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5절 :
갑작스러운 마인의 공격에 은성은 이형환위를 펼쳤지만 마인을 떼어 놓을 수는 없었다. 연이어 두 번이나 이 형환위를 펼쳤는데도 전설 속의 아수라 마왕의 형체를 한 마인의 거대한 손길은 은성의 눈 앞에서 조금도 멀 어지지 않고 있었다.
마왕은 지옥의 마두답게 허공에 둥둥 뜬채로 바람을 가르며 은성을 쫒아 왔는데 범각 대사의 표현대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가공할 빠르기였다.
이형환위의 수법으로도 마왕을 떼어 놓을 수 없자 은성은 묵귀영을 전력을 다해서 펼쳐 내었다. 어느새 마왕 의 붉은 장영이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공간과 공간을 건너 뛰듯이 이동하던 마왕의 신법도 해저 오백여장의 심해에서 익힌 묵귀영의 신법에는 당해내지를 못하였다.
하지만 큰 차이는 아니었다.
진세안 일백여장의 좁은 공간에는 일장반이나 되는 거대한 아수라 마왕 형체의 붉은 잔영과 백의 장삼을 걸친 은성의 백색 섬광으로 물들여 가고 있었다. 마인의 잔영은 붉은 용이 허공에서 용트림을 하듯이 거침없이 하 늘을 누비고 있었으며 은성은 발광하는 듯한 붉은 물결 사이로 희미한 흔적만을 남기우며 대적하고 있었다.
어찌나 빨리 움직이는지 시력만을 가지고는 도저히 마인이 잔상을 따라 잡을 수 없었길레 은성은 시력에 심안 까지도 동원하여 마인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었다.
은성의 묵귀영의 신법은 공간을 축지성촌의 수법으로 좁혀 이동하는 마인에 비해서 조금 빠르지만 그것이 마 인에게 큰 불리함으로 작용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것은 마인의 괴이신랄한 무공 때문이었다.
빠른 신법으로 마인이 방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동하여 공격을 가한다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터인데 특이 하게도 마인에게는 방어할 수 없는 방향이 없었던 것이다. 마인의 신체는 뼈가 없는 연체 동물처럼 자유자재 로 변형되어졌다.
은성이 빠른 신법으로 마인의 등 뒤쪽으로 접근하면 마인의 손과 발이 뒤쪽으로 뒤집어져 공격해 왔는데 믿을 수 없게도 목뼈가 없는 듯 얼굴까지도 뒤쪽으로 돌아와 있었다. 신형을 돌리지 않고도 전후 좌우 어느 방향으 로도 공격과 수비가 자유자재한 것이다.
붉은 혈광에 둘러싸인 무수한 수영들이 묵귀영의 신법으로 인하여 실상인지 허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은성을 공격하면서 번번히 허공만을 가르자 은성에게 달려들던 아수라 마왕의 붉은 형상이 갑자기 괴상망측하게 변화 되었다. 일장반정도 크기의 아수라 마왕의 머리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하더니 머리만 일장 정도의 길이로 커져 버린 것이다.
독오른 살무사가 먹이를 덮치듯 입을 한껏 벌린 아수라 마왕의 거대한 송곳니가 끈적끈적한 진액을 흘리며 지 옥의 겁화처럼 은성을 삼키려 하자 은성의 손에서 백색 섬광이 번뜩이며 거대한 백호가 튀어나와 아수라 마왕 을 공격하였다.
아수라 마왕과 백호가 부딪히자 붉고 흰 섬광이 뒤엉키며 불꽃튀듯 퍼져 나왔다.
하지만 은성이 발한 백호는 오행진기중 진금기가 서린 강기를 유형화시켜 멀리까지 쏘아냈기 때문인지 마인의 온몸에서 유형화되어 생성된 아수라 마왕에 비해 다소 불리한 감이 있었다. 기연과 깨달음으로 은성의 내공이 천인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었지만 마인 또한 반로환동한 전설적인 고수인 것이다.
