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71화 (71/152)

■ 제 71절 :

은성이 석산위에 있는 괴인을 상대하기 위해 묵귀영의 수법을 펼치며 석산에 바짝 붙어 일학충천(일학충천)의 수법으로 날아 올라가고 있을 때 검후는 독중지마의 장세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었다. 검은 묵룡이 빙검 여 래혼의 날카로운 검강에 찟겨져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주변에 남아 있던 마교의 수하들이 흑우(흑우)속에 노 출되어 버렸다.

'크으으악..으윽'

이미 땅바닥에 쓰러진 십여명의 수하들 외에 남은 다섯명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쓰러져 갔다.

검은 강기에 맞은 부위는 순식간에 녹아 들어가 버렸다. 다시 한번 노인의 독공이 무섭다는 것을 실감한 검후 가 호신강막을 더욱 두텁게 하며 몸을 피하는 독중지마를 향해 이기어검을 펼치었다.

빙검 여래혼이 빗줄기를 뚫고 하얀 백룡이 되어 독중지마를 휩쓸어 가자 독중지마가 혼신의 힘을 다 쏟으며 위태위태하게 여래혼을 피해냈다. 하지만 이기어검의 무서움은 아직 발휘되지 않고 있었다.

허공중에서 검후가 원하는대로 방향을 선회하며 이차 삼차 검강이 실린 검날로 허공을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독중지마의 얼굴색이 사색이 되어갈 때 돌연 객방이 위치된 곳으로부터 칠팔명의 인영이 솟구쳐 나왔다. 튀어 나오는 즉시 검후쪽을 향해 몸을 날린 이들의 손에는 검은 죽통 모양의 이상한 기구가 들려져 있었다.

이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검후가 여래혼에 혼신의 여력을 가하여 필살의 수법으로 독중지마를 공격 하고는 여래혼을 급히 회수하였다. 독중지마를 스쳐 검후에게 날아오는 여래혼의 뒷편에는 피보라와 함께 몇 개의 손가락들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객방에서 갑자기 뛰쳐나온 인영들은 순식간에 검후를 에워싸는 형세를 유지하더니 공중으로 날아올라 땅위에 있는 검후를 향해 검은 죽통을 들이 대었다. 순간 검은 죽통속에서 붉은 화염이 확 피어 올랐다. 일제히 피어 오른 불꽃은 검후를 중심으로 하늘을 가득 덮으며 세상을 온통 화염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급히 뛰어 오르며 날아오는 빙검을 거머쥔 검후의 눈가에 다급함이 어리어졌다. 붉은 불꽃이 지척에 이르러 있기도 하였지만 불꽃이 터져 나오는 소리에 묻혀져 희미하게 들여온 날카로운 소성 때문이었다.

굉장히 날카로운 음파로 보아 암기 종류인 것 같았다. 왠만한 고수는 화염에만 적중되어도 통구이로 변할 것 이 분명한데 그속에 암기까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보면 보통 암기는 아니었다. 호신강기로 화염을 막을 수 있 는 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호신강기 파괴용 암기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날아드는 빙검 여래혼을 향해 다시금 접인신공을 발휘하여 속도를 높인 검후가 여래혼을 거머쥐자 마자 온 천지가 붉은 불꽃으로 갖혀버린 화염속에서 보타문 비전절기인 옥녀산화의 초식을 펼쳐 내 었다.

공지대사에게서 내공을 물려받은 이후로 옥녀산화의 초식은 그 위력이 몇 배나 증가되어 있었다. 붉은 불꽃 속에서 수줍게 피어난 꽃송이들이 일순간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화영을 이루자 덮쳐 드는 불꽃들이 화영에 휘감겨 검후 주변에 불의 장막을 펼쳐 내었다.

계속해서 밀려드는 검붉은 화염도 겹겹이 또 다른 호신막을 이루어 내면서 반대로 검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 고 있는 것이다. 일순 팽이처럼 회전하던 화영들이 붉은 불꽃들에 둘어 싸인채 사방으로 비산되어 날아갔다. 화산이 폭발한 듯 굉음을 내며 날아가는 불꽃 덩어리는 순식간에 검후 주변을 초토화 시켜 버렸다. 호신강막을 파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던 암기들도 화영에 부딪혀 속절없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고 검 후를 공격했던 인영들도 화영에 격중당해 온몸이 난자되고 불꽃에 타오르며 처참하게 울부짖으며 지면으로 추 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검후에게로 날아왔던 인영은 일곱명이었는데 지상으로 떨어지는 인영의 숫자는 여섯명 밖에 없었다.

