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44화 (44/152)
  • ■ 제 44장 :

    '인시초(03:00시)'

    교교하게 하계를 내려다 보는 달빛이 구름사이로 잠시 몸을 감추자 삼두 마차 두 대는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 을 넓직한 목검문의 굳게 닫혀진 정문 방향으로 두 부류의 무리가 달려 들어갔다.

    검은 옷을 입고 가지각색의 십팔반 병기들을 든 오십여명의 무리와 짧은 머리에 하나같이 기골이 장대하고 위 맹해 보이는 이십여명의 무리였다.

    먼저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이 높이가 삼장여는 됨직한 목검문의 정문을 뛰어 넘었다. 목검문의 위명 만큼이 나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정문 지붕을 살짝 밟으며 검은 옷을 입은 무리는 좌우로 반반씩 나뉘어 졌는데 그 들이 쏘아져 가는 방향은 검은 숲과 목검문의 문도들이 거하는 가옥들이 위치한 곳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무리와는 달리 짧은 머리에 장대한 덩치의 무리들은 행동하는 데에 절도가 있었다. 생긴 것과 는 달리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에 거의 뒤지지 않는 속도로 목검문의 정문 가까이 다가선 후 일행중 제일 앞 에 위치한 네명이 재빨리 정문 앞으로 다가갔다.

    목검문의 정문은 목재로 되어 있었지만 문 한짝의 나비가 이장에 달하고 높이는 삼장여에 두께도 한자가 넘었 다. 게다가 이백년 전에 목검문의 건물을 신축할 때 특별히 정문에 사용되는 목재는 특수 처리를 하였었다.

    목재가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삼년동안을 바닷물 속에 담가 놓았다가 꺼낸 후 불이 붙지 않는 기름에 나무를 넣고 튀기듯이 쪄서 나무의 강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나무는 썩기 마련이지만 목검문의 정문은 더욱 더 단단해져서 섣부른 칼질에는 긁힌 흔적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목검문의 문도들은 단단한 정문을 서역 어디에선가 자란다는 쇠처럼 단단한 철주목(鐵柱木)에 빗대어 철주문 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굳게 닫혀진 철주문 앞에 마보를 하고 선 두명의 장정들이 주먹을 가슴 뒤쪽으로 끌어 당겼다가 앞으며 비틀면서 철주문을 내리쳤다.

    참으로 당랑거철(螳螂拒轍)같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발생 되었다.

    '콰아앙·우지직..터엉'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그 단단하고 육중한 문이 부서지며 정문 안쪽으로 날아가 내동댕이 쳐진 것이다.

    정말로 놀라운 공력이 아닐 수 없었다. 가벼운 판자처럼 정문이 찢겨지며 목검문 안쪽으로 날아가 땅바닥에 떨어지자 문을 내리친 두 장정의 뒤에서 발경하는 그들을 보호하던 두명의 사내가 잽싸게 앞으로 나서며 사주 경계를 하였다.

    그리고는 문 앞에 위협 요인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눈을 빛내며 뒤쪽으로 신호를 보냈다. 네명이 합류된 이십 여명의 덩치 큰 무리들은 정문을 지나 순식간에 목검문 안으로 들어섰다. 목검문 안에는 벌써 아비규환(阿鼻 叫喚)의 싸움터로 변해 있었다.

    좌우로 나뉘어져 몰려간 지옥대가 목검문을 방어하는 인물들과 싸우고 있는지 건물과 숲에서 무기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짧은 머리의 무리들은 그것을 무시하고는 외담과 내담 사이에 위치한 공터를 빠르게 통과하고 있었다.

    이들은 공터 너머에 있는 내담의 정문마저 부수고 목검문의 심처로 곧바로 진격해 들어가고자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의 목검문은 용담호혈(龍潭虎穴)의 장소였다.

    한결같이 짧은 머리인 권마대의 이십여명 무리가 정문을 지나 목검문에서 연무장으로 사용하는 공터를 반도 지나기 전에 내담의 정문으로 부터 삼십여명의 인영이 날아와 권마대의 무리를 덮쳐 왔다.

    "흉악한 마교의 무리를 모두 척살해라!"

    누군가의 입에서 죽음을 부추기는 외침이 흘러 나왔지만 이내 치열한 격전 속에 묻혀져 갔다.

    마교 안휘 지부 소속인 지옥대 오십여명은 목검문 소속으로 보이는 무사 오십여명과 목검문을 돕기 위해 나선 무림인들 이십여명을 상대하고 있었지만 긴장된 듯한 눈빛을 흘리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평소 밥 먹듯이 해 오는 일이 살인이고 저녁 달을 보듯이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죽음이었다.

