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16화 (16/152)

■ 제 16장 :

태청각의 태화전(太和殿)에서는 동방파의 장로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오늘이 3월 10일 이었다. 앞으로 오일후면 또 다시 신검이 출현하게 되는데 동방파에서 누구를 보내면 좋을지 에 대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장문인 천운검이 김장로를 바라보며 말을 했다.

"김장로가 경험도 있고 하니 다시 한번 부딪혀 보는 것이 어떻겠나?"

"장문인,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일전에 사상금나술을 펼쳐 신검이 손잡이를 움켜잡는 요행을 얻었지만 신검 의 기운을 이겨내지 못했었는데 지금 또다시 요행을 얻는다고 하여도 신검을 이겨낼 자신이 없습니다."

김장로의 솔직한 대답에 장문인 천운검은 할말이 궁해졌다. 백운검 김장로가 자신이 없으면 홍운검과 묵운검 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년전에 김장로는 동방파의 기보인 태아검까지 가지고 가지 않 았던가! 쇠를 무베듯 하던 태아검 까지도 신검에 검봉이 잘리어져 쓸모없이 되었는데...

"그럼, 태을장로나 삼원장로는 어떤가? 혹 진세를 펼쳐 신검을 제압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장문인, 저희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듣기로 신검은 나타나는 곳이 일정치 않고 땅속에서 솟아 나와 하늘을 날아 다닌다고 하는데 그 넓은 지역을 하늘과 땅속까지 모두 가두어 버릴 수 있는 진세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넓은 지역에 진세를 펼쳐 신검을 가두어 놓는다 할지라도 다시 그 진세 안에서 신검을 제압할 방도가 없습 니다."

태일진인이 역시 자신이 없다는 대답을 하였다.

"그럼, 육합 장로는 어떤가?"

"글쎄요, 육갑신이 도와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육갑신은 천기가 어긋나는 일 등 큰일이 아니면 나타나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귀는 신출귀몰하지만 지닌 바 능력이 신검에 대적할 정도는 아닙니다."

마지막 보루인 육합진인까지도 신검을 제압할수 없다는 대답을 하자 회의는 싱겁게 끝나 버렸다.

결국 이번 신검의 다섯 번째 출현시에는 동방파에서 아무도 보내지 않기로 결정한 후 장로 회의는 끝을 맺었 다. 회의를 마친 육합진인에게서 신검이 오일후면 출현한다는 소리를 듣자 은성이는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삼 년전 신검에 제자를 잃고 울부짖으며 서산을 떠나간 고진인이 이번에도 서산에 나타날 것 같았다.

흰빛에 싸인 검을 타고 하늘을 날며 신검과 겨루던 고진인은 은성이의 머릿속에 깊숙이 각인되어져 있었다.

눈을 감고 그 당시 신검과 고진인의 공중결투 장면을 떠올리던 은성이는 서산에 다시 가고픈 충동을 느꼈다.

삼년동안 절치부심 하였을 고진인과 신검의 재 대결을 보고 싶은 맘도 있었지만 자신도 한번 신검과 겨루어 보고 싶은 호승심이 생기었다.

동방파의 모든 무공을 배운후 자신의 무공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은성이였다. 하산에 대해 생각하자 아버지와 금아도 보고 싶어졌다. 삼년전 동방파에서 무공을 익히겠다는 서신 한장 보낸 이후로 그동안 소식한번 보내지 못했었다. 아버지와 금아가 생각나자 마음이 한없이 조급해진 은성이는 지체없이 육합진인과 김장로에게 자신 의 의사를 밝히었다.

부모님이 보고 싶다는데 어떻게 반대할 수 있으랴. 육합진인과 김장로가 은성이와 함께 장문인에게 은성이의 뜻을 전하자 장문인도 이를 허락하였다. 다른 장로들과 백운각의 사형들과 황사매에게 일일이 찾아 다니며 인 사를 마친 은성이는 다음날 아침 등뒤에 봇짐을 매고 허리에는 청은검을 찬 채 동방 제일문을 나섰다.

