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72화 (72/152)

■ 제 72절 :

상단전이 개발되고 심기가 축적되니 내상의 회복속도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심기가 몸 전체에 작용하여 치유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처를 입은 부위는 자체 치유력을 높이도록 혈량과 기맥을 조정하고 막힌 경락을 뚫어 주었으며 혈액과 내기가 몸 전체에 고루 퍼져 흐를 수 있도록 바쁘게 움직 이고 있었다.

하지만 은성의 내부는 너무도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번뇌마승이 죽음을 무릅쓰고 전개한 뇌전의 기운에 몸 내부가 일부 타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몸 바깥으로는 호신강기로 방어하고 오장육부는 태극진기에서 분화된 오행진기가 굳세게 감싸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피해는 의외로 극심하였다.

그만큼 뇌전의 기운이 강했다. 아마도 번뇌마승의 신체 면역력이 조금만 더 강해서 촌각의 시간이라도 더 버 티며 은성에게 계속 더 뇌전을 주입했었다면 몸이 산산조각으로 터져 죽은 것은 번뇌마승보다 은성이 먼저였 을지도 몰랐다.

중단전의 내단에서 진기가 조금씩 피어 나오고 있었지만 아직 은성의 몸은 진기를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회 복 되지는 않고 있었다. 심안이 계속해서 은성의 몸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너무도 큰 중상 때문 인지 회복 속도가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직도 오장 육부를 이루고 있는 장기들의 정확한 상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장기들로 통하는 혈 액과 진기가 매우 불규칙하게 흐를뿐만 아니라 그 량도 너무 미미한 것 같았다. 다행히 조금씩 회복되고는 있 었다.

몸 내부와는 달리 머리와 사지는 다행히 정상인 것 같았다. 쓰러진 채로 후줄근하게 비를 맞고 있었지만 은성 은 마주잡은 검후의 오른손에서 따스한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따스함은 손가락을 넘어 손목을 지나 팔목 으로 치달려 올랐다.

은성은 검후의 따스함을 몸 전체로 만끽하고 싶어졌다. 심기를 오른팔로 집중시키자 따스함이 어깨를 지나 몸 안쪽으로 퍼져가기 시작하였다. 심기가 집중되면 집중될수록 따스함을 느끼는 감각기관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 어져 갔다. 지금까지 이곳 저곳에 분산되어 제멋대로 고장난 몸의 기능들을 회복시켜가던 심기들이 한 곳으로 몰리자 그 효과는 몸으로 바로 느껴질 만큼 지대하였다.

오른쪽 어깨를 지난 심기들은 서서히 가슴쪽으로 이동하였다. 심기들이 이동하는 속도는 매우 느렸지만 마냥 느린 것만은 아니었다. 반시진 정도 경과되었을 때에는 심장의 기능이 완전하게 회복되어졌으며 다시 반시진 이 흘렀을 때에는 간의 기능이 삼할 정도 회복되어졌다.

장기들 중에서 간의 기능이 가장 많이 손상된 것 같았다. 뇌전은 불의 기운인데 불과 상극인 나무(木)의 기운 을 지닌 간이였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마주잡은 검후의 따스함을 몸 전체에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은성은 운기요상을 하는 와중에서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반시진 정도 더 지난 후 은성은 운기 요상을 그치고 서서히 눈을 떴다.

아직도 내부 기능이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지만 최악의 상황은 모면한 것 같았다. 심기들을 집중하여 심장과 간의 기능을 어느정도 회복한 은성은 다른 장기들은 제쳐두고 중단전에서 형성된 진기들이 운용되어 질 수 있 도록 막힌 경락을 뚫고 태극진기를 회복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이었다.

그 결과 이제는 미미하지만 오푼 정도의 진기를 다스릴 수가 있게 되었다. 도망간 적도들이 다시 몰려오면 심 기로써 대항하면 될 일이지만 검각산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흉한 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자신만 다쳤으면 괜 찮을 수도 있겠으나 검후조차 시체더미 사이에서 비를 쫄딱 맞으면서 뭇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운기요상을 그치고 미련없이 몸을 일으킨 은성이 검후를 안아들자 지금껏 은성과 검후의 곁에 앉아서 걱정스 레 지켜보던 금아가 호들갑을 떨었다.

"은성아! 다 나았냐?. 배는 안 고프냐?. 내가 사냥해 올까?"

죽었는지 미동도 없이 계속 누워만 있자 나름대로 걱정이 많았다가 은성이 일어서자 근심이 가셨는지 금아의 목소리에는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아니! 아직 덜 나았다. 하지만 은하가 깨어나면 음식을 만들어 주어야 하니... 그래, 사냥 좀 해 와라."

