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9장 :
권마황이 소교주와 함께 달아난 후 마교측 잔당 대여섯명만이 추가로 몸을 빼내어 달아날 수 있었다.
비록 오늘 마교의 대대적인 야습에 목검문의 멸문지화(滅門之禍)를 간신히 막을 수는 있었지만 정·마 양측의 피해 상황은 예상외로 막대하였다.
일백여명의 목검문도들중 살아남은 자는 사십여명밖에 되지 않았으며 남궁세가에서 지원온 삼십여명중 천뢰검 남궁력과 이십여명의 검수들이 유명을 달리하였다. 그외 지룡문의 무사들과 인근 무림협사들의 죽음까지도 포 함하면 오늘 목검문측의 피해자는 일백 이십여명이나 되었다.
마교측의 피해는 이보다 더했다. 권마황과 소교주가 중상을 당하여 간신히 도망쳐 갔지만 권마대주와 지옥대 주 그리고 혈의대주를 포함하여 일 백 오십여명의 마교도들이 오늘의 야습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참담한 목검문의 격전지를 허탈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목석철이 살아남은 목검문도 들에게 이것 저것 지시하기 시작하였다. 시신들을 모두 모아 전각안의 지하실로 옮기도록 지시하고 환자들을 전각 일층으로 이동하여 치 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중에는 마교인들도 끼여 있었는데 선약문의 정씨 자매가 극구 주장한 때문이었다. 비록 내일 또다시 적이 되어 칼을 맞댈는지는 알수 없겠지만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며 귀하고 귀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똑같이 최 선을 다해서 치료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전각내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정파의 협사라는 자부심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씨 자매의 의견 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은성이도 정씨 자매와 함께 부상당한 환자들을 치료해주는 일에 동참하였다. 은성이에 의해서 혈도가 짚인 악 독이마는 청무대가 무림맹으로 끌고 가는 것으로 잠정 합의가 되었다. 이들은 풀어주기에는 지은 죄가 너무나 많고 또 향후 얼마나 많은 악독한 일들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환자들을 치료하는 중에 은성이의 활약은 눈부실 지경이었다.
선약문의 진전을 이은 정씨 자매조차 경이로운 눈길로 은성이를 대할 정도였다. 오래된 고질병등 만성 질환에 비방이 많은 선약문과는 달리 은성이는 침과 내공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급성 질환에 대한 의리(醫理)가 깊었 다. 현재 이곳에 있는 환자들은 모두가 도상이나 검상과 골절 그리고 피나 기가 혈맥이나 경맥을 막는 내상을 입은 환자들 뿐이었다. 위중한 환자들을 은성이가 너무나 간단하게 치료를 하자 선약문의 정은선은 아예 치료 를 포기하고 은성이 뒤를 졸졸 따라다닐 정도였다.
은성이가 치료하는 것을 보고 의학의 깊은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였다. 앞에 있는 환자는 내상을 입은 것 같았 다. 정은선이 생각하기로는 최소한 칠대 경혈에 대침을 놓은 뒤 이각 정도는 추궁과혈을 해 주어야만 병신이 되는 것을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후에 내부의 기력을 보충해 주는 약재를 보름정도는 복용해야 정상적인 거동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데 환자앞에 다가선 은성이는 침을 놓지도 않은 채 침을 놓아야 할 부위에 손바닥을 펴고 잠시 내력을 조 절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환자의 등 허리를 손바닥으로 탁하니 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랄만한 일은 환자 의 혈맥을 막고 있으리라고 생각되던 시커멓게 죽은 피가 환자의 입에서 확하니 뿜어져 나온 후 다 죽어가던 환자의 안색이 갑자기 혈색을 찾아가고 곧 이어 거동까지 하는 것이었다.
이를 보고 있던 정은선의 두눈은 둥그레지고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주변에서 은성이가 치료하는 것을 보고 있던 목검문측과 몇몇 청무대원들은 환자의 상태가 별로 위중하지 않아서 쉽게 치료가 되었으려니 생각하겠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절대 아니었다.