조금 밀리는 듯한 느낌이 들자 이를 악문 은성이 다른 한손을 빼서 등뒤로 감추었다. 그리고 등뒤로 숨긴 손 에 진목기를 운행하자 손바닥에 여의주처럼 둥근 청색 강기가 형성되어지기 시작하였다. 태극진기를 최대한 운용하여 한 손만으로 힘겹게 혈광에 싸인 아수라 마왕을 견재하던 은성이 갑자기 등뒤에 숨긴 왼손을 앞으로 펼쳐 냈다.
그러자 위태롭던 백호를 막 밀어낼 것 같았던 마인에게로 청색의 강구(剛球)가 빗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은성의 손을 떠날때는 지름이 두치 정도밖에 안되던 강구는 어느덧 한자에서 두자로 커지더니 아수라 마왕과 부딪힐 때에는 덩치가 일장반이 넘을 듯한 아수라 마왕을 완전히 감싸 안으며 굉음을 내고 폭발해 버렸다.
청룡권법의 마지막 초식으로 비장의 절기인 사룡투주(死龍投珠)의 초식이 완벽히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아수라 마왕으로 화한 혈광이 사라지고 입가에 피를 흘리며 뒤쪽으로 날아가는 마인을 바라보는 은성 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안색마저 창백하게 변했다. 멍하니 선채로 아수라 마왕을 바라보던 은 성이 갑자기 목울대를 울컥이며 무엇인가를 삼키었다. 잠시 후 은성 의 몸에서 은은히 금광이 흘러 나오는가 싶더니 그제서야 은성의 안색이 서서히 평온을 되찾아 갔다.
은성이 사룡투주의 절기를 펼친 후 청색 강구에 아수라 마왕이 격중되기까지는 눈한번 깜박일 시간도 걸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아수라 마왕의 크게 벌린 입속에서 형체도 없는 그 무엇인가가 울려나 와 은성의 귓속으로 파고 들었다. 시각도 청각도 그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그 무엇인가는 심안에 의해서 위험 성이 경고 되었지만 너무도 찰라적인 순간에 은성에게로 다가왔다.
부동명왕 심공에 의해 마인의 섭혼술을 견재하면서도 범각대사의 당부에 따라 마인의 마음(魔音)을 대비하여 청각을 보호하기 위해 태극진기를 분할 운용하고 있었던 은성이였다. 게다가 심안에 의해 위험성이 경고되자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태극진기를 가중시켰는데 마인이 펼친 음공은 너무나 급작스럽고 강력하였다.
본격적으로 마인과 대결하기전 마인이 펼쳤던 마소(魔笑)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태극진기가 가중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머릿속이 멍하니 울려 정신이 분산되었으며 머리에 위치된 오공(五孔)중 어느 곳이 파열되어졌는지 입속으로 핏물까지도 넘어오자 약세를 보일 수 없어 내뱉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삼 켜 버렸다. 은성이 태극진기로 청각을 보호하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무음(絶對無音)의 마음에 당해 서 있지도 못 하였을 것이다.
공격의 기미라고는 입을 벌리는 것 외에 어떠한 예비동작도 필요 없는 절대무쌍의 공격술이라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태극진기로 청각을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이 최소화 되었으며 즉각적으로 충격을 받은 머리 부위로 태극진기를 가중시켜 잠시동안에 은성은 정상을 회복할 수가 있었다.
은은한 금광을 발하던 안광이 제 빛으로 돌아서는 은성의 눈에 멀리서 쓰러진 몸을 가누고 일어서는 마인의 모습이 투영되어 들어왔다. 몸을 일으킨 마인이 갑자기 몸을 돌리고 손과 발을 움직이자 뼈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우드득..툭..투둑...'
