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61화 (61/152)

■ 제 61절 :

음산인마가 짧지만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돌연 등뒤에서 교주에 대한 충성심에 둘째가라면 서운해할 번 뇌마승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지부장! 왠 한숨인가? 혹시 요즈음 지부장의 속을 썩이는 놈이라도 생겼나?"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음산인마는 당황해 했지만 백전노장답게 순간적으로 표정관리를 하였다.

'내속을 가장 썩이는 놈이 바로 너다'

라는 표정이 밖으로 드러나선 안되기 때문이다.

"아...아닙니다. 어제 잠이 부족했었나 봅니다."

화급히 변명을 하는 음산인마를 수상쩍은 눈초리로 바라보던 번뇌마승은 음산인마의 안색이 피곤에 젖은 듯하 여 보이자 고개를 갸우뚱 하며 화재를 돌리었다.

"요즈음 소교주의 식사량은 어떠하시더냐?"

"예, 하루 삼시 세끼를 잘 드시고 계십니다. 식사량이 정상적인 체력 조건에서 드시던 분량보다도 오히려 더 느신 것으로 보아 내상이 완치되시지 않았나 판단됩니다."

음산인마는 번뇌마승이 묻지 않은 내용까지도 미루어 설명하여 주었다. 번뇌마승이 궁금해 하는 사항을 짐작 했기 때문이다. 절세 고수들이 구름처럼 운집해 있는 마교에서 지부장 위치까지 오르려면 무공 한가지만 가지 고는 어림도 없었다. 무공에 통솔력 그리고 지혜와 권모술수는 물론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재치까지도 있어야만 했다.

"흠 그래... 앞장서라!"

소교주가 내상을 치료중이라는 밀실을 가기 위해 음산인마를 앞세워 뒤를 따르던 번뇌마승은 음산인마가 계속 해서 지하로만 내려가는 것을 알수 있었다. 한참을 내려 왔으나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어디까지 내려 가는 것이냐?"

번뇌마승이 조금은 짜증이 난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동부 가장 하부에 위치된 밀실에 소교주님이 계십니다. 목검문의 전투에서 내상을 당하시고 저희 지부에 찾 아오신 소교주님이 안휘지부의 상세 구조도를 요구하신 후 직접 내리신 결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무림맹의 떨거지들이라도 쳐들어와서 동부라도 폐쇄되면 대책이 없지 않느냐? 설마 소교주가 본교 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모르는 것은 아니더냐?"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니냐며 추궁하는 번뇌마승의 음성이 노기에 가득차 있자 음산인마가 황급히 변명하였다.

"아..아닙니다. 추후에 장로님에게도 지부의 상세 구조도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소교주님이 계신 지하 밀실에 는 비상구와 비밀 탈출구가 각각 한 개씩 있습니다. 비상구는 동부 상부로 연결되어 있고 비밀 탈출구는 동부 밖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교주님께서도 상세히 알고 있습니다."

"비밀 탈출구가 있다는 사실은 몇 명이나 알고 있느냐?"

"저와 밀찰대주 그리고 소교주님 외에는... 아니 , 장로님까지 네명 밖에 모르는 특급 비밀입니다."

깊은 땅속이라 차갑고 냉한 기운에 땀이 돋아날 리가 없으련만 음산인마는 한손을 들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

"저곳에 계십니다."

음산인마가 지하 동부의 끝에 다달았는지 꽉 막힌 돌벽에 석문이 있고 석문 한편에 돌을 쪼아 손잡이를 만든 석실을 가리키며 말을 하였다.

워낚에 깊은 지하 밀실이다 보니 소교주가 내상을 치료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비무사 한명도 없었다.

석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는데 번뇌마승을 일별한 음산인마가 안쪽에 통보도 없이 석문 손잡이를 잡아갔다. 어 짜피 소교주의 허락없이 번뇌마승의 명에 의한 방문인지라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만약 운기행공이라도 하고 있다면 기별을 알리기 위한 큰 목소리는 불시에 문을 여는 행위보다 더욱더 위험한 행위인 것이다.

동굴 깊숙한 곳인지라 목소리가 공명되어 자칫하면 주화입마의 위험 까지도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번뇌마승 의 명에 의해 석문을 열고 있었지만 안에 있는 소교주에게 예의를 지키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석문을 여는 음 산인마의 동작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그그긍'

석문이 반정도 열렸을 때 석실 내부를 바라보던 번뇌마승이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석실 중앙 일장 높이의 허공에 붉은 빛으로 둘러싸인 구체(球體)가 두리둥실 떠 있었는데 그 구체의 내부에 가부좌를 튼 청년이 앉아 있었다.