일반 의원에게 맡기면 잘해야 반병신이 될 정도로 위중한 환자였다. 자신에게 맡겨도 최소한 보름이고 의선( 醫仙)이라 불리우는 아버지에게 맡겨도 일주일 안에는 장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위중해 보였던 환자가 일각안 에 치료가 되어 멀쩡히 거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더욱 놀라운 일은 잠시 뒤에 벌어졌다. 가슴에 도상을 입 어 상처가 벌어지고 피를 흘려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 앞에 선 은성이가 환자의 상처 부위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자마자 흐르던 피가 멎더니 벌어진 상처를 양손으로 잡아 붙인 후 일다경 정도 지난 후 손을 떼었는데 상처 자국이 꼭 붙은 것처럼 벌어지지 않았다. 자세히 봐야만 상처자국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다.
환자의 상처를 치료하고 은성이가 몸을 일으키자 궁금증을 참다 못한 정은선이 은성이에게 물었다.
"이 공자님, 어떻게 하면 벌어진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지요?"
은성이가 눈을 들어 지금껏 자신의 치료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정은선의 검은 눈망울을 주시했다. 곱디고운 얼굴에 매우 착하게 보이는 눈빛을 가진 아가씨였다. 그리고 조금 전에는 비록 적이지만 부상당한 마교도인들 을 치료해 주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결코 굽히지 않던 당찬 아가씨이기도 했다. 참으로 성녀(聖女)같은 아가씨라는 생각을 하며 은성이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 을 받았다.
"정소저, 저희 집안은 해동에서 대대로 의가(醫家)의 맥을 이어 왔습니다. 초금의가(草金醫家)라고 약초와 침 술로 병을 다스려 왔는데 방금전 제가 사용한 수법은 저희 가문의 금침지술을 제가 조금 보완하여 응용한 것 입니다."
은성이의 말을 들은 정은선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은성이를 바라보았다.
"이공자님, 금침지술을 사용하셨다고 하시는데 금침은 어디에 있나요?"
물어보는 정은선의 표정이 매우 귀여워 보이는지라 은성이는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말을 하였다.
"금침은 나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예?"
은성이의 뜻 모를 말에 정은선은 다시 한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설령 금침이 마음에 있다고 치더라도 그것으로 어떻게 벌어진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공자님, 너무나 현묘하신 의학의 이치라서 제가 이해하기에는 조금 무리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금침 지술 로 상처를 어떻게 아물게 할 수 있는 지요?"
"제 설명이 부족했나 보군요. 하지만 자세히 설명해도 쉽게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 마음 속의 금침은 일정 한 형태가 없답니다. 여느 금침과 같이 혈맥에 자극을 주고 내기를 조절하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실이 되어 상처를 꿰메 줄 수도 있답니다."
정말로 믿기 어려운 은성이의 설명이었지만 정은선은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은성이가 정말로 그런 경지에 다다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아무런 의료 도구도 없이 사경에 처한 중상자를 이토록 쉽사리 치료할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납득이 가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속에 자유자재한 금침이 있어 이로써 사람을 치료한다니 한번도 들 어보지 못한 기사(奇事)가 아닐 수 없었다.
"휴..., 이 공자님이야 말로 전설 속의 신의(神醫)이시군요. 공자님, 언제 한번 저희 선약문을 방문해 주실수 는 없는지요. 의선이라 불리 우시는 저희 아버님이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시는 일이 있는데 아직까지 성과가 없어서... 자식된 도리로 부탁 드리는 것이니 거절치는 말아 주십시오."
말을 하는 정은선의 얼굴에 강한 부정이 엿보이자 불연 듯 선부이신 신초금의가 생각난 은성이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정소저, 알겠습니다. 제가 추후에 반드시 선약문을 방문하겠습니다."
은성이가 선약문을 방문하겠다는 말을 하자 내심 거절할까 조마 조마해 하던 정은선의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 어났다.
