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8장 :
목검에서 검강지기를 흩뿌리고 예측이 전혀 불가능한 검초로 상대방의 의표를 찔러대며 공격하면서도 공수가 조화를 이루고 검법이 정심하였다. 삼백년전 절대 검왕이 남긴 검보의 후반부를 상실하였다고는 하지만 명가 의 풍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검법이었다.
그러나 목검문주와 대적하고 있는 덩치가 산만한 사내의 무위는 권마황에 버금갈 정도였다.
공중과 대지를 붕새처럼 누비며 태산이라도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력한 기세로 목검문주를 몰아쳐 가자 쉴틈없 이 쏟아내는 진기에 기력이 딸리는지 목검문주의 검법에 조금씩 파탄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일다경 도 되기전에 목검문주가 패할 것 같다고 생각이 든 검후가 여래혼으로 차디찬 한광을 뿌리 며 덩치가 큰 권마 대주를 협공해갔다.
오늘 정·마의 대결은 마교측이 사전 경고도 없이 비열한 수법을 동원하여 벌어진 것이었다. 암습이니 협공이 니 가릴 것 없고 한치의 양보도 필요없는 오로지 생(生)과 사(死)만이 존재하는 전쟁이었다. 괜히 어줍잖은 자존심을 지킨다고 망설이면 그동안에 친구나 동료들이 죽어가고 결국은 스스로의 생의 기회도 줄어가는 것이 다.
목검문주의 초식이 흐트러져 가자 더욱더 내력을 돋우어 성난 멧돼지처럼 몰아제치던 권마대주와 목검문주의 대결은 검후가 가세하자 일순간에 상황이 반전되어 버렸다.
검기를 줄기줄기 뿜어대는 여래혼에 의해 행동에 제약을 받자 권마대주의 권법의 위력은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검후 때문에 한 시름 돌리게 된 목검문주는 다시 목검의 위력이 되살아나 권세의 틈 사이로 검기와 검강지기 를 뿌려 대고 있었다.
위험을 느낀 권마대주가 가장 강력하면서도 자신있는 무공인 파황신권의 일곱 초식을 교묘하게 혼합하며 사용 하고 있었지만 초절정 고수 두명의 협공을 견뎌낼 수는 없었다. 온몸이 검기에 당해 성한 곳이 없었으며 두피 가 벗겨지며 흘러내리는 핏물이 눈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눈으로 피가 흘러들어가 시력이 저하되면 이와 같은 긴박한 대결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권마대주 였지만 손을 들어 피를 닦을 겨를은 물론 내공을 운용하여 피가 눈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할 여유조차도 없었다.
결국 피가 눈속으로 들어가 시야가 뿌여지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진 권마대주는 최후의 모험을 하기로 하였다. 결정적인 수를 사용하여 일단 몸을 빼낸후 촌각의 시간이라도 벌기로 한 것이다. 촌각의 여유라도 생 겨서 내공을 운용하여 눈속에 들어간 피를 증발시켜 버릴수 있다면 약간이라도 생의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적들이 어디를 공격하고 있는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그를 유일하게 지켜줄 수 있는 무공은 권마황에게 전수받은 '혼비장' 뿐이었다.
권마대주가 권마황의 파황신권에 수록된 절세의 초식인 혼비장을 모든 내력을 동원하여 펼치자 권마대주를 중 심으로 팔방이 권마대주의 장세하에 감춰져 버렸다.
목검문주가 권마대주를 향해 날린 수많은 검기들이 완벽히 차단되어 졌으며 권마대주와 목검문주 그리고 검후 의 사이에는 철갑으로 방어막을 친듯 수많은 장영만이 난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혼비장이 절세의 초식으로 파 해가 거의 불가능한 신공이라고 하지만 이미 검후는 혼비장과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
악귀대주와 생사의 결전을 벌이면서 보타문 최고의 무공인 '옥녀산화'의 초식으로 이를 파해 한 경험말이다.