마교 십대 장로중의 한명인 번뇌마승은 특이한 내공 수련법을 연성하고 있었지만 일반적인 내공을 수련하는 사람들의 무공 경지에 대한 지식도 해박하였다. 과거 그와 친한 마교 십대장로중의 한명인 도마황은 내공이 어느정도 경지에 이르면 운기행공을 하는 사람의 신체가 천지간의 조화에 순응될때가 있다고 하였다.

자신도 일이년에 한번 정도씩은 운기 행공시 몸이 공중에 부양되어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는데 이 때의 운기행공의 효과는 다른 때에 비해 몇십배나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중부양(空中浮揚)되는 높이 는 한자에서 두자 정도의 높이라고 하였으며 시간도 일각정도 라고 하였다.

소교주의 몸 주변을 감싼 혈구(血球)에서는 붉은 기가 미친 듯이 넘실대고 있었다.

소교주가 중요한 순간을 맞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번뇌마승이 음산인마에게 아무소리도 하지 말고 움직이지도 말 것을 전음으로 지시한후 소교주가 운기 행공을 멈추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온지 일각이 지났는데도 소교주는 일장 허공에서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붉은 심장이 박동되는 것처럼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검붉은 기를 혈구 주위로 휘돌리는 소교주의 몸이 조금씩 위로 더 높이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각..삼각을 지나 반시진이 지나서야 혈구가 서서히 옅어지면서 소교주의 몸이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밀실 바닥에 완전히 내려앉은 소교주의 몸주변을 혈룡처럼 내달리던 붉은 기운들이 소교주의 콧속으로 모두 빨려 들어가자 한두번 호홉을 고른 소교주가 번뇌마승쪽을 바라본 채 눈을 번쩍 떴다.

그런데 소교주의 눈빛을 받은 음산인마가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버렸다. 소교주가 순간적으로 내쏜 눈빛에서 살인적인 적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교주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짓고 번뇌마승을 향해 포권지례를 하였다.

"번뇌마승님, 제가 이곳에서 게으름을 피우느라 장로님이 오시는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언제 오셨습니까?"

"온지 한달정도 되었다네. 내상을 입었다는 소교주가 계속 요양중이라길레 예가 아닌줄은 알지만 걱정이 되어 들러 보았네. 이렇게 절세 신공을 연성하고 있는줄 알았으면 방해하지는 않았을 텐데..."

"절세 신공은요... 번뇌마승님의 신공에 비하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저를 걱정해 주셔서 이 깊숙한 곳까지 어 려운 걸음을 해주신 장로님께 감사 드립니다."

"아마도 소교주의 성취로 보건데 나이만 먹은 우리 십대장로들은 물론 소교주의 가친보다도 더 높은 경지를 이룬거 같은데 무슨 소리인가? 지나친 겸손이라네."

"하!하! 천지 조화인 '천뢰신공(天雷神功)'을 대성하신 장로님 답지 않으십니다. 자연의 법칙마저 깨뜨리시고 천뢰를 자유자재로 다스리시는 장로님께서 일전에 굳이 양보만 하지 않으셨다면 교의 양대 호위중 광명좌사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교도들이 한명도 없습니다."

"허!허! 무슨 소리인가? 광명 좌사님이 들으시면 서운해 하겠네. 무공이 교주님에 버금가고 술법에도 능통하 신 양대 호위님을 보잘 것 없는 나와 비교하다니... 어쨌든 소교주가 절세의 신공을 완성한 것 같으니 감축드 리네."

무공이 갑자기 증진된 것 같은 소교주의 신위에 대해 감탄을 하던 번뇌마승이 밀실을 한바퀴 둘러 보고는 눈 에 이채를 발하였다. 석실 벽면이 날카롭게 절단되고 패여 있었으며 벽면 밑에는 크고 작은 돌조각들이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검기에 의한 자국이 아니었다. 어떤 돌조각은 두자 정도나 되었는데 유리면처럼 매끄럽기 이 를데 없었다. 다른쪽 벽면은 벽의 형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파손되어져 있었다. 움푹 패이고 부서진 것이 낙뢰에라도 연이어 격중된 것 같았는데 벽면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돌조각들은 모래 보다도 더 잘게 부서져 있기도 하였다.