급히 고개를 돌린 검후는 눈을 찔러오는 빛 무리에 하마터면 눈을 감을뻔 하였다. 하늘을 잔뜩 가린 검은 비 구름에 햇살이 내비칠리도 없었는데 눈앞이 온통 광휘에 뒤덮여 있었다. 그 광휘 속에서 백색 섬광이 뻗쳐져 나오자 검후는 여래혼에 검강지기를 운용한 채로 검봉으로 백색 섬광에 마주쳐 갔다.

'윽, 파바박'

백색 섬광과 마주친 여래혼의 주위로 수많은 불꽃이 튀어 나왔다.

가슴이 메어질 것 같은 심한 충격을 받은 검후가 짧은 비명과 함께 허공에서 사선으로 떨어져 내려왔다.

은성이가 번뇌마승과 겨루기 위해 석산으로 사라진 직후 홀로 남은 검후를 사로잡기 위해 비장의 수법을 펼친 소교주였다. 하지만 검후의 심후한 내공에 의해 허망하게 실패하자 반드시 검후를 제압하겠다는 각오를 다진 소교주가 뒤로 튕겨 나가는 검후를 쫒아 몸을 날리며 불마지검에 내력을 배가시켰다.

그러자 불마지검에서 붉은 불꽃이 화아악 일어나더니 불마지검 주위에 수많은 불꽃의 불검들이 생겨나기 시작 하였다. 검후에게 도착할 즈음 해서는 삼십여개의 불검들이 검후가 피할 모든 방위를 차단하며 덮쳐들고 있었 다.

지옥검선이 남긴 불마검보 후반 십팔초식중에 하나인 지옥겁화(地獄劫火)라는 초식이었다. 소교주는 지옥겁화 라는 초식의 위력에 자신만만해 있었다. 내력이 약했을 때에는 펼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초식으로 절세의 내공력이 필요하면서도 그만큼 절대적인 위력이 있는 초식이었다.

불마검보 후반 십팔초식중 유일한 수비식인 둔신무간(遁身無間)은 조금전 검후가 몸주위로 형형색색의 강기들 을 만들며 펼쳐 내었던 무공조차도 거뜬히 막아낼수 있었을 정도로 완벽한 무공이었다.

하지만 지금 펼쳐내는 공격적인 초식 지옥겁화는 설사 둔신무간으로 방어한다고 하여도 무너뜨릴수 있는 패도 적인 초식이었기 때문이다. 설사 검후 몸에 검상이 한두군데 생기는 한이 있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사로 잡 을 수만 있다면 마교 만독전의 마의(魔醫)들이 감쪽같이 고쳐낼 수 있을 것이다.

갑작스런 적의 공세에 검강을 발휘하였지만 불시의 기습으로 충분한 역량을 발휘할수 없었기 때문인지 허공에 서 땅바닥으로 떨어지던 검후는 떨어지는 와중에 진기를 추스려 적의 다음 공격에 대비 하였다.

예상대로 적의 공격은 눈앞에 들이 닥치고 있었다. 적의 검에서 연속적으로 발생된 검기들이 화검(火劍)의 형 상을 띄고 갑자기 거대하게 확산되며 닥쳐 들자 검후는 땅에 발을 딛을 여유도 없이 옥녀산화의 제 이초식인 다정만리를 펼쳐 내었다.

빙검 여래혼 주변으로 만개한 화영들이 여래혼의 검봉으로 스며들어 작은 금화 한송이를 만들어 내었다. 금화 는 눈부신 빛을 발하더니 여래혼의 검봉을 벗어나 사방으로 화검을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몰아쳐오는 불마지 검을 마주쳐 갔다.