    지옥대에 들기 위한 처절한 훈련과 암투 속에서 반수 이상이 죽어 갔으며 가장 친한 동료의 죽은 인육으로 배 를 채우며 한을 다져왔던 지옥대였다. 목검문도들이 목검으로 진검을 자르는 검기를 뿌려대고 눈 앞을 검영으 로 가득 채울 정도의 무위를 보이고 있었지만 대련과 이론으로만 익힌 검법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실전속에서 본능적으로 익힌 지옥검에는 빈틈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목검문의 문도들이 내공도 높고 훨씬 다양하고 고급스런 초식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지옥대와의 싸 움에서는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목검문의 위험을 알고 죽음을 무릎쓰고 도와 주러온 이십여명의 협의 지사들 또한 마찬 가지였다. 나름대로 무공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교의 전설은 높고도 높았다.

    권마대와 남궁가의 검수들의 싸움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권마대의 대원들은 왼손에는 강철로 된 팔목 보호대를, 그리고 오른 손에는 손가락 네 개가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강철로 된 수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권법을 펼치다가 위급해지면 팔목 보호대와 수갑으로 남궁가 검수들 의 검을 막아 가면서 싸웠는데 싸우는 기세가 너무나 막강하고 주먹과 발길질에 실린 권풍이 너무나 강해 귀 조차 멍멍하게 울릴 정도였다.

    남궁가의 검수들은 모두가 남궁가 비전의 검법들을 익히고 있었으며 하나같이 고수 아닌 자가 없었다. 삼십여 명의 검수들중 반 이상이 검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검기가 실린 검을 막으면 아무리 강철로 된 보호대라도 팔 목이 멀쩡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권마대원들중 팔이 터진다거나 절단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보아 아 마 무슨 기이한 수법으로 단련시킨 것 같았다.

    권세와 퇴영이 검기 속에서 난무하면서 가끔씩 비명이 들리고 있었지만 형세는 막상 막하였다.

    지옥대에 목검문의 문도들과 협의 지사들이 밀리며 죽어가는 숫자가 늘어나자 내담 안으로부터 인영 한명이 달려 나왔다. 한걸음에 십여장씩을 달려온 인영은 목검을 들고 있었다.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지옥대원 한명이 급하게 장창을 휘둘러 달려온 청의의 인영을 공격했다.

    전륜마창 이라는 초식을 발휘하자 갖고 있던 창이 십여개로 나뉘어지고 각각의 창이 소용돌이 치듯 회전을 하 며 청의 인영에게로 나아갔다. 지금까지 숱한 고수들을 살생했으며 방금전까지만 해도 두명의 목검문도의 가 슴을 꿰뚫엇던 수법이 다시 발휘된 것이다.

    하지만 청의의 인영은 달려오는 기세보다도 더욱 무서운 기세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그리고는 십여개 의 창영(槍影)속으로 스며들어 와서는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순간 목 밑 인후혈에 불로 지지는 듯한 느낌이 전달 되어지고는 이상하게도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인후혈에서 빠져 나가는 목검을 따라 몇 방울 빠져 나가는 핏방울과 함께 전신의 기력이 다 빨려 나간 듯 갑 자기 무기력해지는 것이었다. 서서히 내리 감기는 눈꺼풀을 올리기 위해 최후의 기력을 쓰고있는 권마대원은 청의 인영의 목검이 다른 권마대의 인후혈로 화살처럼 쏘아져 가는 것을 보며 문득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리고 청의인이 사용하는 가벼운 목검에 천년 바위처럼 묵직하고 중후한 기세가 실리어 있음을 감지한 권마 대원은 자신이 최후의 절초로 항상 자랑하는 '전륜마창'에서 느꼈던 부족함을 이제서야 발견 하였다는 듯 입 가에 씁쓸한 미소를 베어물며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소문주 님이시다! 힘을 내라!"

    지옥대에게 계속 밀리고 있던 목검문도들이 순식간에 지옥대원 삼명을 살상한 청의 인영을 보고 함성을 울렸 다. 마교도들이 무섭다고 하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부딪혀 보니 오히려 소문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던 목검 문도들이었다. 마교도들이 밀려오자 건물과 숲속에서 암기를 뿌리고 교묘하게 위치한 은폐물 속에서 암습을 하던 목검문도들은 이내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닥쳐든 마교도들이 암기의 공격과 암습에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회를 엿보며 은 폐하고 있는 목검문도들이 어떻게 발견되었는지도 영문도 모른채 허망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마교도들을 암습 하기 위해 기척은 커녕 호흡조차 죽이며 숨어 있는데 느닷없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에서 검이 날아와 목숨을 끊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닥쳐온 마교도들이 은폐, 엄폐 및 암습을 위주로 하는 살수 수련을 전문적으로 받은 암살자라는 것을 간과한 때문이었다. 뒤늦게야 이 사실을 깨달은 목검문도들은 정면 대결이 더욱 유리하다는 결정을 내리고 일제히 건 물과 숲에서 나와 마교도들과 싸우고 있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목검에 검기를 일으키고 검영을 만들면서 삼백년 전 목검문을 창시한 전설적인 절대검왕의 경지에 다가가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연습하고 수련하였었는데 수련한 보람도 없이 주변의 동료들은 너무나 허망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야수처럼 살기에 번뜩이는 마교도들의 눈빛만 봐도 소름이 끼치고 전의가 상실 되어졌으며 무적의 수법 정도 로 생각하는 검기조차도 별 소용이 없자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 지고 두려움에 지쳐가던 목검문도들이었다.

