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12화 (12/152)
  • ■ 제 12장 : 잠룡 득주

    은성이는 본래 허선도 장로의 제자이지만 허장로가 동방파에 없는 이유로 김장로가 자청하여 무공을 전수하여 주기로 하였다. 이는 신검을 제압하려다 중상을 입은 후 운기 요상시 도와준 은혜에 대한 보답의 의미도 있었 지만 이면에는 또다른 의미도 있었다. 운기요상시 막혔던 혈도를 너무나도 쉽게 뚫어버린 은성이의 내가 진기 에 대한 의문점도 해소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김장로가 거처하는 장소는 백운각 이었다.

    동방파에는 상청각이라고 하여 장로와 그들 직전 제자들만의 건물이 별도로 지어져 있었다. 건물은 중앙에 상 청각 이라고 하는 수련실이 있었으며 그 외곽으로 10장여 떨어져서 10개의 건물이 빙 둘러싸도록 설계되어져 있었다. 열 개의 건물은 각 건물마다.1명의 장로와 그의 직속 제자들만 거취할 수 있었으며 그 명칭은 거주하 는 장로의 별호로 정하였다.

    백운각은 김장로가 머무르는 장로실과 좌우로 수심실과 수련실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좌우 3개씩 6개의 방이 출입문과 맞닿으며 빙 둘러싸여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김장로와 배사형이 은성이와 함께 백운각으로 들어서자 문옆에 3명의 제자들이 반가이 인사를 하였다.

    은성이는 동방파에 오자마자 배사형의 권유로 목욕을 하고 깨끗한 도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백운각에 잠시 들 른적이 있었지만 낯이 익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모두 수심실로 모이거라!"

    제자들의 인사에 답례를 한 김장로가 자애스러운 목소리를 한후 앞장서자 제자들이 따르고 그 뒤를 은성이가 따라갔다. 수심실은 장로실 옆에 위치한 서고였다.

    위치가 남향인지라 창으로는 따스한 햇살이 비춰들고 통풍도 잘 되었다. 서책옆에 큰 소나무를 넓게 자른 후 이를 이어놓은 듯한 탁자가 있고 탁자 옆에는 10여개의 의자가 있었다. 김장로가 앉고 제자들이 각기 의자에 앉았지만 은성이는 아직도 탁자 옆에 서 있었다.

    "앉거라!"

    은성이가 제일 마지막 의자에 앉는 것을 확인한 김장로가 제자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같이 온 은성이는 허선도 장로의 속가 제자이지만 내가 특별히 장문인께 요청하여 무공을 전수해 주기로 하 였다. 자운각에는 내가 따로 말을 해 놓았으니 백운각의 식구라 생각하고 잘 대해 주어라! 그리고 석승이는 은성이에게 직접 무술 지도를 해 주거라."

    "예! 사부님"

    "승록이는 은성이의 방을 정리해주고 심장로에게 부탁해 필요한 물품을 구비해 주거라!"

    "예! 사부님"

    30여세나 되었을까한 매우 호남형으로 생긴 도인이 말을 받았다. 셋째 제자는 20대 초반의 윤효수인데 호리호 리하고 심기가 깊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리고 넷째 제자는 10살 먹은 황민영 이라는 매우 귀여운 여제자였 는데 은성이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흘끗흘끗 바라보고 있었다.

    제자들과의 상견례가 끝나자 김장로는 수심실에서 나와 은성이의 방을 막내 제자의 옆방으로 지정해 주었다.

    은성이가 백운각에 온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반시진 정도 지난 후 은성이는 수련실로 오라는 막내 사매의 기별을 받았다. 수련실은 사방이 5여장에 이르렀는데 바닥은 두꺼운 목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수련실에는 김장로와 3제자가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은성아! 오늘부터 너에게 본격적으로 무술을 가르치려 한다. 허장로에게서 이미 배웠던 무공성취가 어느정도 인지 알아야 하니 배운 것을 한번 시전해 보거라!"

    "예! 장로님."

    김장로의 청에 의해 수련실 중앙으로 나선 은성이는 내공을 돋운 후 권법과 검법을 시전하려고 하였지만 수련 실 바닥이 나무로 이루어져 있는지라 약간 난처해졌다. 태극진기를 운기하면 수련실이 박살날 것은 분명한 사 실이었다. 내력없이 호흡만을 조절한 후 해동권 입문에서 해동권법 그리고 유운검법까지 시전할 수 밖에 없었 다. 하지만 6년동안 매일같이 연습한 무공들이었다. 내공을 운기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태극진기는 은성이의 세맥까지도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으며 마음은 태산보다도 안정되어 있었다.

