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23화 (23/152)

■ 제 23장 :

"광룡! 노룡의 상태는 어떤가?"

큰 키에 잘 다져진 근육 그리고 유난히 짧은 머리가 인상적인 용왕 이무기가 왜구들을 바라본 채 광룡에게 물 었다. 생긴 것으로 보아서는 사천왕을 압도할 만한 무용을 가진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광룡은 용왕 이무 기의 폭주하는 잠재력을 잘 알고 있었다. 생긴 것 답지 않게 냉혹한 성격에 작은 눈에서 독사같이 하얀 광채 가 반짝일때면 등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절로 소름이 돋는 광룡이었다.

살아오면서 적수로 만나지 않은 것을 혹시 있을지도 모를 천지 신명께 몇번이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예, 간신히 목숨만을 건졌습니다."

"음..."

용왕 이무기가 조용히 침음성을 흘렸다. 일대 다수와의 싸움에서 노룡이 가진 백발 백중의 암기술은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노룡은 생사의 기로에서 아직도 헤메고 있고 적수는 자신들의 세배 이상이나 되었다.

게다가 해적단의 실질적인 두뇌인 지룡조차 혼절해 있는 상황으로 해적단은 오늘 생사존망의 기로에 있는 것 이다.

"지룡과 노룡을 잘 보호해라!"

박룡수(搏龍手) 라는 장갑을 낀 두손을 깍지 끼운 채 용왕 이무기가 한 발을 앞으로 나섰다.

'우득, 우드득.'

깍지낀 두 손 사이에서는 손가락 뼈들이 쉴새없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지만 이무기의 두 눈은 더욱 더 차가 운 한광을 발하고 있었다. 오십여명의 왜구들 중에서 제일 만만해 보이는 자들은 나막신에 각양 각색의 헐렁 한 옷을 입은 전형적인 왜구 무리였다. 묵빛 복면을 한 인자들은 이 와중에서도 호흡소리가 매우 규칙적인 것 을 보아 매우 혹독한 수련을 쌓은 무리이리라.

제일 문제가 되는 무리는 청색 복면을 한 자들이었다. 인자복과 매우 유사한 복장이지만 청색 인자복은 처음 보는 것이었고 게다가 몸에서 어떤 기세도 발산해 내지 않는 것을 보면 무공 실력을 파악하기 조차 힘들었다.

현재 해적단의 온전한 전력은 그 혼자만이 남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노룡과 지룡은 혼수 상태이고 광룡과 폭룡도 기력이 다한 촛불의 마지막 심지 같아 보였다. 마지막 기력을 쥐 어짜서 여기까지 간신히 도망쳐 왔지만 이미 더 이상 걸을 기력도 없는 것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그 외에 몇몇 부하들은 배나 조종하라면 써먹을 데가 있지만 앞에 있는 왜구들 앞에서는 주린 늑대 앞의 토끼 새끼들 정도였다. 죽던 살던 혼자서 어떻게 해 보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조용히 상대의 허실을 파악하며 앞으로 내밀던 이무기의 보폭이 갑자기 넓어지더니 두발을 교차하였다. 그러 자 이무기의 모습이 갑자기 측면에 위치하고 있던 왜구 무리들 앞에서 나타났다.

'피핑, 휘리릭'

'체챙'

인자들이 표창 등 암기를 날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트리는가 싶더니 첫 번째 비명이 들리어 왔다.

이무기가 낀 장갑은 도검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인자들이 날린 갖가지 종류의 암기들이 이무기의 '낙화유수(落花流水)' 라는 한 수에 장심 한가운데로 몰려나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암기 속에서도 우산을 쓰고 빗속을 거닐 듯 여유롭게 양손을 휘두르며 적진 속으로 파고 들어가자 인자들도 더 이 상 암기들을 날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늑대떼 속 한 가운데에 뛰어든 상처입은 한 마리의 호랑이였다. 왜구들은 사방에서 독아를 날카롭게 들이대며 이무기를 협공하기 시작하였다.

