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4장 :
백호권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백호심법을 운기해 주어야 한다.
동방파의 도인들은 평소 내공을 단련하는 데에는 귀장경을 운기 하였지만 실전에 임해서는 자기가 익힌 사신 권법의 내공심법을 운기 하였다. 이는 사신권법의 내공심법이 동방파의 다른 무공을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었 으며 또한 직접 사신권법을 펼칠 때에는 큰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었다.
실전에서는 한순간의 실수로도 생사가 결정되는데 내공심법을 바꾸느라 정신을 흐트러 놓는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진배가 없다. 하지만 태극진기를 운용하는 은성이는 따로 백호심법을 운기하지는 않았다.
백호심법도 운기해 보았지만 귀장경과 마찬가지로 태극진기 속에 모두 귀속돼 버리고 별 효과도 없자 익히기 를 중단해 버린 것이다. 백호심법이 없다 해도 태극진기는 백호권법을 펼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사신권법은 형보다는 기세를 중요시하는 권법이었다. 백호권법도 호랑이의 용맹하고 강한 공격력을 모방하여 권법의 틀을 만들었지만 권법 진결은 권법속에 내재돼 있는 호랑이의 기세를 표현하는 데에 있었다.
똑같은 '맹호 출림' 이라는 초식이라도 하수는 그 형을 표현하는데 그치지만 고수는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은 맹수의 사나운 기세로 상대방의 전의를 일시에 무너뜨려 버리는 것이다.
은성이가 하단전 태극진기의 삼성 가량을 운용하여 백호 권법을 펼치자 수련실 중앙에 있는 은성이의 기세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압도적인 기세로 밀림을 나선 호랑이가 번개같은 빠르기로 덮쳐들어 앞발로 후려치고 고 양이과 동물 특유의 유연성인 표홀한 동작으로 방향을 전환한 후 상대방의 목젖을 물어 뜯었다. 허리를 최대 한 웅크린 후 순식간에 도약하여 사납게 공격하고 '백호 번신' 이라는 초식으로 상대방을 뛰어넘어 상대방의 몸 뒤에서 유연하게 허리를 틀어 강하게 공격하였다.
공격 후 땅에 착지할 때에는 깃털보다도 더 가볍게 착지하여 대지와의 충격을 완화시켰으며 몸 관절을 이완시 켜 착지시 충격을 최소화 시키는가 싶던 신형은 어느새 용수철 처럼 튀어 나갔다.
백호 권법의 마지막 초식인 '맹호 파천' 초식은 가장 압권이었다. 이는 상대방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동 작으로 오른손을 앞세우고 상대방에게 덮쳐가는 초식이었는데 은성이가 덮쳐가는 방향에 있던 네명의 노도인 과 육대장로 모두가 움찔할 정도로 그 기세가 사납고 용맹하였다. 특히 천법원 출신 장로들의 얼굴에는 다소 나마 핏기까지 가셔 있었다.
이 '맹호 파천' 초식은 덮쳐가는 기세도 무섭지만 앞에 둔 오른손의 사나운 기세는 특히 가공스러웠다. 초식 의 강맹함을 위하여 단 이초의 변식만을 둔 양손의 공격력의 강력함은 바위를 부숴 뜨리고 산을 허물어 뜨릴 정도로 위력적인지라 초식명을 '맹호 파천' 으로 명명하였던 것이다.
백호 권법을 모두 펼치는 데에는 막대한 내공 소모가 뒤따랐다. 특히 마지막의 '맹호 파천' 초식은 내공과 심 기를 크게 소모하는 초식이라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초식이었다. 백호 권법을 펼친 후에는 선 채로 내기를 다스려야 하는데 은성이는 지친 기색은커녕 호흡조차 흐트러지지 않아 있었다.
실력을 모두 보인 은성이가 장문인이 앉아 계신 방향을 향해 포권을 하자 은성이에게 백호 권법을 시전해 보 라고 시킨 백의 노도인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세명의 노도인에 이어 장문인과 육대 장로 모두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였다. 26대 제자들까지도 가세한 박수 소리는 청룡전 내부가 떠나갈 듯 울려 퍼졌다.
광한전의 사조들을 따라 송림과 죽림 사이로 난 사잇길로 들어서고 있는 은성이에게 청의의 노도인이 말을 했 다.
"은성아! 지금부터는 진법이 펼쳐져 있으니 내 발자국만 따라 들어 오너라!"
"예, 사조님"
대답을 하였지만 은성이는 내심 의아해 하였다. 왼편에는 소나무 숲이 오른편에는 대나무 숲이 펼쳐져 있고 가운데로 난 사잇길에는 이름모를 잡초까지도 나 있었다.