은성이는 삼년전에 동방파에 올때는 백의 장삼을 입었었지만 훤칠하게 자란 키 때문에 지금은 할수 없이 도인 들이 입는 푸른색 도복을 걸치고 있었다.

황사매는 그동안 정이 들었는지 동방 제일문까지 따라와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산에는 붉은 진달래가 흐드러 지게 피어 있었고 하늘에는 종달새가 '지지배배' 울며 봄을 노래하고 있었다.

온산천이 봄에 물들어 있는 지금 은성이의 나이는 봄의 풀잎처럼 청초한 17살이었다. 마니산에서 서산까지는 이틀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다. 은성이가 서산에 도착한 것은 13일 저녁 무렵이었다. 식사를 하고 숙소를 예약 한 은성이는 다른 할 일도 없는 지라 거리로 산책을 나갔다.

거리에는 무술을 익힌 것으로 판단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였다. 신검이 출현하는 것은 모레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조금 한다하는 무술인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해가 막 지고 있는 산등성이 너머로 멀 리 검시봉이 보였다. 저곳 어디에 신검이 숨을 죽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틀만 있으면 대지를 박차고 나 와 다시금 숨막히는 결 전을 벌일 것이다. 지금 신검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리저리 상상의 나래를 펴던 은성이는 발걸음을 검시봉으로 향했다. 검시봉까지 가는 길은 산길이고 아직은 별조차 뜨지 않은 초저녁이라서 많이 어두었지만 은성이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한점 공력도 운기하지 않 은채 유유자적하며 걸었지만 이각 정도 지나자 검시봉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대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검시봉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검시봉의 산세가 조금 험하고 곳곳에 암벽등이 가로막고 있자 은성이는 태 극진기를 조금 운용한 후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급하게 서두르지도 않는 것 같고 빠른 속도로 오르는 것 같지도 않는 것 같았지만 일다경 후 쯤에 은성이는 검시봉 정상에 서 있었다. 신검은 모레 이 근처에 나타날 것으로 생각되지만 어느 방향에서 나타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혹 신검이 검시봉 가까이 있다면 심안을 운용 하여 찾아 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자 은성이는 근처에서 사방이 탁트인 장소를 골라 조용히 좌정하였 다. 좌정한 후 의지를 태극진기에 집중하자 태극진기가 발동되어졌다. 하단전의 태극진기중 2할 정도는 태양 이 빛 을 발하듯 몸 전체로 빠르게 퍼져 나갔으며 나머지 8할 정도는 회음혈로 하여 양쪽 임맥과 독맥으로 흘 러 나갔다.

회음혈에서 몸 뒤쪽으로 백회혈로 이어지는 독맥과 역시나 회음혈에서 시작하여 몸 앞쪽을 돌아 천돌혈을 지 나 미간까지 이어지는 임맥이 백회혈에서 만난후 회음혈까지 이어진 기경 8맥중 충맥을 따라 다시 회음혈로 내려갔다.

경락을 흐르는 태극진기는 액체 상태로 흐르고 있었으며 경맥과 락맥 외 전신 세맥으로는 액체 상태의 태극진 기중 일부가 기상으로 되어 끊임없이 퍼져 흘러 나가며 세포 하나하나까지 태극진기를 주입시켜 주고 있었다.

심신이 극도로 안정되고 주변 환경과 하나로 동화되자 은성이는 심안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고요하고 만상이 일체이며 자신을 잊고 사물을 잊고 스스로가 사물의 일체로 변화 되어진 은성이가 있는 것도 같고 또한 없는 것도 같은 자신의 의지를 발휘하여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생각하자 심안이 형성되고 발휘되기 시작하였다.