온몸의 근육과 관절은 물론 얼굴 근육까지 괴상망측한 표정으로 변화시키며 몸을 풀던 마인이 은성을 바라 보 며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입가에 흘린 핏자국을 쓰윽 닦아 내며 한발 한발 다가오는 마인이 서 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무림인들이 보았다면 눈을 까 뒤집을 전설상의 무공경지인 허공답보(虛空踏步)를 펼쳐 다가오는 마인의 몸에 서 처음보다도 더 진한 혈광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눈에서는 멀리 있는 은성이 섬찟해할 정도로 극강한 살기 가 뿜어져 나왔다.
처음에 은성을 무시하며 은성의 생사는 자신의 수중에서 결정된다는 듯한 광포한 생각이 뒤바뀐 것 같았다.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듯이 오로지 살광만을 줄기줄기 뿜으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 허공에서 압박해 오 는 마인을 바라보던 은성도 마음을 굳힌 듯 온몸에 태극진기를 운용하며 서서히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슈아아악--'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마인의 혈수가 하얗게 변색된 후 은성을 덮쳐오자 은성도 묵귀영 신법을 펼치며 권마황 과의 대결에서 깨달은 초식으로 반격을 가하였다. 동방파의 김장로가 더 이상 완벽할수 없을 것이라며 감탄한 해동권법에 광한전의 사조들이 죽음으로써 완성한 사신권법이 펼쳐지고 펼치는 순간 팔방을 제압할 수 있다는 사상 금나술에 미륵지까지 펼쳐졌지만 은성과 마인은 한치의 우열도 가릴 수 없었다.
허공중에 백룡과 적룡이 어우러지며 진세안을 휩쓸고 있었으며 그 여파에 땅위에 있는 흙이 뒤집어지고 바위 조차 쩍쩍 금이 가고 있었지만 쉽게 승부가 결정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신법과 내공은 은성이 조금 우위에 있었다. 반로환동한 마인의 공력이 부족함은 없었지만 마인이 내뿜는 혈광 은 태극진기에 상극이었던 것이다. 오행진기로 나뉘어져 펼쳐지는 내공에는 막상막하이던 마인의 혈광이 오행 지기가 통합되어 태극진기로 펼쳐지는 금광에는 왠지 맥을 못추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태극진기의 금광속에는 사악함을 제어하는 신비한 효능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인과 박투를 벌리며 태극 진기가 마인의 혈광을 제어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은성은 사신권법 조차도 태극진기를 운용하여 펼 쳐내고 있었다.
그러나 마인이 펼치고 있는 유가신공은 은성이 가진 그 모든 장점을 무위로 돌려놓을 정도로 신비막측하였다.
팔과 발이 자유자재로 늘어나 공격함은 물론 몸통조차도 인간의 신체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각도로 휘어지고 꺾여져 은성의 공격을 피하면서 공격하고 있었다. 강기의 운용도 해동과 중원의 무공에 비해 괴이한 수법이 많았다.
은성의 양손에서 금광이 어린 주작 두 마리가 금빛 날개를 펼치며 금색 깃털을 쏘아 내자 축지성촌의 수법을 펼쳐 허공중에 붉은 잔영만을 남기우고 사라진 마인이 은성의 뒤쪽으로 이동하며 몸 바깥에 겹겹이 펼쳐진 호 신강막을 수많은 암기의 편린으로 변화시켜 은성에게로 날리었다.
그러자 마인의 호신강막은 날카로운 도편으로 변하여 은성에게 혈우를 퍼부어 댔다. 달라이라마에게서 배운 포달랍궁의 절세신공인 보리 패엽장의 패엽만장 초식을 펼쳐내어 간신히 방어한 은성은 권과 장만으로는 쉽게 승부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호신강막을 날리운 후 다시금 서서히 온몸에 호신강막이 피어오르는 마인에게로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다가선 은성이 공력을 배가시키며 묵귀영의 신법으로 마인과의 거리를 좁히었다.
마인이 다급한 눈빛으로 잽싸게 축지성촌의 신법을 발휘하였지만 은성에게서 멀어지는 마인과의 사이에 붉은 섬광이 피어올라 훑고 지나갔다.
