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75화 (75/152)
  • ■ 제 75 절 :

    맹주와 검후가 춘추 영웅전으로 발길을 옮길때 무림맹 내당 당주가 은성에게로 다가왔다. 강한 양강의 무공을 익혔는지 붉은 홍안에 머리카락도 붉은 기가 감도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가을 호수처럼 맑고 시원하 였다.

    "무림맹 내당 당주를 맡고 있는 진화룡 이라고 하네. 그만 가세!"

    은성이 맹주를 따라가는 검후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자 내당주가 은성을 채근하였다.

    그런데 내당주의 말을 무시하는 듯 검후의 뒷모습만을 응시하다가, 뒤돌아 보는 검후와 아쉬움의 수인사를 나 눈 이후에야 은성의 시선은 내당주에게로 돌려졌다. 그런 은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내당주의 얼굴에 슬며 시 웃음꽃이 피어났다. 자신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았다.

    "정말로 아름답게 생기셨구만. 그렇지!..."

    은성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었다.

    "검후의 미모에 삼공녀님의 인기가 줄어들게 생겼군 그래..."

    무슨 말이냐는 듯 은성이 내당주의 시선을 직시하자 내당주가 피식 웃더니 말을 얼버무렸다.

    "아니, 그런게 있다네. 자, 그만 가세나!"

    내당주는 성품은 좋지만 성격은 다급한 것 같았다. 사부님을 만나러 가는 은성보다도 더 바쁘게 서두르고 있 었다. 무림맹은 넓고도 복잡하였다. 그렇지만 치밀하게 설계되어 졌는지 그 광대한 구역이 전각과 높다란 담 으로 구분되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사부님을 잘 아시는지요?"

    춘추 영웅전이 위치된 널따란 광장을 빠져 나오던 은성이 내당주에게 물었다.

    "그럼, 잘 알고 말고..."

    "..."

    "그런데 허대협이 정말로 자네의 사부인가? 자네 지금 나이가 몇인가?"

    "열 여덣 입니다. 사부님은 십년전에 중원으로 오셨는데 헤어진 이후로 오늘 처음 뵙게 되는 것입니다."

    "허허! 감격적인 상봉이군 그래. 그러고 보니 허대협을 처음 본지도 어느새 십년이 다 되어가는군 그래."

    잠시 회상에 잠긴 듯 말이 없던 내당주는 조금전보다도 훨씬 친근한 어조로 다시 물었다.

    "자네, 무림맹의 구성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나?"

    무림맹의 구성이라니... 알 리가 없는 은성이었다. 청무대와 보무당 그리고 맹주와 문상 거기다 내당, 외당 ... 조금 생각을 해 보던 은성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내 그럴줄 알았네. 앞으로 자네도 사부를 따라 무림맹에 꽤 머물 것 같아 보이니 간략하니 내 설명해 줌세."

    내당주의 말마따나 은성은 무림맹에서 꽤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사부님이 계시고 검후가 있으며 어렵게 얻은 하나뿐인 제자도 소림사에서의 수련이 끝나면 무림맹으로 찾아온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내당주님의 친절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은성이 고맙다며 예를 갖추자 내당주가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해동예의지국(海東禮儀之國)이라 그런지 정말로 예의가 바르구만 허허허!"

    한차례 웃음을 터트린 내당주는 본격적으로 무림맹의 구성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맹주님은 방금 봤고 맹주님 밑으로는 문상(文相)과 무상(武相)이 계시네. 맹주님을 호위하는 삼대 호법은 소 림과 무당 그리고 화산의 전대 장로분들이시고 맹내의 모든 조직은 아홉 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구원(九院)이 라고 불린다네. 나는 수성원(守成院)에 속하는 내당과 외당중 내당주를 맡고 있는데 사실 자네가 구원 중에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곳은 보무당이 소속된 천무원(天武院)이라네."

    말을 하면서도 내당주는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하지만 보무당은 천추 영웅전이 위치된 광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지 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맹내 호 위무사들은 내당주가 보이면 공손한 자세로 포권지례를 하였는데 내당주도 반드시 답례를 해주었다.

    그 때문에 가끔씩 말이 끊기고는 하였다.

    "천무원은 무상(武相)이 원주로 있는데 천무당(天武黨)과 수무당(守武黨) 그리고 보무당(保武黨)으로 나뉘어 져 있네, 무림맹의 실질적인 전력이지. 물론 마교와 대접전이 일어나면 무보원(武保院)이 활성화되어 구대문 파와 오대세가 그리고 일방에 다른 문파들이 가세화 되겠지만 말일세."

