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47화 (47/152)

■ 제 47장 :

"하하! 네가 마교의 소교주인가 보구나. 그렇다, 야밤에 다른 문파를 암습하고 암중에 독을 살포하는 쓰레기 같은 허접들은 모두 마교에 가입했다고 하더구나."

앙천지독의 중독에서 해독된 제갈인이 목검문측의 대표로 나서며 소교주를 포함한 마교의 무리를 싸잡아 욕을 하였다. 순간 소교주의 한발 뒤에 위치한 권마황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애써 인내하는 모습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소교주는 목검문측에 쟁쟁한 고수들이 몰려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이십대 후반 창백한 인 상의 청년이 앞으로 나서며 말을 하자 그의 정체를 물었다.

"제갈인 이라고 한다. 그런데 말끝마다 욕이 붙어 나오는 것을 보니 입이 무척 구리구나. 가정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데 너만을 탓할 수만은 없지. 쯧쯧..."

은연중 자신은 물론이고 부모님과 할아버지에 현 마교 교주인 증조할아버지 까지도 욕을 얻어 먹고 있는 소교 주이었다.

"네놈이 바로 소제갈 이라는 놈이구나, 그런데 멍청한 청무대 놈들은 지금쯤 모두 경석산으로 향한 것으로 알 고 있는데 네놈이 어떻게 여기에..."

소교주가 약간은 얼떨떨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하자 제갈인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까짓 만천과해(滿天過海)의 수법에 쉬이 넘어갈 이 제갈인이 아니다. 지금쯤 안휘성 마교 지부의 멍청한 혈의 대원들은 청무대원 두명이 낀 무림인들과 경석산에서 한참 술레 잡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하 하하!"

제갈인의 말을 듣고서야 사태를 깨달은 소교주가 신음 소리를 내며 다시 제갈인에게 물었다.

"그럼 어제 저녁에 사천의 천하표국으로 위장하여 들어간 무리들이 바로..."

소교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제갈인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영 돌대가리는 아니구나. 그렇다, 네놈들의 비열한 암습을 눈치채고 남궁세가의 고수들과 함께 천하 표국에서 표물을 운반하는 것으로 위장하여 들어왔던 것이다."

제갈인의 말이 이어질수록 노화가 들끓어 오르던 소교주가 으드득 이를 갈면서 말을 하였다.

"흐흐흐, 역시 듣던데로 영악한 놈이구나. 하지만 네놈이 아무리 영악해도 오늘 생명을 부지한 채로 이 자리 를 떠날 수는 없을 것이다. 공격해라!"

소교주의 외침 소리가 끝나자 내담안은 순식간에 혼전의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싸움이 시작되자 남궁세 가의 장로이면서 남궁혼의 사숙뻘인 천뢰검 남궁력이 제일 먼저 신형을 날려 권마황에 게로 달려 들었다.

평소 마교 십대 장로의 위명을 너무나 많이 들어왔던 남궁력이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남궁세가의 무공 에 대한 자신감에 넘쳐 흐르기도 하는 남궁력이었다. 남궁세가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은 또한 자신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어제 청무대에게서 급전(急傳)을 받은 후 굳이 자신이 가겠다고 지원한 것도 이번에 큰 진전을 보인 천뢰검법 으로 자신의 위명을 강호에 크게 떨쳐 보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비록 자기편에 검후라는 절세의 고수가 와 있었지만 나이도 어리고 소문처럼 초절정의 고수로 보이지도 않았다. 대치하는 중에 마교 십대 장로의 일 인인 권마황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을 찾을 수 있었지만 그도 삼두육비(三頭六臂)의 괴물이 아닌 사람이었다.

십성을 넘어 십일성의 경지에 이른 자신의 천뢰검법이라면 밀리지 않고 대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설령 밀 린다 하여도 마교의 권마황과 잠시만이라도 대등한 싸움을 한다면 그 또한 자신의 위명을 높이는 일이었다.

순식간에 권마황과의 사이를 좁힌 남궁력의 손에 든 검에는 검기가 넘실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검을 들어 검의 높이를 권마황의 얼굴 정도로 맞춘 남궁력의 손이 검의 푸른 수실속에서 사라져 버리자 갑자 기 검이 회전하면서 숫자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더니 직경이 두자는 됨직한 원통모양으로 변해 버렸다. 원통 의 끝에는 사방으로 검기를 뿌려대는 수십가닥의 검들이 독사같은 혀를 날름거리며 권마황에게로 날아갔다.