"이공자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공자님이 선약문에 오시면 제가 저희 선약문의 자랑인 봉무차(鳳舞茶)를 대접 해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받으시지요."
하면서 정은선은 품에서 곱게 접은 흰 손수건을 꺼내어 은성이에게 건네 주었다. 은성이가 손수건을 받아 펼 쳐 보니 손수건에는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손수건의 제일 상단에는 은선 이라는 이름이 정자로 단정 히 쓰여져 있었다.
"공자님, 저희 선약문으로 올 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선약문에 도착하여 그 손수건을 보이면 최고의 대접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 선약문의 위치는 강호상에 비밀이니 공자님께서는 절대로 그 손수건을 누구에게 보여 주시지도 말고 분실하지 않도록 조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은선이 간곡한 어조로 당부하자 은성이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알겠소이다 정소저. 내 이 손수건을 보물처럼 조심스럽게 간직하였다가 훗날 선약문에 가서 돌려 드리겠습니 다."
말을 마친 은성이는 다시 남은 환자들의 치료에 몰두하였다.
반시진도 되기 전에 이십여명이 넘는 환자들을 모두 치료한 은성이가 손을 씻고 검후가 있는 이층 전각으로 올라설 때까지 호수같은 눈동자를 은성이에게서 한 번도 떼지 않던 정은선이 이층전각으로 은성이가 사라지자 작은 한숨과 함께 돌아섰다.
돌아선 그녀의 눈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인지 애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주시하는 동생 정미진의 모습이 보였다.
이층 전각으로 올라오니 제갈인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 오늘 피해로 당분간 안휘성에서의 마교의 준동은 사그라질 것입니다. 모두가 검후님과 검후의 오라버니 ... 아! 저기 올라오고 계시는군요. 여러분 모두 이대협에게 큰 박수를 보내 줍시다."
순간 이층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였다. 은성이는 난데없는 박수에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이 었다가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오늘 마교의 습격에서 정작으로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제가 아니라 오늘 싸우다 죽 어간 사람들과 일층에 있는 환자들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도 저보다 못하신 분이 한 분도 없습니다."
은성이의 겸양한 언사에 목검문의 소문주인 목석철이 나섰다.
"맞습니다. 오늘 저희 목검문의 멸문을 막아 주시다가 사상(死傷)을 당하신 모든 분들께 보답할 수 없는 크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검후님과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는 추후 저희 목검문에서 신명을 다 바쳐 은혜 보답 토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대협님! 오늘 검후님과 이 대협님이 저희 목검문을 도와 주시지 않으셨다면 저희 목검문이 이렇게나마 건재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차후 이대협님이 저희 목검문에게 어떠한 부탁을.. 아니 명령을 내리시더라도 설사 끓는 물 , 타는 불속으로 들어가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따르겠습니다.."
비록 목검문주가 건재하고는 있었지만 사실상 목검문은 소문주인 목석철이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소문주가 은성이에게 약속하는 말을 듣고도 당연하다는 듯이 목검문주 목진영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대협이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그냥 이공자나 아니면.. 부끄럽지만 이소협이라고 칭해 주시지요."
은성이는 자꾸만 이 대협이라고 칭하는 소리에 쑥쓰러워 하며 주변을 돌아보며 선처를 호소하였다. 하지만 주 변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들어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제갈인이 앞으로 나서며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말을 하였다.
"여러분, 피독주로써 우리 모두의 목숨을 구해주고 마교의 권마황을 물리친 이대협을 대협이라고 칭하지 않으 면 어느 누가 대협이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아예 이 대협의 별호까지도 지어주는 것이 어떻 습니까?"
제갈인의 제안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가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가 끝날 즈음하여 목검문주 목진영이 앞으로 나서며 은성이에게 포권을 하며 말을 하였다.