어느새 지척에 이르른 적의 공세 때문에 여래혼과 불마지검간의 거리는 두장 정도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

'확..꽈과과광'

일순 천지가 떨쳐 울리는 굉음과 함께 사방이 환히 밝아 지더니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 주변의 모든 것을 날려 버렸다. 불마지검과 함께 짓쳐들던 화검들이 먼지처럼 소멸되고 주변의 공기가 미친 듯이 회오리치며 땅 위에 있는 빗물까지 쓸어 담아 하늘높이로 날려 보냈다.

예상을 뛰어넘는 과도한 충격에 호신강막 조차 흔들리며 검후의 몸이 주르륵 뒤쪽으로 밀려나 버렸다. 검후가 밀려난 앞쪽에는 땅속 깊이 도랑 두 개가 새겨져 있었다. 내상을 입었는지 목구멍으로 핏물이 넘어오자 검후 가 내밷지 못하고 꿀꺽 삼켜 버렸다.

아직은 적에게 약세를 보여 줄수가 없었다. 방금전 공격한 적수가 누군지 방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하늘에 태양이 뜨지도 않았는데 검에서 눈을 가릴 정도의 광채를 낼 수 있는 검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었다.

그 검을 전에 본적이 있었다. 바로 목검문에서 마교의 소교주가 사용하고 있었던 검이었다. 밤인데도 불구하 고 내공을 운기하면 대낮같이 사위를 밝혀 주는 특이한 검을 어찌 잊는단 말인가?

그 특이한 검을 움켜 잡은채 가랑잎처럼 날려가는 저자가 바로 마교의 소교주임이 분명하였다. 그렇다면 한쪽 에 서서 자기가 허점을 보이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저 노인이 바로 마교 십대장로중의 한명인 만독지마 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보아하니 소교주는 방금전의 일전으로 자신보다 더한 내상을 입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뒤를 쫒아가서 최후의 일검을 날릴 수가 없었다. 은성이 선물한 피독주 때문에 만독이 침입하지 못하는 이유로 간신히 상대할 수 있 었지만 오호구주를 떨쳐 울리는 만독지마를 감히 무시할 담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 또한 내상을 입고 있었다. 시간을 벌면서 은성이 돌아오기를 바랄 수 밖에 없었다. 만독지마가 서서히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검후의 눈가에 긴장감이 어리기 시작하였다.

석산(石山)은 하늘을 찌를 듯이 칼같이 날카로운 형세로 높게 솟아 있었다. 석산 위에 있는 괴인의 시선을 피 하기 위해 석산과 바짝 붙은 채로 폭포수를 거슬러 오르는 잉어처럼 쏘아 올라 가던 은성은 석산 중턱 쯤에서 심안에 잡힌 난데없는 인영들에 깜짝 놀랐다. 두명의 인영이 석산 중턱에 숨어 미세한 살기를 흘려 내고 있었 기 때문이다. 아마도 은성이 그들을 스쳐 올라가는 순간 밑에서 어떤 암기등으로 공격하려는 것 같았다. 숨조차 죽이고 살기조차 제어하였지만 은성의 심안을 벗어 날 수는 없었다.

'번쩍'

은성의 손에서 화룡검이 날아 오르자 이기어검이 펼쳐져 암습자들을 휘감아 버렸다.

'으아악'

두명중 한명은 화룡검에 당했지만 비명을 지를 여력이 남아 있었던 것 같았다. 참담한 비명과 함께 천길 낭떠 러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소교주와의 치밀한 작전 끝에 석벽 중간에 매복하고 있던 색혼 살마가 허리가 반 쯤 끊긴채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그의 손에는 검은 죽통같은 기구가 꽉 쥐어져 있었다. 화룡검을 받아 검집에 꽂고 몸을 날리는 은성은 이제는 일학충천의 수법으로 오로지 못하고 갈짓자로 좌우로 이동하며 절벽을 올랐다.

일학충천에 비해서는 내공소모도 많고 오르는 속도도 늦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비명소리 때문에 석산 정상 의 괴인에게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 스쳐간 석벽쪽에 뇌전이 떨어 지며 석벽이 허물어져 내렸다. 다른 곳에 비해서는 튀어나온 석벽이었다.