은성의 손에는 붉은 혈광이 어리는 화룡검이 쥐어져 있었다. 화룡검은 검 손잡이에 화룡의 내단이 감싸여져 있는 천고의 기물이었다. 태극진기가 주입되었건만 화룡의 내단이 진기에 영향을 끼치는지 금광이 아닌 혈광 이 피어 올랐다. 좌측 어깨가 깊이 베어졌는지 한손으로 좌측 어깨를 누르며 몸을 날리는 마인을 쫒아가는 은 성의 눈가에 한줄기 아쉬움이 깃들여졌다.
절호의 기회를 잡아 유성검법을 펼쳐 내었는데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중상을 입히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었다. 마인과 같은 절세 고수에게 있어서 저 정도 상처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마인의 좌측어깨는 하룡검의 강기에 두치 정도나 깊숙이 갈라졌으나 피 한방울 흘러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 리고 벌어진 상처도 어느새 오무라들어 있었다. 하지만 검상이 마인에게 전혀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 세하지만 좌측 손으로 펼치는 무공의 위력은 줄어들 것이 분명하고 또 그만큼 허점도 많아질 터였다. 호각지세를 이루던 승패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가 다가온 것이다. 그런 판단 때문인지 마인을 쫒 아가는 은성의 발걸음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마인과의 거리가 좁혀들자 갑자기 마인의 고개가 뒤쪽으 로 돌려져 버렸다. 그런데 마인의 눈빛을 보니 두려움이 아닌 비웃음의 눈빛이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으로 확하고 올라오는 생각에 은성은 숨조차도 막혀 오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유성검법을 펼치면 마인에게 타격을 가할 수도 있는 충분한 거리조정이 되었건만 유성검법을 펼칠 시간적인 여유가 전혀 없었다. 비웃음과 함께 싸늘한 살기가 어린 마인의 마안(魔眼) 아래쪽에 둥글게 오무려 앞쪽으로 내밀어진 입이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에 마인의 마음(魔音)에 당한 후 머리 쪽에 조금더 비중을 두어 호신강막을 펼치고 있었지만 결코 안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왠만한 호신강기는 종이장처럼 찢어 발길 것 같은 강력한 위력 때문이었다. 아무리 두텁게 호신강막을 펼쳐 내어도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할 것이 분명한데 그때 무방비 상태에서 마인의 공격을 허용할 수는 없었다. 뇌전보다도 더 빨리 머릿속으로 상황 판단을 마친 은성이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검을 던진 후 묵 귀영의 신법을 펼치며 뒤쪽으로 날아갔다. 그렇지만 너무나 갑작스런 대응이라서 위력과 속도가 저하될 수 밖 에 없었다.
이번에는 처음과는 달리 무의식적으로 어느정도 대비가 되어 있었으며 호신강막을 더 두텁게 펼쳐낸 덕분인지 정신이 분산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머릿속이 띵하고 멍하니 골이 울려 왔다. 골이 울려오는 와중에도 어 느새 화룡검의 공세를 회피한 후 눈앞으로 닥쳐 드는 마인의 하얀 장심을 향해 본능 적으로 보리패엽장의 두 번째 초식이자 최후초식인 패엽건곤을 펼쳐 내었다.
'콰과광'
'드드드드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천문금쇄진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금쇄진 내부의 공기조차도 용암이 들끓듯 심 하게 요동치며 천문금쇄진을 터트리기라도 할 듯한 기세로 사납게 소용돌이쳤다. 다급한 와중에도 태극진기를 최대한 운용하여 절기를 펼쳐 내었지만 너무도 불리한 조건이었다.
