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24화 (24/152)
  • ■ 제 24장 :

    은성이는 적송림 위에서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봄바람이 살랑이며 은성이가 올라선 적송의 잔 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이에따라 은성이의 몸도 흔들리는 잔가 지를 따라 위아래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지만 은성이의 자세는 한점 흐트러짐도 없이 요지 부동이었다.

    은성이가 올라선 적송의 잔 가지도 은성이의 몸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 밑으로 처지지 않고 봄 바람에 하늘 거리고 있었다. 목전의 상황은 길게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어린시절부터 잔인하고 무자비하다고 숱하게 들어오던 왜구들과 귀신보다도 더 은밀하고 신비하다는 인자들의 모습이었다.

    이와 상대하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인지 여부를 떠나 일단 해동의 백성들이었다. 급하게 옆에 있던 솔잎을 두 개 따서 오성의 태극진기를 주입하여 '적엽비화(摘葉飛禍) 의 수법을 펼쳐 냈다.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게 돌아가자 솔잎을 날린후 곧바로 몸을 날려 현장으로 내려섰다. 나막신을 신은 왜구들 은 은성이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리자 자기들 왜구 말로 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청색의 복면인 두명이 순식간에 죽고 은성이가 절세의 신법으로 나타나자 경계심을 강화 시켜 주는 것 같았다.

    사태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맡고 있었다.

    처음에 온 왜구들과 검은 복면의 인자들은 이십여명이 조금 못 되었다. 그리고 열명이 왔던 청색 복면의 인자 들도 다섯명밖에 남지 않았다. 의외로 나이가 어린 은성이가 나타나자 왜구들은 얕잡아 보고 일제히 은성이에 게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은성이가 이형환위 신법에 이은 사상 금나술을 펼치자 순식간에 왜구들이 제압되기 시작 하였다. 순식 간에 칠팔명의 왜구들의 마혈이 제압되어지자 생각보다는 너무나 강한 은성이의 무위에 깜짝 놀란 검은 복면 의 인자들이 은성이에게 암기들을 뿌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암기들은 은성이의 이형환위 신법에 애매한 땅 바닥 속으로만 박혀 들어갔다.

    일각도 되지않아 왜구들과 검은 복면의 인자들은 마혈이 모두 짚혀 최후의 자세를 유지한채 몸을 움직이지 못 하였다. 도를 하늘높이 쳐든 채 마혈이 짚힌 왜구도 있었으며 암기를 뿌리기 위해 혁낭속에 있는 암기 주머니 에 손을 집어 넣은채 몸이 굳어 있는 인자들도 있었다. 은성이가 청색 복면의 인자들에게로 몸을 돌리자 복면 너머로 이들의 긴장된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을 바라보던 은성이는 이들의 몸에서 죽음의 냄새가 진득하니 베어 나오고 있는 것이 느끼어지자 이들에게 삶의 기회를 주는 것을 포기 하였다. 비록 왜놈들이지만 인명은 제천인지라 마지막 삶의 기회를 주 고자 왜구들과 검은 복면의 인자들은 마혈만 짚었던 은성이었다.

    마혈은 시전자의 능력에 따라 다르고 또한 공력이 초절정에 이르면 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 으로 짚인 후 두시진만 지나면 자연적으로 풀리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청색 복면의 인자들은 죽음의 사신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기운이 짙게 풍겨져 나오고 있는 것이 그동안 이들이 벌인 행각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들을 살려주는 것은 무고한 숱한 생명들을 죽음의 낫 앞에서 방조하게 되는 것 같았다. 마음을 굳힌 은성이 가 이들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은성이의 심령을 알아챈 것일까? 청의 복면인들이 먼저 공격해 들어오기 시작하 였다.

    이곳 귀란총은 바닥이 대부분 바위와 돌 조각으로 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룡이 이곳을 결전 장소로 잡 았고 검은 복면의 인자들도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지둔술과 은둔술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채 평소 실력의 반 의 반도 발휘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청색 복면의 인자들은 검은 복면의 인자들 보다 한 수 위의 인자 들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 나올 자신이 있었고 그 어떠한 상대라도 그들만으로 척살할수 있다는 신념 이 있었으며 지금껏 왜구들과 검은 복면의 인자들과는 협공하지 않을 정도의 자부심도 있었다.

    청의 인자들의 손에서 작은 묵빛 구체가 땅으로 떨어진 후 주변은 순식간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묵연으로 가득 채워져 버렸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은성이가 태극진기를 완성한 것을 몰랐던 것이다. 묵연 속에서도 은성이 는 다섯명의 인자들이 하는 행동을 낱낱이 살펴 볼 수 있었다. 묵연 속에서 은성이가 있는 방향을 향해 청색 복면의 인자들이 '구영신파술(九影神破術) 이라는 비전의 수법으로 날려보낸 사십 오개의 비도가 은성이를 감 싸고 있던 허공을 가득 메워 버렸다.