권마대주가 혼비장을 펼치며 목검문주의 수많은 검기를 일일이 가로막고 있을 때 검후의 여래혼에서 살을 에 일듯한 한광이 뿜어나오며 허공중에 형형색색의 화영(花影)들을 피워 올렸다. 가공할 속도로 회전하던 화영들 은 검후의 주변으로 모여들더니 잔뜩 웅크린 용수철이 튀어나가듯 유성처럼 쏘아져 나가 권마대주가 펼친 혼 비장과 정면으로 부딪혀 버렸다.
'옥녀산화'
정말로 가공할 초식이었다.
권마대주가 펼친 방어막을 종이 찟듯 뚫고 들어간 화영들이 호신강기를 연마하여 검기로도 큰 상처를 입힐 수 없었던 철벽같은 권마대주의 몸통에 커다란 구멍들을 뚫어 놓아 버렸다. 그리고 권마대주의 한쪽 머리통 조차 도 박살이 난채 하얀 뇌수를 허공중에 흩뿌리게 하였다. 오늘 목검문을 침습한 마교의 무리들중 권마황을 제 외하고는 가장 강한 권마대주가 죽자 싸움의 형세는 급진전하고 있었다.
초절정 고수인 검후와 목검문주가 성난 호랑이처럼 전장을 누비며 마교의 무리들을 잡초 베듯 휩쓸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래혼으로 번개같은 검기를 뿜어내 독이 묻은 봉미침을 뿌려대던 혈의 대원의 양팔을 절단시킨 검 후가 허공 중에 수많은 잔영을 남기며 청무대주 남궁혼을 핍박하고 있는 마교의 소교주에게로 몸을 날렸다.
마교의 소교주는 검신이 매우 특이한 검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한쪽 검면은 어둠과 동일한 색이고 다른쪽 검면 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상대방이 바라보는 시각 방향으로 검은색 검배를 드러낸체 찔러가면 어둠과 동화된 검신이 눈에 보이지 않았으며 검날을 뒤집으면 검에서 빛이 흘러나와 시력을 방해 하 였다. 검에서 흘러나오는 눈부신 빛은 초식마다 밝기가 변했는데 아마도 내공으로 조절이 가능한 것 같았다.
소교주의 내공과 검술은 청무대주 남궁혼과 백중지세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병기가 우세하고 환술의 비기 가 가미된 보법을 익히고 있어서인지 남궁혼을 시종일관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청무대주 남궁혼의 공수(攻守)가 크게 어지러워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궁세가에서 익히기가 가장 까다롭다는 제왕검법을 십성이상 익혔으며 무림맹에서 청무대주를 맡은 이후로는 무림맹의 절세의 비급들이 보관된 개천원(開天院)에 출입하며 무공이 몇 단계나 진일보된 남궁혼이었다.
상대하고 있는 마교 소교주의 보법이 워낙 신출귀몰하고 사용하는 검이 상대하기 까다롭기 때문에 수비에만 급급하고 있었지만 소교주의 공세에 실날같은 파탄이 드러나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소교주의 검이 회전하자 검에서 눈부신 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반짝이던 검광은 일순간 크게 확대되더 니 피할새도 없이 소교주와 남궁혼의 전신을 덮어 버렸다. 남궁혼이 깜짝 놀라며 소교주를 바라보는 자세로 급히 뒤로 몸을 날려 검광의 세력 범위를 벗어나려고 하였지만 생각 뿐이었다.
검광이 더 환하게 빛을 내며 뒤로 몸을 날린 남궁혼 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덮쳐왔기 때문이었다.
'번쩍'
세상 천지가 온통 광휘에 뒤덮이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소교주의 검에서 발산되어 나오는 검광이 찬연 히 빛나더니 갑자기 거짓말같이 검광이 사라져 버렸다. 검광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토록 환한 빛을 내며 검광을 뿌려 대던 검도 사라져 버리고 소교주의 모습조차도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눈을 뜨고 있었지만 소교주의 모습은커녕 기척조차도 느껴지지 않자 남궁혼은 등골이 오싹하며 전신에서 소름 이 돋아날 정도로 차가운 한기가 스미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디에선가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소교주의 검신에 대한 두려움이 공포가 되어 머릿속조차도 하얗게 탈색되어져 갔다.