진법을 펼친 흔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삼보도 내딛지 않아 주변 경관이 순식간에 바뀌어져 버렸다. 주위는 갑자기 만장 단애에 뾰족 뾰족한 바위 투성이의 천험의 계곡으로 변해 있었다. 발밑의 바위는 군데 군데 사암 투성이라서 살짝만 스쳐도 바스라져 버렸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만장 단애 아래로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 다.
날씨는 갑자기 추워지고 살을 얼려 버릴 정도로 차가운 바람은 그 강도가 보보마다 바뀌어졌다. 오른편 바위 밑에서 순간적으로 광풍이 몰아쳐오는가 하면 앞쪽에 구멍이 송송 뚫린 바위 사이로는 살을 에일듯한 날카로 운 바람이 불어 나왔다.
급히 태극진기를 운용하자 냉기와 광풍은 별 위협이 되지는 못하였지만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신을 안정시키고 앞에 있는 청의 노도인의 발자취를 따라 발걸음을 일치시키자 주변 경관이 다시금 바뀌어졌다.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송림과 죽림 사이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청의 도인의 발자국만 따라 일다경쯤 가자 앞에 마당이 있는 한 채의 기와집이 눈에 띄였다.
기와집은 대략 일곱채 정도 되는 방이 있는 것 같았으며 기와집 중심 건물에는 '광한전' 이라고 씌여진 작은 현판이 걸리어 있었다. 광한전에서는 일반적인 음식대신 벽곡단을 먹었다. 가끔씩 콩이나 솔잎을 가루로 내어 섞은 것도 먹곤 하였지만 화식은 전혀 금지되었으며 광한전내에 벽곡단은 몇 단지나 보관되어 있었다.
광한전의 '무언실'
자고로 도인의 말에는 실심이 있어야 하고 되도록 말수는 줄여야 한다는 의미로 지어졌지만 실상 '무언실'은 광한전 내의 회의실 이었다.
지금 '무언실' 내에는 은성이와 네명의 노도인이 좌정해 있었다. 네명의 도인중 수좌는 청의 도복을 입은 노 도인 이었는데 동방파에서는 이들 네분의 명호를 이분들이 평생 심혈을 기울인 사신 권법의 이름을 따서 존경 의 의미로 청룡, 주작, 백호, 현무 라 칭하였다.
그래서 은성이도 청의의 노도인을 청룡사조라 칭하고 있었다. 은성이가 보기에 사조들은 도력이 높아서인지 아니면 광한전의 '무언실'에 오랫동안 계셔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극도로 말을 아꼈는데 그래도 청룡 사조가 조금 낳은 편이었다.
"은성아, 네가 가전으로 익힌 내공심법이 본파의 무공과 반발하지 않고 특히 사신권법과도 상충하지 않는다니 매우 놀라운 일이구나. 너의 심기가 곧고 성취가 남다르며 특히나 내공심법이 특이하여 장문인과 상의한 후 너에게 사신권법 모두를 가르쳐 주기로 하였으니 후에 동방파의 위명을 올리고 옳은 일에만 사용하도록 하거 라! "
"예, 사조님"
"그리고 이책은 '오행상극진해'로 광한전으로 들어오는 길과 숲속에 펼쳐진 진법의 개략적 설명 및 파진법이 니 반드시 암기해 놓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역시나 청룡사조 외 다른 사조들은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말도 없었다.
제일 마지막 방으로 배정된 자신의 방을 깨끗이 정리한 은성이는 '오행 상극진해'를 펼쳐본 후 읽기 시작하였 다. 초금의가에서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에는 오행에 관련된 책자도 많았지만 '오행 상극진해'의 원리는 너무 나도 방대하고 심오한 천지간의 이치가 담겨져 있었다.
두 번 세 번 읽었지만 그 원리가 너무나 심오한지라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내용을 전부 다 암기해 버렸다.
특히 파진법에 대해서는 꿈속에서라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암기하였다.
다음날부터 은성이는 사신권법을 배우게 되었다. 광한전 앞 마당에는 풀이 돋아날 겨를이 없을 정도로 은성이 의 발자국으로 뒤덮여 졌으며 광한전을 둘러싼 송림과 죽림에 살던 새들도 은성이의 기세에 다른 숲으로 이사 를 갔다. 소솔한 가을 바람이 송림과 죽림을 휩싸고 돌다 광한전 '무언실'로 들어온 후 갈 길을 잃고 헤메다 조그맣게 나 있는 창문으로 가까스로 빠져 나갔다.