왜도는 빠르고 잔인하기로 유명하였다. 오로지 적을 베는 것을 목적으로 일체의 허식도 배재한 직선적 도법으 로 난세를 풍미한 낭인 무사들의 혼이 도법 하나 하나에 깃들여져 있었다. 왜구들은 거친 야성에 물들인 피에 굶주린 야수처럼 용왕 이무기를 찢어 발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늑대는 늑대이고 상처 받았다. 하지만 호랑이는 호랑이였다. 삼중으로 허를 찔러오는 왜도를 교묘하게 피해낸 이무기가 단타성으로 짧게 짧게 슬쩍 건드리는 왜구들이 힘없이 나가 떨어졌다.

촌경에 당한 왜구들은 땅위에 자빠져서는 부들부들 떨다가 그것도 잠시 잠잠해지는 것이었다. 땅위에는 십여 구의 왜구 시체가 놓여 있었다. 주변에 왜구들이 적어지자 인자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 하였다.

은자들의 최대 장기는 은둔술과 추적술 그리고 암기술이었다. 끝이 뾰족한 원추형의 암기가 이무기의 귀밑머 리를 스치고 지나간 후 허공에서 방향을 틀고 뒤통수 쪽으로 재차 날아오자 이무기는 경각심을 높일 수 밖에 없었다.

발 밑으로는 오각으로 끝이 날카롭기가 이를데 없는 표창 두개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갔고 낙화유수를 펼치는 양손 사이에도 몇 개의 암기가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기력이 쉬이 낭비될 터이고 기력 낭비에 따 른 한 번의 실수는 저승행으로 귀결될 것이다.

무슨 수를 써야만 했다. 낙화 유수를 펼친 후 장심에 서너개의 암기가 잡히자 이무기는 이를 버리지 않고 땅 바닥을 짚으며 땅을 스치듯이 몸을 날려 삼장 밖으로 물러났다. 그곳에서 비룡번신(飛龍 身) 이라는 신법을 펼친후 인자들에게 손바닥에 있는 암기들을 내력을 이용해 뿌렸다.

'악, 으악'

다행히 두 명의 인자를 전투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 수 있었지만 그 사이 어느새 곁으로 다가선 다른 인자들의 공격에 허점을 노출시킬 수 밖에 없었다. 회선추(回旋椎)라는 끝이 뾰족한 원추형의 암기들이 가느다란 줄에 매달린 채로 이무기의 전신 사혈을 노리고 살아서 생동하는 듯 쏘아져 오가고 있었으며 한꺼번에 막기에는 너 무 많은 표창과 비도들의 암기등이 무더기로 덮쳐오고 있었다.

그 많은 암기들에 절망할 만도 한데 이무기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입술을 앙 다물고 마보 자세 를 유지한 후 양손을 천천히 휘둘러 다시금 낙화 유수라는 초식을 펼쳐 내었다. 암기들의 칠할 정도가 낙화유 수라는 초식에 이무기의 장심안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삼할 정도의 암기는 처음 목표한 대로 이무기의 몸 지척에 이르렀다.

'팅, 티팅'

그런데 예상한 소리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용왕 이무기의 몸에서 황색 기운이 살짝 내비치는가 싶더니 용왕 이무기의 몸에 부딪힌 암기들이 모조리 튕겨져 나가 버렸다. 이무기가 고되게 수련한 금종조의 수법이었다.

대부분의 인자들은 암기를 날리기 위해 이무기와 너무 가까운 거리에 접근해 있는 상태였다. 황색 기운이 사 라지고 튕겨진 암기들이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용왕 이무기의 양 손바닥이 밖으로 휘둘러졌다.

'악, 으윽'

순식간에 십여명의 인자들이 암기에 맞아 죽고 뒤따른 이무기의 권경에 죽어갔다. 이무기는 암기들을 완전히 튕겨 내지는 못하였는 듯 몇 개의 암기가 몸에 박혀 있었는데 치명적이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암기에 맞은 부위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날뛰는 이무기는 한 마리 혈룡 그 자체였다.