    은성이의 무술 시연을 보고있는 김장로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동안 이론적으로 들어오고 성취하려고 노력 했으며 꿈꾸었었던 모든 것이 은성이의 해동권법과 유운검법속에 녹아 들여져 있었다.

    삼년전부터 더 이상의 진보가 없이 막혀 있었던 마음의 벽이 한거풀 일순간에 무너지며 깨달음의 환희 속에 몸을 떨고 있었다. 마음의 벽은 동방파의 절기들을 그토록 연구하고 수련하며 또한 명상하였는데도 철옹성처 럼 단단하였건만 은성이가 시전하는 동방파의 가장 기초적인 무공인 행동권법과 유운검법 앞에 산산이 부숴져 나간 것이다.

    무공 시연을 마친 은성이는 발걸음을 죽인 후 조용히 김장로의 곁으로 다가갔다. 김장로가 갑자기 그 자리에 서 정좌한 후 명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운공조식이나 명상중에는 주변이 적막하여야만 한다. 하물며 사숙의 좌선임에야...

    김장로의 제자들은 갑작스런 사부의 좌선에 의아해 했지만 할 수 없이 뒤꿈치를 들고 소리를 죽인 후 은성이 와 함께 수련실을 나갔다. 배사형이 수련실 문의 호법을 서자 나머지 4명은 수련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 된 걸상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사제! 권법과 검법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더군. 멋은 있지만 그렇게 해서 어떻게 상대방과 겨루기를 할 수 있겠나?"

    근육으로 똘똘 뭉쳐진 것 같은 단단한 몸매의 이사형의 말을 4사매가 이었다.

    "하지만 매우 멋있던데요. 우아하고 부드럽고, 나도 은성 사형에게 부탁해서 우아한 해동권법과 멋들어진 유 운검법을 다시 배워야겠어요"

    "하하! 황사매. 무공은 멋으로 하는 것은 아니란다. 더군다나 우리 동방파의 입문 무공이 멋만 있고 위력이 없다면 앞으로 해동 제일문이라는 명판은 다른 파에게 넘겨야 할걸."

    "사형! 사매!, 사실 제가 펼친 권, 검법은 원형과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으며, 심신이 조화롭도록 변형 되었으니 위력이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부인 허장로에게서 무공을 배운 후 몇 번의 깨달음과 동방파의 조사인 덕수진인의 무공을 접하는 기연을 통 해 해동권법과 유운검법의 허와 실을 파악하여 조금씩 변형 하였기에 은성이의 말에는 자신감이 실려 있었다.

    "그래! 그럼 나의 해동 권법을 한번 보게, 안목이 많이 트일거야"

    하면서 삼사형 윤효수가 수련실과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서 해동권법을 시연해 보였다. 권법을 펼치는 삼사형 은 한동작 한동작 매우 심혈을 기울이는 듯 힘과 정성을 들여 시연하고 있었다. 내뻗는 주먹에서는 권풍이 일 고 방향 전환은 신속하고 동작은 정밀 하였지만 은성이가 보기에는 허점 투성이였다. 내뻗은 주먹이 멈출때는 정권끝이 미세하게 떨려 힘이 분산되었으며 초식과 초식사이에서는 이어짐이 원활하지도 않고 수비도 불안정 하였다. 힘과 속도에 대한 안배가 불균형적이고 무엇보다.오감이 초식과 연계돼 있지도 않는 것이었다.

    "와! 삼사형은 무공이 많이 향상된 것 같네요. 권풍조차도 나오고"

    황사매가 삼사형의 무공 시연을 부러운 듯이 보며 말했다.

    "요즘 구룡폭포에서 정권 지르기 단련을 한 성취가 있는가 보지, 하하!"

    조금은 자랑스러운 듯이 말하는 삼사형의 마음이 상할까봐 심중에 있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던 은성이가 수련 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수련실 밖으로 김장로와 배사형이 걸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승아!"

    수련실 문 밖을 나서며 김장로가 말했다.

    "예, 사부님."

    "은성이는 내가 직접 가르쳐야 할 것 같구나."

    전에 비해 다소 윤기가 흐르는 김장로의 얼굴은 알 수 없는 기대감에 도취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사부가 은성이의 무공 시연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지만 감히 물어보지도 못하고 석승은 짧게 대답했 다.

    "은성아! 허진인이 매우 훌륭하게 가르쳐 주었더구나. 기초가 튼튼하니 내가 직접 무술 지도를 해주겠다. 유 시초에 수련실로 나오거라!"

