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42화 (42/152)
  • ■ 제 42장 :

    "예, 놈들이 조금은 낌새를 눈치챈 것 같습니다. 며칠새에 연달아 사라진 육합문(六合門)과 양가보(楊家堡) 때문에 목검문 뿐만 아니라 안휘성의 모든 무림 문파가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래...? 목검문에 특이한 상황은 없었느냐?"

    방안에 있던 사내의 눈이 살기로 예리하게 번득이며 음산한 목소리로 묻자 복면의 사내가 움찔 몸을 떨며 대 답을 하였다.

    "오늘 낮 동안에 인근 무림인 삼십여명이 목검문 안으로 들어갔지만 우려할 만한 고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대신 무엇이냐?"

    복면의 사내가 뒷말을 흐리자 방안에 있던 사내가 험하게 추궁하였다. 그러자 앞에 부복한 복면의 사내가 큰 죄라도 지은 듯이 황급히 답변하였다.

    "저녁 늦게 사천의 천하표국에서 표물이 당도하여 목검문 안으로 들어간 후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것으로 확 인 됐습니다. 아무래도 목검문에서 밤을 지낼 것 같습니다."

    '흥! 천하표국? 악중양... 오늘 겁운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니 하늘을 원망하거라...'

    "혈의 대주와 뇌승은 어떠하냐?"

    "예, 번뇌마승 장로님께서는 섬서성을 지나 하남성으로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휘성 마교 지부의 혈 의대는 청무대주 남궁혼을 유인하여 경석산(磬石山)으로 유인하는데 성공하였다고 합니다."

    '흐흐! 남궁혼... 네놈이 아무리 날고 긴다 하더라도 아직은 애송이일 뿐이다.'

    방안의 사내는 남궁혼이라는 이름에 대해 경쟁의식이 많은 것 같았다. 남궁혼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과민 반응 을 하며 눈을 가늘게 좁힌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목검문주 목진영! 네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전력을 보강하고 경계를 강화해도 고양이 앞의 새앙쥐일 뿐이 다. 오늘이 지나면 강호상에서 목검문이라는 문파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너는 지금부터 할 일이 있다."

    계속해서 혼잣말을 하던 사내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부복한 복면인에게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소교주님."

    "걸인촌을 뒤져 불쌍해 보이는 아이들을 찾아라! 반드시 형제여야 하고 제일 큰 애의 나이는 열 서너살 정도 가 적당하다."

    "알겠습니다."

    복면한 사내는 소교주가 시킨 명령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고의 생각할 여유도 없이 복종 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이들이 속한 교의 규율이 매우 엄하고 상하 관계가 명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가급적이면 어미가 늙고 허약한 애들을 고르도록 해라. 그리고 애비를 인질로 잡고 어미와 자식들이 보는 앞 에서 팔 하나를 잘라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일 사시초(9시) 까지는 그들이 여기 적힌 내용대로 실수없이 행동할 수 있도록 회유하고 협박하거라!"

    "예, 소교주님."

    "일이 끝나면 뒷수습은 실수 없이 하도록..."

    "알고 있습니다."

    '흐흐! 검후 네년이 협의도와 측은지심을 중히 여기니 내 내일은 측은지심을 보여 주마. 그리고 이은성! 네놈 이 감히 검후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다니... 네놈에게 지옥의 고통이 무엇인지 처절히 느끼도록 하여주마. 으 드득.'

    복면의 사내가 소교주에게서 지시 내용이 쓰인 종이를 받아 갈무리 한 후 들어올 때와 같이 소리 없이 창문을 열고 사라져 가자 방안에 있던 소교주의 얼굴이 서서히 바뀌어져 가기 시작하였다.

    차 한잔 마실 시간이나 되었을까?

    잘생긴 미공자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날카롭게 각이진 얼굴에 매부리코의 청년으로 변화한 소교 주도 흐릿한 잔영만을 남기우고 창문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마교 십대 장로중의 일인인 천면환마의 진전이 작은 객방에서 펼쳐진 것이다.

    한편 소교주라 불리는 사내가 객방을 떠나고 일각여 정도나 되었을 때 검후의 방으로도 손님이 한 명 찾아 들 었다. 은성이와의 행복한 상상을 하다가 마악 잠이든 검후였지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누..누구세요?"

    설마 이 야심한 밤에 은성이가 방문을 두드리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후의 가슴은 심하 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무림맹에서 왔습니다."

    방문 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 왔지만 기대했던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무림맹이라니?

    검후는 바짝 긴장하였다. 예의를 벗어남을 알면서도 이렇게 늦은 시각에 무림맹에서 사람을 보냈다면 긴박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급하게 옷 매무새를 추스린 검후가 촛불을 켠 후 방문자를 방안으로 불러들였다.