탈색되어져 가는 남궁혼의 머릿속으로 언젠가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아버지인 창궁대연검(蒼穹大衍劍) 남궁진 이 제왕 검법을 가르치며 유독 강조하던 절대무심(絶對無心) 이라는 단어가 스치어져 갔다.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의 경지를 넘어 절대 무심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제왕검법을 십이성 달성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설명은 그 당시 일체유심조의 의미조차 확연히 깨닫지 못했던 남궁혼에게는 너무나 현학적인 가르침 이었다.
몇 년동안 무공을 수련하고 주변에서 감탄할 정도의 속도로 무공이 급진전 하여 제왕검법이 십성에 이르른 지 금에 이르러서야 일체유심조의 의미가 서서히 가슴에 녹아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 야 일체유심조가 선명히 깨달아지고 절대 무심의 경지조차 조금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운명은 참으로 야속하구나!
생각을 하는중에 두려움에 질려 창백해져 있던 남궁혼의 얼굴이 평온한 안색을 되찾아 갔다. 자신이 죽을 것 이라는 것에는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고수들간의 대결에서 눈앞에서 공격하는 상대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기 척조차 느낄 수가 없다면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비록 죽음의 순간이 덮쳐 왔지만 커다 란 심득을 얻었기에 가슴 한편에는 희열의 불씨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이미 몸 가까이에 다가왔을 소교주의 공세를 막을 확률이 전무하였지만 무사로써 검을 늘어트린 채로 죽을 수 는 없었다. 방금전 깨달음으로 십일성의 경지에 오른 제왕검법을 멋있게 펼치면서 죽고 싶었다. 그러자 남궁 혼은 제왕검 법 중에서 최후의 절초이면서 아직까지 그 오의를 깨닫지 못해 연습시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펼쳐 보지 못한 제 왕 현신(帝王現身) 이라는 초식을 펼쳐 내었다.
제왕현신이라는 초식은 화려한 초식이 아니었다. 허리를 꽂꽂이 펴고 의젓한 자세로 만조백관(滿朝百官)을 어 우르듯 검을 허리정도 높이로 올려서 검극을 약간 아래쪽으로 기운채 천천히 휘두르는 초식이었다. 현재 남궁 혼은 소교주와 혈전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조차 없었고 자신이 검식을 반의 반도 펼치지 못한 채로 소교주의 검에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생각조차도 모두 잊은 상태였다.
이미 죽음을 기정 사실로 받아 들이자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지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과 집착조차도 훌훌 털 어 버리고 이제 막 태어난 아이와 같은 순수한 영혼으로 자신이 펼쳐 가고 있는 제왕현신 이라는 초식조차도 잊어 가고 있었다.
소교주의 검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다 사라진 직후 소교주가 땅을 박찬 후 남궁혼의 머리 위쪽으로 솟 아 올라 검빛을 감춘채 가공할 기세로 떨어져 내려오자 달려오던 검후의 손끝에서 하얀 빛이 번뜩이었다. 너무나 다급한 상황에 빙검 여래혼을 이기어검(以氣馭劍)의 수법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검후는 아직 이기어검의 수법을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이기어검을 익히기 위해서 수련을 안한 것은 아니지만 할 때마다 기력이 딸려 여래혼을 조정하는데 실패하였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래혼이 나아가는 기세는 일반 고수들이 탈수검의 수법으로 던진 기세와는 천양지차(天壤之差)였다.
비록 던져진 검을 완벽히 조절할 수는 없었지만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던져진 검의 위력이 평범할 리는 없었다.
자신이 소교주로 등극하는 날 증조 할아버지인 마교 교주는 뜻밖의 선물을 하사하였다.
