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28화 (28/152)
  • ■ 제 28장 :

    살기를 제어하지 않고 밖으로 뿜어내자 사당의 지붕과 쪽문을 부수며 세명의 인영이 튀어나왔다.

    '허억'

    사당에서 인영들이 튀어 나오는 속도보다 열배는 빠른 속도로 눈 앞으로 붉은 광채가 번뜩이자 이를 잽싸게 피하던 은성이가 헛바람을 내질렀다.

    은성이의 눈앞에서 반장도 안되는 거리에서 갑자기 붉은 광채가 세 줄기로 나뉘어진 것이다. 화룡검을 들어 검집 채로 하나는 막아 낼 수 있겠지만 두 개는 도저히 막을 방도가 없을 것 같았다. 유성검을 시전하기에도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자 은성이의 본능이 자연스럽게 이형환위를 펼치도록 유도하였다.

    이형환위를 펼치자 가까스로 한 개의 붉은 광채는 피해낼 수가 있었다. 다른 한 개는 바짝 몸 안쪽으로 끌어 당긴 화룡검을 검집째 들어 막았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개는 왼손으로 사상 금나술을 펼치며 이화접목(移花接 木) 의 수법으로 간신히 빗겨 나가게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몸 중앙으로 다가오는 붉은 광채를 가볍게 막아선 화룡검이 갑자기 오른손에서 쑥 빠져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급하게 몸을 날려 화룡검을 손에 잡으려는 순간 좌측에서 혈의 복면인 한명이 은성이의 옷 자락을 잡아 왔다.

    옷자락을 잡아 오는 혈의 복면인은 매우 왜소하고 마른 체구였다.

    급한대로 몸을 한바퀴 뒤집으며 좌측 무릎으로 왜소한 혈의인의 턱을 올려쳤다. 하지만 아직도 은성이의 몸은 화룡검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적을 너무나 경시한 것 같았다. 왜소한 혈의인의 한쪽 손이 은성이의 무릎 위에 닿지도 않았는데 한줄기 날카로운 기운이 뻗어 나왔다. 만약에 이 기운이 은성이를 상해시키려는 목적으로 뻗어 왔다면 사태는 달라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은성이의 태극진기에 반탄되어 오히려 왜소한 혈의인이 상해를 입을 확률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 나 혈의인의 날카로운 기운은 은성이가 몸을 회전시키며 돌려 치는 무릎의 각도만 조금 어긋나게 만들었다.

    은성이의 무릎이 원래의 방향을 아주 조금밖에 벗어나지 않았는데도 은성이의 몸 균형은 중심을 잃고 파탄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것을 의도한 것일까?

    은성이의 잠옷 자락을 완전히 부여잡은 왜소한 혈의 복면인이 은성이에게 바짝 다가서며 은성이를 살짝 당기 었다 밀었다. 혈의 복면인이 자신을 끌어 당기자 태극진기를 운용하여 끌려감에 저항하던 은성이는 혈의 복면 인이 갑자기 은성이를 밀쳐내자 몸의 균형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순간이었다. 눈앞에 불이 번뜩이었다. 혈의 복면인에 의해 땅바닥에 강하게 패대기 쳐진 것이다. 땅바닥에 부 딪힌 강한 충격으로 멍한 신체가 타의에 의해 반바퀴 회전된 후 공중으로 다시 치솟아 올랐다. 치솟아 오르는 몸의 자세나 각도는 공격은커녕 방어조차 어려운 절묘한 자세이었다. 그리고는 강하게 땅으로 다시 내리 꽂히 는 순간 은성이는 사상금나술로 혈의 복면인이 내민 오른 손목과 소매를 가까스로 부여 잡을 수 있었다.

    '퉤‥'

    입속으로 들어간 가는 모래를 뱉어내며 은성이는 손안에 들린 팔 하나를 신경질 적으로 내던졌다. 왜소한 혈 의 복면인은 은성이와 일장쯤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런데 오른손이 있었던 어깨 부분에는 뒤틀리고 찢어 진 살점들이 피에 젖은 채 너덜거리고 있었다.

    은성이가 혈의인의 손목과 소매를 붙잡은 채 진기를 강하게 회전시킨 때문이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당하고 정 신도 멍한 상태에서 가까스로 혈의 복면인의 손목과 소매를 잡자 하단전의 태극 진기를 모두 동원하여 혈의인 의 손목을 몇바퀴 돌려 버린 것이다.

    오른손이 뽑혀져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왜소한 혈의 복면인은 신음소리 한마디 내지 않았다. 오히려 은성이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왼손을 들어 서서히 오른쪽 어깨의 혈도를 눌러 지혈을 시키고 있었다.