그곳이 온통 허물어지며 산산히 바스라져 벼랑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갈짓 자로 오르던 은성이 이리저리 변칙적으로 이동하였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뇌전이 일렁이며 폭발 소리가 들려 오더니 바위들이 은성의 머리위로 쏟아져 내려왔다. 잔영만을 남기운채 미꾸라지처럼 피해 다니는 은성 을 직접 맞힐 수가 없자 은성이 피할 방위를 미리 예상하고 그 위쪽의 벼랑에 뇌전을 때려 은성이 신형을 들 어 내도록 하려는 괴인의 술수였다.

아무리 뇌전이 빨라도 신형조차 보이지 않는 은성을 정확히 조준할수 없는 한 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바위들 을 피하기 위해 멈칫거리거나 아니면 호신강기라도 피워 올려 형체를 들어내면 그때 뇌전을 쏘아 격중시키고 자 하는 것이다.

호신강기를 펼치면 강기막이 궤적을 남겨 신형의 이동경로를 쉽게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성은 쏟아지는 바위속을 묵귀영의 수법을 펼쳐 허깨비처럼 피해 다니며 끝내 제 위치를 드러내고 있지 않았다.

호신강기를 펼치지 않았기 때문에 무서운 기세로 쏘아져 내려오는 바윗덩이 하나만 맞아도 치명적인 중상을 입고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죽을 것이 분명한데도 끝내 호신강기조차 펼쳐 내지 않았던 것이다.

구름속에서 뇌전을 끌어다 쏘아내지 않고 몸에서 직접적으로 뇌전을 쏘아대던 괴인이 이번에는 구름속에서 뇌 전을 끌어 와 은성에게로 날리었다. 그러나 뇌전의 파괴력은 몇배나 강력해 졌지만 위력은 반감되어졌다.

이미 이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대처 능력을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괴인은 안되겠다 싶었는지 끌어온 뇌전을 몇 개로 나누어서 은성을 공격하였다. 간일반의 차로 뇌전을 벗어난 은성이 갑자기 석벽을 박차고 일학충천의 수법으로 날아 올라갔다. 처음과 같이 괴인이 직접적으로 몸에서 뇌 전을 방출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다면 죽음으로 직결되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괴인은 대여섯번 정도 직접적인 뇌전을 방출한 이후부터는 그때 보다도 훨씬 더 좋은 기회가 생겼는데 도 끌어올려면 조금 더 시간이 지체되고 방출할시에도 약간의 약점이 남아있는 간접적인 공격을 하고 있는 것 이다.

괴인의 능력의 한계이려니 생각하고 은성이 괴인의 의표를 찌르고 순식간에 정상으로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눈 한, 두번 깜박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은성의 신형이 드디어 정상까지 솟아 올랐다.

그런데 솟아 오르기 직전 방향을 바꾸었는지 은성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솟아 오르고 있었다. 헛된 방향으로 발사된 뇌전이 허공을 가르며 사라져 가자 산을 울릴듯한 굉음이 행여 놓칠세라 바짝 뒤쫒아 갔다.

산 정상에 올라섰지만 괴인과 대치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찰나적인 방심도 허용될 수가 없는 것이다. 정상에 발을 디디자 말자 묵귀영의 수법을 펼쳐 빗줄기 속에 신형 을 감춘채 은성이 괴인 번뇌마승에게로 달려 들어갔다. 화룡검에 진화기를 주입하자 붉은 검강이 오장이나 뻗 어 나왔다.

구름사이로 언뜻 뇌전이 이는 것 같자 은성은 이형환위를 펼쳐 십장여나 옆으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붉은 검 강이 서린 화룡검은 계속해서 번뇌마승을 향하고 있었다. 아무리 뇌전이 빨라도 격중되지만 않으면 소용이 없 는 것이다.

뇌전이 빠르지 괴인의 시력이 빠른 것은 아니다. 괴인의 시력만 벗어날 수 있다면 승산이 있는 것이다. 붉은 검강은 빠르게 괴인에게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붉은 검강은 쉴 사이 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자신을 중심 으로 허공에 붉은 검강이 뻗쳐 나가는 것 같이 붉은 그림자로 가득 차자 뇌전을 날리려던 번뇌마승이 은성의 신형을 맞추는 것을 포기하고 최후의 수단을 펼쳐내어 버렸다.

