 를 낮추더니 온전한 제 형상을 드러내었다.
한자 정도나 되는 금색 깃털을 가진 새이었다. 은성이 외치는 소리와 금색 깃털을 가진 새가 속도를 줄인 순 간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그런데 같은 시각에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금색의 새를 향해서 하 얀 빛이 뇌전처럼 쏘아져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뇌전을 쏘아보낸 사람은 해동 금룡각(金龍閣)의 인물이었다. 냉막한 성격에 자존심이 무척 강한 무인이었다.
게다가 무공은 보무당 칠십여 무인들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그가 가진 기문 병기는 매우 독창적이었다. 원반 모양의 날카로운 접시에 끈을 메단 것 같았는데 사용 방법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시전되면 원반의 회전 속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회전 속도 때문인지 자르지 못하는 것이 없었으며 암기처럼 던 진후 회수 할 수도 있었는데 그 빠르기에는 견줄만한 것이 없을 정도였다.
흰 빛이 번뜩이면 반드시 하나의 생명이 사라진다고 하여 명호도 백광필살(白光必殺)이었다.
그 필살의 무기가 금빛 깃털을 가진 새의 몸에 거의 근접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금색의 새에게는 불행한 일 이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백광필살에게는 한번도 예외가 없었던 것이다. 은성이 금색의 새를 알고 있 는 것 같았지만 백광필살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해동에서는 서로 경쟁하는 관계였지만 중원에 온후 무척이나 친하게 지내며 의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얼굴 표정이 냉막하고 말 주변이 없지만 실상은 매우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방금전의 공격도 동방 파의 사람들을 위함일 것이다.
아마도 식사를 하기 위해 나머지 한명의 금룡각 무인과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하늘에서 그 무엇인가가 동방파 의 친구들을 공격하자 도와주기 위해서 손을 쓴 것 같았다. 그런데 구천진인은 두 눈을 뻔히 뜨고서 마술같은 광경을 바라보게 되었다.
금색 깃털의 새를 정통으로 맞힐 것 같았던 필살의 무기가 갑자기 방향을 비껴 사선으로 날아간 것이다. 그제 서야 금색 깃털의 새도 위험이 닥쳤었다는 것을 감지하였는지 깜짝 놀란 듯 허공에서 날개 짓을 해 대었다.
그것도 잠시 지상으로 내려온 금빛 새가 은성의 어깨 위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 빗나간 무기를 거두려 백광필 살이 경공을 발휘하여 떠나가는 것을 본 후 은성의 어깨 위에 앉은 금색 깃털을 가진 새를 바라보던 구천진인 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은성아! 니 사부가 누구냐?"
금색 새가 인간처럼 말을 하여서 놀랐던 것이 아니었다.
"야! 너 여기가 어딘줄 알고 그렇게 굉음을 내면서 내려 오냐?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잖아?"
사질이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는 금빛새에 대한 정체를 알아 보았기 때문이었다.
"미안해. 이곳이 무림맹인줄 깜빡했다. 그런데 소리 좀 냈다고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공격을 하다니... 휴, 백년 감수했다."
감정조차도 거의 인간의 수준에 버금가게 구성진 말을 하는 금빛새에 대한 설명은 '금수환이록(禽獸幻異錄)'이라는 책에 씌여 있었다. 금색 깃털에 붉은 눈 그리고 흰 부리에 검은 발목을 지니고 말까지 할줄 아는 것을 보니 분명 그것이었다. 예로부터 해동에는 동해바다 신비지처에 신선들이 산다는 작은 섬이 있다는 소문이 나 돌고 있었다. 그 섬에는 천신봉(天神峯)이라는 화산섬이 하나 있으며 선계의 과일과 기화이초가 자라는 그 섬 을 수호하는 동물이 하나 있다는 것이었다.
금시조(金翅鳥)라는 전설적인 새이었다. 총명한데다가 신선들의 귀여움을 받고 자라나 인후(咽喉)가 트여 말 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력이 쌓여지면 인간처럼 수련도 한다고 씌여져 있었다. 선연을 얻거나 도행이 깊어지면 특이하게도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이루는데 환골탈태를 세 번 이루면 세상 무서운 것이 없는 천하무 적의 영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었다.
바로 전설의 백수지왕인 금시조였다. 용을 잡아 내단을 취해 먹는다는 새가 금시조인 것이다. 금시조는 도행 이 높아지면 천상계로 날아간다는 전설까지 회자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금시조는 한번도 환골탈태를 하 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신선들의 세계에서 노닐고 있어야 할 금시조가 속세에 나와 은성과 친구처럼 지 내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인사해라! 이분이 사부님이시고 그리고 저분은 사숙님이시다."
"야, 니네 사부 수염 멋있게 생겼다."
인사를 하기도 전에 아부를 먼저 한 금아가 은성의 어깨에서 날아올라 자운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공중 에서 인사를 했다. 날개짓을 빠르게 하는 것 같지도 않는데 신기하게도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처음 뵙습니다. 금아 입니다."
금아가 자운검에게 아주 의젓하고 공손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자 은성이 부연설명을 하여 주었다.
"사부님, 제 친구입니다. 어제 어디로 날아 가더니만 이제야 왔네요."