이때였다. 지금까지 한쪽에 서서 이 모든 것을 방관한 채 지켜만 보던 청색 복면인 중 두명이 갑자기 용왕 이 무기에게로 몸을 날렸다. 마악 잠룡승천(潛龍昇天) 이라는 초식을 펼쳐 몸을 회전하면서 공중으로 솟구치며 왜구 한명의 턱을 완전히 부숴버린 이무기의 좌우로 소름 끼치는 도광이 몰아쳐 갔다.

도광은 시리도록 하얀 색이었다. 머리와 손이 하늘에 있고 하체가 땅 쪽으로 향한 채 공중으로 솟구치던 자세 의 이무기가 급히 양 발을 뻗어 날아오는 하얀 도광을 걷어차려 하였지만 용이치가 않았다.

도광이 너무나 날카로운 것이다.

도광은 순식간에 한 개가 두 개로 나뉘어지더니 도합 네 개의 도광이 양 다리를 자르려는 듯이 종으로 휩쓸어 오고 있었다. 가까스로 비룡번천(飛龍 天)의 초식으로 공중에서 몸을 뒤집는 순간 이무기의 눈이 경악에 휩 싸여 졌다. 두 가닥으로 나뉘어진 하얀 도광에서 간일반의 차로 벗어나기가 무섭게 도광의 사이에서 다시금 한줄기 도광이 느닷없이 솟아 나온 것이다.

감각적으로 양손을 휘둘러 한줄기 도광은 막아 냈지만 얼굴로 날아오는 한줄기 도광은 속수 무책 이었다. 하 얀 도광과 이무기의 안면은 운명적으로 맞부딪혔고 답답한 신음성을 발하며 이무기는 땅바닥에 내려섰다. 입 가장자리로 붉은 피가 흘러 나오고 있는 이무기의 앙다문 이빨 사이로는 둥글게 휘어진 첨도가 하얀 빛을 발 하고 있었다. 천천히 왼손을 들어 이빨 사이의 첨도를 거머쥔 이무기의 양쪽 허리 부근에서 옷이 예리하게 베 어 지더니 선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결코 얇지 않은 부상이었다. 이무기는 조용한 동작으로 왼손에 쥔 첨도를 오른손으로 둥글게 구부렸다.

'카캉'

"훌륭한 도이군!"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잘라진 첨도를 버린 이무기는 주변에 왜구들이 지켜보는 와중에서도 침착하게 속옷을 찢어 상처 부위를 감싸더니 다시금 양손을 깍지끼고 전투 태세를 취하였다.

*********

계룡산을 넘어 집으로 가는 길은 매우 순조로웠다. 그 많은 독물들이 우글거리던 계룡산은 길가에 흔한 지네 한 마리 나와 있지 않았다. 초금의가에서 가장 가까운 고을 이름은 용안(龍安) 이었다.

용안은 이천여 가구 만여명이 거주하는 중소 규모 고을로 미륵산 앞쪽에 넓게 펼쳐진 농지에서 쌀이 생산되고 바닷가에 위치해 있어 해산물이 풍부하며 인심도 좋은 고을 이었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용안의 분위기는 다 소 흉흉해져 있었다. 해안가에서만 설쳐대던 왜구들이 이제는 이곳 용안에까지 침투하여 약탈하곤 하였기 때 문이다. 일년전 대규모 왜구의 약탈에서는 이곳 가옥의 이할 정도가 불타 오르고 수많은 사람이 왜구와 싸우 다 죽고 심지어는 왜구에게 끌려가기까지 하였다.

다행히 관군과 인근 무도가에서 동원된 무술가들이 일치 단결하여 간신히 이를 물리칠 수 있었지만 그때의 휴 유증은 아직도 고을 전체에 앙금처럼 남아 있었다. 묘시말쯤 용안에서 아침밥을 먹은 은성이는 가벼운 발걸음 으로 미륵산의 북쪽 능선을 오르고 있었다.

