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9절 :
하남과 섬서를 잇는 검각산(劍刻山)...
태초에 신들의 전쟁이 끝난 후 남은 무기들을 땅에 던졌는데 그 무기들이 땅에 꽂혀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기이한 풍광의 험산... 하늘을 찌를 듯이 날카롭게 뻗어 있는 석벽 사이로 작은 소나무가 풍상에 시 달린 듯한 모습으로 위태롭게 걸쳐 져 있고 도선(刀仙)이 내려 와 일도양단의 기세로 잘라낸 듯한 암벽위로 불어 제끼는 바람 소리가 호곡성으로 다 가와 심신을 삭이는 검각산은 산이 험하고 골이 깊기 때문인지 동물 조차 별로 살고 있지 않았다.
산세가 험하고 토양이 척박하여 화전마저 일굴 수 없었으며 산에 동물들이 희귀하여 사냥으로도 살아갈 수가 없었길레 검각산 주변으로는 인가를 찾아 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험산에 절경이 많은 것은 자연의 이 치.. 하늘을 찌른다는 검각산의 산세를 구경하기 위해서인지 해마다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 검각산은 하남과 섬서를 잇는 지름길이었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기괴하고도 수려한 풍광을 즐기는 시인묵객이나 발이 급한 상인들을 위한 주점이 세워져 있었다.
검각산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검심주점(劍心酒店)은 쉬어갈 수 있는 객방이 별도로 있었으며 술과 음식맛이 일품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인지 항상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손님들이 많은 이유는 또 하나가 있었다. 바로 이곳에 검각산에서 경관이 가장 좋은 만마폭포(萬馬瀑)가 위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점 바로 뒤쪽으로는 천야만야한 바위산이 하늘높이 솟아 있었으며 앞쪽으로는 검각 산 깊은 곳에서 흘러모인 물들이 내를 이루어 급물결치며 흘러 나가고 있었다.
냇가는 검심주점을 지나 오십여장쯤 달리다가 백여장 깊이의 폭포가 되어 떨어져 내렸는데 그 소리가 장관이 었다. 검각산 깊은 곳까지 은은히 울려대는 폭포소리는 천상의 선음(仙音)으로 마음까지도 울려준다 하여 시 인묵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검각 십경(劍刻十境)중 제일경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항상 시끌벅적했던 이곳에 오늘은 적막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하얗게 부서지며 일백여장을 쏟아져 내 려오는 모습이 만마리의 말들이 일제히 밀려오는 것 같다고 하여 만마폭이라고 이름지은 폭포소리만이 아련히 들려올 뿐이었다.
검심주점이 멀리 보이는 곳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약 사십여명이나 되는 큰 무리였다. 선두에 있는 삼인(三人)은 주변 경관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는 데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는지 간간이 웃음소리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흰 머리에 백의 장삼을 입고 피부조차도 하얀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모습을 한 노인이 뒤통수가 심하게 튀어나온 민머리의 노승을 바라보며 감탄의 목 소리를 내었다.
"정말로 마승의 재주는 따를 수가 없겠소이다. 천지간의 이치를 통달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모레 정오 무렵 이 곳에 비가 온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대단하신 능력입니다."
민머리의 노승은 마승이라고 불리는 것 같았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염주가 들려 있었는데 구슬의 크기가 호 두알만 하였다.
"하하! 과찬의 말씀이오. 제가 어찌 천지간의 이치를 통달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익힌 무공이 남다르다 보 니까 비가 올것인지를 알아내는 능력만 과하게 발달된 때문이지요. 장담하건데 모레 오시 무렵부터 이틀 정도 큰 비가 내릴 것입니다."
마승은 특이한 자신의 능력에 대단한 자신감을 가진 것 같았다. 한 번도 틀려본 적이 없는 일기예측(日氣豫測 ) 이였기 때문이다. 손에 들린 염주를 따각따각 넘기던 마승이 뒤를 돌아보며 말을 하였다.