오늘 '무언실' 내에는 은성이와 네명의 노도인이 좌정해 있었다. 역시나 청룡사조가 제일 먼저 말을 했다.
"사제들! 그 동안 '조사지공'을 모두 살펴 봤으리라 보네. '조사지공'에는 비록 보법과 검법만이 실려 있지만 나는 그중 검법의 2절인 천지인 3개의 초식을 본 후 큰 깨달음을 얻었다네. 우리 사신 권법은 권법에 사신의 형세 및 기세를 실어 공격함을 위주로 하고 있는데 권세에까지 사신의 기세를 실어 표출할 수도 있을 것 같네 . 어떤가 사제들?"
청룡 조사의 말을 백호 조사가 받았다.
"청룡사형, 이심전심인가 봅니다. 저도 요즈음 그 문제에 대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표정을 보니 주작과 현무 사제도 그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 같자 청룡 진인이 말을 받았다.
"이제 은성이도 사신권법을 모두 배웠으니 우리는 오늘부터 암동에서 폐관수련 하며 이 문제나 연구하기로 하 지. 은성아!"
"예. 사조님"
"너에게 더 이상 가르쳐 줄 무공이 없으니 오늘부터는 혼자서 조사지공을 연구하여 보거라!"
"알겠습니다, 청룡사조님"
은성이는 동방파에 와서 무공이 비약적으로 발전되어 있었다. 동방파에 오기 전에는 내공만 강하였었지만 동 방파의 여러 절기들을 익히면서 무술 실력은 물론 내기의 운용도 훨씬 능수능란 하여졌던 것이다. 자운곡에 있으면서 조금 연구해 보았었지만 별 성취가 없었던 조사지공의 보법인 '일시 무시일'은 이형환위와 기타 권 법 및 검법을 익히면서 절로 깨달아져 갔다.
그래서인지 은성이가 '천지'도인이 저술한 '해동권법 개론' 의 요지대로 내공을 운기하지 않은 상태에서부터 태극진기를 서서히 높여가면서 '일시 무시일' 에 대한 수련을 하자 그 성취는 비약적이었다. 빠르고 현란하던 보법이 더욱 빠르고 더욱 현란해지게 펼쳐지더니 '일시 무시일'을 익힌지 삼개월만에 느리고 단순화 되었다.
하지만 그 느리고 단순한 일보 속에는 현기까지 어리어 있었다.
이어서 은성이는 조사지공의 검법을 수련하기 시작 하였다. 먼저 일절의 '석삼극 무진본'을 익히기 시작하였 다. 일절의 세 개의 초식중 무진쾌는 그 동안 유성검법을 익히 면서 큰 성취를 얻은 바 있었다. 그리고 무진 중은 자운곡에서 암벽에 있는 천부경을 지우기 위해 수련하면서 이미 어느 정도의 성취가 있었다. 마지막 초 식인 무진변을 대성하기 위해서는 내기의 조절이 가장 중요하였다.
하지만 은성이는 태극진기를 완성한 후 내기의 조절이 천인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상태였다. 이미 육체적인 경지를 벗어나 정신적으로 내기를 조절하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다시금 삼개월을 수련한 후 송림에서 봄 내음이 풍겨져올 때쯤 은성이는 조사지공의 검법 이절인 천지인을 수련하게 되었다.
천지인 일초인 천일일을 수련하는 은성이는 검을 들어 하늘을 가리킨채 서 있었다. 검에 태극진기를 운용하자 검기가 흐르고 검강이 되어 흘러 나왔다. 태극 진기를 조금 더 주입하자 검강의 크기가 커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뿐 풍운 조화는커녕 아무런 징조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참을 이리저리 실험해 보고 연구해 보던 은성이는 검을 거두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명상하며 조사지공의 천지인 검법에 대해 생각하던 은성이는 갑자기 '허무경'에 생각이 미치었다. 은성이는 전에 자운 곡에서 '허무경'의 4단계 수련법을 마치고 5단계 까지도 조금 수련하였었다.
이 5단계 수련법은 몸 안에 있는 기를 다른 물체에 전이시키거나 손바닥이나 손가락 등을 통해 장풍이나 지풍 형태로 방출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은성이는 동방파 무공중 '미륵지'를 익히면서 몸 안의 내기를 내쏘는 방 법은 이미 습득하였다. 게다가 방금전에는 검강까지도 익숙하게 펼치지 않았는가. 자신도 모르게 이미 허무경 5단계 수련은 마친 것이다.