진달래 꽃이 철쭉과 어우러져 봄을 노래하고 있었으며 이미 지기 시작한 자목련은 야릇한 봄의 향취에 지나가 는 나그네의 심신을 녹아 내리게 하고 있었다. 초금의가에 오르는 동안 길가에 이름모를 잡초들이 생각보다는 많이 돋아나 있었지만 조금만 있으면 아버님과 금아를 볼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많이 풀린 은성이의 발걸 음은 초조하면서도 한가로웠다.

초금의가에 오르는 중에 적송이 우거진 적림곡은 예전 그대로 약간 붉은 기가 도는 청초함으로 은성이를 반가 이 맞아 주고 있었다. 그런데 적림곡에 못 미쳤을 때 은성이는 자연의 소리와 동떨어진 이질적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두명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적림곡 밑의 좌측에 위치한 귀란총 부근에서 나는 소리 였다. 은성이는 소리가 난 곳을 향하여 급히 신형을 날리었다. 은성이의 발끝이 스쳐간 풀잎위로 작은 미풍이 불어 왔다.

하지만 그 누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은성이가 전설의 초상비 초식을 펼치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초상비 초식을 펼치었는데도 불구하고 풀잎 아 래로 메달려 있던 아침 이술 방울이 아직도 그대로 풀잎 아래에 함초롱이 메달려 있다는 사실을...

"용왕, 이제 좀 쉬십시오"

광룡이 주변의 부하들에게 경계를 강화하라는 눈짓을 하며 청룡 언월도를 땅에 질질 끌며 이무기에게로 걸었 다.

"광룡! 이까짓거 상처도 아니다."

깍지 낀 손을 들어 어깨를 몇 번 펴 보이며 이무기가 말을 받았다.

"알고 있습니다. 용왕이 어떤 분이신데 이깐 잔챙이들에게 상처를 입겠습니까? 그런데 저희 사천왕의 임무가 무엇입니까? 바로 잔챙이들 청소이지요. 흐 흐 흐"

이제껏 성난 호랑이처럼 날뛰는 이무기 만을 경계하던 왜구들과 인자들이 광룡이 나타나자 일별을 한후 다시 금 경계의 눈빛을 이무기로 돌리었다. 변산에서 해적단과의 싸움에서 이무기의 활약상을 뼈저리게 느껴 보았 던 왜구들이 이무기와 광룡의 위험도 측정에서 일방적으로 이무기의 판정승을 선언해 버린 것이다.

이무기 보다는 별 볼일 없는 인물로 왜구들에게 보였다는 자학인지 아니면 무시 당했다고 생각 되어 졌는지 광룡이 자조의 웃음을 흘려 냈다.

'흐 흐 흐'

그리고는 느닷없이 땅에 질질 끌리던 청룡언월도를 바짝 세우고 이제는 이십여명 밖에 남지 않은 왜구와 인자 에게 달려 들었다. 조용히 눈치를 보고 있던 이무기도 광룡의 움직임과 동시에 몸을 날려 청색의 복면을 한 인자들에게 달려 들었다.

광룡이 왜구와 검은 복면의 인자들보다.무공 실력은 뛰어나지만 지금은 기력이 현저히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불시의 기습으로 두명의 왜구를 간신히 처치할 수 있었지만 곧 이어 왜구들 의 협공과 인자들의 암기 공격에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져 갔다. 몸 이곳 저곳에 암기가 박혀 죽어가는 와중에도 광룡의 손을 떠난 청룡 언월도 가 막 암기를 날리려는 인자의 머리통을 깨끗하게 두 조각 내어 버렸다.

혼신의 힘을 다한 마지막 일수인가?

청룡언월도는 핏빛 궤적을 그리며 오장여나 날아가더니 힘없이 땅바닥에 떨어져 갔다. 이와 함께 광룡도 서서 히 지면으로 떨어져 갔다. 이를 보던 폭룡과 노룡이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뛰어 나왔다.

이무기의 상황도 광룡에 비해 나을 바가 없었다.