    "예, 장로님"

    처음에 배사형에게서 무술을 배우라고 하였던 김 장로가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는지 다소 어리둥절한 은성 이가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저녁 식사 후 반시진 정도 지나 수련실에 들어가면서 은성이는 다소 의아해 했다.

    일반적으로 무공 지도는 밝은 대낮에 해 주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수련실 안에는 벌써부터 김장로가 기 다리고 있었다.

    "앉거라!"

    자신의 앞에 은성이를 앉힌 김장로는 은성이의 손목을 잡고 은성이의 내공수위를 측정해 보려고 하였지만 은 성이의 몸은 운공 조식을 배우지도 않은 듯 전혀 내기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전에 운기 요상시 은성이가 자신의 명문혈에 진기를 불어 녛어 내상을 치료해 주지 않았던가'

    "은성아! 허장로가 본파의 내공심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

    "아닙니다. 아직 본파의 내공 심법은 가르침 받지 못했습니다."

    "음, 그래 . 그럼 혹시 본파 이외의 다른 내공심법을 배운 것이 있느냐?"

    "예, 저희 집 서고에 있던 의학서에 씌여진 호흡법을 배웠습니다."

    김장로가 은성이와 대화해 보니 허장로가 은성이를 가르칠 때 은성이의 나이는 8살 이었다. 동방파에서는 속 가제자에게 내공 심법을 10살 이후에만 가르치도록 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것도 이를 절대 유출시키지 않겠다 는 맹세를 시킨 후에만 전수되었다.

    이는 동방파의 비전인 내공심법이 사물을 판단할 이지가 형성되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 함부로 전해져서 유출 됨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내공심법은 세속의 탁기에 오염이 덜된, 쉽게 말하면 어릴 때 익힐수록 그 성취가 높아질 수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전통이며 이를 무시할 수 있는 동방파의 제자 또한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속가 제자의 성취는 입산 제자의 성취에 비해서 낮은 것이다.

    김장로는 은성이가 우연히 가전의 내공심법을 익혔겠지만 무가가 아닌 의가에서 이해하고 있는 호흡법과 무가 에서 다루고 있는 내공심법의 차이가 심하고 스승의 지도없이 혼자서 익히면서 진기가 삿되게 형성되었을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은성이는 동방파의 제자이지만 입산 제자가 아닌 속가 제자였다. 게다가 자신은 은성이의 정식 사부도 아니므로 가전으로 익혔다는 내공 심법을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물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입산 제자가 아닌 속 가 제자에게 자기 가문의 무공을 모두 공개하라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삼류 문파에서도 금기시하 는 행위였다.

    하물며 자신은 대 동방파의 장로이자 또한 도를 닦는 도인이 아니던가.

    "음, 네가 익힌 가전 내공심법이 다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으나 동방파의 권검법을 시전하는 데 불편이 없는 것 같으니 일단은 안심할 수 있겠다. 하지만 본파의 내공심법이 있으니 이를 수련하여 보거라. 수련중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즉시 내게 알리도록 하고."

    "예!"

    "이 심법은 동방파가 개파된 이래로 계속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는 본파의 보물인 "귀장경" 이라고 한다. 이 귀장경은 천년을 살아가는 거북이가 호흡하는 법을 따라 만든 것으로 본파의 모든 무공과 연계되어 있으니 만 큼 필수적으로 익혀야만 한다"

    하면서 김장로는 내공심법의 유출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와 함께 귀장경의 호흡법을 설명해 주고 이를 은성이 가 수련하도록 하였다.

    김장로는 가부좌를 틀고 호흡을 고르고 있는 은성이가 순식간에 무아의 세계로 빠져든 후 호흡이 거의 느껴지 지 않을 정도로 길고 세세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은성이의 좌선 단계는 자신은 물론 지금은 없지만 돌 아 가시기 전 그 경지를 조금 엿볼 수 있었던 동방파의 최고 무재라는 천지검 사숙조의 경지조차도 넘어선 것 처럼 보였다. 같이 좌선을 한 후 한시진 정도 지나자 눈을 뜬 김장로는 이미 은성이가 좌선을 멈춘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좀 진전이 있느냐?"

    호흡법을 배운지 일시진 만에 내기가 느끼어 질리 만무하지만 은성이의 좌선 정도가 매우 심오한 것 같자 혹 시나 하며 김장로가 물었다.

    "아닙니다. 전혀 진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미 바다를 담고 있는 그릇에 한종기의 물이 무슨 차이를 보여 줄 수 있으랴!