    은성이가 이미 이형환위 신법을 펼친다는 사실을 간파해낸 채 펼쳐지는 이들의 수법에는 한치의 빈틈도 없었 다. 그리고 비도를 날린후 다섯명의 인자들의 몸이 땅위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사십 오개의 비도 가 날아져 오는 궤적은 물론이고 사라져 버린 인자들의 사라진 장소와 그 흔적 모두가 은성이의 눈에는 선연 히 보여지고 있었다.

    허공 가득히 쏘아져 오는 비도 사이로 갑자기 붉은 색이 도는 검광이 번쩍였다. 검광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 았지만 다른 소리는 매우 선명하게 잘 들리었다.

    '찰칵, 찰칵'

    검집에 검이 들어가는 소리였다. 비록 검집에 검이 들어가는 소리는 두 번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화룡검은 붉 은 검의 궤적을 허공중에 열 번이나 수놓고 있었다. 완숙한 유성 검법은 사십 오개의 비도를 구십개로 만들어 버리며 그 목적을 상실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은성이가 있는 방원 일장 주변의 땅위에는 잘려진 비도 조각만이 흔한 돌조각처럼 뒹굴고 있었다. 비도들을 무용지물로 만든 은성이가 앞쪽으로 서서히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청색 복면인들이 위치해 있었던 자 리이건만 지금은 묵연도 걷히고 하늘거리는 아지랑이 만이 무심히 피워 오르고 있었다.

    어느 지점에 이른 은성이의 화룡검이 갑자기 뽑혀져 땅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러자 그 속에서 붉은 선지피 가 흘러 나오기 시작 하였다. 주변과 완전히 똑같은 그림이 그려진 보자기 하나가 붉은 선지피에 적셔져 가고 있었다. 보자기에는 아무리 눈이 좋은 사람도 알아 볼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주변 정물과 같은 그림이 새긴 듯 그려져 있었다.

    귀란총에 널리고 널린 하얀 자갈에서부터 간간히 있는 잡초까지도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이런 그림이 그려지도록 할 수 있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 정도로 대단히 정교하고 정밀하였다.

    인자들이 비장의 술법을 부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밑천이려니 할 수 밖에 없었다.

    땅속에 박힌 화룡검을 뽑지 않고 선채로 심안을 운용하자 땅속에 있는 네명의 인자들의 동태가 눈에 보이는 듯이 선명 하여졌다. 귀란총은 바닥이 대부분 바위와 돌 조각으로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돌의 강도가 약한 곳 과 석맥을 따라 흙의 줄기가 퍼져 있었다.

    놀랍게도 인자들은 그런 곳만을 골라 지하에 숨어 있거나 서서히 이동하고 있었다. 은성이는 태극진기를 운용 하여 땅 속의 인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기상 천외의 술법에 그 누구도 예측치 못한 공격 방법 이었다.

    땅속으로 방출된 검기는 은성이가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여 서서히 움직이던 두명의 인자를 살상하였다. 비록 비명 소리조차도 흘리지 않았건만 인자들에게는 서로 통하는 감응이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 남은 두명의 인 자가 위험을 직감하고는 은신해 있던 장소에서 튀어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어느새 빼어들었는지 세 개씩의 백광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은성이의 손에서도 화룡검이 반짝 이며 적광을 발하였다. 인자들은 백광을 뚫고 적광이 번쩍이자 이를 피하기 위해 황급히 도를 들어 막아갔다.

    세 개의 도중 두 개의 도는 여전히 은성이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만 그중 적광과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 느껴 지는 백광 하나만을 회수하여 적광을 막아 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마음 뿐이었다. 백광의 하나를 회수해 적광을 막아 가려고 하였지만 적광은 어느새 사라지고 보 이지 않았다. 그리고 목 언저리가 따끔해 오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하늘에 시뻘건 혈화가 피어나더니 온 세상 을 시뻘건 적운으로 덮어 버렸다.

    해적단 일행을 살펴본 은성이는 급히 손을 써야할 중상자가 세명이나 있음을 알았다. 용왕이라 불리는 자와 노룡, 지룡 이라고 불리는 자들이었다. 이들이 해적들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인명은 제천이었다. 긴급 조치를 취해준 후 해적단의 부하들에게 이들을 부축케 한 다음 초금의가로 데려 가기로 하였다.

    여기서 이각 정도만 걸으면 초금의가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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