"소교주! 검후와 해동신룡의 행보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발생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 을 것입니다. 물론 잘 알아서 하고 있겠지만 한치의 실수라도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오!"
마승은 소교주에게 은성과 검후가 그들이 원하는 때에 정확히 이곳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은성과 검후의 행보로 보아 그들이 이곳을 지나갈 것이라는 사실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였지만 반드시 비가 오고 있을 때에 이곳을 지나가야만 되는 것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밀찰대원들이 그들의 행보를 수시로 보고해오고 있는데 예상대로 그들은 섬서를 통과하여 사천의 무림맹으로 향하고 있답니다. 모레 점심 무렵에는 분명히 이곳 검각산의 만마폭 근처를 지나갈 것입니 다."
소교주의 대답에는 확신이 짙게 담겨져 있었다. 이들은 바로 마교의 소교주와 번뇌마승 그리고 목검문에서 사 로잡힌 그의 제자 악독이마의 복수를 하기 위해 마교 본산에서 내려온 독중지마의 무리들이였다. 백의 장삼을 입은 선풍도골의 노인이 바로 잔인하고 흉악하 기로 유명한 독중지마였다. 독을 다루는 독인(毒人)들은 몸에 절독들을 소지하고 다니기 위하여 주머니가 많고 방수가 되는 실용적인 옷을 선호하고 있었다.
이처럼 하얗고 깔끔한 백의 장삼을 입고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따로 절독들을 소지하지 않아도 몸 자체가 절독 그 자체인 독중지마는 유난히 백의 장삼을 즐겨 입는 편이었다. 흰머리를 땋아 올려 머리위에 서 비취색이 감도는 옥관(玉冠)으로 가다듬은 독중지마는 인상 좋고 마음씨 좋은 노학자로 보이고 있었다.
"허허! 정말 경관이 기기묘묘하군요. 깊숙이 들어올수록 점입가경입니다 그려."
독중지마가 산세를 둘러보며 감탄의 소리를 하였다. 하늘을 찌를 듯이 뻗쳐있는 석봉들이 검기에 둘러싸인 듯 옅은 운무속에 날카로운 예기를 감추며 빙 둘러서 있었다.
"두분 장로님, 저 앞의 분지가 바로 목표한 장소입니다. 검각산을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지이면서 만마폭이 위치하고 있으니 반드시 이곳에서 쉬어 갈 것입니다. 저는 먼저 가서 앞을 정리하겠습니 다."
소교주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검심주점이 위치한 분지를 쏘아보자 독중지마가 나직이 웃음을 지었다.
'허허! 소교주, 우리 늙은이들이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그렇지.. 저런 하찮은 일까지 어찌 소교주에게 맡기겠 는가? 걱정하지 말고 그냥 경관이나 구경하며 천천히 가세!"
독중지마의 말에 소교주는 물론 번뇌마승까지도 의아한 눈빛을 지었다.
생긴 것과는 달리 잔인하기 이를데 없는 독중지마의 손속을 익히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일 처리도 잔인하 지만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기로 유명한 독중지마가 부하들을 끌고 가서 은성과 검후에게 죽음의 안배를 펼칠 장소를 미리 정리하겠다는데 만류하고 있는 것이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공도 할줄 모르는 일반인을 상대로 마교 십대장로중의 한명이 직접 손을 쓰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라 소교주는 갈등의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천하의 독중지마가 이미 내뱉은 말을 굳이 우겨가면서 번복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또 그렇게 꽉 막힌 소교주 도 아니었다. 무언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독중지마와 번뇌마승의 뒤를 따르던 소교주의 눈에 검심주점이 위치한 분지가 환히 드러났다.
