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3장 :
"안휘성에서 며칠 사이에 육합문과 양가보가 연달아 무너지자 저희 무림맹에서는 흉수를 찾기 위해 정보망을 안휘성에 집중시켰습니다. 그결과 안휘성 곳곳에서 마교도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고 치밀한 작전 끝에 점 조직으로 운영되는 마교 암룡원 소속의 정보원 한 명을 사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오늘 마교도들이 목가문을 치려 한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정확한 정보인가요?"
혹시나 고육계(苦肉計)가 아닌가 하는 염려에 검후가 말을 하였다.
"이중 삼중으로 확인한 결과 확실한 정보입니다."
제갈인이 장담한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혹시 마교에서 목가문을 치려는 이유나 목가문에 오기로 되어 있는 마교 고수들에 대한 사전 정보도 알아 냈 나요?"
검후가 핵심적인 요소만을 골라서 질문하자 제갈인의 깊고 혜안이 서린 눈에 잠시 감탄의 기색이 흘러 나왔다.
"불행하게도 저희가 사로잡은 마교의 정보원이 알고 있는 사실이 적어서 거기까지는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남궁 세가를 치기 위해서 남궁 세가의 손과 발이 될 수 있는 세력들을 먼저 무너뜨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남궁세가를요?"
검후가 깜짝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남궁세가는 이곳 목가문이나 이미 무너진 육합문과 양가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 세력이었다. 정도 무림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구파 일방 오대세가 가운데 하나이며 안휘성의 최대 무벌이자 알려진 고수보다 알려지지 않은 고수가 더 많다는 잠룡지처였다. 아무리 절정 고수들이 널려있는 마교라고 하여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가문인 것이다.
"다행히 마교의 암계에 대한 정보가 입수되어 대책을 세울 수는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대책이 미흡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제서야 정보를 듣고 동원할 수 있는 무림인들을 최대한 불러 들였지만 우세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전각 밖에서 적의 침습에 대비하고 있는 고수들과 전각안에 쟁쟁한 고수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갈인은 전 세가 불리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저녁에 목검문을 치기 위한 마교도들의 세력에 대한 정보가 입수됐다는 말이었다.
"여기 계신 분들로도 전세가 불리하다니... 추측입니까?"
"아닙니다. 마교 십대 장로인 권마황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봤다는 정보가 오늘 저녘에 들어왔습니다. 나름대 로 철저히 준비를 하였지만 오늘 저녁 목검문에 권마황이 온다면 십중 팔구는 저희들의 열세입니다. 다행히 검후께서 가까운 곳에 계시다는 정보를 듣고 이렇게 모셔 온 것입니다."
제갈인은 오늘 처음으로 검후를 보고 또한 검후가 무공을 시연하는 것은 한번도 보지 못하였지만 검후가 마교 십대장로중의 한명인 권마황을 대적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역대 검후들이 사마를 무찌르고 무림에 이름을 떨친 나이는 하나같이 이십세 정도였었다.
검후들에 대한 무용담은 전설이 되어 무림에 널리 펴져 있었고 제갈인도 어려서부터 숱하게 들어온 검후에 대 한 동경과 흠모가 뇌리속 깊이 각인돼 있었던 것이다.
목검문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작은 야산 위에서 두명의 사내가 달빛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칠척은 될 듯한 위맹해 보이는 노인과 각진 얼굴에 서생 차림의 청년이었다. 이들은 무엇이 그리고 기쁜지 시종일관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허허! 소교주, 빈 말이래도 듣기가 좋구려 허허허!"
칠척 거한의 노인이 호탕하게 웃으며 손에든 술잔의 술을 한입에 털어넣자 앞에 있는 서생이 두손으로 공손히 술병을 들어 칠척 거한의 빈잔에 술을 따랐다.
"빈 말이 아닙니다. 본교의 십대 장로중 가장 인간적이고 믿을 수 있는 분이 권마황님입니다. 무공 수위를 따 져도 가장 강하실 것입니다."
소교주라고 불리운 청년의 표정과 눈빛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심만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 고 있었다. 이러한 표정과 눈빛으로 거짓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만약 있다면 천하(天下)가 그에게 속을 것이다.
"허허! 소교주가 이 늙은이를 하늘 높이 띄우시는구려, 더 오르다가는 구름위로 오르겠소이다.허허허!"
띄워주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권마황의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않고 있었다.
"하하! 권마황님의 초절정 무공을 누가 감히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장로님과 권마대는 나설 필요조차 도 없습니다. 목검문쯤은 제 부하들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저 존경하는 권마황님께 달빛에 술이나 한잔 대 접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마치 목검문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쉽게 취할 수 있는 '노류장화' 정도로 생각하 고 있는 소교주였다. 그 기세가 젊은 날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내심 흐뭇한 권마황이었다.
"하지만 소교주, 만사불여튼튼 이라고 목검문을 너무 쉽게 보지는 말구려, 지금이야 인재가 없어 문세가 기울 어져 있지만 삼백년전 불패의 무적신화를 기록한 절대 검왕이 세운 문파가 바로 목검문이오."
"알겠습니다. 장로님."
호쾌하면서도 겸손할 줄 아는 소교주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권마황이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 속에 손을 넣어 낡은 책 한권을 꺼내며 말을 하였다.
"소교주! 내 생전에 이처럼 달콤하고 맛있는 술 맛은 처음이구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는 법.. 술 값이라 생각하고 받아 두구려."
"고..고맙습니다. 장로님."