식사 얘기에 주방이 있었던 주방을 바라보던 은성은 석산위에서 쏟아져 내린 바위덩이들에 의해 주점이 형체 도 알아볼 수 없게 초토화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금아에게 사냥을 부탁하였다. 하지만 사냥보다는 과일 등을 따오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다. 큼직막한 것으로 잡아 올께."

말을 바꾸기 위해서 금아를 보니 어느새 하늘높이 비상하였는지 목소리만 남긴 채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주점은 바위덩이 등에 깔려 폭싹 주저앉아 있었지만 다행히 석산과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객방은 제 형태 를 유지하고 있었다. 검후를 안아 들고 객방을 살펴 그중 가장 깨끗한 곳에 눕힌 은성은 검후를 앉힌 채 명문 혈에 진기를 주입하여 운기요상을 도와 주려고 하다가 나지막이 한숨을 토해내었다.

운기요상을 도와주기에는 자신이 회복한 태극진기의 양이 너무 적었으며 검후의 내상은 너무 깊었다. 검후가 편안히 쉴 수 있도록 몸을 바로 눕힌 은성은 객방 한쪽에 걸려 있는 의복을 본 후 상의만 바꿔 입었다. 검각 산에 오기전 입고 왔던 자신의 상의는 비에 젖고 독중지마의 독강에 녹아서 넝마보다도 더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창백하니 핏기를 잃은 검후의 얼굴을 바라보다 객방 밖으로 나온 은성은 이곳에 머물며 검후를 치료할 것인지 를 결정하기 위해 사방을 둘러보다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사방에 널린 시체와 핏자국으로 인해 더 머물고자 하는 마음이 일시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고는 은성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이대로 방치시킨채 떠나기에 는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심기를 운용하여 깊숙이 땅을 파헤친 은성은 시체들을 모아 합장을 해준 후 뒤돌아 객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왠지 더 머물기에는 기분이 좋지가 않았던 것이다. 비록 비가 쏟아지고는 있지만 피와 죽음만이 얼룩져 있는 이곳에 더 이상 검후를 머무르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검후를 두손에 안은채 검심주점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니 방금 전까지 그토록 치열한 혈전을 벌어졌다고는 믿 어지지 않을 정도로 숨막히는 적막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혈전의 잔재들도 쏟아지는 빗줄기에 씻겨 사라져 가 고 오로지 폐허로 변한 검심주점만이 오늘의 치열한 결투를 말없이 대변해 주고 있었다.

만마폭을 떠난지 이각정도 지나자 서서히 비가 그치기 시작하였다. 구름조차 서서히 걷히는 것이 파란 하늘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검후의 얼굴을 가려 주던 우의를 제끼고 맑 게 개여 오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은성은 피식 실소를 지었다. 하늘위로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백근은 넘어보일 정도로 통 통한 멧돼지는 은성의 눈앞으로 떨어져 내려왔다.

'철퍼덕'

오장여의 높이에서 멧돼지가 땅에 떨어지면서 땅위에 고인 물방울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볼메인 금아의 목 소리가 겹쳐져 들여왔다.

"야! 갈려면 기다렸다 같이 가야지. 한참 헤맸잖아!"

화난듯한 금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은성이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사과의 말을 하였다.

"미안하다 금아야. 은하가 많이 아파서 치료하려고 빨리 떠났어. 금아 네 눈은 십리 밖까지도 다 볼 수 있잖 아... 그런데 왜 그렇게 늦었어?"

떠나간지 반시진도 되지 않았지만 금아의 사냥 실력에 비해서는 시간이 많이 지체된 편이었다.

"말도 마라. 저놈도 간신히 찾아냈다. 하마터면 포기하고 그냥 올 뻔 했다."

금아의 말을 들으니 검각산에는 동물들이 별로 없다고 어렴풋이 들었던 기억이 생각난 은성은 미간에 상처자 욱만이 보이는 멧돼지를 바라보고는 고민에 빠졌다. 방금전에 시체들을 묻었던 기분 때문이지 식욕도 없었으 며 이처럼 큰 멧돼지를 요리할만한 도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상 때문에 속에서 고기를 받아 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두고 가기에는 금아가 지금껏 한 고생이 말짱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는 수 없었다. 애절한 눈빛으로 금아를 바라보며 은성이 부탁을 하였다.

"금아야! 이길을 쭉 따라가다 처음 보이는 주점이나 민가가 있으면 근처 큰 나무 위에다 이것 숨겨 놓고 다시 와라. 금아가 어렵게 잡은 고기인데 은하 깨어나면 먹여 주어야지. 안 그래?"