허무경 6단계 수련법은 손에 닿지 않은 채로 허공을 격하고 물체를 움직이는 것으로 격공 섭물과 이기어검 뿐 만이 아니라 자신과 떨어진 사람을 신체 접촉 없이 기만으로 살상하거나 치료까지 가능한 단계이었다.
이를 수련하기 위해서는 중단전이 발달되어야만 가능하였다. 동방파의 무공은 허무경 5단계를 응용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현재 광한전의 사조들이 조사지공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차원의 무공을 창안하기 위해 폐관수련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차원의 무공조차도 6단계 초입의 무공이었다.
태극진기를 운용한 후 벽면에 걸어놓은 청은검을 향해 손을 뻗고 허무경 상의 흡자결을 펼치자 너무나 쉽게 청은검이 자신의 손으로 날아왔다. 출자결을 펼치자 청은검은 벽면에 있는 검걸이로 날아갔다. 내력 운용이 조금 불안정 하였는지 아니면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라서 익숙하지가 않아서 였는지 검은 조금 삐딱하게 걸리 어 있었다.
흥미를 느낀 은성이는 방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향해 허무경 6단계의 흡자결과 출자결을 펼치어 본 후 조금 씩 숙련되어져 가고 만족할 만큼 정교해지자 청은검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마당의 중앙에 선 은성이는 청은 검을 뽑아 출자결을 펼친 후 청은검을 조절하기 시작하였다.
문득 이년전 귀선문의 고진인이 검을 타고 날아다니던 것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청은검은 광한전의 마당에서 은성이가 유도하는 대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내기를 방출하여 청은검을 유도하던 은성이는 손바닥 이 아닌 온몸으로 내기를 방출하여 청은검을 조절하여 보았다.
이미 피부호흡을 하고 전신으로 내기를 조절할 수 있는 은성이에게는 큰 문제가 없었다. 전신에서 흘러나온 내기를 몸 앞에서 뭉쳐 작은 줄기를 만든 후 청은검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었다. 손가락, 손바닥, 전신은 물론 발바닥으로도 청은검은 조정 가능하였다. 며칠동안 이기어검을 수련하던 은성이는 청은검을 매우 정밀하 게 유도할 수 있게 되자 청은검에 검기를 불어 넣은 후 날려보내 유도하여 보았다.
그리고는 검강을 불어 넣은 후 날려보내 유도하여 보았다. 십장밖에 있는 나뭇가지가 순식간에 잘리어 나갔다.
나뭇가지를 자르고 밑으로 내려오던 청은검이 잘려진 나뭇가지를 10여 조각으로 다시 자른 후 일장여 떨어진 곳에 있는 끝이 뾰족한 바위를 향해 날아갔다.
'사악'
너무나도 쉽게 단단한 바위가 잘리어 나갔다.
하단전에 있는 태극진기를 모두 운용하여 검강이 주입된 이기어검을 펼치고 있어서 그런지 한시진을 수련 하 여도 별로 피곤하지는 않았다. 며칠동안 이기어검을 수련하던 은성이는 문득 광한전 사조들이 광한전 뒤편의 암동에서 일년이 넘도록 폐관 수련하며 얻으려는 무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시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태극진기를 쏟아내 권풍을 발하자 권풍은 권세가 되었다. 태극진기 를 조금 더 운용하자 은성이의 권 주변에 권강이 형성되어졌으며 권세는 더욱더 강해졌다.
문득 권강 주변에 흐릿하게 기운이 형성되더니 이윽고 흐릿하던 기운이 형체를 띄기 시작하였다. 형체는 호랑 이를 닮은 것도 같았다. 형체는 커졌다 작아졌다, 희미해졌다 진하여졌다 또는 용모양에서 주작의 모양으로 등 시시각각 변화했다. 그리고 그 형체는 앞으로 쏘아져 나가기도 하였다. 자세히 살펴보면 색도 변화하는 것 같았다. 호랑이의 형체는 백색으로 용의 형체는 청색으로...
오행이 합일된 태극진기 이라서 색상도 언제든지 오색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 같았다.
광한전의 봄은 소리없이 가고 여름도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광한전의 마당에 나와 있던 은성이는 하단전에 있는 태극 진기를 모두 운용하여 사신권법을 펼치면서 태극진기를 사신권법상의 기세와 일치 시키었 다. 그러자 은성이의 몸 바깥으로 내경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백호 권법을 펼치는 은성이의 몸에서는 백호의 형상을 한 흰 빛이 품어져 나왔고 내쏟는 권세에서는 큰 백호가 아가리를 벌린채 상대방에게 덮쳐가고 있었다. 백호는 한 마리만이 아니었다. 은성이가 연달아 권을 내지르자 수많은 백호가 상대방에게 몰려가기 시작하였다. 백호권법을 마친 은성이는 연달아 다른 사신권법을 펼치고 선채로 내기를 다스렸다.