    은성이의 검을 빼앗아 간 혈의 복면인은 은성이와 삼장쯤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이 혈의인은 체격이 매우 뚱뚱한 편이었는데 왜소한 혈의인이 은성이에게 당한 것이 매우 의외인 듯 다소 긴장된 눈빛으로 상황을 주시 하고 있었다. 화룡검을 되찾기 위해 뚱뚱한 혈의 복면인에게 몸을 날리려던 은성이는 갑자기 무언지 알 수 없 는 불안감이 온몸을 엄습함을 느꼈다.

    불안감의 원인을 찾기 위해 머릿속으로 찰나지간 수많은 생각들을 떠 올리던 은성이가 갑자기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세명의 혈의 복면인중 한명이 계속해서 보이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공중으로 뛰어 오르는 은성이의 몸 주위로는 금빛 광채가 조금씩 짙어져 가고 있었다. 은성이가 공중으로 뛰 어 오르는 순간 은성이가 디디고 있던 땅거죽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갔다. 그리고 터져 나가는 모래더미와 돌 조각 속에서 수많은 도기가 쏘아져 나왔다. 하늘을 찢어 발길 듯이 잔인하고 쾌속한 도기들의 일부는 은성이 의 호신 강기조차 흔들리게 할 정도로 극강하였다.

    그때였다.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다가 어느새 은성이와 이장의 거리로 좁혀든 뚱뚱한 혈의인의 양손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수차례 번뜩였다. 순간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져 버렸다. 하지만 하늘을 가득 덮은 것은 어둠이 아니었다. 혈리표, 독질려, 표, 자모환, 투골정 등 온갖 암기들로 하늘이 뒤덮힌 것이다.

    '만천 화우의 절세 초식...'

    암기들을 내던진 뚱뚱한 혈의인이 숨을 한번 크게 내쉬었다.

    최후의 보류인가?

    그의 오른손에는 핏빛의 비수가 한자루 들리어 있었다. 그런데 뚱뚱한 혈의인의 눈에서 혈광이 뿜어져 나오더 니 혈의인의 오른손이 몇 배로 커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커지고 있는 혈의인의 오른손에서도 조금씩 혈광이 세어나오기 시작하였다. 한순간 뚱뚱한 혈의인의 손에든 핏빛 비수가 은성이에게 쏘아져 갔다. 그런데 뚱뚱한 혈의인의 모습이 바뀌어져 있었다.

    그처럼 뚱뚱한 몸매가 한순간에 각다귀같이 깡말라 있었던 것이다.

    '혈룡비'

    붉은 화광을 빛내며 은성이에게 쏘아져 가는 적룡의 정체였다. 뚱뚱한 혈의 복면인이 절대 절명의 순간에만 온몸의 기력을 모두 짜내어 펼치는 무공으로 이 무공을 펼치면 최소 석달 열흘간은 몸 조섭을 하여야만 하는 극단의 무공이었다.

    앞에 펼친 절세의 암기 초식인 만천화우라는 초식은 눈속임 이었던 것이다. 혈의인들은 '천밀영' 이라는 왜인 들의 초특급 살수들이었다. 이들의 그들 나라의 인자 집단인 암혼각(묵빛 복면)과 청살문(청색 복면) 과는 비 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몇 배나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뚱뚱한 혈의인이 생각하기로 유술을 극성으로 익힌 혈의인과 쏟아지는 비속에서도 몸을 숨길 수 있는 은신술 과 죽음의 살수 수련을 끝마친 혈의인의 공격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오히려 공격까지 하고 있는 은성이는 지금 껏 상대해온 어떤 적수보다도 무서운 상대였다.

    비록 상대방의 무기를 탈취할 수 있는 교묘한 구조를 가진 암기로 기습적인 공격을 하여 상대방이 가진 검을 탈취할 수 있었지만 초기에 제압하지 않으면 절대 승산이 없을 것 같았다.

    암습과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공격을 주로 삼는 인자에게 있어서 장기전은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상황 판단에 능한 혈의인은 은성이가 당황하며 공중으로 뛰어 오르는 순간을 이용하여 만천화우 의 초식으로 앞을 가린 후 얼을 빼 놓고 절대 절명의 초식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호신 강기를 펼친 은성 이의 몸 주변에는 한자 두께의 금색 강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땅 밑에서 솟아나온 도기들은 일수유의 시간에 은성이의 몸을 백팔번이나 잘게 분해할 듯이 가르고 지나갔지 만 처음 몇 차례 격렬하게 흔들리던 호신 강기가 점차 두꺼워지고 은성이 전체를 감싸듯이 큰 환을 이루어가 자 헛되이 공간만을 갈랐다. 곧 이어 암기들이 들이닥치면서 도기는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암기중에서는 '표' 종류의 날카롭고 빠른 암기 외에도 자모환과 같이 상대에게 강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암기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미 호신강막을 완성한 은성이에게 타격을 줄만한 암기는 다행히 없었다.