    "들어오세요."

    방안으로 들어선 사내는 뜻밖에도 거렁뱅이였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낡은 옷에는 기운 자욱이 매우 많았지만 검후는 거지의 괴춤에 매달린 매듭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땟국물이 흐르는 거지의 얼굴을 보니 이십여세 정 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는데 칠결 제자였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워낙 급박한 상황이다 보니 앞 뒤 가리지 않고 늦은 시각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왔습니다."

    거지치고는 억양도 정확하고 말도 조리가 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눈빛이 살아 있었다.

    "제가 여기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는지요? 그리고 이처럼 긴박한 상황이라면 낮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요?"

    자기가 무림맹으로 간다는 정보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져 있었다. 마교는 물론이고 혹시나 무림맹에 마교의 간 세가 있음을 염려한 검후는 무림맹에도 전혀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무림맹을 향했던 것이다. 절강성에서 안휘 성으로 넘어 온지가 언제인데 어떻게 무림맹에서 자기가 오고 있음은 물론 숙박지까지 간파하고 있었다는 말 인가?

    새삼 마교와 무림맹의 정보망이 두려워지는 검후였다.

    "현재 안휘성의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림맹에서도 정보망을 대폭 강화 시켰는데 다행히 검후님이 여기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보에 따르면 오늘 저녁 마교에서 목검문을 침습한 다고 하여 목검문에 여러 고수들이 대비하고는 있지만 전력이 약세라 늦은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제가 검후님 을 모셔가기 위해 왔습니다."

    한시가 급한 듯 낮지만 빠른 어조로 설명하는 개방 칠결제자의 눈에 다급함이 어려져 있자 검후는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하지만 마냥 서두를 수만은 없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개방의 칠결 제자를 자신의 방안에서 기다리도록 부탁한 검후는 은성이의 방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방문 을 두어번 두드리자 안에서 은성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요?"

    "저예요! 오라버니, 잠깐 들어가도 돼요?"

    그러자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촛불이 켜지고 옷을 추스려 입은 채 은성이가 방문을 열었다.

    "하매! 무슨 일이야?"

    그토록 애타게 갈망하던 검후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 왔는데도 은성이는 별다른 감흥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검후의 눈빛에 초조함이 어려있는 것으로 보아 다급한 일이 생겨서 방문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오라버니,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목검문이라는 정도 문파에 오늘밤 마교도들이 침습한다고 하는데 도와 줘야 할 것 같아요. 같이 가 주실거죠?"

    검후의 부탁이라면 지옥에라도 동행할 은성이였다.

    "그럼 , 하매가 가는 길에 이 오라버니가 빠지면 안되지. 잠깐만 기다려!"

    은성이가 화룡검과 봇짐을 챙기고 방문을 나서며 갑자기 무엇이 생각난 듯 검후에게 말했다.

    "참! 장형에게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 우리끼리 갔다고 섭섭해 할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은성이의 마음과는 달리 검후는 장종무를 데려가는 것에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 같았다.

    "위험한 곳에 같이 가자고 꼬드겼다고 원망할지도 몰라요."

    검후의 말이 옳을 수도 있다고 생각 하였지만 은성이는 장종무와 무림맹까지 동행하기로 약속을 하였으니 목 검문의 일이 끝나면 다시 객방에 와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검후의 뒤를 따랐다. 검후는 뜻 밖에도 자신의 방으 로 들어갔다. 무슨 이유가 있으려니 하며 무심코 검후의 방으로 들어선 은성이는 방안에서 낮선 걸인 한 명을 볼 수 있었다.

    "인사 하세요. 이분은 제 오라버니 인데 목검문을 도와 주기로 약속 하셨어요."

    검후가 개방의 거지에게 은성이를 소개하자 거지는 검후에게 오라버니가 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에 의아해 하면서도 은성이에게 포권을 하면 인사를 하였다.

    "개방 칠결 제자 호견아 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은성이도 따라서 포권지례를 하였다.

    "아! 호형이시군요. 이은성 이라고 합니다."

    "호소협 , 목검문으로 안내 하시지요!"

    검후가 자신의 방에 자기와 은성이의 방값으로 은화 한 냥을 놓아두고 호견아에게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호 견아가 밤하늘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검후와 은성이도 호견아를 따라 신법을 발휘하였다.

    '휘릭, 쉭, 쉭'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적막한 밤 공기속으로 조용히 울려 나간 후 객방은 침묵속으로 빠져 들어가 버렸다.