오백년전 천하를 피로 물들였던 지옥검선(地獄劍仙)의 유물인 불마지검(佛魔之劍)이라 불리는 절세지검과 불 마검보(佛魔劍譜)라 불리는 무공서였다.
총 칠십이식으로 이루어진 불마검보의 후반 십팔식은 소교주가 생각하기에도 절세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익히기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소교주의 내공과 총명으로 몇 년동안 수련하였는데도 후반 십팔 초식 중 단 두가지의 초식밖에 익히지 못하고 있었다. 공격을 위한 초식인 지옥겁화(地獄劫火)라는 초식과 수비를 위한 초식인 둔신무간(遁身無間)이라는 초식이었다. 게다가 둔신무간이라는 수비초식은 완전하게 익힌 것도 아니었다. 무림맹의 젊은 무사들의 우상이라는 남궁혼을 맞이하여 불마검보의 전반 오십사식을 펼치던 소교주 는 기회를 맞아 지옥겁화라는 초식을 펼쳐 남궁혼을 사지로 몰아넣기 일보 직전에 여래혼이 절대의 기세로 날 아오자 심 중에 갈등이 일 수 밖에 없었다.
눈 한번 깜박일 시간이면 남궁혼을 저승으로 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밑에 위치한 남궁혼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어린 아기에게 무거운 검을 쥐어 준 것처럼 매우 느린 속도로 검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쉽게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소교주는 불마지검을 들어 남궁혼의 뒤쪽에서 날아 오 는 검을 막아 갔다.
남궁혼은 다시 또 죽일 기회가 찾아 오겠지만 자신의 목숨은 한번 죽으면 되살아 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불 마지검에 내공을 더 불어넣어 검기라도 쏘아 보낸 후 날아오는 검을 막고 싶은 마음이 해일같이 일었지만 그 럴 수도 없었다. 검세를 보니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검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공이 아무리 절정의 경지에 이르러 있지만 아직 이기어검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혼신 의 힘을 다하여 불마지검에 내력을 쏟아 부으면서 그가 익힌 수법중 최강의 수비식인 둔신무간 이라는 초식을 전개하였다. 불마지검의 검영이 소교주의 전신을 철옹성처럼 감싸자마자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날아온 여래혼 이 검막과 부딪혔다.
'팍...파바바박'
여래혼과 불마지검이 부딪히면서 수많은 불꽃들이 허공중에 발생하다가 사라져 갔다.
비록 검후의 내력이 모자라 여래혼의 검세가 불마지검에 부딪히면서 약화되어 졌지만 그래도 이기어검의 수법 을 발휘하여 날아온 여래혼이었다. 완벽히 시연하면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도 살아 남을수 있다는 의미로 명 칭 되어진 수비에 있어서는 최강의 초식인 둔신무간이라는 수법으로 방어하기는 하였지만 소교주의 신형이 여 래혼의 검세에 뒤쪽으로 떠밀려 갔다.
하지만 비록 불완전하지만 이기어검이라는 절세의 초식으로도 소교주의 몸에 상처하나 낼 수 없는 것을 보면 불마검보 후반 십팔 초식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날아든 검후의 여래혼 조차도 거뜬히 막아내자 소교주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검후가 아직 이기어검을 온전히 시연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내상을 입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둔신무간이라는 초식을 펼쳤던 소교주였다.
그런데 검후가 날린 여래혼은 힘을 잃고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는데도 자신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았던 것이다. 내심 가슴 뿌듯한 희열이 용솟음쳐 왔다. 하지만 희열의 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
눈앞으로 감히 대적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기세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검후조차도 공세를 펼치기 힘 든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 누가 이토록 절대적인 검세를 펼쳐낼 수 있다는 말인가?
설마! 다 죽어가는 몸짓으로 자신이 있는 방향을 향해 무기력한 손짓을 하던 남궁혼?... 절대로 믿을 수 없었 다. 하지만 눈앞으로 닥치고 있는 것은 검후가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날린 검세에 뒤지지 않는 절대적인 검력 이었다.
