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36화 (36/152)

[연재]황정허무검(36)

'헉...'

잔살대와 검후의 격전지에 도착한 악귀대 일행들에게서 짧은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목불인견의 현장에는 시 체들의 처참한 주검이 사십여구나 널려 있었다.

"잔뇌!"

잠시 어처구니없어 하던 악귀대주는 험상궂은 인상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예, 대주님"

악귀대주의 뒤에서 염소 수염에 간살스럽게 생긴 사람이 바람처럼 달려나와 악귀대주의 앞에서 허리를 숙였다.

"상황을 분석해라!"

"알겠습니다."

잔뇌(殘腦)라는 악귀대원은 즉시 몸을 날려 잔살대원들의 시신을 세밀히 살피기 시작하였다. 시신들을 뒤집고 상처 부위를 꼼꼼히 살펴보고 땅에 있는 발자욱의 흔적까지도 세밀히 조사한 잔뇌는 이각 정도가 지나서야 검 사를 마치고 악귀대주에게로 다가왔다.

"검후의 빙검 여래혼에 당한 것이 분명 합니다. 잔살대의 천잠망이 조각조각 나 있고 검기에 당한 상처 부위 가 죽은지 세시진은 되었는데도 극한지기에 동결되어 있습니다. 주변의 바위와 잘려진 나무의 파단면으로 살 펴 보건대 검강지기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세시진이 지났다고 하면서도 잔뇌의 설명에는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전혀 없었다. 마치 현장을 직접 본 사람 같은 자신 만만한 추측이었다.

"그런데 검후에게 검후 못지 않은 일행이 한 명 있는 것 같습니다."

"뭐라고! 검후 못지 않은 일행이라니? 자세히 말하라!"

'검후'

이 이름이 무림에 끼치는 영향은 대단하다는 말 가지고도 부족할 정도였다. 그 명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추 측할 수 없는 무공은 사마외도의 무리들에게 있어 절대적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그런 검후와 비슷한 수준의 무림인이 동행하고 있는 것 같다니... 하늘 무서운 줄 모르던 악귀대주도 다소 긴장한 것 같았다.

"예, 잔살대주와 잔살대원 세 명의 사인(死因)은 검후에 의한 죽음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같이 명당혈에 지공을 맞았는데 뇌가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습니다. 강한 양강의 내력에 당한 듯 합니다. 그리고 잔살대주는 격투 현장을 면밀히 검토해본 결과 단 일격에 당한 듯 합니다. 음한의 내공을 익힌 검후 말고 양강의 내공을 익힌 절세 고수가 동행하고 있는 것이 확실 합니다."

"빙신 같은 놈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잔살대가 누구인가? 마교 절강 지부에서 피의 율법을 거행하는 죽음의 승부사들 중 하나가 아니던가?

하나같이 절정의 무술을 익힌 고수들이다. 아무리 검후라고 하여도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몰살당한 것 같다.고 생각하자 악귀대주가 버럭 화를 냈다.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검후의 발자취가 갑자기 끊어진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걷지도 못할 정도로 상처를 당해 동료에게 안기거나 업혀서 현장을 벗어난 것 같습니다."

"흠, 그래...?"

"악살귀!"

"예"

악귀대주가 악살귀(惡殺鬼)를 부르자 잔뇌가 악귀대 속으로 돌아가고 대신 얼굴에 나무토막 같이 표정이 없는 악귀대원 한 명이 악귀대주 앞에 나타났다. 마치 허공중에서 갑자기 생겨난 듯 아무런 소리도, 흔적도 없이 악살귀라는 악귀대원이 눈앞에 나타나자 악귀대주의 성에 바친 목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당장 추적하라!"