    마교도들은 백전 노장들 처럼 노련하고 약삭 빨랐으며 말할 수 없이 잔인하고 지독한 독종들이었다.

    죽은 시신을 던지어 사방 천지를 육편과 핏빛 안개로 뒤덮게 하면서 공격해 오는가 하면 한쪽 어깨를 바스라 뜨려 가면서도 목검문도들의 심장에 검을 박아왔다. 눈빛조차 변하지 않고 미친놈처럼 입가에 웃음을 지으면 서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다가오면 소름이 끼치고 보법이 흐트러져 버렸다.

    하체의 중심이 흐트러진 검수의 생명을 지켜 줄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그렇게 목검문의 문도들이 무공 수위 가 높으면서도 지옥대원들의 기세에 눌려 속절없이 죽어갈 때 소문주가 나타나 놀라운 신위로 사기를 높여 주 고 있는 것이다.

    한명을 죽이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던 마교도들이었지만 소문주가 나타나 순식간에 세명이나 죽여 버리자 목검 문도들은 잃었던 용기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곁에서 처참히 유린당하고 있었던 무림 협사들의 기세도 높 아졌다.

    열세였던 목검문과 지옥대의 싸움은 소문주 한사람의 가세로 막상막하의 형세로 돌입하고 있었다.

    목검문의 소문주인 목석철은 지옥대원 두명의 협공을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수법을 이용하여 한 명만을 집중 공격하면서 옆구리쪽에 조금의 빈틈을 만들어 놓았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달려드는 지옥대원의 인후혈에 목검을 넣었다 빼던 목석철은 심한 어지럼증을 느끼자 머릿속에 '쏴' 하는 불안감이 스치어 갔다.

    조금전부터 약간의 어지럼증이 생긴 것을 날카롭게 찢긴 옆구리에서 흘러 나오는 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 었지만 주변 상황을 보니 그것이 아닌 것 같았다. 주변에 있는 목검문도들이 갑자기 공력이라도 소실 되었는 지 힘도 못쓰고 마교도들에게 처참히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내공도 처음보다 형편없이 줄어 있음을 실감한 목석철의 안색이 하얗게 변해져 갔다. 무 리하게 내력을 사용하여 내공이 감소 되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내력이 줄고 있었던 것이다.

    마교도들이 독을 사용한 것 같았다.

    눈을 돌려보니 정문 앞에서 싸우고 있던 남궁세가의 사람들도 막상 막하의 형세를 이루었던 처음과는 달리 현 저히 밀리고 있음이 발견되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해독단을 복용하였을 마교도들에게 한 명도 남김없이 몰살될 것이라고 생각되자 등허리로 식은 땀이 흘러 내렸다.

    판단은 신중하고 결행은 신속함이 병가의 기본이었다.

    "내당안으로 후퇴하라!"

    내공을 모아 크게 외친 목석철은 후퇴하는 목검문 문도들과 무림 협사들의 퇴로를 열기 위해 남아있는 혼신의 내공을 전부 끌어 올렸다. 그리고는 목검을 들어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성난 이리처럼 날뛰는 마교도들을 향해 봄날에 하늬작거리는 나비의 춤사위와도 같이 부드러운 검초를 시전했다.

    취팔선보보다도 더 기괴한 목석철의 보법은 마교도들의 십팔반 병기 속에서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그리고 쉴세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시전했던 천근의 무게를 지녔던 검초는 한 깃의 깃털 보다도 더 가볍게 하늘을 유랑하였다. 그러나 한 없이 유약해 보이는 검초속으로 몸을 들이밀던 지옥대원 두명이 두 눈을 스쳐간 검날에 동시에 실명하자 더 이상 목석철의 부드러운 검법을 무시하는 지옥 대원은 없었다. 하지만 지옥대주의 폭풍륜 두 개가 눈이라 도 달린 듯 폭풍같은 기세를 싣고 공격해 오자 목석철의 신비한 검법도 스스로의 안위를 지켜야 할 정도로 입 지가 좁아져 갔다. 목검문의 모든 상황이 일목 요연하게 바라다 보이는 삼층 전각에서 제갈인은 마교도들과의 대결을 조용히 지 켜보고 있었다.

    '제갈 가문'

    제갈 공명을 조상으로 하는 천재들의 가문이면서 전설적인 기인인 포박자의 후손이라는 마교의 포씨가문과 숙 명적인 대결을 벌이고 있는 병법과 지략의 가문이었다. 그리고 제갈인은 사숙이면서 무림맹 총관인 환제갈 제 갈뇌와 무림맹주의 둘째 제자인 신제갈 제갈천 다음으로 손꼽히는 소제갈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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