사람들로 북적거릴 것으로 예상했던 분지는 쥐 죽은듯 조용했다. 그리고 주점과 객점 앞에는 취객인지 몇 사 람이 쓰러져 누워 있었다. 벌건 대낮에 객점을 놔두고 아무데나 쓰러져 잠을 잘 취객이 있을리는 만무하다는 생각이 든 소교주는 시선을 집중한 후 취객들이 요상한 자세로 누워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누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고통에 몸부림 쳤었는지 심하게 발광한 듯한 자세로 죽어 있었다. 저런 자세 로 죽었다면 사인은 한 가지밖에 있을 수 없었다. 바로 독에 중독되어 죽은 것이다.
흘끗 독중지마를 보니 이미 예상한 광경이라는 듯이 전혀 놀란 듯한 표정이 아니었다. 하남지부에서부터 동행 하였으며 동행시 제자 한명 데리고 오지 않은 독중지마였다. 언제 어떻게 하독하였다는 말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눈살을 찌푸리던 소교주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나지막이 감탄을 토해냈다. 반시진 전 무공을 익혔는지 빠른 걸음으로 자신들을 앞질러가던 무림인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검심주점을 들를 것이라는 생각에 그들의 무위만을 주의해서 살펴 보았었다.
주점에서 죽이고자 하는 척살대상에 그들도 포함될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작 삼류무사 수준이 라는 것을 확인한 이후로는 별다른 흥미도 느끼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검심주막에 들를 것이라는 생각은 독중지마 장로까지도 했던 것 같았다.
바로 그 증거가 눈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으니 말이다. 가까이 가보니 죽은 시신들이 죽어갈때에 얼마나 처절한 몸부림을 쳤는지를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얼마나 고통스럽게 땅바닦을 긁었는지 하나같이 열 손톱이 모두 빠져 있었으며 흰자위만이 남아있는 눈은 최대한 부릅떠져 있었다.
입가에 거품까지 물고 있는 그들은 죽은지 별로 되지 않았는지 핏자욱까지도 선명한 색깔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점안에는 더욱더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음식과 술을 먹다가 뒹글며 죽었는지 음식 찌꺼기에 온몸이 더럽혀져 있고 손톱으로 살갗을 긁었는지 붉은 상처 자욱이 피에 낭자한 채로 하나같이 피범벅이 되어 고통스 런 표정으로 죽어 있었다.
소교주가 눈짓을 하자 소교주의 직속 부하인 듯한 사람이 뒤쪽에 대고 나지막이 명령을 하였다. 그러자 뒤쪽 의 무리들이 순식간에 퍼져서 날렵하게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일다경도 되기전에 주점과 객점은 물론 건물 밖에서 숨진 오십여명의 시체들이 만마폭의 깊은 수심속으로 커다란 돌멩이를 메단채 떨어져 가라 앉아 버렸다. 어디서 구했는지 걸레까지도 가져와 주점과 객방에 흘린 핏자욱까지 깨끗이 청소한 후에야 소교주에 게 다른 분부가 있는지 물어왔다.
"앞으로 삼일동안 검각산을 지나는 행인들을 철저히 통제하도록 하여라! 섬서성에서 이곳으로 오는 무리들은 살려 되돌려 보내도 무방하지만 하남성 방향에서 오는 무리들은 적당한 곳으로 유인하여 반드시 주살시켜라. 단 검후와 해동신룡이 이곳으로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통제만 해도 무방하다."
잔인한 소교주의 살인 명령을 듣던 독중지마가 방금까지 핏자욱이 낭자 했었던 주점의 의자에 앉아 흡족한 표 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소교주의 일처리 방식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눈치빠른 부하 한명이 주점의 주방으로 들어가 차를 끊이고 있는 동안에 소교주의 직속 부하인 색혼살도(色婚 殺刀)가 하남성의 마교 지부에서 따로 추려온 혈랑대원 삼십오명에게 각각 역할 분담을 해주고 있었다.
다섯명씩 두 개조는 좀전에 지시한대로 검각산의 출입을 통제하고 나머지 이십오명은 손님과 종업원으로 분장 하도록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원 각각에게 상세 임무를 부여하고 있는 색혼살도의 귀에 소교주의 전음입밀이 펼쳐졌다.