악살귀의 추적술은 매우 특이했다. 허리를 굽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 머리가 땅위에 떨어진 바늘 조각조차도 찾아 내겠다는 듯이 쉴 사이 없이 두리번거리고 있었으며 게 걸음을 익혔는지 갈짓자를 그리며 앞으로 나아갔 다. 상대방이 나아간 방향을 살펴 가면서 그 방향 좌우로 이장여씩을 추가로 살피며 나아갔지만 그 나아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닐 정도로 빨랐다. 갈짓자를 그리며 악살귀가 달려가자 행여 놓칠세라 악귀대가 그 뒤를 바 짝 따랐다.

의외로 추적은 짧게 끝이 났다. 잔살대원들이 당한 곳에서부터 십리정도 왔을까? 악살귀는 검은 묵연이 자욱 하여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등성이 부근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이곳이냐?"

검은 묵연의 앞에선 악귀대주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악살귀에게 묻고는 반쯤 튀어나온 눈알에 힘을 주었다.

아무리 진법에 문외한이라고 해도 이곳에 있는 검은 안개가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안개는 능선을 따라 발생되거나 이동하지는 않는다. 공기의 이동이 적은 부근에서 발생하여 계곡 을 따라 흐르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그리고 작은 물방울이 공기 중에 펴져 있는 안개는 물방울과 같 이 하얀 색이지 절대로 검은색이 될 수도 없었다.

앞에 있는 묵연이 진법에 의해 만들어진 안개라는 것을 확인한 악귀대주는 악귀대 중에서 기관 진식과 진법에 능한 '귀호리'를 데려오지 않은 것을 내심 후회했다.

검후의 무공 수위를 감안하여 무공이 고강한 대원들만 차출하여 데려오다 보니 공력이 다소 딸리는 귀호리를 열외 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뒤돌아 갈 수는 없었다. 여기서 놓치면 검후는 안휘로 들어서고 그러면 마교 절강 지부에서는 마교 본산의 특별 지시가 없는 한 손을 접어야 하는 것이다. 앞에 있는 묵연 속에서 감 당할 수 없는 살기가 조금씩 흘러 나오고 있었지만 검후 생포는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기회였다. 게다가 검후 는 부상까지 입고 있는 것 같았다.

미적미적 하다가 무림맹의 떨거지들이라도 나타나면 만사 도루묵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흡'

길게 숨을 한 번 들이 쉰 악귀대주가 시선을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지옥에 처들어 간다고 하여도 눈 하나 까 딱하지 않을 것 같은 독기와 마기를 풀풀 풍기는 충실한 수하들이 한 눈에 가득 들어 왔다. 이들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설사 무림맹의 천무당 소속인 적무대가 와도 기가 죽지 않고 용맹히 싸 울 것 같은 수하들을 바라보자 악귀대주의 간이 태산만 해졌다.

"흐흐! 애숭이 같은 년, 이까짓 진법이 감히 우리 악귀대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모두 혈안 마공을 운용하라!"

악귀대주의 외침에 악귀대원들이 선 채로 운기 조식을 하기 시작하였다. 차 한잔 마실 시간이 되었을까? 악귀대주의 눈에서 붉은 광채가 스미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잇달아 악귀대원들의 눈에서도 사이한 붉은 광채 가 흘러 나왔다.

"검후 이년, 이까짓 진법과 묵연은 마교의 절세 지공에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도록 해주마. 나를 따르라!"

악귀대주가 용맹하게 소리친 후 묵연속으로 발을 들이밀자 부하들 중에서 두명이 튀어나와 악귀대주의 앞에서 좌우를 호위하며 묵연속으로 사라졌다. 혈안 마공을 운용하면 시력이 인간의 범주를 벗어날 정도로 향상되어 진다. 높은 산위에 올라가서 혈안 마공을 운용하면 삼십리 밖에 있는 사람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할 수가 있고 밤을 낮과 같이 볼 수도 있는 절세 마공인 것이다. 하지만 공력의 소모가 심하고 세상이 피처럼 붉게 보 이는 단점이 있었다.

나무도 대지도 사람도 심지어는 하늘에 떠 있는 하얀 달조차도 붉게 보인다. 대신 모든 사물에는 명암이 있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나름대로 사물을 구분해 낼 수가 있었다. 악귀대주처럼 십이성 대성하면 핏빛으로 보이는 사물의 명암만으로도 실제 사물의 색을 정확히 유추해 낼 수 있었다.