    은성이가 귀장경의 심법으로 운기한 내기는 은성이의 백회혈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흔적도 없이 태극 진기 속 으로 빠져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음, 내 욕심이 과했나 보구나. 하루 한 시진 이상씩 꾸준히 운기하면 후일 성취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늦었 으니 그만 들어가 자거라 ! 그리고 내일은 오시까지 수련실로 오거라! "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은성이는 인시경에 평소와 같이 눈을 떴다. 눈을 뜬후 태극 진기를 운행하려던 은성이 는 김장로의 당부를 생각하고는 귀장경의 호흡법을 한시진 정도 운행 하였다. 역시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 았다. 일어나 산책을 한후 조반을 먹은 은성이는 수심실로 발길을 돌렸다.

    수심실에는 삼백여권 남짓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이중 이백여권은 사서삼경과 역사서, 교양서, 잡학 등 이미 은성이가 읽어본 내용의 책들이었다. 워낚 책을 좋아하는 은성이인지라 읽지 않은 책들중 제목이 마음에 드는 것을 빼내어 탁자에 앉았다.

    '해동 권법 개론'

    저자는 '천지'라고 씌여 있었다.

    내용을 읽어 보던 중 은성이는 '천지'라는 저자가 본파의 선배 도인중 한분이며 나이 60여세에 해동권법에 대 한 나름대로의 심득이 있어 이를 써놓은 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그 심득이 직설적이지 못하고 은유 와 추상화되어 표현되어 있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그 내용을 읽던 중 은성이는 매우 마음에 와 닿는 구절 이 있었다. 해동 권법만이 아니라 모든 무공을 배울 때에는 초심의 자 세로 배우라고 씌여 있었다. 여러 가지 무공을 익힌 고수가 새로운 무공을 익힐 때 다른 무공을 익힌 경험으로 새로운 무공을 쉽게 익힐 수는 있지만 초심의 자세로 접근하지 않으면 대성하기는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대성하기 위해서는 그 무공을 이해하기보다는 몸에 익숙해지도록 숙달하여 머리로 생각한 후 펼치는 것이 아 니라 자연스럽게 몸에서 그 무공이 흘러나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무공을 익히기 전에 먼 저 내공을 사용하지 말고 몸에 숙련시키고 그 후에 서서히 내공을 일성, 이성 단계적으로 높여가면서 몸에 숙 련시키도록 하였다.

    물론 제일 중요시하여야 하며 오래도록 수련해야 하는 것은 내공이 없이 무공을 숙련시키는 단계이었다. 어차 피 동방파에서는 자신의 내공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므로 은성이는 동방파에서 무공을 배 울 때 내공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이 책은 삼사형이 읽으면 좋겠구나 생각을 하면서 은성이는 책을 덮었다.

    오시에 수련실에 도착하자 김장로 혼자만이 있었다. 제자들은 모두 상청각에서 단체 수련을 하는 시간이었다.

    오늘 아침 김장로는 제자들의 단체 훈련 시간인 오시에서 신시까지 2시진(4시간)동안 은성이에게 가르쳐줄 무 공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보았었다. 내공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내공심법인 귀장경은 이 미 가르쳐 주었다. 먼저 신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 데 동방파의 가장 신묘한 신법은 이형환위였다.

    동방파는 사실 괜찮은 신법이 없었다. 대대로 내려오는 권법과 검법으로 이름을 떨치었지만 신법이 부족하여 일류 고수가 배출되기는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신풍검객으로 불리는 선배 도인이 중국에 가서 이형환위라는 절세의 신법을 익혀 보급한 후로부터 비로서 동방파가 천하 제일문으로 맹위를 떨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형환위라는 신법은 부단한 수련과 총명한 지혜 그리고 막대한 내공이 있어야만 배울 수가 있었다.

    장로 이하의 동방파 무인 중에서 이형환위의 흉내를 내는 사람은 몇명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시전할 수 있는 사람은 동방 삼룡중 두명 뿐이었다.

    권법으로는 해동권법 다음에 사신 권법이 있었다. 그리고 사신 권법은 청룡권, 백호권, 주작권, 현무권으로 나뉘어졌다. 사신권법은 각각 그 특징이 달라 제자들에게 한가지 이상 전수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사신권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귀장경외에 청룡권은 청룡심법을, 백호권은 백호심법을, 주작권은 주작심법을 그 리고 현무권은 현무심법을 익혀야 하는데 각 심법이 서로 반발하기 때문에 동시에 두가지 심법을 익히면 주화 입마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권법이 매우 위력적인지라 동방파의 위상을 높이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바로 사신권법이었다. 자신과 제자들은 사신권법중 백호권을 익히고 있었다.

    금나술법으로는 '사상금나술법'이 있었다. 이는 동방파에서 자신이 가장 크게 심득을 얻었다고 자부하고 있는 무공이었다.