붉은 검강이 몸에 적중되려는 찰나적인 순간에 과감히 내린 결정이었다.

번뇌마승은 신강에 위치된 뇌령곡(雷靈谷)에서 뇌전을 다루는 수법을 익혔다. 그의 스승은 뇌전을 다룰 능력 은 없었으나 뇌전을 다룰 수 있는 비법을 연구해낸 기인이었다. 십여년동안 신강을 헤메고 다닌 끝에 마침내 꿈에 그리던 뇌령마신지체(雷靈魔身之體)를 타고난 아이를 얻을 수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바로 번뇌마승이었 다.

뇌령곡은 천고의 비역으로서 일년에 반 이상은 비가 내리고 비와 함께 천둥 번개가 잦기로 유명한 산이었다.

스승은 뇌전의 위력을 받아 땅으로 흘려 보내고 원하는 만큼만 따로 흘려 보낼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 놓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뇌전의 기운을 받고 커온 번뇌마승은 신체가 서서히 뇌전의 기운에 적응되어 갔으며 견디 어 낼 수 있는 뇌전의 양도 늘어만 갔다.

마침내 스승이 만든 장치 없이도 뇌전을 끌어모아 원하는 곳으로 쏘아 보낼 수가 있었다. 끌어당긴 뇌전을 신 체에 충격없이 바로 반사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이 수법이 익숙해지자 뇌전을 여러 갈래로 분산시켜 반사시킬 수도 있었다.

마침내 끌어당긴 뇌전의 일부분을 몸에 충격이 없도록 서서히 축적시킨 후 이를 조금씩 방출해내는 방법까지 도 수련한 번뇌마승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 무공의 최대 약점은 비가 오지 않거나 구름사이에서 방전이 일어 나지 않는다면 뇌전을 사용할 수 없다는데 있었다. 그리고 뇌전을 끌어 당길 때에도 제한 조건이 있었다.

뇌령곡과 같이 구름이 최대한 가까운데 있어야 만이 원하는 대로 뇌전을 끌어 당길 수가 있었다. 아무리 천둥 번개가 치는 날씨에도 지상에서 구름속에 숨어 있는 뇌전을 끌어 당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뇌전을 몸에 축적시킬 수만 있다면 비록 제한된 몇 번 밖에 사용할 수 없겠지만 무적의 무위를 자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뇌전보다 빠른 사람은 있을 수가 없을 것이며 뇌전을 맞고도 무사할 무인은 존 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번뇌마승은 뇌령곡을 나서던 사십여세까지 뇌전에 견디어 낼 수 있는 강인한 신체를 만드는 수련에만 몰두하였다.

수련을 하다보니 부수적인 효과까지 생기었다. 시력이 독수리의 눈보다 더 좋아졌던 것이다. 밤일지라도 십리 밖의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밤낮을 잊은 수련덕에 대여섯 번은 펼칠 수 있을 정도의 뇌전을 축적 시킬수 있었던 번뇌마승은 마침내 뇌령곡을 출곡하였다.

그가 무공을 완성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스승은 마교에 인연이 있었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마교에 입교한지 벌써 이십여년이 흘러갔다. 모종의 결심을 마친 번뇌마승은 구름사이에서 끌어당긴 뇌전을 바로 반사하지 않고 몸안으로 끌어당겨 버렸다.

뇌전의 일부분만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다. 뇌전 전부를 받아들인 것이다. 몸이 견디어 내지 못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번뇌마승이었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이다. 뇌전에 격중 시키기에는 적의 신법이 너무나 빨랐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산아래 위치한 무리들을 눈앞에서 보듯이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해동신룡 이라고 불리는 적의 형체를 잡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눈앞에 닥친 검강을 피할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특이한 무곡을 익히느라 내공이 없기 때문에 호신강막을 펼칠 수도 없었으며 신법은 일반인보 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이곳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소교주의 탁월한 경공신법 때문이었다.