마인의 마음에 대비하기 위하여 진기도 분리되었으며 정신조차도 다소 혼미한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펼쳐 낸 패엽건곤 초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이라면 태극진기가 마인의 혈광을 제어할 수 있는 효능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장의 교환이 있은 후 은성과 마인은 호신강막조차도 사라져 버린 채 각기 뒤쪽으로 날아가 땅에 내 팽겨쳐 지며 처참하게 굴러갔다. 운이 좋았는지 다행히 바위에 머리를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중상을 입었는지 둘다 쉽 게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숨 몇 번 정도 들이쉴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은성이 고개를 들어 마인쪽을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마인도 온몸 에서 서서히 혈광을 뿌리며 은성을 바라 보았다. 지금은 생사가 달린 긴박한 순간이었다. 몸이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방보다 더 빨리 내력을 회복하여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여야 만이 내가 살수 있는 것이다.
입술을 깨물어 피를 빨아먹던 마인의 눈동자에 새빨간 핏줄이 돋아나기 시작하였다. 몸에서 서서히 금광을 발 해내는 나이 어린 애송이 놈을 처치하기 위해 최후의 진력은 물론 잠재력까지도 다급히 끌어내고 있었기 때문 이다. 일순 갑작스럽게 붉은 혈광을 온몸에 두른 마인이 은성을 향해 몸을 날리었다. 그러자 마인을 바라보던 은성도 '스팟'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콰과과광...'
혼신을 다한 두 절세 고수의 내가 공력이 공중에서 부딪혀 폭발하며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급기야 천문 금쇄 진의 한쪽 구석이 무너져 버렸다. 천문 금쇄진 안쪽의 공기가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며 바깥쪽으로 빠져 나갔 다. 빠져나간 만큼의 신선한 공기가 진세 안쪽으로 밀려들어 왔지만 지기는 물론 천기까지 가둬 놓는 천문금 쇄진조차도 이들의 절세적인 공력에는 견딜 수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천문금쇄진은 자체적인 복구 기능이 있는지 서서히 원래의 제 기능을 찾아가고 있었다.
두 번째 충돌은 은성과 마인 모두에게 엄청난 중상을 안겨 주게 되었다. 오장이 뒤틀리고 내상으로 인해 진기 조차 재대로 운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억지로 고개를 들어 흐릿한 시선을 부릅뜬 은성의 시선에 일 장여나 떨어진 곳에 있는 화룡검이 눈에 띄여 졌다. 한참을 화룡검을 응시 하다가 멀리 떨어진 마인을 보니 죽었는지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땅바닥에 온몸을 붙인 후 큰 대자로 누운 은성은 조용히 몸의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내상을 당 했는지 태극진기가 쉽사리 통제되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 간직한 내공의 삼푼 정도만을 간신히 움직일 수 있 을 정도였다. 그 삼푼 정도의 내력을 움직일 수 있는 것도 기적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은성이 익힌 태극진기의 심오한 경지 때문이었다. 피부 호홉이 일상화 되었기에 죽음에 가까운 내상을 당했지만 호홉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으며 오행진기가 통합되어 태극진기로 변화된 후에는 이전에 경락 을 따라 운기되던 내기가 하단전과 중단전을 중심으로 전신에 빛처럼 퍼져 나가는 특이한 운기법이 가능해져 서 경락이 막혀도 운기조식이 가능한 은성이였다. 게다가 중단전에는 작으만 하지만 내단마저도 형성되어 있 었다.
이러한 우세한 조건 때문에 마인과의 첫 번째 부딪힘이 있은 후 마인처럼 수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는 최후의 진력과 잠재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은성이 첫 번째 부딪힘 이 있은 후 내상의 정도가 약하고 진기의 회복속도가 빨랐지만 최후의 진력과 잠재력까지 동원한 마인보다는 내공이 적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은성은 첫 번째 충돌에 비해서 비교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큰 중상을 당한 것이다. 물론 최후 의 진력을 사용하여 간신히 숨통만을 열어 놓은 마인에 비해서는 훨씬 양호하였지만 말이다.
은성의 태극진기는 천고의 기진인 천문금쇄진조차 부서질 정도의 경악스런 충격에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자리 를 이탈하며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입자 오행진기로 변화되어 각자의 장부로 스며 들어간 것이다. 오행진기가 각자의 장기로 스며 들어갔으니 내상이야 쉽게 회복이 되겠지만 문제는 걸음조차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신체였다.
