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59화 (59/152)

■ 제 59절 :

범각 대사의 호신강기에 쌓여 불수복마진에 든 은성은 진세 내의 전경에 두눈을 크게 뜰 수 밖에 없었다.

폭풍같은 소용돌이에 집채만한 바위가 날아다니고 갑자기 땅속에서 솟아 나오는 용암더미가 하늘을 가득 덮는 것은 차라리 약과였다. 하늘에서 검우(劍雨)가 내리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처참하게 꿰뚫려 졌으며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악귀들이 수백만 마리나 떼를 지어 몰려와 달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금강보리신공은 이 모든 것을 막아 주고 있었다. 금강보리신공에 부딪히면 순식간에 바위조차 녹여버 리는 용암의 파도도 맥없이 스러지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며 광란하듯 쏟아져 내리는 검우도 작은 이슬방울로 화해 사라져 버렸다.

호신강기에 둘러싸인 채로 진세 내를 걸어가는 범각대사의 보법은 일정한 규칙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앞 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나아가는 보폭과 속도가 항시 변했으며 좌우로 또는 사선으로 나아가고 때로는 뒷걸음질을 치기도 하였다.

범각대사의 기묘한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던 은성은 지금까지 진세 안쪽으로 들어서면서 걸어왔던 보법을 기억 하기 위해 노력하였던 행위가 필요가 없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불수복마진을 들어가기 위한 정해진 보법이나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범각대사의 발걸음을 단조롭게 따라가던 은성은 일각이 지 나서야 심안이 서서히 발휘됨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불수 복마진을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불수복마진 안쪽으로 들어온 은성은 진세 내에 강력한 마기가 어려있는 것을 느끼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림최고 고수인 범각대사께서 은거 수련중인 장소에 마기라니...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진세 안쪽으로 들 어선 후 범각대사의 호신강기가 풀리자 한쪽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스승님, 어서 오십시오."

범각 대사를 만나기 위해 멀리 서장에서 절세곡을 찾아온 늙은 제자 달라이라마였다.

은성의 심안이 대단한 경지에 이르러 있기는 하였지만 달라이라마와 같은 초절정 고수의 흔적은 쉬이 발견할 수가 없었다. 몸에서 흘러 나오는 내기가 거의 없었으며 심장의 박동소리는 물론 호홉소리 까지도 완벽히 차 단되고 심지어는 몸에서 발산되는 체온까지도 몸밖으로 뻗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간신히 인간의 형체만이 심안에 포착되기 때문에 바위나 나무 등에 기대어 있다면 발견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은성이 만나왔던 사람중에서 심안에 포착되지 않았던 사람은 달라이라마와 범각대사 단 둘 뿐이었다.

마교 십대장로중의 한명인 권마황 조차도 은성의 심안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사님, 심중지화(心中之火)는 해소하셨는지요?"

하나뿐인 제자를 만나자 반가운 마음이 생긴 은성은 달라이라마에게 범각대사와의 갈등을 해소했는지의 여부 를 물어 보았다.

"스승님을 만나고서 이미 꺼져버린 심화(心火)이라서 다시 끌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뜬구름같이 일어나는 허 상에 마음을 빼앗겨 예까지 찾아왔으니... 하지만 헛걸음이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스승님을 만날 수 있는 소 중한 걸음이 되었으니까요."

"마음을 닦아 적멸(寂滅)지경에 들면 마음속에 더 이상 뜬구름이 일지 않는 법이지요. 소림과 포달랍궁의 구 별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인과가 뭉쳐지면 삿됨이 일어나지만 풀어 헤쳐지면 다같이 불도를 수량하는 참 선지처(參禪之處) 일뿐인 것을..."

은성의 말을 듣던 달라이라마가 돌연 긴 숨을 내쉬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들으니 제자 벌써 적멸지경에 이른 듯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고난의 연속인가 봅니 다. 소림에 와서 스승님을 만나 헛된 망상을 깨트리고서 스승님의 말씀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 일로정진 하 고자 하였는데 다시금 발목이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패륵선사의 설명을 듣던 은성은 내심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패륵선사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은 이곳에서 풍겨져 나오고 있는 마기와 절대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기는 계곡의 안쪽으로 갈수록 짙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기가 뭉클뭉클 피어나는 계곡의 끝부분에는 붉은 안개가 자욱이 서려 있었다. 그곳 또한 심안이 전혀 발휘되지 않고 있었다. 문득 불수복마진을 들어오기전 범 각대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가 있어 달라이라마와 같이 상의해 보았지만 대책이 없어 그를 불렀다'는 말이었다.