은성이의 의지는 은성이의 몸에서부터 퍼져나와 검시봉 전역으로 확산 되어져 갔다. 확산 되어져 가는 의지는 은성이의 몸에서부터 발현되어졌기에 새로운 정보를 계속해서 은성이에게 보내오고 있었다.

의지에서 보내지는 여러 정보는 은성이의 무의식을 거쳐 취합되고 판단되어져 처음에 생각하던 하나의 목적과 비교 분석된후 영향이 없으면 무시되고 다소라도 연관이 있으면 그 부위로 더 많은 의지가 모여들고 있었다.

은성이의 의지는 산을 내려와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백장 정도 까지는 매우 선명한 정보를 보내오던 의지가 이백장이 넘어서자 조금씩 희미해 지더니 삼백장 정 도에 이르자 더 이상 정보를 보내 주지 않았다. 의지를 땅속으로도 퍼져 나가도록 유도 하였으므로 검시봉 중 앙에서 삼백장 주위로는 신검의 정체가 없는 것이 확실하였다.

심안에서 깨어난 은성이는 검시봉에서 내려와 북동쪽으로 발걸음을 올렸다. 지음지기가 북동쪽에 가장 많이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은성이는 지음지기가 가장 많이 밀집된 곳에 도착하였다. 도착하고 보니 이곳 은 귀선문의 제자 김선경이 신검에게 목숨을 잃은 자리와 매우 근접되어져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고진인의 제자인 김선경의 봉분이 보였다.

은성이는 봉분으로 다가가 잠시 김선경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감각적으로 지음지기가 가장 많이 밀집된 장소 를 찾은 은성이는 그 위에 정좌를 한 후 다시금 심안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심안을 운용하기 전에 기를 운 용하여 주변을 탐색해본 결과 인적은 없었으며 사방은 고요함 속에 묻혀져 있었다.

은성이가 가부좌를 튼 자리는 음혈이 흘러 나오는 곳이었다. 곤륜산에서부터 흘러 내려온 음기가 누천년간 지 하 깊숙이 쌓인후 또아리를 틀고 있다가 마침내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대지 밖으로 흘러 나오고 있는 음혈 자리로서 굳이 기를 운용하지 않아도 감각이 예민한 사람은 능히 느낄 정도로 음기가 성한 자리였다.

심안을 운용하자 은성이의 의지는 모두 땅속으로 펴져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신검에 대한 단 하나의 목표로 발휘된 의지는 신검과 유사한 기운인 지음지기가 밀집된 장소로 집중되어 땅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음혈을 따라 이동된 의지가 지저 깊숙한 곳에 이르자 은성이는 음기의 기류 속에서 아주 가늘지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음기의 줄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느낌만으로도 섬찟한 강한 음기의 줄기는 방향성이 있었고 이 줄기를 따라 이동하던 은성이의 의지는 이 줄기 들이 지저 깊숙한 곳에서 한 방향으로 모여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경악스러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곤륜산에서부터 내려온 음기의 결정체인 '순정지음지기'가 모여 있는 지저 깊숙한 곳에서 생명체가 있다는 징후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생명체의 머리부근에 신검이 놓여 있었다. 은성이의 의지가 생명체의 존재를 감지하자 땅속의 생명체에게 서 강한 반발이 발생되어졌다. 지저 100장 깊숙이 위치하고 있는 미지의 생명체 주위로 아주 음습하고 살기에 찬 기류가 형성되어지는가 싶더니 이 기류가 땅속을 뚫고 은성이에게로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위험을 느낀 은성이가 급히 심안을 거두고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파바바박'

은성이가 좌정하고 있던 장소의 흙과 암석들이 하늘로 폭발하듯이 튀어 올랐다. 참으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은성이가 태극진기를 완성하고 피부 호흡을 하게 된 이후로 심안을 거두고 운기 조식을 멈추는데 걸리는 시간 이 전혀 필요가 없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 주화입마를 당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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