"이대협이 저희 목검문과 아무런 인연도 없으면서 협의를 위해 저희 목검문을 구원해 주신 점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부족한 제가 별호를 하나 지어 드리겠습니다. 오늘 권마황과 대결하시 는 이대협의 무위는 한마디로 신룡과 같아 보였습니다. 듣기로는 이 대협이 멀리 해동에서 오셨다 하니 '해동 신룡(海東神龍)이 어떠신지요?"
목진영이 은성이의 별호를 지어주자 모두가 좋다며 은성이에게 다가와 축하를 해주었다. 검후도 은성이에게 축하의 말을 해주었다.
"오라버니, 해동신룡이라는 별호가 생긴 것 축하해요! 정말로 오라버니에게 어울리는 별호네요."
검후의 말을 듣고 보니 기분이 좋아지는 은성이였지만 자신에게 너무나 과분한 별호인 것도 같았다. 하지만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 너무 사양만 하는 것도 예가 아닌지라 은성이는 포권을 하며 주변을 돌아 보면서 예를 표한 뒤 목진영에게 말을 하였다.
"고맙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너무나도 과분한 별호를 지어주셔서 기쁘기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목 검문의 좋은 친구로 남고 싶습니다."
은성이 같은 초절정 고수가 목검문을 친구처럼 도와 준다는데 마다할 목검문주가 아니었다. 목검문주가 입가 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허허! 이 대협 별호가 마음에 드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제 자식 놈의 약속처럼 향후 이 대협의 일은 저희 목검문의 일같이 여기며 충심으로 도와 드리겠습니다."
역시 늙은 생강이 조금 더 매웠다. 목검문주는 은성이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목검문에서 전력을 다 바쳐 도와 주겠다고 하였지만 은성이의 성품상 목검문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은성이도 전력을 다 바쳐 도와줄 수 있도록 은성이와 목검문의 관계를 은연중 규정짓고 있었던 것이다.
"검후님! 무림맹으로 가시는 길이라 알고 있습니다만 저희가 모셔도 되겠는지요?"
제갈인이 검후에게 다가서며 조심스럽게 의향을 물어 보았다.
이곳 안휘성에서 무림맹까지의 거리는 마차로 가더라도 보름이나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워낙 무공이 출중한 검후이지만 무림이라는 곳이 무공이 강하다고 안심할 수 있는 곳만도 아니었다. 자신들의 청무대도 무림맹에 복귀해야 하는만큼 가는 길에 검후를 호위하며 가고자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고맙지만 저는 오라버니와 같이 가도록 할께요. 오라버니에게 중원의 산천 경계를 두루 구경시켜 주기로 하 였거든요."
하지만 검후는 절대 그럴 마음이 없었다. 무림맹에 도착하여 마교를 상대하고 보타문의 명성을 떨치는 일도 중요하였지만 은성이와 단둘이 오붓하게 명승고적을 구경할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찐드기 같고 찰거머리 같으며 왠지 느끼한 장종무라는 사람을 떼어 놓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알겠습니다. 검후님, 그럼 저희들은 '악독이마'를 호송하여 먼저 무림맹으로 출발하겠습니다. 무림맹에서 뵙 지요."
검후가 해동신룡과 같이 움직인다면 그 어떤 위협이 두렵겠는가?
자신들이 호위를 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안전할 것이라 생각한 제갈인이 청무대주 남궁혼과 함께 검후와 전각 내의 사람들에게 포권을 한 후 여명이 동터오르고 있는 전각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청무대주 남궁혼은 매우 과묵한 사람인 것 같았다. 싸울 때를 제외하고는 앞으로 나서는 일이 없었다.
전각 안에 들어선 후에도 새로 깨우친 무공을 참오하기라도 하는 듯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제갈인이 청무대를 대신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데도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청무대원 모두에게도 적용되고 있었다.
남궁혼을 위시한 청무대원 모두가 제갈인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갈인이 청무대주의 한발 짝 뒤에 위치한 채 전각 밖으로 나서자 전각안에 있던 십여명의 청무대원 모두가 따라 나갔다.