은성의 말대로 무림맹주와 농담까지 주고 받은 금아는 내당주와 은성이 지루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하늘로 날아올라 갔었는데 이제야 나타난 것이다. 인간의 목소리를 내는 금아가 귀엽고 신기한지 자운검이 미소로써 답례를 하였다.
"그래, 은성의 친구라니 만나서 반갑다."
자운검의 목소리가 끝나자 마자 금아는 구천진인에게로 쪼르르 날아가서 역시 인사를 하였다.
"금아다! 만나서 반갑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금아였다. 자운검에게는 존칭을 하여 주더니만 구천진인에게는 말을 함부로 하고 있는 것 이다.
"금아야! 사숙님에게 무례하면 안돼. 예의를 갖춰야지."
무안해진 은성이 급히 금아를 나무랐지만 금아는 반박을 하였다.
"야! 니 사숙이지 내 사숙이냐? 너를 봐서 니네 사부께는 존칭을 했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어림없다. 무 림 맹주든 검후 할미든 내 나이가 몇 살인데 존칭을 하라는 것이냐?"
그러고 보니 금아가 몇 살이나 먹었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사숙에게 무례하게 말을 하도록 할 수는 없다는 판단하에 다시금 금아를 나무라려는데 구천진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질, 금선배의 의견이 맞다. 사질이 몰라서 그렇지 나보다 몇배는 더 살았을 것이다. 나에게 반말을 하여도 내 게의치 않을 것이니 너도 신경쓰지 말아라."
"하지만 사숙님..."
아무리 사숙님의 의견이 그렇다고 하여도 그럴 수는 없다는 말을 하려는데 구천진인이 가로 막았다.
"괜찮데도 그러는구나!"
조금은 엄숙해진 구천진인의 목소리에 은성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금아를 바라보자 금아는 은성의 눈빛을 회피 하였다. 그리고는 어느새 구천진인의 어깨위에 내려 앉았다. 은성의 눈빛이 불안했던지 하늘을 바라보며 금아 가 입을 열었다.
"야, 은성아! 니네 사숙 성격 진짜 화끈하다. 너도 좀 배워라!"
"허허허!"
금아의 어리광 같은 행동이 즐거웠는지 자운검이 웃음을 지었다.
"은성아, 사제의 말대로 금선배의 연세가 높은 것 같으니 너무 나무라지는 말거라."
자운검까지도 금아의 편을 들고 있었다.
"맞다. 맞어. 어흠"
기분이 좋았는지 호들갑을 떨던 금아가 언제 배웠는지 헛기침까지 하며 의젓한 흉내를 내자 은성도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사부님과 사숙님이 허락하셨으니까 특별히 용서해 주는거야! 하지만 무례하게 행동해서는 안돼. 알았지?"
나이는 많았지만 은성을 친부모처럼 따르는 금아였다. 은성이 엄숙한 목소리를 내자 금방 고분고분 해졌다.
"알았다. 그런데 지금 어디가냐? 벽곡단 먹으러 가냐?"
금아가 은성을 바라보며 밥 먹으로 가는지 여부를 묻자 은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해 주었다. 은 성의 대답을 들은 금아가 날아 올랐다.
"참 나, 벽곡단 지겹지도 않냐? 그건 그렇고 은성아! 나 어디 좀 갔다 올께."
"어디?"
어제부터 하룻동안 사라졌다가 이제야 나타나 놓고는 다시금 어디를 갔다와야 한다니 의문이 든 은성이었다.
"저번에 지나온 검각산에서 멧돼지를 잡아 헤메다가 기가 막힌 냄새를 맡았었는데 어제 갔다와 보니 며칠 있 어야만 먹을 수 있을 것 같더라. 노리는 놈들도 많은데 미리부터 가 있어야겠다. 걱정은 마라! 나보다 센 놈 은 없는 것 같으니."
".., 그래 알았다. 조심해서 갔다 오고."
은성이 조금 걱정스럽다는 듯한 눈빛을 하자 안심시키려는 듯 금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야! 걱정 말래두... 주변을 샅샅이 훓어 보았는데 자운곡의 괴물같은 놈은 없더라구."
말을 마친 금아가 하늘로 날아올라 일행의 머리 위를 세바퀴 돌더니만 금새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금아 가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던 은성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구름 저편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구천진인 이 입을 열었다.
"걱정할 것 없다. 내가 보기에 그곳에 어떠한 괴물이나 영물이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금선배의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구천진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 되는 은성이였다.
사실 예전에 계룡산에서 보았던 사왕(蛇王)정도 되는 영물이 아니고서는 금아와 대적할만한 상대는 쉬이 찾아 볼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왕과 싸우더라도 금아가 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날카로운 부리로 일 격에 맹수의 급소를 쪼아 즉사시키고 몇백근이 나가는 멧돼지도 가볍게 들고 날아 다니는 금아였다. 최소한 자기 한몸 정도는 지킬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사왕을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인간으로 변화돼 가던 인면 오공의 귀엽고 아름다운 얼굴이 떠올랐다. 완성된 금 환을 먹은 후 천년의 소망대로 인간으로 환생되어졌는지 궁금했지만 생각을 이을 수는 없었다.
사부와 사숙이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