내공을 운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삼장 높이의 허공에서 땅바닥으로 내 팽겨친 후 급류에 휩쓸린 자갈처럼 이 리저리 부딪히며 바닥을 구르다 보니 오른쪽 손과 양다리의 뼈가 부러졌는지 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남은 삼푼의 내공을 화로에서 불길이 퍼져 나오듯 온몸에 서서히 퍼트려 기력을 회복해가던 은성은 중단전에 있는 내단에서 서서히 내기가 피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이나마 몸을 움직 일 수 있게 된 은성은 뼈가 부러지지 않은 좌측 손의 팔꿈치로 몸을 서서히 이동하여 화룡검이 있는 방향으로 기어 갔다. 몸을 재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심한 중상을 입었지만 심안은 별 문제 없이 발휘되고 있었는데 죽은 듯이 누워있던 마인에게서 이상한 낌새가 느끼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신히 화룡검을 부여잡은 은성이 눈을 들어 마인을 바라보다가 안색이 창백하게 변화되었다. 믿을 수 없게도 마인의 몸에서 다시금 혈광이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혈광은 시간이 갈수록 짙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인의 뒤쪽으로는 흐릿하지만 아수라 마왕이 서서히 형체를 잡아가고 있었다. 내력이 회복되기를 기 다릴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다.
'큭...'
오른손이 부러졌기 때문에 부러진 뼈를 맞출 수도 없는 은성은 쓰러진 몸을 세워 어렵사리 앉을 수가 있었다.
남아있는 진기를 모아서 왼팔에 집중시킨 은성은 화룡검을 땅속에 박고 조사지공인 지일이의 수법을 펼쳐내기 시작하였다. 평소 내공의 일할 정도밖에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일이의 무공을 펼치면서도 진기가 분산되 지 않도록 온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자 왼손을 통해 화룡검으로 스며든 태극진기가 은밀하게 땅속을 뚫고 마인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내공이 온전할 시에는 지일이의 수법을 펼치면 은성이 원하는 방향으로 동시 다발적으로 검기나 검강이 튀어 나왔지만 지금은 내공이 달려서 한줄기 검기만을 쏘아 보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예상보다 강력하였다. 온몸에서 혈광을 뿌리며 일어 서려던 마인이 '큭' 하는 신음을 내며 다시 땅바닥으로 털썩 쓰러져 버린 것이다. 땅에 쓰러진 후 어렵사리 고개를 들어 적개심에 가득찬 눈빚으로 은성을 노려보는 마인의 몸에 어리던 혈광이 눈에 띄게 약화되어 있었다. 땅에 쓰러진 마인이 다시금 힘들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은성은 지일이를 펼쳐 마인을 재차 공격할 수가 없었다.
진기가 부족한 상태에서 상승 절학인 지일이를 펼치느라 내력이 고갈되다시피 하였기 때문이다. 힘겹게 땅속 에 박힌 화룡검을 뽑아낸 은성이 왼팔을 뒤로 제낀 상태에서 최후의 기력을 모아 화룡검을 마인에게로 던지었 다. 기력이 없어 이기어검을 발휘할 수는 없었지만 어떠한 마공을 익혔는지 끊임없이 혈광을 피어 올리는 마 인을 견재하기 위한 애틋한 몸부림 이었다.
그러나 은성의 기대와는 달리 화룡검은 마인에게서 일장쯤 못 미쳐서 힘없이 지면으로 떨어져 버렸다. 화룡검 을 던진 후 힘없는 눈동자로 화룡검의 궤적을 쫒던 은성은 화룡검이 힘을 다하고 땅바닥에 떨어져 반 이상 박 혀 들어가자 절망한 듯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수그렸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누웠지만 천문 금쇄진에 금제된 하늘 빛은 우울하기 그지없는 잿빛이었다.