섬서성 부근에서 넘어오는 무리들도 만일이 사태를 대비하기 위하여 모두 죽이라는 전음입밀이었다. 평소 소 교주의 심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색혼살도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흉소(兇笑)를 머금고 검각산의 섬 서성 방향을 책임진 대원들에게 다시금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독마, 귀신조차 당신의 독술에는 당해내지 못하겠구려. 마음만 먹으면 염라대왕도 중독시킬 수 있다는 말이 정말로 실감이 가는군. 도대체 어찌된 영문이요?"
쉬이 믿기지 않는 용독술에 감탄했다는 듯이 번뇌마승이 말하자 독중지마가 대단치도 않은 수법이라며 겸손해 하였다.
"초보적인 용독지술에 불과한데 무어라고 그리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한시지독(限時之毒)'이라고 일정시간 이 경과되면 발휘되고 다시 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독으로 심심풀이 삼아 최근에 연구한 졸작 입니다. 물론 독성과 독의 발생시점 그리고 소멸시간은 조절 가능합니다."
독중지마가 대단치도 않은 용독지술이라고 하였지만 어찌 대단치 않다는 말이겠는가?
게다가 한 두 사람만 중독시켜도 원하는 시간에 근처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일시에 중독시켜 사망시킬 수 있는 독이니 염라대왕도 중독시킬 수 있다는 말이 허황된 소리만은 아닌 것이다. 죽은 영혼에게 조차 중독시킬 수 있다하니 귀신이 염라대왕을 만날 시점만 잘 계산하면 될 일이었다.
주점에 앉아 삼인이 검후와 해동신룡을 중독시키고 죽이고자 음모를 짜내고 있었지만 실상 음모랄 것도 없는 일이었다. 세명 모두가 독은 물론이고 음모와 협공이 없다 하더라도 그들을 죽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에 있어서 는 마교제일존(魔敎第一尊)이라는 독중지마는 물론이고 아직까지 자신의 진정한 실력을 마교 교 주에게 조차 보여주지 않은 번뇌마승 그리고 검후와 해동신룡 정도는 혼자서라도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애써 자재하고 있는 소교주 모두가 이번 일에 대해서 실패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검후를 생포하고자 하는 소교주의 의지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철두철미하게 계책을 꾸며 실행하는 치밀한 성격 때문에 음모는 생각보다 깊어져 가고 있었다.
밤이되자 헤어져 각자의 방에 든 후에도 소교주의 음모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장로들에게 비겁하다 는 인상을 남길까봐 그 자리에서는 내세우지 않았지만 계책이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보완될 사항들 이 있었다.
자신의 직속 부하인 색혼살도에게 이중 삼중으로 계략을 중첩시키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평소 색을 밝히는 것 외에는 일 처리 하나는 기가 막히도록 완벽을 추구하는 색혼살도였다. 안휘성 지부에서 떠나 오기전 마교 총 단에 전서구를 날려 하남성으로 불렀을 정도로 소교주는 그를 신임하고 있었다.
색혼살도가 방을 나가자 소교주는 침상에 누워 검후의 눈부신 자태를 머리 속에 그려 보았다. 지금껏 자신이 목표로 한 여자치고 품속에 안아 보지 못한 여자는 단 한명도 없는 소교주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 만 어떤 여자든 그리 어렵지 않게 꼬일 수가 있었으며 정욕을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순간적인 욕정의 발산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평생 곁에 두고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여자는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는 그것마저도 하찮게 여겨지고 여자라는 동물 에 대한 염증마저도 생기었다. 그날 안휘성의 이름 모를 찻집에서 검후를 처음 보기 전 까지는 말이다.
침상에 누워 검후를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를 짓던 소교주가 검후와 함께 항상 붙어 다니던 은성을 떠올리고는 눈가에서 살광을 뿜어내었다.
'해동신룡, 며칠만 지나면 내 놈을 반드시 처참하게 죽여 주마! 반드시..., 반드시..."