다시금 이 무거운 것을 움켜쥐고 하늘을 날아갈 생각을 하며 막 거절을 하려던 금아는 은성의 애절한 눈빛과 은하에게 먹여 주자는 말을 듣자 마음이 동요되었는지 다시금 멧돼지의 등짝을 검은 발톱으로 움켜 쥐었다.

"알았다. 알았어. 갈테니까 그런 불쌍한 눈으로 보지 말아라!"

낮은 투덜거림과 함께 금아가 날아 올랐다.

자기 몸무게에 비해 몇십배나 무거운 멧돼지를 들고서 날아가는 데도 불구하고 금아의 속도는 빠르기 이를데 없었다. 멧돼지 한 마리가 비 게인 하늘로 화살처럼 날더니 금새 눈 앞에서 사라져 갔다.

금아가 날아가던 모습을 바라보던 은성이 물끄러미 혼절한 검후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내상 때문인지 얼굴에 핏기가 없어 창백한 안색이었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검후였다. 보고 또 봐도 계속해서 보고 싶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한시바삐 검후의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은성은 경신법을 발휘하였다. 자신도 내상을 입어 진기의 소통이 원 활하지 않았으나 은성의 마음속엔 검후의 안위만이 최대의 관심사였다. 일할도 채 회복되지 않은 진기였지만 할수만 있다면 전부 검후의 운기요상을 위해 사용하고픈 은성이었다.

'휘리릭'

바람을 제끼며 경신술을 전개하던 은성은 검후가 깨어나는 기미가 느껴지자 속도를 줄이었다. 경신술을 전개 하면서 조금씩 흔들렸기 때문에 검후가 오랜 혼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살포시 내려앉은 검은 속눈썹이 미 세하게 떨려 오더니 천천히 치켜 올라가자 사슴의 눈동자처럼 맑고 순수한 검후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은성을 볼 수 있는 것이 기뻤는지 검후가 수줍게 미소 지었다. 연인은 아무런 말도 없 이 계속해서 상대방의 두 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다 내상을 입었지만 표정은 행복함에 젖어 있었고 서로 를 바라보는 눈에서는 다정스런 기색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은하! 견딜만 해?"

은성이 사랑을 가득 실은 목소리로 나지막히 속삭였다.

"네, 오라버니. 오라버니 품속에 있으니 하나도 안 아픈 것 같아요."

검후도 행복에 도취된 듯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을 받았다.

"조금만 더 참어, 우리 경관 좋은 객점이 나타나면 며칠 쉬었다 가자?"

"푸훗, 알겠어요."

검후의 환한 웃음은 맑게 게인 하늘보다도 더 싱그러웠다. 금아가 한시진 정도면 된다고 하였으나 신법을 빨 리한 덕분에 일행은 반시진이 지난 후 아늑한 객방 속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검심주점만은 못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경관이 수려한 객점이었다. 간신히 방 한칸을 얻은 은성은 우선 심기를 사용하여 검후의 비에 젖은 옷을 말려 주었다. 허무경 칠단계 수련이 완성 되었다면 심기로써 검후의 내상도 치료할 수 있을 터인데 아직은 화후가 부족하여 심기로써 치료할 수 없음이 못내 아쉬었다.

태극진기는 거의 일할 정도가 회복되어 있었다. 이 정도 회복 속도라면 내일부터는 검후의 운기 요상을 도와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객점에 도착하기전 금아를 시켜 객점 안마당에 멧돼지를 떨어뜨리게 하였기 때문인지 객점은 흥겨운 분위기였 다. 온산을 다 뒤져도 찾아보기 힘든 멧돼지가 절로 하늘에서 떨어졌다며 객점 주인이 손님들에게 공짜 요리 를 제공해 주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멧돼지를 통째로 굽고 있는지 구수하니 고기 익는 냄새가 식욕을 돋구고 있었다. 주방장에게 특별히 부탁한 미음을 가져다 검후에게 조금씩 떠 먹여주던 은성은 검후가 조금밖에 먹지 못하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자신 또한 내상이 심해 금아가 어렵게 잡은 멧돼지 고기는 먹어 보지도 못하고 죽으로 끼니를 때웠지만 검후 가 미음조차도 넘기기 힘들어 하자 가슴이 아파온 것이다. 음식을 물리고 물을 한모금 마시게 한 후 검후를 편안하게 눕힌 은성은 검후의 손목을 잡고 검후가 빨리 나을 수 있도록 내심 기원하였다.

오늘 있었던 치열한 결전으로 검후는 피곤한 것 같았다. 은성의 다정스러운 눈길에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로 거짓말같이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다.

객방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니 어두워진 하늘위로 하나둘 별빛이 솟아나고 있었다. 찬연하지는 않지만 은은히 세상을 관조하는 듯 부드럽게 다가오는 별빛을 보며 은성은 별빛같은 인생을 살아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었다.