뇌전의 기운을 몸에 부딪혀 오는 붉은 검강쪽으로 돌려 버린 번뇌마승은 입가에 붉은 선혈이 꾸역꾸역 흘러 나왔다. 흘러 나오던 선혈은 뇌전의 기운에 타 버렸는지 새카맣게 굳었다가 뇌전의 기운을 이겨내지 못한 신 체가 터져 나가자 새카만 재가 되어 흩어져 갔다. 하지만 번뇌마승은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죽음 직전에 붉 은 검강을 용트림 하듯 거꾸로 타고 오른 뇌전이 화룡검을 지나 은성의 몸을 강타하는 것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은성의 손을 떠난 화룡검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땅 위에 널브러져 있는 은성의 신형은 미동조 차 하지 않았다.

설마 이런 식으로 공격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은성이였다. 호신강기를 펼치고 있었지만 태극진기가 육성정 도밖에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완전하지도 않았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사정없이 은성의 몸위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일각이나 지났을까?

죽은 것 같았던 은성의 손가락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 후에는 눈꺼플 조차 뜨여졌다. 사정없이 쏟아 지는 빗줄기가 눈속으로 파고들어 갔지만 눈꺼플을 닫을 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은성의 몸이 서서 히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미련이 그렇게 많은 것인지 몸을 뒤집으려고 몇번이나 시도하다가 기력이 부족한지 다 시금 쓰러져 버렸지만 끊임없이 몸을 뒤집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간신히 몸이 뒤집어지자 은성이 양쪽 팔을 앞으로 쭈욱 밀었다. 그리고 몸을 끌어 당겼다. 필에 힘이 들어가 지 않아 몸이 끌려가지 않았지만 죽어라고 몸을 앞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굼벵이가 기어가듯 힘겹게 앞으로 나아간 은성은 벼랑 끝에 도착한 후 시선을 집중하였다.

다행히 검후는 아직도 살아 있었다. 하지만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다.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닌 것 같아 보였 는데 아귀처럼 날뛰는 검은 강기가 검후를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한쪽에서 이상한 검을 든채 검후를 노 려보는 놈도 있었다. 검의 형태를 보니 목검문에서 보았던 마교의 소교 주라는 놈이었다.

몸의 상태를 살펴보니 최악이었다. 일푼의 내공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오장육부도 어떻게 되었는지 감 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뇌전에 타 버렸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내공은 쉬이 회복되지 않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꽉 막혔던 상단전이 풀리고 심기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하 였다. 하지만 심기를 발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 먼곳에서 검후가 분투하고 있는 지상까지는 미칠 수가 없 었다. 무작정 뛰어 내린 후 심기를 사용해 몸의 무게를 줄인다고 하여도 이정도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그 가속 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설령 살아난다고 하여도 절벽 아래에서 온몸의 뼈가 작살난 후 혼절할 것이 뻔했다.

검후를 바라보니 더욱 위급해 보였다. 내상이 심했는지 속절없이 밀리는게 시간이 조금만 더 지체되면 적의 손속에 피를 뿌릴 것만 같았다. 은성은 피를 토할 것만 같은 심정으로 아무런 대책없이 검후만을 뚫어지게 주 시 하고 있었다. 검후가 죽으면 자신도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겠다고 마음을 다지자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먼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은성이었다. 검후와 자신에게 기적이 일어나 검후만이라도 무사 할 수 있다면...

그런데 그런 기적이 실제로 일어나 버렸다. 은성의 심안에 뒤쪽에서 석산 정상으로 솟구쳐 올라오는 물체가 포착되어졌던 것이다. 자신이 전력으로 태극진기를 발휘하여 올라오던 속도보다도 더 빠른 속도였다.

금아였다. 금아의 양 발톱 사이에는 화룡검까지도 쥐어져 있었다.

"야, 은성아! 안 내려갈래?"

금아는 은성의 상태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은성에게 다가와 화룡검을 떨구자 은성이 심기를 조정하여 화룡 검을 검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 좀 태워 줘.., 다쳤다."

은성이 힘없는 목소리로 금아에게 간신히 들릴 정도로 말하자 이제서야 은성의 상태를 눈치챈 금아가 은성의 앞에 내려와 등을 보였다. 한자 정도 크기의 금아였지만 해동 미륵산에서 은성을 태우고 공중 곡예를 숱하게 펼쳤던 금아였다. 그때를 생각했던지 날개를 활짝 펼친채로 금아가 등을 보이자 은성이 힘들게 몸을 반쯤 일 으켜 세운후 심기를 발휘하여 금아를 끌어 당긴 후 몸을 가볍게 하며 금아의 등에 올라탔다.