붉은 마기가 피어오르는 계곡 안쪽을 바라보던 은성이 고개를 돌려 지금까지 한쪽에 서서 이들 사제간의 대화 를 듣고 있던 범각 대사를 바라보자 범각 대사가 은성의 앞쪽으로 다가오며 혜광심어를 보내었다.

"이 대협, 백여년전 소림의 비사(秘事)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도 이미 입적하신 사부님에게서 들은 내용인 데 아마 쉬이 믿어 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쪽에 편히 앉아서 듣도록 하시지요."

범각 대사는 말이 길어질 것 같았는지 은성에게 편히 앉도록 한 후 자신도 은성과 패륵선사의 앞에 있는 평평 한 돌위에 앉아서 주름진 눈꺼풀을 깜박이며 말을 이었다.

"백여년전 평화롭던 소림사를 뒤집어 놓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였답니다. 한밤중에 소림사 대웅전 지붕에서 마음(魔音)이 들려와서 소림사에 있던 무공이 약한 승려들이 귀가 먹고 수십명이 정신착란에 걸리었답니다. 자다가 깨어난 소림 고승들이 일제히 항마후(降魔吼)를 발하고서야 마음은 간신히 멈추었는데 알고보니 그 마 음(魔音)의 정체는 단 한명의 마인(魔人) 때문이었답니다.

온몸에서 혈광을 발하는 마인은 항마후에 의해 마음이 가로막히자 지붕에서 뛰어내려 한밤중에 깨어 밖으로 나온 승려들을 무차별 살해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무공의 고강함과 괴이신랄함은 천하제일 문파임을 자랑하던 소림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을 정도였답니다.

순식간에 일백여명이나 살상된 후 당시 소림 장문이던 중광(中光)스님의 명에 의해 백팔나한진이 펼쳐지게 되 어서야 간신히 평수를 이룰 정도로 마인의 무공은 절대적이었다고 합니다. 백팔나한진으로도 마인을 제압할 수 없게 되자 안절부절하던 중광대사는 이곳 절세곡에 은거하며 평생 진법만을 연구하던 중풍(中風)대사의 의 견을 좆아 백팔나한진 속에 마인을 가둔 채로 이곳 절세곡까지 유인하여 천문금쇄진(天門金鎖진)속에 마인을 잡아 가둘 수가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서 백팔나한진을 펼치던 무승들이 다시 오십여명이나 희생되었을 정도 로 치열했던 혈야(血夜)이었답니다."

혜광심어로 말을 하고 있었지만 범각대사의 감정이 격화 되어졌는지 음성이 떨리며 들리어 왔다. 직접 목격하 지는 못하였지만 은성도 그날의 참혹하고 치열했던 혈투가 눈에 보이는 듯 떠오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잠시 숨을 멈추고 호홉을 조절하며 격화된 감정을 추스린 범각대사가 계속 말을 이었다.

"절세곡에 마인을 가둔후 중풍 대사와 몇몇 고승들은 입적할 때까지 천문 금쇄진을 보완하고 만일에 대비하여 불수복마진까지 펼쳐 놓았습니다. 노납은 삼십년전에 입적하기 전까지 면벽 수행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이곳 에서 멀지않은 조사지동에 들어 가려다가 절세곡내의 마인이 지금쯤은 유명을 달리하지 않았나 하는 호기심으 로 불수복마진 안에 들어선 후 마인이 아직까지도 살아 있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하늘조차 가둘 수 있다는 천문금쇄진 안에서 마인의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으니까요... 마 기는 갈수록 강해지더니 삼십년이 흐른 지금은 청광이 어리던 천문금쇄진에 혈광이 어릴 정도로 마기가 강해 지고 반대로 진세가 약화되었는데 이대로라면 몇 년 안으로 천문 금쇄진이 파쇄될지도 모릅니다. 노납은 삼십 년전 이곳에 은거한 이후로 십년전 여기 계신 달라이라마 덕분에 잠시 외유를 하였을뿐 한 번도 절세곡 밖으 로 나가 본적이 없었습니다."