뒷말을 강조하듯이 목소리를 높여 중얼거리던 소교주가 무슨 기척을 느꼈는지 귓가에 공력을 운기하더니 입술 을 달싹이었다. 전음입밀을 발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방문이 스르르 열리며 검은색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 야행인 한명이 소리없이 방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어떻게 하였는지 야행인이 실내로 들어온후 방문은 저절로 닫혀졌다. 두건을 벗고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를 한 야행인이 소교주에게 극진한 예를 올린 후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지시한신 대로 검후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조사하였습니다."
야행인은 소교주가 안휘성에서 검후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라고 보타문으로 파견했던 밀찰대원이었다.
"하나도 빼놓지 말고 상세히 말하여라."
소교주는 일급 기밀이라도 듣고 있다는 듯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밀찰대원을 주시하였다.
"검후의 이름은 고은하로 나이는 십육세입니다. 보타문이 있는 절강성의 작은 문파인 비천문(飛天門)의 문주 분광검(分光劍) 고검성의 일남일녀중 장녀로 세 살때 전대 검후에 의해 발탁되어 보타문에 입문하였습니다. 검후는 보타문에 입문한 후 단 한차례 밖에 비천문을 들르지 못하였는데 검후의 부모들도 일년에 한두차례 정 도밖에 보타문에 방문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년전 검후의 남동생인 고일검이 무림맹 청무원에 들어 간후 비천문을 무림맹과 인접한 사천성으로 아주 옮겨 왔다고 합니다.
고일검은 청무원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나 아직은 어려서 무공 수준이 대수로울 것이 없지만 비천문주인 고검성의 무공은 예측불가능한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비천문을 염탐하던 밀찰대원들이 모두 당했다고 합니다."
"흠, 그래..., 다른 정보는 없느냐?"
질문을 하는 소교주의 눈빛에서 차가운 한광이 피어 올랐다. 비천문주의 무공이 예측불가능하다는 정보가 마 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 중요한 사항은 모두 보고 드린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저...이건 정확한 정보는 아니고 절강성 비천문이 세워졌던 근처에 살던 사람의 말인데 비천문이 이사가기 직전에 검후가 비천문에 들렀다고 하였습니다. 하지 만 면사를 쓰고 있어 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음식을 구입하러 나온 하인의 말에 의하면 비천문의 대대로 내려 오는 가법(家法) 때문이라고 하였답니다. 아들은 상관이 없지만 딸은 열살이 넘어가면 면사를 씌우는데 마음 을 줄 남자 앞에서만 면사를 벗을 수 있답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평생 면사를 쓰고 살 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소교주가 갑자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자 보고하던 밀찰대원이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하지 않았는 지 깜짝 놀란듯한 표정으로 소교주를 바라본 후 고개를 푹 수그렸다. 소교주의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 하니 열 에 받쳐 있었다.
'으드득 네 이년! 네년이 그럼 그 애송이 놈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뜻이더냐. 그렇게는 안될 것이다. 우지지 직...'
앞에 밀찰대원이 있는지도 모르고 분에 받친 듯 흉악한 눈빛으로 중얼거린 소교주가 침상 모서리를 이루고 있 는 나무를 손아귀에 쥐고 힘을 주었는지 단단한 나무가 힘없이 바스라저 버렸다. 한참을 흉악한 인상으로 무 언가를 생각하던 소교주가 핏발이 서린 눈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밀찰대원에게 살기에 찬 명령을 내렸다.
"사천지부장에게 무림맹에 잠입해 있는 첩자들로 하여금 고일검이라는 놈을 무림맹 밖으로 유인해 낸 후 사로 잡는데 총력을 기울이라고 전해라. 그리고 너희 밀찰대원들도 사천으로 가서 고일검을 사로잡는데 일조하여라 . 반드시 산채로 사로잡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소교주님!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하늘에 서서히 구름이 끼이는 듯 별조차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
소교주의 방에서는 또 다른 음모가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