세상을 환히 밝혀 주고 곡식을 영글게 하는 태양같은 인생도 있을수 있고 그보다는 못할 것 같지만 어둠에 싸 인 대지를 포근히 감싸 주는 달빛같은 인생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별빛이 없다면 세상은 너무 삭막할 것 같았다. 눈에 튀어 드러나지 않아도 좋았다. 검후와 함께 속세 에 묻혀 살면서도 별빛 같은 마음으로 주위사람들을 돕고 사랑하면서 한 평생을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생각에 잠긴 사이에 하늘에는 더 많은 별들이 피어나 있었다.

은은한 별빛을 가슴 가득 안은채 은성은 다시 객방안으로 들어 왔다. 검후가 빨리 완치돼서 건강한 웃음을 짓 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내상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비 웠기 때문인지 심신이 너무나 차분하게 안정되어져 있었다.

선경에 들어 마음을 비우자 마음속으로 별빛이 토해져 나오고 우주의 조화로운 기운이 들어서며 심성을 명경 지수(明鏡止水)처럼 맑게 정화시켜 주었다. 그리고는 우주 공간에 그만이 홀로 존재하는 듯.. 아니 그 자신이 우주가 된 듯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 순간 상단전에 축적된 심기들이 환하게 광휘를 내뿜으며 뭉게구름처럼 솟아 올랐다. 그러자 투명하면서도 밝음으로 가득 찬 심기들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맑고 밝은 심기들이 이르는 곳마다 죽었던 조 직이 살아나고 잃었던 감각이 되살아 나고 있었다.

심기는 뇌속으로도 파고 들고 있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영묘한 기운이 뇌속으로 파고 들어가자 머릿속이 환히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은성은 자아(自我)를 의식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我)도 없고 타인(他人)도 없 으며 만물(萬物)도 없는 무위(無爲)의 세계로 빠져 든 것이다.

무위의 바다속에서 은성은 끊임없이 헤엄치고 있었다.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평소 은성의 잠재 의식 속에서 가장 깊숙이 존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한참 을 나아가던 은성은 자신이 허공중에 몸을 띄운 채로 그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칠색 광휘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 광휘 속에서 무엇인가가 살아 움직이는 듯 약동하고 있었다. 다 름아닌 천부경 팔십일개의 글자였다. 팔십일개의 글자 한자 한자가 용틀임 하듯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 다. 돌연 팔십일개의 글자들이 서로 얼키고 설키는가 싶더니 녹아 들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녹아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글자들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키고 있었다. 녹아들어 하늘 이 되고 땅이 되었다가 만물의 형상으로 다시 변화되어졌다. 인간이 되어 나타났다가 다시금 형상이 아닌 의 미로써 다가오는 등 천변만화의 조화를 부리던 글자들이 서서히 희미해져 가면서 은성도 서서히 잠이 들어 버 렸다.

눈을 뜨니 벌써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한 조각 꿈을 꾼 것 같았다. 하지만 내상이 얼마나 회복되어 졌는지 태극진기를 운용해본 은성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토록 심한 내상이 깨끗이 나아 있었다. 내상만 나 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단전에서 신묘한 기운을 느낀 은성은 심기를 발휘해 보고 는 허무경 칠단계의 수련이 완성되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믿겨지지 않는 현실에 은성은 몇 번이나 확인해 보았지만 꿈을 꾸고 있지는 않았다. 심기는 태극진기 보다도 정순하고 위력도 막강하였지만 내가 진기가 아니라서 다른 진기들과 전혀 상충되지 않았다. 태극진기도 자연 지기 인지라 다른 진기들과 융화가 쉬웠지만 우주의 이치가 깨달음으로 녹아 들어간 심기에 비할 수는 없었다.

가부좌를 튼후 보타문 비전의 내공심법을 발휘하는 검후의 몸 주위로 맑고 파란 기운이 퍼져 나오는가 싶더니 이윽고 숨을 고르는 검후의 콧속으로 모두 빨려 들어갔다. 운기조식을 마친 검후의 안색은 도화빛이 살짝 내 비치고 있었다.

지난 삼일동안 계속해서 운기요상술을 시전한 검후였다. 첫째날에는 몸을 일으킬 내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었 다. 하지만 은성이 발휘한 신묘한 기운에 의지하여 가부좌를 틀고 호홉을 고른지 삼일만에 내상을 거의 치유 하고 잃었던 내력도 회복되어진 것이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두자쯤 떨어진 곳에서 은성이 미소를 보내 주고 있었다. 삼일동안 한숨도 자지 않 고 자신의 운기 요상술을 도와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피곤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검후는 오늘따라 은성의 미 소가 너무나 눈부시다고 생각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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