몸에는 일푼의 진기조차 남아있지 않았건만 신기하게도 심안은 멀쩡하게 발휘되고 있었다. 마인이 뿜어 대는 살기가 점점 고조돼 오고 있었으며 바둥거리던 신형도 반이상 일으켜지고 있었다. 문득 자신보다도 더 큰 충 격을 받았으리라고 생각되는 마인이 어떻게 끊임없이 진기를 생성시키고 있는지 궁금하여졌다.
자기도 몸에서 진기가 고갈되자 중단전에 있던 내단에서 좀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기가 피어 나오고 있었 지만 마인의 진기 생성 속도에 비해서는 비교조차 되지 못할 정도였다. 여기서 죽는구나 생각을 하며 생에 대 한 미련을 포기하려는 은성의 머리 속에 커다랗게 투영되며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눈부신 미소를 짓고 있는 검후였다. 갑자기 미치도록 검후가 보고 싶어졌다. 만약에 죽는다고 하여도 검후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본 후 죽고 싶었다.
그러자 절대로 이대로는 죽을 수 없다는 강한 삶의 의욕이 피어 올랐다. 이를 악물고 입술을 깨문 은성이 온 몸이 찢겨지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힘겹게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왼쪽 팔꿈치를 땅에 댄후 몸을 일으켰다. 검후를 보고 싶다는 강한 갈망이 일자 육체에 대한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초인적인 의지로 몸을 반쯤 일으킨 은성이 어정쩡한 자세로 앉은 후 마인을 바라 보았다. 마인은 몸을 거의 일으키기 일보직전에 있었다. 혈광에 가득 싸인 아수라 마왕의 몸체가 사이하게 빛나고 있었다.
은성의 눈에 마인은 더 이상 자상하게 웃으며 술을 따라 주던 청년으로 비쳐지지 않고 있었다. 오직 피에 굶 주리고 자신과 검후를 갈라 놓기 위해 지옥에서 빠져 나온 아수라 혈마왕의 모습만이 눈에 띄였다.
순간 아수라 혈마왕을 향한 원독의 불길이 은성의 두 눈에서 강하게 피어 올랐다. 원독의 눈빛은 강한 살기를 동반하고 있었다. 몸을 거의 일으켜 세우는 아수라 혈망왕의 한 장쯤 앞에 땅에 박혀있는 화룡검이 눈에 보이 자 화룡검에게 아수라 혈마왕을 죽여주기를 기원 할 정도로 은성의 의념은 간절하였다.
그런데 은성의 염원을 알아 차린 것일까?
땅속에 박혀 있던 화룡검이 미세하게 진동하는가 싶더니 은성의 염원을 따라 갑자기 공중으로 튀어 오르며 순 식간에 빛의 속도로 이동하여 아수라 혈마왕을 양단해 버렸다.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기가 주입되지 않은 화룡검에서는 한 점의 혈광조차 세어 나오지 않았으며 혈광 이 짙게 어린 아수라 혈마왕은 두터운 호신강막으로 겹겹이 가로 막혀져 있었다. 화룡검이 의지가 있는 생물 처럼 아수라 혈마왕을 덮쳐 간 것도 의아했지만 한점의 진기도 없는 화룡검으로 두터운 호신강막에 쌓인 아수 라 혈마왕을 벨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화룡검에 양단된 아수라 혈마왕이 사라지자 목이 없는 마인의 시체만이 희미해져 가는 혈광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목에서 붉은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던 마인의 육체가 힘없이 피에 절은 대지위로 넘어져 버렸다. 최후 의 진력과 잠재력까지도 소진한 후 죽음의 대법을 펼쳐 아수라마왕에게 혼을 팔고 악마로 소생돼 가던 마인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이었다.
은성과 마인의 번천지복할 대결로 인해 땅이 뒤집어지고 파헤쳐진 천문금쇄진 내에서는 짙은 혈향만이 풍겨져 나왔다. 마인의 죽음을 확인한 은성은 탈진한 듯한 모습으로 쓰러져 깊은 잠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