권마황이 품속에서 꺼낸 책을 건네주자 소교주가 감격에 겨운 듯 떨리는 손길로 책을 받았다. 하지만 권마황 은 소교주가 속으로 득의 만만한 눈빛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릴 수는 없었다.
"소교주! 그 책에는 내 평생의 절학이 담기어져 있소. 수련하다가 막히는 것이 있으면 찾아 오시오."
권마황은 소교주에게 그가 평생동안 갈고 닦은 무공서를 물려주는 것도 모자라서 무공 스승 역할조차 자처하 고 있는 것이다.
'파황신권'
권마황의 절학으로 일권으로 산을 부수고 바다를 뒤집는다는 절세의 무공 비급이었다. 권마황은 그의 직속 부 하들인 권마대원 들에게 공을 세운자에 한하여 한 두가지의 무공 초식을 알려 주고는 있었지만 이처럼 파격적 으로 모든 무공 초식을 전해준 마교도인은 한명도 없었다.
제일 많은 가름침을 받았다는 현 권마대주도 그의 이십구초 파황신권중 칠초식을 배웠을 뿐이었다.
"장로님, 열심히 수련하여 마교 부흥의 초석으로 삼겠습니다."
소교주는 파황신권이 적힌 책자를 품속에 갈무리한 후 좀전 보다도 더욱 공손한 자세로 술병을 들어 권마황의 빈 술잔에 가득 따라 주었다. 그런데 술잔을 받던 권마황의 눈에 이채가 발해지면서 시선을 목검문 쪽으로 돌 리었다. 그러자 목검문 방향으로 화살처럼 쏘아져 가는 세명의 인영이 눈에 띄였다.
"대단한 경공 실력들이구만..., 소교주 아무래도 목검문에서 무슨 낌새를 눈치챈 것 같구려. 더 늦추지 말고 지금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소?"
세명의 인영이 담 밑에서 멈추었다가 야조처럼 담을 넘어 사라지도록 시선을 그쪽에 두고 있던 권마황이 공격 의사를 물었다. 마교 십대 장로의 일인인 권마황조차 자기 마음대로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고 소교주의 의사 를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오늘 행사의 주재자는 소교주인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장로님."
권마황의 권고를 공손한 어조로 수락한 소교주가 갑자기 고개를 뒤쪽으로 돌리며 지금까지와는 달리 단호한 목소리를 내었다.
"혈의 대주!"
"예! 소교주님"
아무도 없었던 소교주와 권마황의 뒤쪽 공터에 붉은 옷을 입은 인영 하나가 부복한 자세로 갑자기 나타나 대 답을 하였다.
"혈의대를 목검문의 패잔병들이 이동할 만한 곳에 잠복 시켜라! 단 한명의 도망자도 없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부복한 자세 그대로 혈의 인영이 핏 하고 꺼지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소교주가 다시 뒤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옥 대주!"
"예! 소교주님"
"너희 지옥대는 목검문을 정면으로 쳐들어가 안에 있는 생명체는 소 돼지를 가리지 말고 닥치는 대로 죽이거 라. 다만 '악독이마' 에게 하독할 시간이 필요하니 인시초를 기해 일시에 기습하여라!"
"알겠습니다."
"악독이마! 너희 형제는 지금 즉시 달려가서 운무독을 펼치거라! 적어도 인시초까지는 하독이 끝나야 한다."
"켈켈! 알겠습니다요 소교주님."
징그러운 웃음 소리와 함께 공터 뒤쪽의 숲이 조금 흔들리더니 두 개의 그림자가 땅에 바짝 붙은채 놀라운 속 도로 목검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 외에 자신의 호위를 맡은 부하 등 몇 명에게 각자의 임무를 부여한 소 교주는 그제서야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잔을 비웠다.
"소교주! 아무래도 좀전에 무림맹으로 들어간 자들이 신경에 걸리는데 밑져야 본전이니 권마대원도 보내는 것 이 어떻겠소?"
권마황이 소교주의 빈 술잔에 술을 따르며 자신이 이끌고 있는 권마대의 고수들을 보내도 좋다는 의사를 표시 하자 소교주도 즉시 찬성을 하였다.
"장로님의 권마대원들이 합세한다면 목검문을 무너뜨리는 시간이 반은 줄어들 것입니다. 하지만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사용하기도 뭐하니 몇 명만 도와 주시지요?"
"허허! 그럽시다. 권마대주!"
권마황이 권마대주를 부르는 소리에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힘이 충만돼 있어 작은 야산 전체가 조용히 울리었다.
"예! 권마황님."
인간 산맥이런가?
권마황의 두배 정도는 됨직한 기골이 장대한 사내 하나가 숲속에서 몸을 날려 권마황의 앞에 섰다. 덩치가 크 면 동작이 느리고 신법이 약해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숲속에서 거리가 십여장이나 되었건만 한번도 땅에 발을 디디지 않은채 권마황이 부르는 소리가 끝나자 마자 권마황의 눈앞에 나타난 권마대주를 보고 감히 동작 이 느리다고 할 사람은 없으리라...
"권마대원들 중 반을 골라 지옥대와 같이 목검문 공격에 나서도록 해라!"
권마황이 권마대주를 쳐다보지도 않고 술잔속에 넘실거리는 달빛을 바라보며 명령을 하였다.
"알겠습니다."
권마대주가 그 육중한 몸을 굽혀 예를 갖춘 후 숲속으로 날아갔다. 별빛에 달빛이 스러져 가면서 밤은 더욱 더 깊어져 가고 시간은 인시 초입으로 접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