한쪽 벽면은 검강지기가 발휘되어졌다는 것을 알수 있었지만 다른쪽 벽면은 그 원인을 알수가 없었다. 상태를 보니 권력에 의해 파손되어진 것 같았는데 권마황조차도 불가능해할 정도로 패도적인 권법에 난타 당한 것 같 았다.

"소교주가 권법에도 이처럼 높은 성취를 이루었을 줄은 몰랐네. 권강지기를 펼치지 않고서야 이러한 위력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번뇌마승이 일장 정도나 푹 들어간 벽면을 유심히 바라 보았다. 소교주는 내심 찔리는 것이 있었는지 움찔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느긋하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목검문에서의 결전에서 내상을 당한 후 이름모를 동굴에서 깨어나 보니 옆에 권마황님의 파황신권(破皇神拳) 비급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파황신권을 익혀 목검문에서의 설욕을 갚으라는 권마황님의 뜻인 것 같아 내상이 완치되자 마자 두문불출하고 무공만을 익혔습니다. 다행히 권마황님께서 예전에 몇수 전수해 주신 파황신권상 의 절기를 익힌 덕택에 나머지 무공들을 조금씩이나마 수월하게 익힐 수가 있었습니다."

번뇌마승의 시선을 따라 권마황의 일신 무공인 파황신권을 익히게 된 내력을 설명하던 소교주는 번뇌마승이 다른쪽 벽면으로 시선을 돌리자 눈살을 찌푸린 후 말을 이었다.

"내상을 치료하는 도중에 운이 좋았는지 깨달음을 얻어 지옥검선님이 남기신 불마검보상의 무공에 큰 진전을 보아 검강을 발휘할 수 있었는데 이때문인지 파황신권을 익히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허허! 전화위복(轉禍爲福)이네 그려. 소교주에게 그와 같은 기연들이 겹쳐졌으니 본교의 크나 큰 홍복이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권마황이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네. 아마도 그때 입은 내상이 아직까지도 완쾌되 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

번뇌마승은 권마황이 목검문측의 고수들에게 당했으리라는 가정은 아예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권마황이 비 록 내상을 당했다고는 하지만 그만한 무위로 변을 당했을리는 절대로 없다는 깊은 신뢰에 기인한 판단이었다.

번뇌마승의 말을 듣던 소교주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권마황님이 내상을 입었었지만 목검문측의 떨거지들에게 변을 당했을리는 없습니다. 아마도 권마황님도 내상 을 치료하다가 저처럼 심득을 얻어 어느 심산유곡 동굴속에서 절세신공을 완성하고 계실 것입니다. 권마황님 의 크신 심려 덕분에 제가 파황신권을 익힐 수 있었는데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아! 지 부장! 권마황이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권마대원들은 이곳에 머물러 있겠지?"

소교주가 한쪽에 서서 그와 번뇌마승과의 대화를 공손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음산인마를 바라보며 갑자기 물 었다.

"예!... 저..."

갑자기 소교주에게 질문을 받아서인지 음산인마가 말을 더듬거리자 소교주가 말을 이었다.

"하!하! 잘 되었습니다. 권마황님이 돌아오시기전에 권마대원들에게 파황신권상의 절기들을 전수해주고 수련 시켜야 겠습니다. 권마황님이 돌아오시면 매우 흐뭇해 하실 것입니다. 하!하!하!"

소교주가 권마황의 은혜를 갚을 수 잇는 방안이 갑자기 떠오르기라도 하였다는 듯이 입을 열며 호탕한 목소리 로 웃음을 터트리는 와중에 음산인마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십여명의 권마대원들이 모두 사라 지고 아홉명밖에 남지 않은 현 상황을 소교주에게 아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황으로 보아 그냥 넘길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닌 것 같았다. 소교주가 지금이라도 오십명의 권마대원들을 당 장 부를 것 같은 표정을 하자 음산인마가 소교주를 향해 오체 투지를 한후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오체투지를 한 음산인마는 돌바닥에 머리를 찧어 댔다.

음산인마의 돌변한 행동에 소교주가 깜짝 놀라는 듯한 표정으로 내기를 뿜어내 일장여나 떨어진 음산인마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였다. 내기를 뿜어내 이마가 피투성이가 된 음산인마의 행동을 억제시키자 죽어가는 목 소리로 바닥에 머리를 찧던 음산인마의 얼굴색이 더욱더 사색이 되어갔다.

아무리 소교주라고 하여도 자기는 한성의 지부장이었던 것이다. 과거 무림을 진동시켰던 음산 쌍마의 진전을 이어받아 마교 십대 장로들에 비해서나 약세를 인정할뿐 무공에 있어서는 하는 높은줄 모르는 음산인마였다.