남궁력이 천뢰검에 무궁무진한 변화가 실린 검세를 실어 공격해 오자 '피식' 실소를 베어문 권마황이 일반인 의 장단지만한 팔을 들어 원통의 중심으로 오른손을 뻗어갔다. 그런데 천뢰검의 진정한 오의는 아직 펼쳐지지 않은 것 같았다. 권마황이 한손을 들어 검세로 둘러싸인 원통의 중앙으로 돌진해 오자 원통형의 검세들이 한 곳으로 뭉쳐지는가 싶더니 천뢰처럼 반짝이는 빛을 내면서 권마황의 주먹과 부딪혀 가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변화였다.

자신이 의도했던 데로 완벽하게 천뢰검의 절초가 펼쳐지자 남궁력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남궁력은 그가 펼쳐낸 절초 속의 검세들이 천뢰처럼 빛을 내며 다가오고 있는데도 권마황이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냥 나아가는 것 같았던 권마황의 주먹과 팔 부위에 검강으로도 깊이 상처입힐 수 없는 강기막이 펼쳐져 있다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권세가 무지막지한 기세를 싣고 눈에 보이는 주먹보다 석자나 먼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더 더군다나 알 수가 없었다.

'퍼어억'

남궁력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져 나가는 소리였다. 머리가 떨어져 나갔는데도 남궁력의 육체는 무슨 미련이 그리 남았는지 허공을 향해 의미없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허망하게 땅으로 쓰러져 버렸다.

순식간에 목검문측 절정고수 한명이 어이없이 죽어가자 전세는 마교측으로 기울어 지는 것 같았다. 강호에 이 름이 나 있던 천뢰검 남궁력을 일초에 즉사시킬 수 있는 초절정 고수인 권마황의 무위에 혼전을 벌이고 있던 목검문측 고수들의 안색이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자 아직까지 상대를 정하지 못하였던 검후가 빙검 여래혼을 뽑아들고 권마황에게로 달려들었다. 평소 자 신의 사부이자 전대 검후의 무공경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검후였다. 자신이 앞으로 이십년을 더 수련하 다고 하여도 도달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경지에 다다른 사부님이 두달전 마교의 광명우사에게 그것도 일대 일 대결에서 패하여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믿을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 때문에 마교의 수뇌부들이 익힌 무공의 경지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보고 있는 검후였다. 결코 남궁력처럼 경솔하게 달려 들 수가 없었다. 호신 강기를 돋우면서 여래혼에 한자 반은 될 듯한 검강을 실은채 로 보타문에서 내려오는 절초중 공수가 자유로운 천녀유한(天女有恨)이라는 검법을 시전 하였다.

권마황도 검후가 검강지기가 실린 여래혼으로 팔방을 제압하며 검초를 시전하자 경시하지 못하고 그의 절세의 무공인 이십구초 파황신권을 시전하기 시작하였다. 피독주를 탈취하려는 악독이마를 제압한 은성이는 소교주 와 제갈인의 치열한 설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해독을 마친 정씨 자매와 함께 전각 앞에 도착했었 다.

그런데 마교의 소교주라는 사람을 보자 왠지 모르게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세히 이목구비를 살펴보면 처음보는 사람이 분명하지만 구면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은성이는 그 옆에 서 있는 칠척 거구의 노인을 보고는 몸을 잔뜩 긴장시켰다. 그냥 가만이 서 보는데도 불구하고 노인에게서는 태산같은 진중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저 노인이 마교의 절세고 수이며 십대 장로중의 한명인 권마황 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은성이는 권마황의 전신을 샅샅이 살펴보게 되었다.

역시! 절대 고수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지만 권마황의 자세에는 한치의 빈틈 조 차 없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어떠한 공격을 가해 오더라도 가장 유효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전신의 기를 적절히 배치시켜 놓고 있었다. 정중동(靜中動)의 원리에 따라 움직임이 없으면서도 상대방을 꼼짝 달짝 못하 도록 완벽하게 옭아메고 있었던 것이다.