'쐐애애애액'

금아의 비행 속도는 눈부실 지경이었다. 유성이 떨어지는 듯 금아가 쏘아져 내려오자 빗소리에 섞여 대기가 파열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지와 삼 장여나 남은 곳까지 내려 꽂히듯 떨어져 내려온 금아가 급선회 하며 검후에게 회심의 미소와 함께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던 독중지마에게로 날아가자 난데없는 이변에 독중지마가 놀란 눈을 부릅떴다. 놀란 눈을 닫을 겨를도 없었다.

금아의 등에 탄 은성에게서 화룡검이 심기에 의해 조정되어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화룡검에 검강이 운용되고 있지는 않았지만 심기에 의한 이기어검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희대의 독공인 묵룡강 을 펼치는 독중지마의 팔을 잘라내어 버렸다. 자신의 호신강막이 너무나도 어이없이 깨져 버리고 손가락이 멀 쩡한 오른손까지 허망하게 잘라져 나가자 독중지마가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잽싸게 도망쳐 버렸다.

그런데 독중지마가 도망가는 방향은 소교주가 호시탐탐 검후를 노려보는 방향이었다. 그 동안 운기조식으로 어느정도 내상을 억제하는데 성공한 소교주는 난데없이 독중지마가 자기 쪽으로 날아오고 그 뒤쪽으로 화룡검 이 날아오자 불마지검에 내력을 주입하여 역시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맞서 왔다.

이번 이기어검의 수법에 많은 공력을 운기하였는지 불마지검은 검강까지 담기어져 있었다. 그런데 검강까지 운기된 불마지검이 검기조차 보이지 않는 화룡검에 부딪힌 후 산산이 바스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소교주가 내상이 회복되지 않아 전력을 불어넣지 않았다 하더라도 검강에 보호되고 있는 검이 부서져 버리다니... 게다가 불마지검은 희대의 보검이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에 벌린 입을 다물줄 모르던 소교주는 불마지검을 박살내고도 여력이 남았는지 화룡 검이 빠른 속도로 날아오자 독중지마를 따라 혼신의 내공을 다해 몸을 날리었다. 그런데 금아의 등에 탄채 심 기를 발휘하여 이기어검을 펼친 은성이 급히 금아의 등에서 몸을 날리며 검후쪽으로 다가왔다.

불마지검을 잃은 소교주와 독중지마를 제거할 절호의 기회였으나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상이 심했는지 검후가 서서히 쓰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심기를 발휘하여 지면에 쏘아내자 떨어지던 몸이 충격을 완화하여 공중에서 주춤거린후 다시 땅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정도에서 떨어 져도 죽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한 은성이 심기를 쏘아보내 땅에 쓰러지려는 검후를 부축하였다.

다행히 검후는 안전하게 땅에 뉘일 수 있었지만 은성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쿠우웅'

한쪽 어깨가 땅에 심하게 찌어 온몸이 욱신거리고 정신마저 몽롱해져 왔지만 은성의 입가에는 웃음이 피어 오 르고 있었다. 아직은 심기를 자유 자재로 운용할 수가 없어 심기만으로 허공을 날아다닐 수도 그리고 심기를 나누어 운용할 수도 없었지만 심기 덕분에 검후를 무사히 구해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심기로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는 없었지만 다른 물체는 쉽게 움직일 수가 있었다. 쓰러졌던 검후의 몸이 서서히 지면에서 떠오르더니 은성의 옆으로 날아왔다. 옆에 누운 검후의 손을 꼬옥 잡은 은성은 검후의 맥박이 정상적으로 뛰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상이 심하고 기력이 탈진하여 혼절한 것 같았지만 충분히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몸을 치유해야 하는 것이다. 심안을 몸 내부로 돌리자 희미하지만 중단전에 형성된 내단에서 진기가 조금씩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은성이 검후의 손을 더욱 꼬옥 잡았다.

상단전이 개발되고 심기가 축적되니 내상의 회복속도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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