    내당주는 은성이 기억하기 쉽도록 배려하기 위함인지 느리면서도 또박 또박 강조하며 말을 해주고 있었다.

    상단전이 발달된 이후로 은성의 기억력이 인간의 경지를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는 내당주였기 때문이다.

    "천무당은 다시 청무대와 적무대 그리고 흑무대로 나뉘어지는데 이미 청무대원들은 만나 봤다고 들었네. 이들 천무당원들이 무림맹의 활동의 근거가 된다네. 무림맹의 원로 고수들로 구성된 수무당과 자네 사부처럼 중원 밖의 세력중에서 무림맹을 돕기 위해 머물고 있는 무림인들로 구성된 보무당은 아주 특별한 임무나 작전에만 활동한다네. 하지만 마교와의 접전이 벌어지면 가장 큰 활약을 하여야 할 곳이 바로 수무당과 보무당이지."

    "보무당에는 몇 명이나 소속되어 있는지요?"

    은성이 가장 궁금한 것은 사실 무림맹의 구성이 아니었다.

    사부님이 무림맹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마교와의 접전이 끝난지 십년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까지 동방파에 돌아가시지 않고 무림맹에 머물러 계시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하하! 자네는 천무당 보다도 자네 사부님이 계신 보무당에 더 관심이 크겠구만 그래. 보무당에는 해동과 대 리국을 포함하여 모두 열일곱개 문파 칠십여명의 무인들이 머물러 계시다네. 인원은 적지만 모두들 각파의 원 로급 신분이며 하나같이 무공이 고강하시다네."

    내당주는 말이 조금 길어질 것 같았는지 길게 한번 호흡을 내쉰 후 입술을 적신다음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 었다.

    "그러니까 십년전이네. 무림맹과 마교의 싸움이 치열해지고 전장(戰場)이 중원 전역으로 확대되어지자 마교측 에서 세외 세력들을 끌어 들였다네. 서장의 포달랍궁과 천축의 소뇌음사 그리고 북해와 대막은 물론 멀리 부 상국에서도 고수들을 끌어들였네. 이에 전세가 갑자기 마교측으로 기울어지자 무림맹에서도 급히 대책을 마련 해 마교에 대항할 세력을 모집 하였다네. 은거 기인들을 초청하고 대리국과 해동은 물론 저 멀리 흑룡강성에 있는 고수들 까지도 초청하였네."

    내당주는 무림맹의 실세답게 검후가 알고 있던 사실보다도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포달랍궁에 얽힌 비사(秘事)만은 역시나 모르고 있었다.

    "치열하던 혈전은 갑작스런 마교의 후퇴로 멈추어 졌는데 서장의 포달랍궁이 원인이었다는 사실만 알뿐 진정 한 원인은 모르고 있네. 그리고 아직도 마교와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네. 잠시 휴전중인 상태가 길어진 것 뿐 이지. 이런 대치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그 때문에 보무당에 소속된 세외 고수들이 아 직도 그냥 무림맹에 남아 있다네.

    물론 그들이 남아 있는 것은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네. 아직까지 남아 있는 보무당원들의 대부분은 마교와 의 혈전중에 비참하게 숨져간 사형제나 동료들의 복수와 마교 타도라는 명분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 복수라는 명분으로 뭉친 사람들 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서로간에 무공 비결을 교환하면서 자신들의 무 공이 가진 약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며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네."

    내당주의 설명을 듣자 은성은 사부님이 아직도 중원에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갔다. 하지만 아 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무림맹을 도와준 세외 문파들은 무엇 때문에 무림맹을 도와주었는지요? 무림맹과 친분이 있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허허! 그래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가?"

    은성의 물음에 내당주가 오히려 반문을 하자 은성은 생각했던 것이 있었는지 즉시 대답을 하였다.

    "태어난 나라가 다르니 중원의 무고한 백성들을 위한다는 이유는 설득력이 부족하고... 무림맹이 무너지면 마 교가 그 세력을 확대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거나 무림맹에서 어떤 조건을 제시하였을 것 같습니다."

    은성의 말을 듣던 내당주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맞네, 실제로 마교는 중원 이외의 나라에 대해서도 지부를 세우고 무림세력들을 감시하는 등 정보를 수집하 였는데 그 모두다 마교가 음모하는 천하일통지계(天下一統之計)의 일부분이라네. 자네가 사는 해동에도 마교 의 지부가 있었다네."

    내당주의 말을 듣던 은성이 옳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었다. 동방파에서 나온 은성이 신검을 사용하던 마 교의 전대 장로와 싸운 곳도 해동이었기 때문이다.