범각 대사가 시선을 달라이라마에게 돌리자 조금 무안했는지 달라이 라마가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달라이라마님과의 결전 덕분에 무공에서 크게 깨달은 바가 생긴 노납은 삼년전 천문 금쇄진 안으로 들어갔습 니다. 천문 금쇄진은 천고의 기진으로서 금쇄진으로 들어가면 금쇄진 안쪽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명문(明 門 )자리가 한군데 있습니다. 그곳에서 바라보니 과연 금쇄진 안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삼십여세정도밖에 먹어 보이지 않았는데 매우 선한 인상이었습니다. 마인이 반로환동한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며칠간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지만 피에 굶주린 광인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소림 칠십이절기 중 오십여가지를 익히고 부동명왕심공(不動明王心功)에 금강부동신법(金剛不動身法)까지 익혀 무공에 크게 자 신하던 노납은 젊은이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하여 마침내 천문금쇄진 안쪽으로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젊은이와 몇마디 나누어 본 후 젊은이가 백년전 소림사에 피비를 뿌린 마인이라는 것과 그가 천축국에서 왔다 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노납은 조금 더 자중하지 못하고 섣불리 천문금쇄진 안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후회하 게 되었습니다.

마인의 가슴속에는 거대한 악마가 한 마리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아니 마인 자체가 무섭고 잔인한 악마 그 자 체였습니다. 저의 신분을 눈치챈 마인이 저를 사로잡아 천문금쇄진을 벗어나기 위하여 대화 도중 불시에 기습 을 가하였던 것입니다. 다행히 달라이라마와의 결전에서 금강부동신법에 대한 마지만 깨우침을 얻은 덕분으로 간신히 위기는 모면하였지만 마인과의 혈투는 두시진이나 더 이어졌습니다. 마인의 무공은 이미 인간의 한계 를 벗어나 있었습니다. 허공중에서 둥둥 떠다니며 펼치는 신법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고 결전중 간 간히 내지르는 마소(魔笑) 소리는 부동명왕심공을 익힌 노납의 정신조차 혼미하게 하였으며 섭혼술을 익혔는 지 혈광으로 빛나는 사이한 눈동자는 조금만 응시해도 넋이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정중동(靜中動)의 묘미를 극대화 시킨 금강부동신법 덕분에 마인의 개세적인 공격을 간신히 막아낼 수 있었지 만 마인의 막대한 내공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른 신법에 금강부동신법도 한계에 이르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마인의 음공에 정신까지 혼미해져 오자 노납은 최후의 모험을 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잠력까지 일시 에 끌어올려 항마후를 발하여 마인을 물리친후 최후의 기력을 다모아 천문금쇄진을 빠져 나오는 방법이었지요. 천문금쇄진에 들어가기 직전 마인이 날린 장력에 맞아 내상을 입었지만 기습적인 항마후 공격으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얼떨결에 펼쳐진 장력이라서 그런지 간신히 죽음을 면할 수는 있었습니다.

내상을 입고 내력마져 고갈된 노납은 천문 금쇄진 안에서 제일 안전한 명문으로 들어가 내상을 다스리며 진세 내부를 바라보니 노납을 놓친 것이 분했던지 마인은 광분하고 있었습니다.

붉은 핏빛의 혈광을 줄기줄기 뿜어대며 보이는 모든 곳을 파괴시켰는데 그제서야 노납은 마인이 노납과 대결 하면서 진신무공을 숨겨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이 적당히 대결하면 서 노납의 소림 무공을 훔쳐 배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저를 제압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라고 생각했을 테니 까요. 지금은 노납의 본신 내공중 팔구할이 회복되었지만 저와 달라이라마 둘이서 협공한다고 하더라도 벅찬 상대인 것은 확실합니다."

범각대사의 긴 이야기를 들은 은성은 무공의 한계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하 제일 문파의 최고 고수인 범각 대사를 가지고 놀 정도의 고수라니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소림 최고 고수보다도 몇배나 뛰어난 절세고수 조차도 진세속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니...