묵연속으로 들어가자 아름드리 나무가 빽빽하고 그 사이로 키를 넘는 이름 모를 풀들이 엉키성키 자라난 밀림 이 악귀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밀림을 작은 나무와 풀들을 베어내며 힘들게 이동하던 악귀대의 후미에서 갑자기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으아악!'

뒤쪽으로 시선을 옮긴 악귀대주의 눈에 제일 후미에 따라오던 악귀대원의 어깨 위에 올라탄 채 고개를 숙여 순식간에 목울대를 물어뜯는 표범 한 마리가 눈에 띄였다. 흑표로 추정되는 표범은 눈 한번 깜짝일 정도의 짧 은 시간에 한 명의 악귀대원을 처치하고는 주변 악귀대원들의 공격을 날쌔게 피해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그 표홀한 잔영은 아직도 허공중에 남겨져 있었다.

"원형진을 설치하여 사주경계를 하며 나아가라!"

허상인 것 같으면서도 부하의 죽음이 실제 상황인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악귀대주가 악에 바친 듯 외치 며 사방으로 살기를 발산해 내었다. 사방을 경계하며 없는 길을 만들며 가자니 일행이 나아가는 속도는 매우 느릴 수 밖에 없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거목들은 어떤 곳에서는 사람 한명이 지나 가기에도 힘겨 울 정도로 밀집되어 자라 있는 곳도 있었다.

길이 좁아져 원형진을 유지할 수 없자 원형진을 유지하던 악귀대원들이 흩어져 앞사람과 엇갈려 좌우를 살피 는 일자진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의 허점을 노리고서 다시금 흑표가 숲 속에서 튀어 나왔다.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흑표의 날카로운 앞발이 악귀대원의 머리를 노리고 휘둘러졌지만 취미조차도 죽음의 수 련을 즐기는 악귀대원의 동물적인 감각은 간발의 차로 흑표의 공격을 무산시켰다. 그 순간 공격당한 악귀대원 의 뒤쪽에서 폭포수처럼 삼엄한 검기가 흑표의 허리를 베어 왔다.

그런데 이때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금방이라도 두동강 날 것 같았던 흑표의 허리가 빨래줄처럼 주욱 늘어 나더니 검기를 피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흑표의 움직임이 날쌔고 몸이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 있는 괴 이한 능력을 가졌다고 하여도 상대는 일당백의 악귀대 들이었다.

흑표가 검기를 피해내기 위해 몸을 사린 순간적인 시간에 이미 공격 준비를 마친 악귀대원들의 무기가 일제히 흑표에게 집중 되어졌다. 악귀대원들이 내지른 수 종류의 무기 사이사이로 광대 재주 부리듯 아슬아슬하게 피 하던 흑표의 목이 한순간 주욱 늘어났다. 찰나 흑표가 머무르던 허공중에 흑표의 피가 확 하니 퍼져 나가고 검기에 조각난 살점들이 공중에서 터져 나갔다. 하지만 악귀대원들의 안색은 결코 밝지가 않아 보였다.

"끅..끅 끄르륵 끅"

악귀대원중의 한 명이 목에 붙어 있는 흑표의 머리통을 붙잡은 채 최후의 숨을 힘겹게 몰아쉬고 있었기 때문 이다.

'빌어먹을...'

몇 명 악에 바친 악귀대원들이 몸뚱이가 없는 흑표의 머리를 마저 박살내 버렸지만 다시 한 명의 희생자가 늘 어나 버린 것이다.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고 가던 악귀대주의 눈에 혈광이 더욱 짙어져 갔다. 그런데 악에 바친 듯 두껍고 쫙 찢 어진 입술을 질겅질겅 깨물던 악귀대주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악귀 대주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자 의 아해 하던 악귀대원들도 숨 몇 번 쉴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악귀 대주가 갑 자기 멈춰버린 이유를 알 수 있었 다.