    "마교의 흉계를 폭로하고 무림맹의 안정이 그들의 안정과 직결된다는 것을 설명하여 주었네. 그리고... 음 이 것은 비밀 사항이지만 내 자네 사부와의 친분을 보아 말해주는 것이네. 어차피 자네 사부가 얘기해줄 것이지 만 말일세."

    말하기가 곤란한 내용인지 조금 뜸을 들인 후 내당주가 말을 이었다.

    "사실 마교의 흉계에 대처한다는 구실만으로는 많은 세력들을 중원까지 끌어들여 마교와 대적시키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네. 실제적으로 눈에 보이는 보상이 필요했네. 그 방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무공비급 이네. 마 교가 무너지는 그날부터 삼년 이내로 무림맹을 해체할 것이며 마교 타도에 공적이 있는 문파에는 무림맹의 무 공중 그들이 원하는 세가지 무공 비급을 전해 주기로 한 것일세. 무림맹에서 소유한 일천가지 무공중 원하는 그 무엇이라도 말이네. 거절키 어려운 유혹이었지.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듯이 문파의 욕심도 끝이 없어서 강 하다고 자부하는 문파도 보완하고 싶은 무공이 반드시 몇 가지는 있는 법이라네. 어떤 문파라도 말일세."

    내당주의 말이 끝나자 은성은 사부님이 왜 아직도 무림맹에 머물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동방파에서는 사부님과 사숙들의 생사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아무리 멀 리 떨어져 있다 해도 연락하고자 하면 못할 일도 없을 것 같았다. 무슨 사정이 있는 것 같았지만 내당주에게 물어보는 것 보다는 사부님에게 직접 듣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은성은 내당주를 향해 다시 한번 포권지례를 하면 감사를 하였다.

    "내당주님, 너무나도 친절하신 설명에 막혔던 속이 확 뚫리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허허!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로구만, 나머지는 자네 사부에게 물어보도록 하게. 더 설명해주고 싶지만 아쉽 게도 보무당에 다 왔네 그려."

    내당주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에는 제법 규모가 큰 전각들이 바짝 붙은 채 한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늘어선 전각들은 구부러져 다시 쭉 이어져 있었는데 전각 앞에는 너른 숲이 들어차 있었다. 그런데 숲과 바위가 무질 서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각 앞 너른 터를 숲과 바위 등으로 나누어 놓은 것처럼 무질서속의 질 서가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은성이 전각보다는 전각 앞의 숲에 더 관심을 갖자 내당주가 웃음 띤 얼굴로 설명을 해 주었다.

    "왼쪽의 숲은 보무당의 야외 무공 수련장이라네. 숲 너머에 보무당 전용의 내부 수련장이 크게 지어져 있지만 수련 장면을 공개하고 싶지 않을 때에는 굳이 이곳에 나와서 수련을 하고 있다네. 이 안에는 평지도 있고 암 석군, 죽림, 늪지, 초지, 숲 등 상이한 환경의 수련장소가 있는데 수련자가 원하는 장소를 선택해 수련할 수 가 있네. 항상 평지에서만 싸운다는 보장이 없는 한 어떤 장소에서 싸워도 당황하지 않고 최상의 전력을 발휘 하려면 미리부터 숙달시켜 놓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

    "와! 대단하네요."

    내당주의 설명을 듣던 은성이 감탄하였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무림맹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외에서 초청해온 무사들에게 이처럼 대우를 해준다면 무림맹의 대원들에게는 얼마만한 투자를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당주를 따라 사부가 거처하는 전각으로 향하던 은성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전각 앞 야외 수련장에서 들려오는 갖가지 소음속에서 귀에 익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수련장 안에는 무공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장풍과 검풍 소리가 어지러이 난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난잡한 흐름속에서 매우 익숙한 검풍 소리가 들려 오고 있는 것이다. 사문의 검법인 유운검법을 펼 칠때의 검류성(劍流聲) 이었다. 검각산에서의 깨달음으로 허무경 칠단계를 완성한 은성은 심기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음은 물론 심안조차도 불가에서 말하는 육신통(六神通)중 천안통(天眼通)의 단계에 이르러 있었 다. 이미 무림인들이 추구하는 무공의 경지를 벗어나 있는 것이다.

    "내당주님, 사부님을 찾은 것 같습니다."

    은성의 뜬금없는 말에 내당주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모두들 수련을 하거나 전각 안에 틀어박혀 있는 지 눈에 띄는 사람들이 전무하였다. 동방파 허대협이 거처하는 전각은 아직도 조금 더 가야 하는데 도대체 어 디에서 사부를 찾았단 말인가?