범각 대사는 자신이 입적한후 마인이 천문금쇄진을 뚫고 나와 불수 복마진까지 파쇄시킬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천문금쇄진이 쉽게 와해되지는 않겠지만 천문금쇄진을 파해할 역량이라면 불수복마진도 자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백여년간 진세속에 갇혀 있었던 마인이 불수복마진까지 뚫고 나온다면 그 분노가 소림을 뒤덮어 버릴 것은 불문가지였다. 천문금쇄진에서 흘러나오는 혈마기가 짙어지자 내심 초조해 하던 범각대사에게 자신과 비슷한 무위를 가진 달라이라마와 또 자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 잠재력이 추측불가한 은성이 소림사에 머물게 됨은 두 번다시 오기 힘든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범각대사의 속셈을 짐작한 은성은 이또한 자신에게 닥친 업보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업보인 것이다.

"대사님, 만약 저까지 합세한다면 천문 금쇄진 내의 마인과 상대할 수 있겠는지요?"

반로환동한 고수를 상대하는데 부족함이 있느냐는 은성의 질문에서 소림사를 도와 주겠다는 은성의 속뜻을 알 아차린 범각대사가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얼굴 표정이 밝아지며 음성을 전해주었다.

"이 대협의 무위가 달라이라마께서 말씀하신 정도라면 반의 승산이 저희 쪽에 있습니다."

범각 대사의 음성을 들은 은성은 달라이라마 조차도 아직 자신의 무공수위를 확실히 알지 못함을 알고 있는지 라 이 기회에 자신의 무위를 그들에게 확실히 인지시켜야 함을 느낄수 있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계 곡 안쪽에 생사대적을 두고 자신들의 역량조차 재대로 모른다면 어찌 승산을 논할 수 있을 것인가?

자리에서 일어선 은성이 허리춤에 매달린 화룡검을 뽑아들자 패륵선사와 범각대사가 호홉조차 멈춘채 은성을 주시하였다. 장기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태극진기만을 남겨 두고 전부 운용한 은성은 이형환위 신법을 펼치며 순간적으로 오십여장을 이동하였다.

그리고는 묵귀영의 신법을 펼쳐 허공중에 몸을 분산시키며 화룡검에 진화기를 불어넣어 삼장 길이의 검강을 형성한채 동방파의 절정의 쾌검식인 유성검법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유성검법 속에는 조사지공인 무진쾌(無 盡快)의 수법이 가미되어 있었다.

은성은 이형환위 신법을 펼친 이후로 한 번도 땅바닦에 발을 붙이지 않고 있었다. 팔방을 종횡 무진하던 붉은 검광이 삼장 높이로 피어올랐다가 유성처럼 사라져 가자 범각 대사가 놀랍다는 듯이 입을 반쯤 벌리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림자 조차 남기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이던 은성이 갑자기 허공중에 멈추어 선 채로 검을 들어 정면을 가리키자 화룡검 주위로 영롱한 구슬방울 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피어오른 검환들은 한 개씩 또는 몇 개씩 무리지어 검끝을 떠나갔지만 그 위력과 빠름은 모두가 달랐다. 번개 같은 빠르기로 쏘아져 나간 검환이 있는가 하면 서서히 나아가다 갑자기 빨라지는 검환도 있었다. 제일 나중 에 생성된 검환은 눈이 멀어 버릴 정도로 새하얀 검환이었다. 다른 검환들에 비해서 느리게 피어 올랐지만 그 영롱함은 바라보기 조차 힘들 정도였다.

검끝을 떠난 새하얀 검환이 이십여장 밖의 대지속으로 파고 들어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른 검환들은 나무건 바위이건 닥치는 대로 구멍을 뚫어 놓으며 사라져 갔지만 마지막 검환은 그것이 아니었다.

검환이 사라진 대지가 화산이 분출되듯 폭발해 버린 것이다.

하늘로 치솟아 오른 돌덩이와 흙부스러기들이 가라앉자 반경 십여장의 큰 웅덩이가 새로 생겨나 있었다. 허공 중에서 어떻게 몸을 이동하였는지 어느새 눈앞에 나타나 있는 은성을 바라보며 범각대사는 한참 후에야 벌린 입을 다물 수 있었다. 달라이라마 조차도 자신이 스승으로 삼은 은성의 무공 수위가 이처럼 고절한지는 몰랐 다는 듯이 놀란 눈빛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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