헛바람을 들이키며 소교주가 재차 둔신무간의 수법을 전개하였지만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팍, 파바박...'
'큭!'
절세의 방어 초식인 둔신무간이 들이닥친 검세의 예리함만은 간신히 막아 내었지만 그 거대한 기세를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쇠망치로 가슴을 두들겨 맞는 듯한 충격과 함께 소교주가 입으로 선연한 피를 흩뿌리며 공중으로 날아갔다.
한편 목검문의 수련장으로 쓰고 있는 넓은 공터와 삼층전각이 좁다는 듯 지상과 공중에서 종횡무진(縱橫無盡) 싸우고 있는 은성이와 권마황의 싸움은 더욱더 치열해져 가고 있었다. 청색 강기로 둘러싸인 은성이의 몸이 돌개바람을 일으키면서 가공할 속도로 회전하며 폭룡처럼 십장 높이에 있는 권마황을 공격해 들어가면 권마황 의 권강이 실린 권세가 무지막지한 기세로 연달아 땅쪽으로 내리 꽂혔다.
대지가 울리는 굉음과 함께 은성이의 양손에서 뻗어나간 청룡과 백호의 성난 기세도 권마황의 권각과 장영에 위세가 약화되어 권마황의 호신강기를 뚫지 못하였다. 그리고 권마황이 파천의 위력이라고 자랑하던 파황신권 이십구초도 은성이의 이형환위 신법과 사신권법 앞에 큰 위세를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권마황의 안색은 시간이 지날수록 벌겋게 변해가고 있었지만 은성이는 전혀 안색의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처음보다도 더욱 더 여유만만해진 은성이었다. 권마황같이 권강과 장강을 사용하고 강기조차 막아내는 호신강기를 사용하는 권법의 고수와 싸워 본 경험이 전무한 은성이는 처음에 권마황과 싸울때는 조금 긴장하 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몇 번의 공수(攻守)속에서 온 무림이 두려워 하는 권마황의 공세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 은성이는 이제는 권마황과의 대결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광한전의 사조들에게서 직접적으로 사사받은 후 그 자신의 독문 내공인 태극진기를 가미하여 절세적인 권법으 로 변모시켰지만 실전 경험이 별로 없는 사신권법과 사상금나술법을 사용하여 권마황과 대적하면서 실전 수련 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거기다가 권마황이 펼치는 파황신권의 초식까지도 눈여겨 봐두고 있었다. 은성이가 생각하기에도 내공과 경신술은 자신이 우세하였지만 초식 자체로 보면 권마황이 펼치는 초식이 사신권법보다 도 더욱 더 정교하고 교묘하였다.
파황신권과 상대를 하면서 배우는 것이 무척이나 많은 은성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우로워지는 은성이와는 달리 권마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 지고 있었다. 목검문의 문 도들이야 그 혼자서 쳐들어와도 능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던 권마황이었다. 소교주가 초청할때만 하여도 결코 이렇게까지 어려운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소교주가 데리고온 혈의대와 지옥대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하던 오늘 밤의 대결이 그 자신과 권 마대 까지도 동원되었건만 목검문측에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밀리고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사방을 둘 러보니 마교측의 생존자는 별로 보이지 않고 있었다. 조금전에 는 그 자신이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자신의 수 족이랄수도 있는 권마대주까지도 처참하게 죽어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주변을 돌보아 줄 여력은 커녕 잠시 한눈도 팔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묶여 있 는 상태였다. 느닷없이 나타난 새파랗게 어린 놈과 생사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권마황 자신조차도 이 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나이 어린 놈의 무공수위는 놀라울 정도였다.