'쿵...쿵..쿵·'

숲 속을 울리며 그 무엇인가가 악귀대 일행을 향해 매우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숨 몇 번 쉴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밀림의 대지를 떨어 울리는 굉음의 정체가 드러났다. 발이 하나 밖에 없고 크기가 이장은 될 듯한 외눈박이 괴물이 커다란 방망이를 들고서 껑충껑충 뛰어오고 있었다.

외눈박이 괴물은 눈앞에 바위가 있으면 방망이로 부숴 버렸으며 걸치적 거리는 큰 나무도 모두 부러뜨려 버리 며 뛰어왔다. 직경 두자는 될 듯한 거목도 괴물이 어깨로 밀어내면 수수깡처럼 부러지던지 뿌리 채 뽑혀져 나 갔다. 발이 하나 밖에 없는 데도 불구하고 전혀 불편하지 않은지 매우 안정된 자세로 잘도 뛰어왔다.

괴물은 다가오자마자 악귀대에게로 무지막지한 방망이를 휘둘러 대며 울부짖었다.

'흑.. 흑아야!'

괴물의 울부짖음 소리는 귀가 멀고 하늘도 진동할 정도였다. 방망이는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검기에도 잘려 나 가지 않았다. 괴물은 방망이를 일정한 초식도 없이 닥치는 대로 휘둘러 대고 있었지만 위력이 너무나 거세었 다. 방망이에 직접적으로 맞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무지막지한 풍세에 악귀대원 두 명이 이장이나 나가 떨어 졌다.

'붕..붕.. 붕붕'

풍차 돌리 듯 휘두르는 괴물의 방망이에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하던 악귀대원 두 명이 살짝 스쳤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스친 부위를 중심으로 반 자 정도의 살점이 뭉텅이로 날아가 버렸다. 보나마나 즉사 였다.

'흑아야!'

미친 황소처럼 날뛰는 괴물의 눈가에 눈물이 어려 있었다. 아마도 흑표범은 괴물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것 같았다.

'흥'

미친 괴물에게 두 명이나 내상을 입고 두 명이 죽자 괴물 못지 않게 꼭지가 돈 악귀대주가 소나기처럼 퍼부어 대는 방망이 공격을 피해 괴물에게 바싹 접근해 들어갔다. 그리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 괴물의 하나뿐인 다리 를 걷어찼다.

'혼비각(魂飛脚)'

권마황에게 전수받은 경세적인 각법이었다. 그러나 괴물은 쓰러지지 않았다. 한자 두께의 철주(鐵柱)도 우그 러뜨릴 수 있는 위력이건만 이를 견뎌 낸 것이 다. 그러나 매우 고통스러운지 방망이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 외발로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기회는 항상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고수는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 법 이다. 굶주리고 지친 호랑이에게 달려드는 늑대떼의 무리이런가...

악귀대 몇 명이 괴물의 허점을 향해 독아를 앞세우고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독아를 괴물의 치명적 인 요혈에 힘껏 박아 넣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늙고 굶주려도 호랑이였다. 순각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본능적 으로 휘두른 방망이와 무지막지한 주먹에 다시 두 명의 악귀대원이 유명을 달리하였다.

'끄아악!'

눈이 멀고 단전에 도와 검이 세 개나 박혀들어 갔으며 기다란 창이 양쪽 귀를 관통해 들어갔는데도 괴물은 쉽 게 죽지 않았다. 살수 수련을 받은 악살귀의 새하얀 검날이 울부짖는 괴물의 입 천정을 관통해 백회혈로 뚫고 나오고서야 괴물의 발악은 멈춰졌다.