허무경 7단계는 기가 아닌 정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조절하는 것이었다. 이는 상단전이 발달되어야만이 수련 가능하였다. 내기를 운용하지 않은채 앞에 있는 청은검을 움직여 보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청은검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은성이는 조사지공의 천지인 초식을 수련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허무경 6단계를 수련하면서 익 혔던 여러 기술들을 응용할 수가 있었다. 검을 들어 하늘을 가리킨 후 검에다.내공을 주입하자 여러 가지 무 공을 창안할 수 있었다. 검에서 뻗어 나온 검기가 몸 전체를 촘촘히 에워싸서 몸을 보호할 수도 있었으며 검 기를 넓게 검막처럼 퍼트려 일정한 공간 전체를 보호할 수도 있었다. 몸을 에워싸고 있는 검기의 일부는 상대 방의 공격에 사용될 수도 있었고 진기를 조절하여 검막의 원하는 부분 만을 열어놓을 수도 있었다. 비록 풍운 조화를 일으키기에는 한참 부족하지만 ...
천일일이 어느정도 성취가 있자 은성이는 천지인 이초인 지일이를 수련하였다.
검을 땅에 박고 태극진기를 운용하자 땅 속의 원하는 부위로 검기를 마음대로 방출할 수 있었다. 땅속으로 방 출된 검기는 은성이가 원하는 장소로 튀어 나왔다. 내력을 더 돋구자 검기가 튀어나오던 장소에 있던 조그마 한 바위가 두 조각이 나 버렸다. 며칠 후 한 지점에서만 튀어나오던 검기가 땅속 여러지점에서 동시에 튀어 나왔다.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던 검기는 그 튀어나오는 속도와 시간 그리고 강도 까지도 변화 되었 다. 은성이가 지일이를 익힌지 한달 만에 이루어진 결과였다.
인일삼은 검환을 방출하는 검법이었다. 백설이 나부끼는 광한전 앞마당에는 은성이가 검을 들어 정면을 가리 키고 있었다. 은성이의 검에서 하얀 검환이 피어 나더니 송이송이 내려오는 눈꽃사이로 천천히 솟아 올랐다.
그리고는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크기와 밝기가 다른 검환이 한 개씩 혹은 몇 개씩 무리지어 은성이가 원하는 목표물로 사라져 갔다. 어떤 검환은 검끝에서 생기자 마자 번개처럼 방출되었고 어떤 검환은 검끝으로 솟아올 라 잠시 머무르다 은성이가 원하는 목표물로 지겹도록 느리게 이동되어졌다.
검환이 방출되는 장소에 있던 집채만한 바위에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은 바위를 완전히 관통한 듯 바위의 그 림자 속에 작지만 밝은 빛의 광흔을 새겼다. 조사지공의 제 삼절은 '일종 무종일'이었다.
'일종 무종일'은 일정한 초식이 없었다.
자운곡에서 천부경을 연구하던 조사가 최후의 심득을 얻어 이 심득만을 적어놓은 상상 속의 무공이었다. 이 무공 또한 상단전이 개발되어야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으로 아직도 은성이에게는 익힐 수가 없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은성이가 광한전에 들어온 후 완성한 무공들은 공전절후한 수준의 무공들 이었다. 광한전에 들어온 후 일년 팔개월만에 잠룡에 불과하던 은성이가 여의주를 얻은 것이다.
그동안 익힌 무공들을 반복수련하며 한달여 가량을 지내자 암동에서 폐관 수련을 하던 사조들이 나타났다. 사 조들은 그동안 기력을 크게 손상시켰었는지 이마에 주름살이 몇 개씩 더 늘어 있었지만 목표한 바는 이루었는 지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었다.
은성이는 사조들이 창안 하려던 무공을 이미 대성하였지만 이를 숨길 수 밖에 없었다.
"사조님들, 그 동안 평안하셨는지요?"
평안했을 겨를이 없었겠지만 은성이는 예의상 안부를 먼저 물었다.
"음, 네가 염려해준 덕분에 평안하였구나 . 그래 그 동안 무공 수련은 열심히 하였느냐?"
언제나처럼 청룡사조께서 먼저 말을 받았다.
"예, 하지만 사조님들이 계시지 않아 적적하였습니다."
"적적할만도 하였겠구나. 하지만 이제는 적적하지 않아도 된다. 내일은 광한전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