그런데 일장여나 떨어져 있는 소교주가 순수한 내력으로써 자신의 머리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다. 자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생각하던 소교주가 심득을 얻어 검강과 권강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못내 믿어 지지가 않던 음산인마는 일장여나 떨어진 소교주가 펼치는 내공에 자신의 음살지기(陰殺地氣)가 옴짝달싹도 할수 없음을 보고는 더욱더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죽을 죄라니... 내 지부장이 이곳 안휘성 천마산에서 겪는 고초를 모르는 바가 아니네. 무리를 이끌다 보면 잘한 일도 생기고 못한 일도 생길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는 말인가?"

소교주의 부드러운 언변에 음산인마는 다소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얼굴을 굳히었다. 절 대로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웃는 얼굴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다반사인 곳이 바로 마교의 전통 이었다. 자신 또한 잘못을 범한 수하에게 많이 써 먹어본 수법이었다. 처벌하지 않을 것처럼 부드러운 말로 설득하여 진상 을 낱낱이 아뢰게 한 후에 혹독하고 잔인한 처벌을 가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소교주님, 권마대원 오십여명중 사십여명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지금까지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이들에게는 경비를 서지 못하게 하고 감시를 붙이는 등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하여 살펴 보았는데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권마황이 돌아오지 않자 달아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또한 증거가 없습니다."

"무엇이!..."

동굴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고함을 지른 소교주가 돌바닥에 머리를 찧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하던 내력을 튕겨내었는지 음산인마가 사장여나 날아가 날카롭게 파여진 벽면에 사정없이 등을 부딪히었다. 하지만 벽면에 심하게 부딪힌후 바닥에 떨어진 음산인마는 잽싸게 달려와 다시금 소교주의 앞에 오체 투지를 하였다.

난데 없는 음산인마의 행동에 무슨 일인가 싶어 말을 아끼던 번뇌마승도 권마대원들이 행방불명되었다는 말이 금시초문인지 벌컥 화를 내며 음산인마를 노려 보았다.

"갈중혁, 그런 일이 있었다면 왜 진작 내게 보고하지 않았느냐?"

번뇌마승이 살기가 돋았는지 열화와 같이 화를 내며 음산인마를 질책하였다. 그러자 그렇지 않아도 기어 들어 가던 음산인마가 동체를 부르르 떨며 떨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장...장로님. 죽..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목검문의 타격이후 터진 일인지라 심려를 끼쳐 드리지 않고 저..저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음... 지부장! 그냥 간과할 일이 아니지만 지금은 그들의 행적을 찾는 것이 급하니 죄는 훗날 묻겠다. 남겨 진 시신등은 없었는가?"

소교주가 목소리를 낮추면서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살기에 베인 저음을 발했다.

"어...없었습니다. 동부 내외를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그들의 시신은커녕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믿 기 어려우시겠지만 도망쳤을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음산인마가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 그렇지만 자신 없는 음성으로 말을 맺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그 자신도 영문을 모르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권마대의 평소 행실로 보아 절대 도망갈 리가 없겠으나 사건의 전후로 보면 도망갔다는 말이 가장 타당성이 높은 것 같다. 아마도 권마대 놈들이 하나둘 빠져 나가서 모종의 장소에서 모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소교주가 냉철하게 상황분석을 하자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이 음산인마가 머리를 들며 말을 받았다.

"소교주님, 제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지금 아홉명의 권마대놈들이 남아 있으니 혹독하게 다 루어서 일의 전말을 상세히 자백 받도록 하겠습니다."

음산인마는 이제야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는 듯이 독살스런 눈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소교주의 말을 듣고 보니 가장 타당한 추론인 것 같았다. 동부 내외에 아무런 흔적도 없는 것을 보면 동부 밖 으로 빠져 나갔을 것이 분명한데 지금까지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 만도 아니었다. 자기들끼리 치밀하게 계책을 짰다면 동부 내외에서 호응하여 한두명씩 흔적도 없이 탈출시키 는 것은 큰 어려움도 아닐 수 있는 것이다. 남은 권마대 놈들의 사지를 잘라가면서라도 사건의 전모를 반드시 캐 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뿌드득 이를 갈며 잔혹한 살광을 발하는 음산인마의 귀에 소교주의 말이 들려왔다.

"쯧쯧 지부장. 아직도 욕금고종(欲擒故縱)의 계를 모르다니..."