    지붕을 타고 밤하늘을 달리는 호견아는 자신이 먼저 몸을 날렸는데도 검후와 검후의 오라버니라는 자가 금새 자기를 쫒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자 마음속에서 호승심이 피워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검후는 그렇다고 하여도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검후의 오라버니라는 청년이 나이가 자기보다 두 서너살 아래인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조금도 힘들다는 기색도 없이 자신과 보조를 맞춰 달려가고 있는 것에 대해 인정하기가 싫어서였다. 목검문에는 최대한 빨리 도착하여야만 하였다.

    벌써 마교도들이 침습했는지도 몰랐다. 정보망에 없었던 검후의 오라버니라는 사람이 난데없이 동행하자 그의 경공 실력을 알 수 없어 조금은 속도를 늦추어 달렸지만 따라오는 기세를 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호견아는 내공을 더 끌어올리며 점차적으로 속도를 높여 갔다.

    '비천무영신법'

    개방 최고의 신법이며 무림맹 삼대 절세 신법중 하나였다. 하지만 속도를 높여가던 호견아는 놀라움에 눈을 치켜뜰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전 내공을 발휘하여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달리고 있는데도 불구 하고 검후는 물론이고 검후의 오라버니라는 자도 한치도 뒤떨어지지 않은 채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반하여 검후의 오라버니라는 자는 아직도 여유가 있는지 여유로운 얼 굴로 사방을 살피며 달리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신법을 발휘한 덕분에 목검문에는 예상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아직도 마교도들의 침습이 없었는지 목검문은 조용한 침묵속에서 밤을 지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목검문의 내부는 물론이고 목검문 인근에서 숨막힐 듯이 흘러나오는 살기는 격전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목검문은 외곽을 둥글게 담으로 쌓아놓은 구조였다. 호견아는 목검문의 구조를 잘 아는 듯 검후와 은 성이를 데리고 담안에 나무들이 울창하게 뻗어 내부 전경이 전혀 보이지 않는 담 밑에서 신법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담에 바짝 붙어 담 안쪽을 향해 말을 하였다.

    "호견아입니다."

    그러자 뜻밖에도 담안에 있는 숲속에서 말소리가 들려 왔다.

    "몇 명이오?"

    "저까지 세명입니다."

    "좋소! 들어 오시오."

    호견아가 담을 뛰어넘자 은성이와 검후도 담을 뛰어넘어 숲으로 들어섰다.

    은성이는 숲으로 들어선 후 사방에 날카로운 살기가 중첩돼 흐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에 호견아 가 신분 확인을 하지 않고 무작정 담을 넘어 왔다면 이 많은 살기들이 살수가 되어 집중돼 날아 왔을 것이라 는 생각을 하자 오늘밤의 흉험함이 피부에 와 닿았다.

    호견아를 따라 짧게 이어진 숲을 나오자 가옥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목검문의 문도들이 거하는 장소인 것 같았 다. 그곳을 지나자 다시 또 담장이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담을 넘지 않아도 되었다.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중문 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성이는 활짝 열어 놓은 중문에서도 날카로운 살기가 숨기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견아는 중문을 지나 연무장으로 보이는 큰 공터를 넘어 삼층 전각안으로 들어갔다. 전각 안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 이 잔뜩 긴장한 안색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모셔 왔습니다."

    호견아가 검후, 은성이와 함께 전각안으로 들어서며 말하자 문 앞에 있던 젊은 청년 한 명이 다가와 반가이 맞아주며 포권지례를 하였다.

    "호소협, 수고 많았네. 검후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청무대 소속 제갈인 이라고 하는데 제가 여기 계 신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갈인 이라고 하는 청년은 이십대 후반의 인물이었는데 얼굴이 창백해 보일 정도로 하얬다. 하지만 눈빛이 깊고 말을 하는데 기품이 있었다. 검후가 들어서자 전각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검후의 곁으로 다가왔기 때 문에 검후와 검후가 오라버니라고 소개한 은성이는 중인들과의 소개를 쉽사리 끝낼 수 있었다.

    전각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가 고수들뿐이었다.

    그중에서도 남궁가의 천뢰검 남궁력과 목검문의 문주 무초검 목진영 그리고 지룡문의 장로라는 사람과 무림맹 청무대주인 남궁혼의 무위가 가장 높았다. 전각안에는 뜻밖에도 무림 초행인 검후가 잘 아는 사람도 두 명이 나 끼어 있었다. 유명한 의가인 선약문 문주의 금지 옥엽인 쌍둥이 딸들이 청무대원의 신분으로 전각안에 머 물고 있었던 것이다.

    정은선, 정미진 이라 불리우는 이 미소녀들은 검후와 나이가 같았지만 무림의 배분상 검후에게는 공대를 사용 하고 있었다. 이년전에 보타문에 들린 정씨 자매와 안면이 있는 검후였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형식적인 인사 만 하였다.

    소개가 끝난 후 제갈인은 현재의 정세를 검후와 은성이에게 설명해 주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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