방금전에 이층으로 올라선 정씨 자매 조차도 청무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제일 뒤에 위치한 정은선이 전각 밖으로 나서기 전 뒤돌아 보며 은성이를 향해 애상이 어린 눈빛을 잠깐 보였을 뿐이었다.
"목 장문님 , 그럼 저희도 이만 갈까 합니다."
검후가 목검문의 장문인에게 물러갈 뜻을 전하자 목검문주는 하루라도 더 오래 검후와 은성이를 붙잡아 두고 싶었지만 목검문이 접대할 형편이 못됨을 아쉬워 하며 답례를 하였다.
"검후님, 오늘의 은혜는 추후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살펴 가시지요. 그리고 이곳의 정리가 대충 끝나는대로 아들놈을 무림맹에 보내 검후님을 돕도록 하겠으니 부족하지만 아들놈이 마교를 무찌르고 협의를 행할 수 있 도록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마친 목검문주가 목석철에게 눈짓을 하자 목석철이 검후 앞으로 나서며 포권지례를 하면서 비장한 목소 리로 말을 하였다.
"검후님, 무림맹에 도착하면 신명을 다 바쳐 검후님을 모시겠습니다. 수족처럼 써 주시기 바랍니다."
목석철이 검후와 은성이를 바라보며 결연한 의지를 보이자 검후가 목석철을 향해 마주 포권을 하며 말을 받았 다.
"목소협, 극악한 마교를 물리치고 협의를 행함은 우리 무림맹의 창립 목표이기도 합니다. 목소협의 뛰어난 무 위와 가슴속에 깃든 협의지심으로 볼 때 목소협이 무림맹에 들어오신다면 기꺼이 환영하겠습니다. 같이 힘을 모아 마교를 중원 땅에서 몰아내도록 합시다."
지룡문의 장로와 몇몇 무림인들에게까지 일일이 인사를 한 검후와 은성이가 목검문을 나설 때 쯤 해서는 날이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은성이와 검후는 먼저 장종무가 머무르고 있을 객잔으로 가기로 하였다. 장종무와 무림맹까지 동행을 하기로 약속하였으니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객잔에 도착하여 보니 장종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 았다. 자신들이 아무런 언질도 없이 사라진 때문이라고 자책을 하던 은성이는 검후와 자신의 옷이 매우 더럽 혀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심지어 옷에서 은은히 피비린내까지 풍겨져 오는 것 같자 아침을 먹고 싶은 마음 이 절로 없어졌다.
"오라버니, 아침보다는 몸을 좀 쉬시는게 어떠세요?"
검후도 아침 밥맛이 없었는지, 아니면 피곤했던지 은성이에게 객잔에서 조금 더 쉬어 갈 것을 권하였다. 검후 가 점원을 불러 목욕시설이 있는 숙소를 두 개 잡자 정오에 다시 보기로 약속을 하고서 검후와 은성이는 각자 의 방으로 들어갔다.
목욕탕안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통속에 물이 반이상 차 있었으며 그 옆에는 여분의 물도 많이 있었다.
소지품을 모두 꺼내 한쪽에 놓은 은성이는 옷을 입은 채로 통속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태극진기를 진화기로 변화시켜 몸 밖으로 뿜어내자 통안에 있던 물이 즉시 따뜻해졌다. 머리까지 물 속에 담그고는 진수기를 운용 하자 통 속의 물이 소용돌이 치며 피부는 물론 입고 있는 옷마저도 깨끗하게 빨아 주었다.
통 속의 물을 한 번 갈아 주고는 물을 데운체 통속에 누워 있으니 온몸이 편안해져 왔다. 다시 한번 진수기를 운용하여 통 속의 물이 소용돌이 치도록 만든 후 통 밖으로 나온 은성이는 옷을 입은채 진화기를 운용하였다.
잠시 후 윤기가 흐르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에 이어 입고 있는 옷이 모두 마르자 소지품을 챙긴후 침실로 향했 다. 동경을 보며 머리카락을 정리한 은성이는 침실에 누워 억지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간밤에 권마황과의 치 열했던 혈투가 머리속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