    "어디에 계시는가?"

    내당주가 도대체 허대협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며 은성에게 묻자 은성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사부님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인지 사부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군요. 저쪽에서 수련중이신 것 같 은데 혼자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까지 안내해 주시고 좋은 말씀 감사 드립니다."

    은성이 손을 들어 가리키는 좌측의 숲을 바라보던 내당주는 은성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은성의 기쁨에 겨운 듯한 안색을 보자 은성이 정말로 사부를 찾았을 것이라는 짐작이 된 듯 사람 좋은 웃음을 띠웠다.

    "허허허! 사부를 찾았다니 다행이로구만. 만나 뵙거든 내 안부도 전해주게. 다행히 동방파 숙소에 자네가 머 물 여분의 방이 남아 있으니 당분간 거기서 머무르게나. 그리고 다른 사람이 수련하는 장소는 허락 없이 들어 가면 아니 되지만 자네라면 문제가 없겠네. 사부를 찾아 만리길을 찾아온 제자인데 설마 화를 내겠나. 나중에 보세나."

    내당주가 뒤돌아서 왔던 길로 걸어가자 은성은 심안을 따라 유운검법의 초식이 펼쳐지는 장소를 찾아 바람이 숲속을 거닐고 물살이 바위틈을 헤집듯 자연스럽게 이동해 들어갔다.

    사부가 수련하는 장소는 완전히 밀폐되어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바위와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병풍처럼 사방 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입구에는 낡은 목문(木門)만이 덩그렇게 놓여져 있었으며 목문의 중앙에는 안에 사람이 있음을 알리는 목패가 놓여져 있었다.

    '유인(有人)'

    목문 안에서 사부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자 은성은 가슴이 한없이 따뜻해져 왔다. 목패를 뒤집어 보니 무 인(無人)이라고 씌어 있었다. 목패를 유인으로 고정시킨 후 목문을 여니 안에서 잠그지 않았는지 스르르 열리 어 졌다. 문을 닫으며 안을 바라 보니 꿈에 그리던 스승님이 보였다.

    사부님의 유운검법은 이미 완숙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내당주의 말대로라면 보무당의 사람들은 서로간에 무공을 교환하여 가진바 무공들을 이전보다 더욱 강대한 무공으로 변화시켰다고 하였는데 사부는 원래의 유운 검법만을 고집하여 수련하신 것 같았다.

    검법이 어느새 검무의 경지까지 도달해 있었다. 부드럽고 평온한 자세로 펼쳐지고 있었지만 은성은 그 속에 잠재된 막강한 위력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검법속에 모든 심혼을 집중한 듯 무심의 경지에 달한 듯한 자세로 유운검법 시연을 마친 자운검은 호흡을 조정하여 내기를 고르다가 낯선 시선을 감지하고는 번개처럼 고개를 돌려 불청객을 주시하였다.

    비록 수련실의 목문을 걸어 잠그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수련중 함부로 들어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비록 태 어난 나라가 다르고 가치관과 문자가 다르며 문파도 다르지만 서로 간에 지킬 것은 철저하게 지키던 보무당원 이었다. 그런데 눈앞에는 보무당에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젊은 청년이 서 있었다.

    허락도 없이 남의 수련장소를 훔쳐 보다니.., 막 화를 내려던 자운검은 문득 청년의 눈빛이 낯설지 않다는 것 을 발견하였다. 반가운 기색을 한 아름 띄고 있는 눈빛이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혹시... 하면서 은성의 얼굴을 더욱 자세히 살피려고 하는데 젊은 청년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그에게 큰 절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사부님!"

    '이럴 수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자운검이 눈을 크게 부릅떴다.

    하지만 분명히 그의 제자 이은성 이었다. 여덟살 때 헤어진 이후로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언제나 그의 가슴속 에서 살아 숨쉬던 사랑스런 제자가 장성하여 그를 찾아 머나먼 이국 만리길을 달려온 것이다.

    공손히 삼배(三拜)를 올리는 제자를 바라보던 자운검은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제자에게로 다가가 얼굴 을 쳐다보고는 반가움에 힘껏 안아 주었다.

    무슨 말이 필요할 것인가... 한참 후 품속에 있던 은성을 떼어낸 자운검이 물끄러미 제자의 얼굴을 바라 보았 다. 여덣살 꼬마 제자는 너무도 훌륭히 자라 있었다. 이국 만리 타향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 도 반 가운데 하물며 사랑하던 제자를 만났으니 그 반가움은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미 백발이 된 긴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자운검은 연신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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