    앞서 유술을 익힌 혈의인에게 불시에 당하며 약간의 내상을 입은 은성이는 호신강막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땅 속에서 솟아나온 도기에 다시금 기혈이 흔들리게 되며 입가에 가는 핏자국까지 남아 있었다. 하단전의 태극진 기만으로는 내상이 겹쳐 재대로 호신 강막을 펼쳐 내는데 지장이 있을 것 같자 막 중단전의 태극 진기를 운용 하려는 찰나였다.

    암기막이 조금 엷어지면서 그곳으로 거대하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붉은 용 한마리가 나타났다. 미간에 붉은 혈 광이 우레처럼 어른거리는 뾰족한 뿔을 앞세우는 적룡은 보이는 찰나 은성이의 호신 강막에 부딪혀 버렸다.

    '꽈아아아아앙'

    은성이의 호신강막이 크게 이그러지고 혈광과 금광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폭파하는 충격속에서 은성이의 신형 이 뒤로 십장여나 밀려나 버렸다. 뒤쪽으로 튕겨나는 은성이에게 몸 전체를 둥근 환처럼 감싸고 있던 호신 강 막은 사라지고 엷은 금빛 광채만이 간간이 내비치고 있었다. 십장여나 밀려난 후 땅에 떨어진 은성이의 몸이 땅에 튕겨지며 다시 삼장여나 밀려났다.

    실로 질기고 모진 것이 목숨인가?

    죽었으리라 생각되던 은성이의 신형이 서서히 일으켜 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고 있던 잠옷은 거의 넝마처럼 갈갈이 찢어져 있었고 왼손은 뼈가 부러졌는지 축 늘어져 있었으며 입가로는 붉은 피가 꾸역꾸역 밀려 나오고 있었다. 은성이가 몸을 일으켜 세우자 뚱뚱했던 복면인과 왜소한 복면인이 의외의 눈빛을 하였다. 비록 호신 강막을 시전할 정도의 고수인 것은 인정하지만 호신강기 파괴를 전문으로 하는 천밀영 비전의 무공인 혈룡비 에 당하고도 살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긴장은 풀어져 있었다. 비록 살아는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최후의 잠 재력을 발휘하여 간신히 일어나겠지만 오늘 황첨길로 들어서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과연 이들의 예상이 맞을 것인가?

    그러나 이들은 은성이의 능력을 재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은성이가 일반인이라면 열 번은 죽었을 정도로 심한 내상을 입고 중요 경맥이 폐쇄되는 엄중한 상처를 입었지만 은성이의 태극진기의 경지는 이미 허 무경 7단계로 들어서고 있었다. 태극 진기가 경락을 이용하여 운기하는 경지를 넘어 피부로 호흡하고 태양빛 이 만물을 비추듯이 진기를 몸 전체로 발산하는 방법으로 운기하는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오른손으로 화개혈과 좌우 견분혈을 누르고 왼팔의 어깨죽지를 잡고 힘을 주어 비틀자 우드득 뼈 맞추어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퇫'

    입속에 들어있는 핏덩이들을 뱉어내고 이미 넝마로 변한 상의를 벗어 내던진 후 은성이는 다시금 서서히 혈의 인들에게로 발길을 옮겼다. 상의를 벗자 균형이 잡히고 다부진 청년의 몸매가 여실히 드러났지만 상체는 핏자 국과 핏방울로 얼룩져 있었다.

    뚱뚱했던 혈의인은 은성이가 그들에게로 걸어오자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은성이에게 시전했던 혈룡 비라는 초식은 몸속에 축적하고 있는 혈한의 진기를 유형화하여 비수에 실어 보내는 초식이었다.

    기존 내공심법과는 별도로 어린 영아들의 피를 흡수하여 그들의 원한과 아직 세속에 물들지 않은 선천 진기만 을 십여년간이나 취하여 쌓아 놓은 혈한의 진기를 단 한가지의 초식에 담아 펼쳐 내는 무공으로 이 혈룡비를 벗어날 수 있는 무공도 그리고 막아낼 수 있는 무공조차도 인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무공이었다.

    한자 두께의 강철판도 찢어 버릴수 있는 극쾌 극강의 초식으로 천밀영 '삼대비전' 중의 하나인 악마의 무공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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