그의 천변만화하는 절세적인 공격을 환술이라고 믿어야 할 정도로 가공할 속도로 피해 사라진 후 어느새 전후 좌우뿐만 아니라 허공중에서 불쑥불쑥 나타나 공격하는 신법은 물론이고 무슨 내공을 익혔는지 두자 두께의 철판도 종이장처럼 뚫어 버리는 강기의 공세에 부딪히고도 충격을 받은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가 펼친 강기의 공세를 슬쩍슬쩍 몸 밖으로 흘리는 수법을 펼치는 것 같았다. 도저히 이대로는 승세가 보이 지 않는다고 판단한 권마황이 막대한 내공 소모로 최후의 순간에만 펼쳐야 한다는 천마행보의 초식을 펼쳐 내 었다. 그만큼 상황은 다급해져 가고 있었던 때문이다.
권마황이 천마행보의 초식을 펼쳐 순식간에 열여섯명으로 불어나자 이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권마황을 상대 하던 은성이의 안색에 긴장이 어리어졌다. 예전에 신검을 조정하던 마교의 전대 장로 적발지마와의 치열했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화룡검을 사용할까 생각도 하여 보았지만 적수공권(赤手空拳)의 상대에게 검으로 대적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 지만 방금까지와 같은 상태로는 열여섯 명으로 불어난 권마황과 대적할 자신이 없어지자 은성이는 지금까지 개방하지 않았던 중단전을 열고 태극진기를 보강하였다.
열여섯명의 권마황이 초식을 달리한채 일시에 은성이에게 달려들자 모두가 실체 같아 보였다. 천지 사방은 권 마황의 모습으로 가득했고 어디를 피해도 권마황의 권강과 장영속에서 벗어 날수가 없었다. 조사지공인 일시 무시일의 보법은 물론이고 이형환위의 신법까지도 극성으로 시전하고 있었지만 우세한 형세가 아니었다.
호신강기를 운용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비록 정통 으로 가격당하지는 않았지만 권마황의 권강에 스쳐 호신강기가 흔들리기까지 한 은성이는 서둘러 묵귀영의 신 법을 펼쳐 내었다,
심해 오백장 깊이에서 엄청난 수압을 견뎌내며 익힌 신법이었다. 순간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던 권마황의 수 많은 그림자 속에서 갈곳 몰라하던 은성이의 신형이 느닷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권마황의 그림자 속에서 미미한 공기의 파동이 느껴지는 곳이면 영락없이 한 명의 권마황이 실체를 잃어 버렸다. 너무나 빨리 움직이 기에 은성이의 신형이 인간의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황한 권마황의 분신들이 허공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세를 가하고 있었지만 별무소용(瞥無所用) 이었다.
일다경(一茶頃)도 되기전에 권마황의 숫자가 반이나 줄어들어 버렸다. 이제서야 약간의 여유를 가지게 된 은 성이는 끊임없이 묵귀영의 신법을 발휘하면서 심안을 운용하였다. 이 두가지의 절세의 기공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해저에서 혈문어와의 혈전을 벌이면서 갖게 된 능력이었다.
그러자 육안으로는 도저히 허실을 가릴 수 없었던 권마황의 실체가 심안에 포착되어졌다. 남아있는 여덣명의 권마황중 실체가 있는 권마황을 가려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즉시 몸을 날려 권마황의 실체에 다가선 은성이는 권마황이 자신이 있는 쪽을 향해 권세를 휘둘러 오자 뜻밖 이라는 표정으로 몸을 회전하며 옆으로 피한 후 권마황을 향해 다시 공격을 가하였다. 그런데 권마황은 이 번에도 역시 자신이 공격하는 방향을 향해 강기가 어린 장영을 퍼부어 대고 있었다.
사라진 허상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권마황의 분신들은 잠력을 극대화시킨 실체에 의해 조정되고 있었지만 스스로의 판단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은성이가 곁에 와도 눈치채지 못한채 잠력이 극 대화된 실체가 원하는 초식과 방향으로만 공격을 해대고 있었다. 그래서 은성이의 공격에 쉽게 당하여 소멸되 어 갔지만 권마황의 실체는 눈으로만 형세를 판단하지 않고 오감에 육감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은성이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자신을 향해 어느 방향에서 공격해 오고 있다는 것은 어 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 모두가 천마행보를 펼치기 위해 그가 가진 잠재력을 모두 동원한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천마 행보를 펼치기 위해서 잠재력을 극대화시킨 권마황조차도 중단전의 태극진기까지 동원하여 묵귀영의 신법을 펼치는 은성이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해 낼 수는 없었다.