청색 복면의 인자들의 무공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예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이무기가 달려들자 세명의 청색 복면의 인자가 마중을 나왔다. 어찌나 침착한지 미리 이무기의 기습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주먹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방어하고 있었지만 청의 인자들은 일인당 세개씩의 첨도를 사용하고 있었다. 오른 손에 있던 첨도가 어느새 텅빈 공간에 둥실 떠 있고 순식간에 오른손과 왼손에 있는 첨도가 바뀌는가 하면 가 운데 있던 첨도가 어느새 바지 가지랑이 아래에서 몸을 두조각 낼 듯 솟구쳐 올라오기 일쑤였다.

이들의 도법은 교묘하기가 이를데 없어서 혼자서는 한명과 상대해도 우세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 이었다. 그 런데 이들은 세명이 완벽히 삼재진을 펼친채 아홉 개의 도로 이무기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간신히 버티고 있 던 이무기는 귓가로 나직이 광룡의 비명이 들리자 흠찟 하였다.

눈동자를 돌리지는 않았지만 고수들간의 혼신을 다한 생사의 대결에서 순간적인 방심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아도 날카로운 도신들이 갑자기 힘을 증폭하였는지 더욱 더 날카롭고 흉폭한 기세로 일제히 달려 들 었다. 절대 절명의 순간 이었다. 그런데 이무기의 행동이 다소 상식 이하이었다. 신법을 펼쳐 진세를 벗어나 지를 않고 더욱 더 진세속으로 몸을 들이민 것이다. 그리고 진세 중심에서 이무기의 몸이 매우 빠르게 회전하 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 치는 진세 중심으로 아홉개의 도신이 박혀 들어갔다.

'챙, 채챙'

'퍽, 퍼퍽'

소용돌이가 걷히자 장내의 전경이 드러났다. 당연히 죽었으리라 생각되던 이무기가 진세의 중앙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리고 회심의 역습을 가한 청의 인자들 세명이 거꾸로 죽어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이무기의 칠공에서는 선지피가 조금씩 흘러 나오고 있었으며 입에서는 더욱 더 많은 핏물이 게워지고 있었다.

그러던 이무기의 무릎이 조금씩 굽혀졌다. 그러나 끝내 쓰러지지 않겠다는 듯 한쪽 무릎만을 땅에 댄 이무기 의 시선은 남아있는 청색 복면의 인자들을 차갑게 노려보고 있었다. 광룡이 죽고 이무기가 중상을 입은 것은 거의 찰나지간의 일이었다.

광룡의 죽음에 울부짖던 폭룡과 노룡이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뛰쳐 나오자 노룡이 제풀에 지쳐 앞으로 고꾸라 지고 폭룡만이 광룡에게 달려 들었다. 하지만 용왕 이무기가 중상을 당하자 방향을 바꿔 용왕 이무기를 보호 하기 위해 청색 복면인들에게로 달려 들었다.

그렇지만 너무나 무모한 행동이었다. 두명의 청색 복면인이 폭룡의 좌우로 달라붙는 순간 양쪽에서 하얀 도광 이 번뜩이었다. 삼도막으로 갈라진 폭룡의 눈에서는 울부짖던 눈물 방울이 채 마르지 못하고 핏망울이 들어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두명의 청색 복면인은 폭룡을 죽인 기세를 살려 용왕 이무기에게 짓쳐 들어갔다.

이미 용왕 이무기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인자들이었다.

아이에게 검을 쥐어 줘도 충분히 용왕 이무기를 죽일 수 있었지만 맹수는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하는 데에도 최 선을 다하는 법이다. 청색 잔영이 길게 꼬리를 물고 하얀 도광이 번뜩이는 찰나 하얀 도광을 뚫고 아주 미세 하지만 적색 섬광이 번뜩였다. 두명의 청의 인자들의 도는 용왕 이무기의 지척에 이르러 멈추어져 있었고 바 람이 살랑이자 힘 하나 없이 버틴채 무릎을 꿇고 있는 용왕 이무기 앞에 도를 치켜든 채 버티고 선 인자들의 육중한 몸이 무너져 내렸다.

'쿵, 쿠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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