    지법으로는 '미륵지'가 있었다. 미륵지는 동방파의 구명지초로 모든 도인이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내공 과 수련 정도에 따라 위력이 천양지차가 나는 무공이었다. 자신의 대제자인 석승은 일장 앞에 있는 바위에 반 치 두께의 흔적을 남길 수 있고 자신은 한치 두께의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 미륵지에 큰 심득을 얻은 자운검 허장로는 8년전 일본 해적들과 싸우던 중 일장 앞에 있는 적수가 가진 왜도를 절단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검법으로는 유운검법 다음에 유성검법과 개화검법이 있었다. 유성검법은 절정의 쾌검이었고 개화검법 은 봄에 풀이 돋고 꽃잎이 피어나는 자연의 이치를 보고 깨달음을 얻어 탄생된 일종의 활검이었다.

    김장로가 이렇든 동방파가 가진 절정의 무공들을 속가 제자인 은성이에게 모두 가르치려 하고 있는 것은 말못 할 사연이 있었다. 은성이가 가져온 개파조사의 무공서에 기록된 일식의 보법과 삼절의 검법이 문제의 발단이 었다.

    조사지공은 장문인과 구대장로중 동방파에 머물러 있는 육대 장로가 심혈을 기울이며 연구를 했지만 무공의 내용이 너무나 심오하였다. 보법인 일시무일시은 간단한 것 같아도 너무도 큰 현묘지도가 숨어 있는 것 같았 다. 이를 연구하다보니 이미 알고 있던 신법인 이형환위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 주었지만 그 가르침은 너무나 높고 높아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검법은 일절인 석삼극 무진본에서부터 진도가 멈춰 있었다. 일절의 세개의 초식중 무진중, 무진쾌, 무 진변을 익히기 위해서는 내기의 조절이 천인의 경지에 다달아야만 했다. 이론상의 검법인 것이다.

    유성검법을 가장 깊이있게 깨달았다고 자부하는 묵운검 신장로가 억지로 무진쾌를 시전하려다가 하마터면 주 화입마에 당할뻔 하였다. 옆에 있던 장로들의 심후한 내공과 동방파 비젼의 신단인 구룡환이 없었으면 반신불 구가 되었을 것이다.

    조사지공이 이처럼 난해하자 장로들은 각자 심득을 얻기 위해 모든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데 김장로는 우연히 은성이가 펼치는 해동권법과 유운검법을 보다가 큰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었다. 비록 조사지공을 깨달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무공에 약간의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김장로는 은성이에게 절정의 무공을 가르치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대제자인 석승에게 가르침을 받을 은성이 를 직접 지도하기로 한 것이다. 김장로의 조사지공에 대한 욕심은 은성이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데에 모든 정 열을 쏟도록 만들었고 이로 인해 은성이의 무공 수련은 일신우일신이 되었다.

    물론 김장로의 무공 및 깨달음의 정도도 조금씩 높아져 갔다. 육개월 후 은성이는 김장로가 가르치고자 하는 모든 무공을 배울 수가 있었다. 비록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배우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김장로가 가르쳐 주는 2시진 외에는 따로 할 일도 없어서 오로지 무공 수련만 하였던지라 배운 무공을 자연스럽게 펼쳐질 수 있는 단계까지 수련되어져 있었다.

    호흡법은 귀장경이 별 효과가 없자 허무경의 내공심법으로 다시 복귀하였다. 오행이 합일된 이후에 은성이의 호흡법은 큰 변화가 생겼다. 예전의 복식호흡이 전혀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저 좌선한 후 물아 일체의 경 지에 다다르면 온몸으로 우주의 기가 흡수되어졌다.

    피부 호흡을 하게 된 것이다. 특기할만한 사실은 또 있었다.

    예전에 오행진기를 수련시에는 균형있는 오행진기를 흡수하기 위해 계절 및 시간을 정해놓고 운기 행공하며 각각의 오행진기를 흡수하였는데 오행진기가 태극진기로 합일된 이후에는 주변에 있는 오행의 기운이 균형있 게 은성이의 몸속으로 들어와서 태극진기로 화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즈음은 운기 조식 중에도 다른 생각 을 할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었으며 신체까지도 움직일 수 있었다.

    예전에는 운기 조식을 풀기 위해서는 내기를 가다듬은 이후에야 가능했지만 피부 호흡을 하게 된 이후에는 운 기 조식을 멈추는데 걸리는 시간이 전혀 필요 없었다. 그냥 운기 조식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을 깨달은 은성이는 이후 별도의 운기행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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