운이 좋게 한두번 까지는 피해낼 수 있었지만 실력 차이가 크면 운이 작용하는 데에도 한도가 있었다.
'펑!'
급기야 권마황의 호신강기에 은성이의 권강이 부딪히자 권마황의 신형이 뒤로 오장여나 밀려나 버렸다.
'읔...!'
권마황의 신음 소리와 함께 아직까지 은성이를 향해 파황신권을 퍼부어대던 권마황의 분신들이 일시에 소멸되 어 버렸다. 오장여정도나 밀려난 권마황의 앞쪽에는 밀려나면서도 두발에 내력을 쏟아 버티고자 하였는지 두 줄기 깊은 고랑이 파여져 있었다.
권마황을 가격할 때 느껴지는 감각으로는 권마황이 내상을 입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지만 상처입은 호랑이 를 방치해 둘 수가 없었다. 급히 권마황에게로 달려간 은성이의 손에서 여의주와 같이 환한 빛을 뿜어내는 둥 근 구체가 형성되어 지더니 권마황에게로 짖쳐 들어갔다.
청룡권법 최후의 살초인 사룡투주(死龍投珠)의 초식이었다. 비록 밀려나는 와중에도 호신강기를 흐트러 놓고 있지 않던 권마황이었지만 강기를 뭉쳐서 이기어검처럼 던져진 공격에 정통으로 맞자 밀려나는 권마황의 입에 서 폭포수같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뻣뻣이 선채로 밀려나던 처음과는 달리 이번에는 돌덩이처럼 땅바닥으로 굴러가며 다시 뒤쪽으로 십여장이나 밀려나 버렸다. 그런데 권마황이 은성이의 사룡투주의 초식에 정통으로 가격 당한채 뒹굴며 물러나는 자리가 하필이면 마교의 소교주가 남궁혼의 제왕검법 최후의 절초인 제왕현신에 당해 피를 뿌리며 날아가는 방향이었 다.
무인의 자존심 때문에 은성이와 기필코 끝장을 보기 위하여 금지된 마공인 천마행보까지 펼쳤던 권마황이었지 만 소교주가 중상을 당한채 자기쪽으로 날아오자 최후의 잠력까지 모두 동원한채 소교주에게로 몸을 날리었다.
어짜피 자신은 중상을 입어 더 이상 싸울 형편도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소교주는 향후 마 교를 책임질 구성이었다.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소교주가 죽는다면 마교는 희망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다. 장차 마교의 이름으로 중원 천하를 환히 밝혀줄 구원의 횃불이 될 수도 있는 희망 하나를 말이다.
권마황의 결심도 빨랐지만 동작은 더욱더 빨랐다. 극심한 내상을 입었지만 천마행보를 펼치기 위해 촉발한 잠 력으로 날아오는 소교주를 향해 몸을 날려 소교주를 옆구리에 끼자마자 천마처럼 허공을 날더니 순식간에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권마황에게 중상을 입힌 후 다시 공격을 하려던 은성이는 뜻밖에도 권마황이 소교주를 구해서 달아나자 더 이 상 권마황을 공격하지 않았다. 독한 마음을 먹고 공격하면 권마황은 물론 마교의 소교주까지도 달아나지 못하 고 이 자리에서 뼈를 묻게할 자신은 있었지만 그렇게 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권마황이 달아나자 시선을 돌려 검후를 바라보았는데 검후는 멀쩡한 상태였다. 검후만 다치지 않았다면 그의 목표는 달성된 셈이다. 구태여 살생을 해가면서 중원 무림의 일에 깊숙이 개입 할 필요 까지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은성이는 모르고 있었다. 비록 살생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오늘 온갖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무림의 수렁속에 한발을 깊숙이 담그었다는 사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