"옛! 욕금고종."

소교주에게서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풀어 준다는 삼식육계중 십육계인 욕금고종 이라는 단어를 듣자 음산인마의 얼굴이 환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번뇌마승 조차도 소교주의 계책에 감탄하였다 는 듯이 꾹 다문 입술을 한후 고개를 끄덕 끄덕 하였다.

"지부장, 권마대원 들에게 갑자기 외곽 경비를 맡기면 이들이 수상히 여겨 쉽사리 도망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 다. 내가 오늘 이들에게 본산으로 떠나라고 명령을 할 터이니 그전에 이들의 옷에 천리향(千里香)을 뿌리고 밀찰대를 붙여 암중 미행토록 시켜라! 이놈들이 작당한 것이 분명하다면 본산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삭초벌근(朔草伐根)이라고 한놈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치밀하고 잔인한 심계가 아닐 수 없었다. 음산인마가 몸을 부르르 떨며 소교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겠다 는 듯이 오체 투지한채 큰 목소리로 명을 받았다.

"소교주님의 심모원려(深謀遠慮)한 계교는 하늘조차 알아 차릴 수 없을 것입니다. 밀찰대의 고수들을 미행시 켜 이놈들이 작당하였다면 반드시 추적하여 일망타진토록 하겠습니다."

난해한 사건을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소교주가 믿음직스러웠는지 번뇌마승이 굳었던 안색을 풀며 소교주를 바 라 보았다.

"소교주, 오늘 소교주의 높은 무공과 심대한 지혜를 보건데 목검문에서 당했던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구려. 게다가 권마황까지 가셨는데 실패했다면 설마하니 검후와 해동신룡이라는 애송이의 무공이 그처럼 높았다는 말인가?"

매사에 직선적인 표현을 하는 번뇌마승이었다. 소교주가 그때의 상황이 다시 생각났던지 아랫입술을 꽉 깨물 었다. 입술을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아랫 입술로 피까지 흘러내릴 정도였다.

'검후 그년을 이쁘게 봐 줄려고 했었는데... 내 너를 잔인하게 짓밟아주마... 해동신룡 이라고? 흐흐 그 애송 이 놈도 좋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음산인마!"

"예, 소교주님."

소교주가 살기에 어린 낮은 음성을 발하자 음산인마가 큰 목소리로 즉각 대답하였다.

"검후와 해동신룡의 족적을 놓치지는 않았겠지?"

"지금 두 년놈들이 소림사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소림사 주위에 밀찰대를 배치하여 나오는 즉시 그들을 미행할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남 지부에서도 돕고 있는데 제자들의 원수를 갚으신다고 독중지마 장로님까지 하남 지부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권마대원들이 사라진 실수를 만회 하기라도 하려는 듯 음산인마는 묻지 않은 것까지 소상히 아뢰고 있었다.

"그래, 소림사란 말이지...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밀찰대원들을 절강 보타문으로 보내라! 가서 검후에 대한 모든 정보를 샅샅이 캐어 오도록 시켜라."

"알겠습니다."

음산인마에게 지시를 마친 소교주가 이번에는 번뇌마승을 바라 보았다.

"장로님, 그것들이 소림사에서 나왔을 때를 대비해서 하남 지부로 옮기는 것이 어떻습니까? 무슨 일로 소림사 에 머무르고 있는 지는 모르지만 소림사가 자기 집이 아닌 이상 머지않아 산문을 나설 것입니다."

"그렇게 하세. 하남지부에 있는 독중지마까지 나서면 소림사라고 하여도 쳐들어가 볼만한 전력이 될 거네. 아 무리 검후와 해동신룡의 무공이 고강하여도 죽이기는 여반장이 될걸세. 흐흐흐흐..."

"장로님, 제가 새로 익힌 무공에 미진한 부분이 있어 이삼일 정도만 더 수련한 후 떠났으면 합니다. 권마대원 들에 대한 조치도 하여야 하고요."

검강에 권강을 발휘할 수 있음은 물론 그 무공의 경지조차도 짐작하기 어려운 소교주에게서 며칠 더 수련하고 자 하는 말을 들은 번뇌마승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어 갔다. 장차 마교의 앞날이 크게 밝아져 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허허! 소교주, 좋도록 하게. 이 늙은이 걱정은 하지 말고 편히 수련하도록 하게."

호탕한 번뇌마승의 웃음소리가 안휘성 천마산 마교지부의 가장 깊숙한 지하 밀실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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