악귀대원들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괴물의 몸에서 병기를 거두는 것을 마치자 악귀대주가 악귀대의 진 열을 재정비했다. 악귀대주 외 삼십명의 악귀대원들 중 벌써 여섯 명이 죽고 두 명이 내상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검후의 그림자조차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기왕에 뽑은 칼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괴물이 마지막 호흡을 멈추자 주변의 경관이 갑자기 변해 버렸다. 밀림은 사라지고 무언지 기분 나쁘고 음습 한 기운이 수증기 마냥 피어오르고 있는 늪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늪지 저 너머에 검후가 있을 것인지.. ?

알 수는 없지만 뒤로 돌아 갈 수는 없었다. 경계를 강화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 런데 늪 깊숙이 들어갈수록 음습하고 살을 저미는 기운이 강해졌다. 그리고 그 기운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악귀대원들의 진열 중심부근과 조금 떨어진 늪지에서 무언지 괴상한 것이 불쑥 튀어 나왔다.

구불구불 움직이는 주름진 항아리 같은 것이 튀어나오자 악귀대원들이 바짝 긴장하며 기력을 모두 최대한도로 돋우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였다. 금방이라도 주변에서 괴물들이 튀어 나오던지 아니면 불쑥 나타난 주름진 항아리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며 일행을 덮쳐 올 것 같았다.

그러나 악귀대원들의 예상은 반만 들어맞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던 주름진 항아리 같이 생긴 물체가 악귀대원 들을 향하더니 그 안에서 헤아릴 수 없는 물방울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모든 색상이 핏빛으로 보이는 악귀 대원들은 항아리같이 생긴 물체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 빗물처럼 보이고 있었지만 혈안 마공을 대성한 악귀 대 주는 선연히 알 수 있었다. 허공에서 빗물같이 뿜어져 내려오는 것이 실제 핏방울 이라는 것을...

"피..피하라!"

왠지 심상치 않음을 간파한 악귀대주의 외침 소리가 들리자 경각심을 느낀 악귀대원들에게서 소란이 일어났다.

경공에 자신이 있는 일부 악귀대원은 빗방울처럼 허공을 가득 덮어 내리는 핏방울을 피해 몸을 날렸고 일부는 검막이나 도막을 치고 일부는 늪 속을 파고 들어갔다.

'으악! 으으으아악!'

'이럴 수가...'

항아리같이 생긴 물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그래도 수월하게 몸을 날려 핏방울의 세례를 벗어난 악귀 대주가 입을 벌렸다. 핏방울은 닿는 모든 것을 녹여 버리고 있었다. 내상을 입었던 악귀대원 두 명은 온몸이 반은 녹아 들어가 있었으며 마선객(魔扇客)이라 불리던 악귀대원은 악상어라 불리는 영물의 가죽으로 만들어 서 천잠사에 못지 않다고 그렇게 자랑하던 부채가 살만 남은 채로 비명을 질러대며 죽어가고 있었다.

검막과 도막을 펼친 대원들이라고 모두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검막보다는 정밀하지 못한 도막의 틈새 속으로 스며든 한 두 방울의 핏방울에 얼굴이 맞아 살이 녹아들자 도기가 흐트러져 버린 두 명의 악귀대원도 전신이 녹아 들어가고 있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순식간에 악귀대원을 다섯 명이나 절명케 한 주름진 항아리같이 생긴 괴물체가 늪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주름진 항아리 같은 물체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만 같은 거대한 거머리의 주둥이였다.

'으으음'

평소 두려움을 모르던 악귀대주의 쭉 찢어진 입에서 가는 신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상상할 수도 없는 괴물들 의 연속되는 공격에 한풀 기가 꺽인 모습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괴물만 해도 평소 들어보지도 못한 괴물이었 다. 스치기만 해도 모든 것이 녹아 내리는 부시독을 내뿜는 괴물이라니...

더욱더 두렵고 좌절스러운 것은 저와 같은 괴물들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 에 진법과 마주쳤을 때 괜한 호기로 진법 안으로 들어선 것이 잘못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뒤돌아 갈 수도 없 었다. 뒤돌아 나가는 방법조차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처럼 세상 모르던 악귀대주의 깊은 잠재의식 속에서 절망이라는 단어가 서서히 삐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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