은성이가 자신을 내면 깊숙이 까지 관찰하고 있는 것을 느끼기라도 하듯이 권마황이 시선을 돌려 은성이를 바 라 보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소교주의 심기를 흐트리고 있는 제갈인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은성이의 눈 빛에서는 그 무엇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싸움이 일어나고 남궁력을 즉사시킨 권마황에게 검후가 여래혼을 뽑아들고 달려들자 은성이는 더 이상 방관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검후도 초절정 고수이지만 은성이가 보기에는 남궁력을 일초식에 즉사시킨 권마황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검후가 빙검 여래혼을 흔들자 흙조차 얼어붙어, 동토의 대지위에 하얀 검강이 무서리처럼 자욱하니 피어올라 공간을 파쇄시키며 권마황에게 짖쳐 들어갔지만 권마황의 진각 한 번에 얼었던 대지가 터져 나가며 검후를 뒤 덮어가고 어느새 도약하여 내지르는 장영은 검강사이로 빈틈을 만들며 쇄도해 가고 있었다.

빙검이 순식간에 수십개로 불어나며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장영을 맞이하면 어느새 부채 모양의 손잡이 부근 으로는 권마황의 혼비각이 아른거렸다.

폭풍같은 권세를 뻗어내어 검강지기를 내 뿜는 여래혼의 검적(劍跡)을 변화시키고 여래혼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검기 다발은 권마황의 강기막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막대한 진기를 소모해 가며 권마황과 대적하던 검후가 권마황을 물리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그녀가 익힌 가 장 강한 초식인 옥녀 산화의 초식을 펼치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찰나에 은성이가 끼어 들어왔다.

권마황은 권강을 발해 한자는 되어보일 정도로 커진 주먹을 내지르다가 갑자기 옆에서 다가오는 가공할 기세 에 흠찟 놀라 놀라운 신법으로 일장여나 물러났다. 그런데도 권마황의 옆구리를 노리고 달려드는 기세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 짖쳐 들어오고 있었다.

엉겁결에 재차 몸을 날리면서 권강을 발휘하여 기세에 맞서가던 권마황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새하얀 백호가 두자는 됨직한 아가리를 쩍 벌린채로 지척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이다. 피할 겨를이 없음을 느낀 권마황이 권 강을 발하는 양손에 재차 혼신의 내공을 불어넣었다.

"꽝...꽈과과광."

양쪽의 기세가 마주치자 마주친 자리의 땅바닥이 솟아올라 하늘을 뒤덮고 내담을 덮고 있던 기와들이 부서지 며 폭풍우처럼 쏠려 나갔다.

주변의 공기가 미친 듯이 회오리치고 있었으며 근처에서 싸우던 몇 명은 기파에 휩쓸려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하지만 아랑곳 없다는 듯 흐릿한 잔영 두 개는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며 새끼줄 처럼 얽혀 돌아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전각의 삼층 지붕위로 자리를 옮긴 듯 전각의 기와들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맞부딪히고 있었다.

두 사람의 권세가 맞부딪힌 전각의 한쪽 모서리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내지르는 권풍에 스친 창문이 폭죽처 럼 터져 나갔다.

은성이가 연달아 내지르는 권마다 백호가 되어 수많은 백호가 권마황에게로 몰려가면 권마황의 몸이 순식간에 몇 개로 불어나며 사방으로 수십개의 장영을 뿌려댔다. 몇 번만 시전해도 내공소모로 더 이상 무공을 발휘할 수 없다는 권강과 호신강기가 숱하게 펼쳐졌지만 은성이와 권마황의 권세는 줄어들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치열해져 가고 있었다.

생사의 격전은 은성이와 권마황만이 치루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목검문 삼층 전각앞의 연무장으로 사용되는 공터에서는 잔혹한 죽음의 사신이 미친년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목검문측의 고수들과 마교의 고수들은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죽음의 혼전을 벌이고 있었다. 은성이가 권마 황과 한치의 밀림도 없이 대등한 실력으로 대적함에 따라 상대할 적수를 잃어버린 검후가 장내를 훓어 보았다.

마교의 소교주는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무위를 보이고 있었다.

무림맹의 젊은 인재들 중에서 맹주의 제자들을 제외하고는 실력이 제일이라는 청무대주 제왕검 남궁혼이 밀리 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하지만 쉽게 패할 것 같지는 않았다.

혈의 대주와 대적하고 있는 지룡문의 장로와 소교주의 호위들과 대적하고 있는 제갈인과 정씨자매 등 청무대 원들도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소교주의 호위 한명과 싸우고 있는 호견아와 대나무 삿갓을 눌러쓴 절정 고수를 상대하고 있는 목석철은 금방이라도 상대방을 제압할 것 같은 우세한 형세이었다.

무엇보다도 급한 곳은 덩치가 산만한 사내와 대결하고 있는 목검문주였다.

검후가 보기에 목검문주인 목진영의 무위는 절정의 경지를 넘어 초절정의 경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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